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것도 공식화할 수 없는 게 ‘투자’라는 게임인 거 같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가를 선택하는 기준도 항상 다르고, 지금 검토하는 게 잘 될 만한 비즈니스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없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어떤 창업가들이 좋은 창업가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가 성공할 비즈니스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판단도 힘들고, 실제 미시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공식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직장 경험이 없는 젊은 팀이 만든 매출이 없는 회사는 과연 얼마짜리 회사일까?

회사가 어느 정도 굴러가서 현금흐름이 명확하고, 미래의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해지면 DCF(=Discounted Cash Flow)와 같은 기업금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스타트업 중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다. 물론, 내가 봤을때는 말이 안 되는 수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밸류에이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너무 극적으로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장하거나, 어떻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는지 나를 조금 더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나보거나 이메일로 연락해보면 어떤 창업가들은 조금은 더 수긍이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기존 밸류에이션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제시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듣는 건,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회사가 창업 후 초기 5년 동안 매년 200% 성장했습니다.” , “저희랑 비슷한 회사의 창업 2년 후의 밸류에이션이 이 정도였는데, 우리는 후발주자이니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등과 같은 말인데, 항상 남의 회사와 비교를 해서 우리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실은 이런 방법을 CCA(=Comparable Company Analysis)라고 한다. 가치를 매기기 힘든 스타트업의 경우 비슷한 산업군의 기업 또는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기업을 벤치마킹해서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방법인데 나는 이 방법으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도 전에 만난 기억이 난다. 새로운 개념의 소셜미디어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분인데 – 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 과거 창업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팀도 없는 상태였다. 제품도 개발 중이라서 뭔가를 보고 판단하기가 상당히 모호한 단계였는데 이 분이 스스로 부여한 밸류에이션은 80억이었다. 왜 80억이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비즈니스와 페이스북이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이 창업 초창기에 받았던 밸류에이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랑 마크 저커버그랑 능력 면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좀 기가 차고 웃음도 났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분이라서 이야기는 좀 하고 미팅을 끝냈다. 참고로 이 비즈니스에 우리는 투자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관련 소식이 안 들리는 거 보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거 같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고,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이다. 즉, 남이 받은 밸류에이션은 그 회사의 밸류에이션이고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아무리 비슷한 분야, 비슷한 단계, 비슷한 비즈니스 같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비슷한 점 보다는 다른 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남의 밸류에이션을 보면서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자 부질없는 짓이다.

끝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전자상거래 하시는 분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표님, 요새 이커머스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가 않습니다. 저희도 투자를 좀 했는데, 이커머스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많은 투자자들이 깨닫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새 전반적으로 이 분야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향조정되는 추세이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의 대한 밸류에이션을 주야장천 주장하시던 분이 한다는 말이 “아, 우리 회사는 조금 달라요. 이커머스 방식도 다르고,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을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였다.

남의 회사랑 우리 회사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