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yata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이야기이다. 소규모의 행사에 참석하는 날이라서 사무실이 매우 분주했었는데 Justice라는 백인 친구가 행사 참석하러 왔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우리 사무실에 잠깐 들렸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내 옆에 앉아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me: 그래서 너는 뭐하니?
-him: 아 우리 모바일 앱 만들어
-me: 어 그래? (굉장히 관심 많음). 무슨 앱?
-him: 사진 앱. 보여줄께.
-me: 아…그래? (관심 급격히 떨어짐). 내가 좀 바빠서 가봐야 겠다

실은 지금은 더 심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진 앱 시장은 굉장히 포화되어 있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사진 앱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사진 앱’ 이라는 말만 듣고 이 친구들은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우린 페이스북을 능가하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거야 (근데 우린 돈도 없고 팀원도 5명이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 친구를 넘어서 나가려고 했는데 Justice는 아직 미완성된 앱을 내 얼굴에 갖다 대면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정성껏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쩔수 없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그냥 재미있는 척 하면서 대충 앱에 관심을 보이는 시늉만 하다 한 5분 뒤에 나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려 45분 동안 이 앱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심지어는 행사에 늦기까지 했다. Pinyata라는 이 앱이 나한테 신선하게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이 단순히 timeline을 기반으로 사진을 공유하는 방법이 아니라 특정 이벤트를 기반으로 사진을 공유하는 서비스라는 점이다. 페이스북의 timeline과 사진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사진들이 timeline에 파묻힌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사진들 보다는 항상 내가 잘났다는 걸 자랑하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류의 사진만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Pinyata를 이용하게 되면 주말에 참석했던 친구 생일파티, 야구경기 또는 굉장히 평범한 동네 공원에서의 산책과 같은 특정 이벤트에 대한 사진들을 편안하게 올리고 이를 가지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회사에 우리는 전략적 투자를 했고 긴 개발 시간, 실험, 그리고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은 후 Pinyata가 얼마전에 출시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이렇게 많은 사진 앱 중에 Pinyata가 과연 뜰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내가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아무리 절대강자가 존재하는 포화된 시장이라도 똑똑하고 충분히 생각을 많이 하는 창업가들은 그 포화된 시장에서 다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유일한 각도에서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내가 전에 포스팅했던 그릭 요거트 Chobani검색엔진 DuckDuckGo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 나아가서는 “나는 앞으로 절대로 xxx를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는다는 건 위험하고 스스로 기회를 제한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