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eaucrat_2최근 몇개월 동안 한국과 미국 대기업 분들과 같이 소통하고 일 할 기회가 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기업과 같이 일하는게 쉽지 않고 항상 실망감만 남았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특정 기업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졌던거 보다는 대기업의 사람들한테 큰 실망감을 경험했다.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잘 아시잖아요. 대기업이 원래 좀 그래요.”

의사결정이 엄청 느렸다. 대기업이 원래 그렇단다. 같은 부서 직원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안 되었다. 다른 부서는 완전히 다른 회사다. 대기업이 원래 그렇단다. 언제까지 뭔가 결과물을 전달해 준다고 했는데 항상 늦었다. 대기업이 원래 그렇단다. 뭔가 잘 안되면 ‘윗 사람들’이 승인을 안해서 그렇단다. 대기업이 원래 그렇단다. 아예 연락이 안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기업이 원래 그런가보다. 참 안타깝고 실망스러웠다.

실은 대기업이 원래 그렇다기 보다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 능력있고 일 잘하는 사람들도 대기업 들어가면 결과나 효율보다는 정치, 프로세스, 책임면피 이런거에 집중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경우를 나도 더러 봤는데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대기업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의사결정이 전반적으로 느린 이유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결정 프로세스를 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은 그 이유를 상사한테 넘기고, 상사들은 그 이유를 다시 그들의 상사한테 넘긴다. 실은 맨 위의 의사결정권자 한테는 이 내용이 제대로 전달 되지도 않는다. 권한은 모두가 다 가지려고 하는데,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회사 잘 아시잖아요. 원래 좀 그래요.”를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그 회사가 그렇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능력이 없는거고 그걸 회사의 탓으로 돌리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사람이 많고, 책임감을 여기저기 토스하면서 시간과 자원의 손실이 발생해도 대기업은 굴러갈 수 있는 돈과 자원이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기업문화가 회사의 직원들을 형성한다는 이론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기업문화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기업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Red Bull의 기업문화에 대해서 쓴 적이 있는데, 당연히 이런 회사에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회사의 문화를 흡수해서 진정한 Red Bull 사람이 된다. 회사가 그 사람을 만들지만, 그 전으로 가보면 그런 회사는 Red Bull의 직원들이 만든 것이다. Red Bull도 직원이 거의 1만명이나 되는 대기업이지만, 내가 이들과 같이 일했을때를 회상해보면 부사장이나 리셉셔니스트나 모두 책임과 권한을 본인들이 가지고 움직였지 한번도 남 또는 회사를 탓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조직의 스타트업과 같이 일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bullshit도 없고, 회사에 쓸데없는 지방이(fat) 끼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기업도 스타트업과 같이 운영될 수 있다. 결국엔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생각을 제대로 갖고 그에 충실한 액션을 취하면 된다.

<이미지 출처 = Verite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