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네이버가 플리토의 번역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한 네이버 ‘참여번역Q’를 출시해서 상당히 욕을 먹고 며칠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봐도 이건 네이버가 생각이 너무 짧았던 거 같다. 그냥 카피해도 욕을 먹었을 텐데, 플리토라는 회사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고 이 회사의 번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그대로 카피를 했으니까 이건 당연히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게 있다. 네이버가 이 번역 서비스를 계속 운영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과연 네이버가 더 크고, 사용자들이 더 많고, 돈으로 밀어붙이니까 몇 년 동안 시장에서 잘 성장하고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플리토의 서비스가 위기를 맞고 문을 닫았을까? 아니면 워낙 서비스가 탄탄하고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네이버가 공격해도 끄떡없고 오히려 네이버가 번역 서비스를 포기했을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분야로 진출한다고 하면 우리는 일단 비판부터 하는 거 같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없는 자들의 피를 뽑아간다고 하면서. 그런데 나는 가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본다. 일단 대기업들이라고 항상 잘 먹고 잘사는 건 아니다. 이들도 성장을 위해서 매일 고민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동네 상권으로 진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있는 조금은 더 ‘작은’ 놀이터로 진출한다. 그리고 나는 대기업이 해야 할 분야, 스타트업이나 동네 가게들이 해야 할 분야가 따로 존재한다는 건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인 거 같다. 자본주위에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모든 분야를 진출 대상으로 고려해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가 작은 스타트업인데 네이버나 카카오같이 큰 회사가 엄청난 자본력과 인력을 가지고 우리 나와바리로 진출한다면 당연히 걱정이 돼서 잠을 못 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분야에서 정말로 실행을 잘하고 있고,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면 아무리 대기업이 들어와도 자신이 있을 거 같다. 만약에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진다면? 억울하고 화가 나겠지만, 아주 냉정하게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후발주자한테 시장을 빼앗긴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 때문에 스타트업이 다 망하면 우리 같은 투자자들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대기업이 동네 상권으로 진입하는 걸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막는 건 상생에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진정한 상생은 실력으로 경쟁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충성심 높은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면, 아무리 대기업이 들어와서 서비스를 카피해도 따라 잡히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소비자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파리바게뜨와 같은 대형 빵집이 없다. 가장 가까운 빵집은 옆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동네 빵집이다. 그런데 이 가게는 ‘동네 빵집’이 떠올리는 정겹고 친절한 그런 이미지의 가게와는 거리가 멀다. 맛도 그저 그렇고, 가격도 비싸고, 친절하지도 않고, 동네 경제의 일부라는 그런 공동체 의식도 전혀 없다. 빵마다 가격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주인아주머니한테 매번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오는 답변이 과연 정확한 가격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건지 의심스럽다. 만약 파리바게뜨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우리 집 앞에 생기면 이 동네 빵집은 그대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 고급은 아니고, 가격도 비싸고 서비스도 나쁘니까 빵집으로서는 실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가게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망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분이 기억할 텐데, 롯데마트가 치킨을 판매한다고 발표했을 때 엄청 욕먹었다. 너무 싸게 팔아서 동네 치킨집들 다 죽일 것이란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많은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문을 닫는 치킨집들은 다 맛없고 자기만의 개성이나 강점이 없는 가게들이었다. 롯데마트보다 훨씬 비싸게 팔지만, 자기만의 노하우로 정말로 맛 좋은 치킨을 좋은 서비스에 제공하는 동네 치킨집들은 여전히 잘 되고 있고 나도 더 비싸지만 이런 치킨집들을 애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플리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결국, 네이버 김상헌 대표님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번역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플리토 이정수 대표님의 스마트한 소셜 마케팅이 있었고, IT 분야에서 종사하는 많은 분의 네이버 공격과 비난이 있었고, 언론의 플리토 옹호 플레이가 있었다. 나는 이것도 플리토가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과 사용자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물론, 한국인들의 대기업에 대한 증오도 한몫을 했다). 제품이 후졌고, 사용자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 동네 가게,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상생하려면 모두 다 자기만의 실력을 갈고닦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다. 자연스럽게 경쟁력 없는 업체들은 없어지고, 실력 있는 회사들이 살아남을 것이며,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모두가 다 실력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렇게 되면 대기업만이 승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