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에 종사한다면, LA 기반의 subscription 회사 Dollar Shave Club(DSC)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회사 이름은 못 들어봤어도, 남성 면도기를 팔아서, 창업 5년 만에 다국적기업인 유니레버에 1조 원에 회사를 매각한 청년의 기사는 읽어봤을 것이다. 실은 같은 지역인 LA에서 창업된 이 회사를 처음 접했을 때, 그냥 누가 장난삼아 시작했고, 좀 하다가 그만두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올해 나는 달러쉐이브클럽을 그대로 베낀 비즈니스, 또는 이와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생필품이나 소모품을 정기구독 방식으로 판매하는 한국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 강한 욕망을 가진, 아주 똑똑한 창업가였고, 모두 하나같이 “달러쉐이브클럽이라는 비즈니스가 있는데요, 남들이 웃고 넘겼던 비즈니스였지만, 1조 원에 인수됐습니다”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나와 미팅을 했다.

나도 실은 달러쉐이브클럽의 인수를 접했을 때 많이 놀랐고, 다시 한번 좋은 실행력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런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결론적으로는, (아직) 그 어떤 팀에도 투자를 집행하지는 않았는데, DSC 같은 성공적인 정기구독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 기업이 꼭 갖춰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이커머스 전문가는 아니라서, 이건 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성공적인 subscription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DSC가 매우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창업 첫날부터 자체 브랜드를 판매했다. 생필품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대부분의 회사는 일단은 남의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전략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하다가 어느 정도 규모에 도달하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할 생각을 하는데, 처음부터 자체 브랜드로 시작하는 걸 권장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고객의 이탈을 방지하면서, 지속해서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다. 브랜드와 제조원이 빤히 노출되는 남의 제품을 유통하면, 고객이 우리를 건너뛰고 맘에 드는 특정 브랜드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게 너무 쉬워진다. 특히, 면도기와 같은 소모품은 소수의 브랜드만 존재하고, 웬만한 슈퍼, 편의점, 마트에 가면 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DSC의 자체 브랜드 전략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면도기/날로 시작했지만, 이 회사는 다른 남성 제품군으로 확장하고 있다. 물론, 모두 다 자체 브랜드로.

실은, 자체 브랜드가 아닌, 남의 제품을 취합해서 판매하는 전략으로 잘하고 있는 이커머스 스타트업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을 잘 보면, 내가 이 포스팅에서 썼듯이, 큐레이션에 특별한 강점을 가진 경우가 많다. 즉, 와인이나 맥주같이, 너무나 다양한 제품이 존재하고, 전문가의 통찰력 없이는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게 어려운 분야의 비즈니스라면, 누군가 나를 위한 제품을 잘 골라준다면, 충분히 계속 돈을 내고 구매할 의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먹을만한 와인 종류가 30가지 밖에 안 된다면, 큐레이션 섭스크립션 비즈니스는 쉽지 않다. 큐레이션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발견만 한다면, 그 이후에는 이 와인을 직접 구매할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 스낵피버는 한국 과자를 정기구독으로 판매하고 있다. 한국 과자는 위에서 말한 와인이나 맥주만큼 종류도 다양하지만, 미국인들이 직접 구매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LA나 뉴욕같이 한인이 많이 없는 지역에는 한국슈퍼가 없기 때문이다. 미주리주의 시골에 사는 백인이 ‘고래밥’을 구매하고 싶어도, 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스낵피버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다.

DSC가 또 한 가지 잘 한 점은, 반드시 필요하되, 옵션이 별로 없는 분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그 횟수야 다르겠지만, 누구나 다 면도를 해야 한다. 면도하는 방법은 dry 면도와 wet 면도 두 가지 뿐이다. 나같이 dry 면도를 선호하면, 전기면도기를 사용하고, wet 면도를 선호하면, 실은 수동 면도기 브랜드의 종류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소수의 경쟁사보다 더 싸고, 좋을 수만 있다면 이길 수 있는데, DSC가 그걸 잘 한 거 같다.

DSC의 고객들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초기 면도기와 면도날은 한국회사가 제조해서 공급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도루코가 DSC한테 제품을 OEM 공급 했는데, 도루코가 2012년 DSC와 어떤 가격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꽤 좋은 조건이었다고 한다. 즉, 기술력 있는 업체로부터 좋은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고객 만족과 수익성에 많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도루코는 혹시 DSC가 물품대금 지급을 못 할까 봐, 안전장치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 계약도 체결했는데, 올해 이 콜옵션을 행사해 약 600억 원을 벌었다. 이는 도루코의 작년 영업이익인 472억 원보다 높다.

또 한가지. DSC의 Michael Dubin 사장은 뛰어난 배우이자 마케터였는데, 이 또한 회사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마이클 대표가 직접 출연한 DSC 홍보 동영상 ‘Our Blades are Fucking Great’은 유투브에서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으면서 완전히 바이럴하게 퍼졌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가 이 면도날을 홍보했다면, 어쩌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을 수도 있지만, 제품을 직접 만든 대표이사가 “우리 면도날 x나게 좋으니까, 다른 쓰레기 제품은 버리고 우리 제품 사용해봐.” 했던 게 지금까지 시장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호기심을 발동한거 같다. 많은 남성이 저렇게 재미있는 사장이 만든 면도기는 꼭 한 번 사용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거 같다.

실은, 내가 나열한 점들 때문에 DSC가 잘 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지만 성공적인 subscription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창업가라면 ‘정기구독’의 의미에 대해서 잘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