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과거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아서 매우 후회하는 회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실은 이런 회사들이 모든 투자자에게는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누가 이 질문을 하면,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투자하지 않았고, 이 회사들이 아주 미친 듯이 잘 되어서, 내가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가끔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이젠 이런 후회를 안 한다.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은, 내가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는 회사들을 아까워하고 부러워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이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투자했는데 잘 안 되는 회사들에 사용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은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내가 투자하지 않은 회사는 실은 나랑 우리 펀드랑 전혀 상관없는 회사다. 이 회사가 잘 돼도, 잘 안 돼도 우리 펀드의 실적에는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하면, 그리고 이런 회사의 수가 누적될수록 우리 펀드에 악영향이 미친다. 그런데도, 과거의 나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가 기회가 있었음에도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어 있는 회사들을 아까워하는 걸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앞으로 저런 회사를 만나면 꼭 투자해야지!”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자주 듣는다.

어떤 이는 자기가 가질 수 있었음에도, 갖지 못한 남의 물건에 대한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이를 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 나는 이게 다 투자자가 확실하고 명확한 투자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도 과거에 투자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큰 회사로 성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지금 나를 찾아온다고 해도 나는 아마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투자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대로 투자 철학을 구성하고 있는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었고, 이 철학의 틀에서 봤을 때 투자할만한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실적이 좋고 안 좋고와는 상관없다. 남들이 봤을 때 아무리 좋은 회사고, (이런 회사는 세사에 없지만) 투자하면 무조건 대박이 날 제품을 만들어도, 우리가 고민 끝에 만든 투자 원칙에 어긋나면 투자집행을 하지 않는 게 맞다. 이런 고민과 과정을 거쳐서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 회사가 아무리 잘 되어도 별로 후회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 회사와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고, 행운을 빌어준다. “왜 내가 그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또는 “다음에 저런 회사에 꼭 투자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이 없으면, 귀가 얇은 투자자가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유행을 좇고, 남의 말에 영향받아 투자하게 될 확률이 커진다. 내가 아는 VC 중, 자신의 투자철학을 철저히 지키는 분이 있는데, 2년 동안 신규 투자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스윗 스팟(sweet spot)에 들어온 스타트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이 만났지만 투자하지 않은 회사 중 유니콘 기업도 몇 개 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대신, 투자한 포트폴리오 사 중 잘 안 되는 회사에 그 2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명확한 원칙을 갖고 투자하고, 이 원칙에 어긋나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고 있는 회사를 보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원칙에 맞아서 투자했는데 잘 안 되는 회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