자전거 배우기

나도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의 10기 데모데이가 1월 19일 건설회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실은 5분 안에 어떤 팀이, 어떤 문제점을, 어떤 솔루션으로 해결하는지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이번에 발표한 19팀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적은 돈으로 열심히 제품을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하면서, 항상 꿈꿔왔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실행가들이다. 꿈을 현실화하는 이 과정을 5분 안에 압축, 발표하기 위해서 모두 나랑 같이 3번의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어떤 대표는 청중을 압도하는 타고난 발표가 이지만, 대부분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초기 사업가들이다. 데모데이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발표 당일이 되면 나는 항상 조마조마하지만, 모든걸 직접 부딪히면서 해결해야 하는 창업가라서 그런지, 다들 실전에는 매우 강한 프라이머 팀들이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매번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데모데이 행사이지만,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자면 항상 흥분되고, 짜릿하다. 19팀 중 나는 3개의 팀과 약 3개월 동안 매주 만나면서 집중적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대표이사들이 많이 배웠고, 감사하다는 말을 나한테 항상 한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실은 이 팀들이 나한테 뭘 배운 거보다는 내가 이 팀들한테 배운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비즈니스 경험은 프라이머 스타트업보다 내가 조금 더 많고, 대부분 대표이사보다 내가 더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투자를 더욱 많이 할수록 생기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급증하는 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프라이머 회사들한테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도 이런 행사를 좋아하셔서 10기 데모데이에도 오셨다. 복잡한 비즈니스들도 있어서 피칭을 모두 다 이해하시지는 못했지만, “이런 행사에 오면 늘 젊어지는 느낌이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신 걸 보면, 위에서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과 영감을 받으신거 같다.

최근에 우리보다 더 복잡한 투자를 하는 선배가 “기홍아, 너도 어서 펀드 규모를 키워서, 재무제표도 좀 보고하는 투자를 해야지.”라는 말씀을 하셨다(프라이머나 스트롱이 투자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재무제표가 큰 의미가 없다. 매출도 없고, 비용이라곤 월급밖에 없는 초기 스타트업들의 재무제표를 볼 필요가 별로 없고, 실은 나는 재무제표를 봐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VC가 시간이 지나면서 투자를 더 많이 하면, 펀드 규모를 키우고, 투자 규모도 키우고, 투자인력도 더 늘린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투자를 더 많이 할수록, 작은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계속 초기투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복잡한 걸 싫어하고, 많은 사람을 관리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초기기업들과 밀착하게 일하면서 같이 성장하는걸 즐기는 거 같다. 한국으로 온 후에, 이런 걸 부쩍 많이 느끼고 있다.

자전거 처음 배울 때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질까 봐 무서워서, 보조 바퀴를 이용하다가, 조금 자신감이 생기면 보조 바퀴를 제거하고 뒤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잡아준 상태에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던 손을 놓고, 스스로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전진한다. 아마도 뒤에서 자전거를 살짝 잡아주는 이 역할이 나한테는 큰 보람을 주는 거 같다. 실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꽈당 넘어지는 자전거들이 더 많은데, 그러면 다시 잡아주면 된다. 반면에, 어떤 자전거들은 손을 놓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It’s all good.

개발은 정말 왕

trust+me+i+am+an+engineer인터넷이나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창업가는 개발자와 이들의 개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왕이라는 말을 항상 하고, 이에 대해서 2012년2013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우리도 창업팀에 개발력이 없으면 웬만하면 투자하지 않는 것을 우리랑 이야기해 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개발조직이 없어도 잘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다. 일반화하는 건 옳지 않지만, 대부분 이커머스나 O2O 분야 회사들이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이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들이고, 특히 오프라인에 더 비중을 두는 회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회사의 개발력을 강조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우리는 오프라인 운영이 더 중요한 회사라서 개발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거나 개발력이 약하지만 잘 운영되는 회사들을 언급하면서 본인들도 개발력 없이 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은 이분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내부 개발조직 없이 잘 성장하는 회사도 있고, 실은 스트롱 회사 중에도 개발을 외주처리하면서 성장하는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개발력이 없는 스타트업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그리고 이런 회사들을 조금 더 깊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역시 개발력이 약한 회사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과거에 살고 있다면, 개발력이 없어도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 변화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더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면 하다못해 가게 웹사이트라도 있어야 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라도 운영하고, 현장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한 모바일 플레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작은 가게에서 개발자를 채용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더라도 기술을 거부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분야가 같이 존재하는 O2O나 이커머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월매출 1억 – 5억까지는 몸으로 때우면서 성장하는 걸 나도 봤지만, 이를 넘어서 정말 큰 비즈니스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좋은 개발팀이 필요하다. 비즈니스의 특성상 오프라인 요소가 중요하고, 이를 활용해서 성장을 도모하면, 매출이 증가할수록 이에 따른 비용 또한 매출과 함께 거의 선형적으로 증가하는데, 이 오프라인 요소가 비용구조를 해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 기술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간편결제, 물류의 시스템화, 동선 최적화, 추천, 봇, 데이터, 머신러닝 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어야지만, 남들보다 더 lean 하게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성장을 더 빨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창업가보다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다 – 회사가 잘 안 되더라도, 개발력이 있다면 다른 회사에 인수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흔히 이 바닥에서 이야기하는 acq-hire(재능인수)는 대부분 개발력이 뛰어나지만, 딱히 product/market fit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스타트업한테 적용되지, 비즈니스모델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에 해당하는걸 나는 별로 못 봤다. 특히 한국 스타트업이 외국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 아직 이런 사례가 거의 없지만 – 개발력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이커머스나 O2O 비즈니스들은 오프라인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게 참 힘들다. 한국에서 O2O 비즈니스를 아무리 크게 운영해도, 한국 밖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팀을 뽑아야 하고, 외국 시장에 맞는 오프라인 운영 모델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시장으로의 확장 계획이 없다면, 이런 비즈니스모델 위주의 스타트업을 외국 회사에서 인수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거 같다.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은 조금 다르다.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좋은 개발력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면, 미국 회사에는 꽤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다. 미국보다는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인수 이후 바로 현업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개발력에 영어 실력까지 좋다면 정말 금상첨화이다.

어쨌든 비즈니스 분야와는 무관하게, 개발력은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다 못해 “개발은 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meydansozluk.com/gorsel/trust+me+i+am+an+engineer>

롤러코스터 인생

rollercoaster흔히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한다. 나도 40년 넘게 살아보니, 이 말이 맞는 거 같다. 평범한 인생도 롤러코스터인데, 스타트업 인생은 오죽하랴. 이제 우리도 투자한 회사가 70개가 넘었다. 이 중 잘 되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힘들어하고, 항상 돈이 부족하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항상 힘들고, 항상 돈이 부족한 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경험하지만, 이 밑바닥 경험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인간의 멘탈 한계가 가끔 찾아온다.

창업가의 정신적 건강 리스크에 대해서는 이미 2013년, 2014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새 이런 생각을 더욱더 자주 하게 된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포함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최근 많이 느끼고 있다. 스타트업은 모두를 위한 건 아니다. 창업가를 보면 주로 비전이 있고, 자존심이 강하고, 열정과 야망이 넘쳐흐르는 분인데, 예상대로 일이 잘 안 풀리면 이런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 비해 더 크게 좌절하고, 더 큰 자괴감에 빠진다.

인생 살다 보면 일이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고, 또는 일을 아예 못 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풀릴때가 거의 없고, 특히 초기에는 밑바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너무 오래 지속하면 – 그리고 대부분 이 처절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경험한다 – 정신이 공격을 받는다. LG 전자에 다니는 내 월급쟁이 친구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나한테 했다. “야, 승진하니까 스트레스가 장난 아냐.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가 내일은 확 다운되는데, 이러다가 조울증 걸릴 거 같네.” 물론, 이 친구가 정말 힘든 건 내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도 난 별로 불쌍하다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분의 업다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는 동안 매출이 발생했거나, 유저들이 등록을 했다면 마치 마약 한 거같이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 이후로 몇 시간 동안 매출이 안 생기고 유저 등록이 더디어지면 또다시 기분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 감정의 변동이 하루에도 수차례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니, 롤러코스터도 이런 기가 막힌 롤러코스터가 없다.

자, 이게 반복되다 보면 정신적인 타격이 누구한테나 다 오게 되어 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스트레스를 잘 견디기 때문에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느끼지 않는 창업가가 있다면,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로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거나, 목숨 걸고 비즈니스를 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름대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이런 경험이 있으므로, 창업가들의 어두운 경험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스트롱 대표이사님들 보면 마음이 짠하다. 사업이 도대체 뭐길래……. 그런데 이분들이 아셔야 하는 게 있다면, 사업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문제는 더 많아지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사업이 안 풀리면 이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사업이 잘 풀려도 이에 따른 다른 차원의 문제점들과 스트레스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하기로 했으면 미친 롤러코스터를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명심을 하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 다만, 이런 감정의 변화와 기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면 주변에서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가족, 친구, 동료, 투자자, 선배, 후배,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그 누구도 괜찮고, 아무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까 걱정 마라. 혼자 끙끙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interest.com/explore/roller-coaster-quotes/>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외모와 성격으로 보면 모두 다르고 가지각색이다. 스타트업도 비슷한 거 같다. 시장으로 따지면 몇 개의 분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같은 분야에서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도 깊게 들어가서 보면 모두 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나, 또는 최근에 만났던 회사 중 비즈니스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거나 아직도 방향을 못 잡은 스타트업과 이야기해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을 시작했으면,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조금 다르게 – 가끔 완전히 다르다 –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의 교집합이 지금 당장 내가 그나마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교집합이라서 매우 작겠지만, 이렇게 작게 시작해서 금방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그리고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창업가가 본인 또는 팀의 능력과 스킬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일에만 초점을 맞춰서 일을 벌인다. 즉, 내가 잘 못 하거나 아예 할 수 없는 일들에 계속 도전을 하므로 회사가 성장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단 이 교집합을 제대로 공략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와 자신감이 형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팀과 실력을 강화한 후 다른 더 큰 영역으로 확장하는 게 너무 당연한 접근 전략이다.

여기에 하나 더. 내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이 반드시 시장이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이 원하는 건, 이 글의 문맥상으로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내가 잘하는 분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 이 세 가지의 교집합에서 출발해서 안 그래도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한테는 가장 좋은 전략이자 방향이 아닐까 싶다.

실은 비즈니스는 굉장히 유기적이고 복잡해서 수학 공식같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보면, 나는 위처럼 단순하게 공식화, 도식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Feeder의 역할

우리도 두 번째 펀드를 만들면서 한국 정부 기관의 출자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나에게는 중기청을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과 꽤 많은 대화를 할 기회들이 주어진다. 내가 과거에 쓴 글들을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정책과 투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다분히 있지만, 그래도 총체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보다는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취하고 있다. 정부 관련 부서와 담당자분들을 만나면 항상 나한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다. 실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진짜 고마운 분들이다. 본인이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잘 사용해서 대한민국의 창업 생태계에 도움을 주려는 의지라도 충만한 분들인데, 이분들한테 나는 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미 과거 포스팅에서 강조했지만, 창업 정책에 있어서는 정부는 리더(leader)가 아니라 피더(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직접 활동하는 기관이나 사람한테 맡겨야 한다. 이들은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리더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형성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측면이나 후방에서 도움과 지원을 제공해주는 피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실은, 대부분의 정부기관이 겉으로는 이런 피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막상 정책을 실행함에서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모든 정책은 실적과 직결되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더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는 간혹 어떤 프로그램이나 정책을 보면, 창업 생태계가 아닌 특정 기관이나 담당자의 실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창조경제가 만든 스타트업 정책 중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최소 10년~15년을 보고 운영했으면 한다. 안 그래도 요새 너무 많은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유행을 좇아가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데, 정부마저 유행을 타면서 스타트업 정책을 만드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기술이 실리콘밸리에서 갑자기 뜨거나, 대통령이나 장관이 어떤 회의에 갔다가 갑자기 뭔가를 듣고 오면, 이게 갑자기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본 거 같다. 번갯불에 콩 볶기 전에, 과연 이런 기술이나 트렌드가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지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고 판단을 한 후에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었으면,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지 말고, 아주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실행해야 하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새로운 담당자는 꼭 본인 주도하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 좋은 정책이라면, 여러 정권에 걸쳐서 훨씬 더 견고하게 잘 다듬어서 꾸준히 실행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피더들은 리더들이 주최하는 행사를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 기관들은 아직도 너무 많은 행사를 직접 하려고 한다. 나도 2012년부터 비글로벌 행사를 준비해봐서 잘 아는데, 관에서는 이런 스타트업 행사를 할 수가 없다. 관이 조금이라도 관여하게 되면, 행사의 어젠다와 포맷은 완전히 산으로 가게 되고, 아마도 정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분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스타트업이 뭔지도 모르는 고위 공무원들이 차례로 환영사를 하는 걸 보면 한숨 밖에 안 나온다.
실은, 담당자분들도 이런 사실을 다 안다. “저희가 원래 정부 기관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행사를 할 때는 한계가 있네요.”라는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는데, 거의 5년째 똑같은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게 앞으로 바뀌지 않을 게 뻔한데도, 똑같은 포맷으로, 똑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면서, 해마다 이런 행사를 계획하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어떤 정부 관계자가 나한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행사를 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안 하면 된다. 그런 보여주기식 행사보다는, 그 예산으로(=세금) 아직도 겨울을 춥게 사는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사주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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