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실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제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역대 미국 스나이퍼 중에서도 전설로 불리는 카일씨는 160여 명의 이라크 무장 세력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내용을 떠나서 이 영화의 흥행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패턴이 보인다.

일단 미국 영화 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는 개봉한 주말의 흥행기록인데(미국 영화들은 대부분 금요일에 개봉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북미와 캐나다 개봉 주말 매출은 1,150억 원 정도였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서 금/토/일/월 나흘 동안의 기록이었지만 중저가예산의 영화치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높은 매출이었다. 더 재미있는 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가장 많이 본 10개 도시 중 8개가 미국 남부와 중서부 도시였다. 전통적으로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더 많은 극장이 있고, 영화표 가격이 더 비싸고,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극장에 가기 때문에 성공한 영화들은 이 두 도시에서 항상 강세를 보이지만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경우 과거의 데이터와 많이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만큼 미국 시골의 작은? 도시에는 평소에는 극장에 거의 가지 않는 참전용사들과 –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기 위해서 수 십 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는 분들도 있다 – 이들을 위주로 형성된 underserved(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시장이 말이다.

이 재미있는 현상을 보면서 나는 한국의 시장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해봤다.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 이다. 나도 부산에서 잠깐 살아봤지만, 그때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과 서울의 격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지 몰랐다. 한 도시와 그 주변에 한 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는 나라가 한국말고 과연 또 있을까?

벤처업계도 이 패턴을 따르는 거 같다. 한국의 벤처 돈의 90%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아무리 서울에 인구가 많고, 회사들이 많고, 학교들이 많지만 이건 너무 과한 것 같다. 비서울 지역에도 좋은 학교, 인력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분명히 있다. 나한테 연락 오는 벤처 중 지방이 본사인 회사들도 많고 이 중 굉장히 좋은 회사들도 많다. 하지만 모두 하는 말이 “서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정보도 얻기 힘들고 투자자분들이 귀찮고 바빠서 잘 안 내려오시네요.”이다. 스타트업들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서울에서 출시되는데 나는 오히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을 초기시장으로 공략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역들이 모두 underserved 시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예상치 못한 시장을 찾았듯이 스타트업들도 서울이 아닌 underserved 시장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장들은 ‘underserved(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시장이지 ‘undeserved(손길을 미칠 가치가 없는)’ 시장이 아니다.

<참고기사 = http://www.wsj.com/articles/america-embraces-american-sniper-1421705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