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는 ‘put up a good fight before you go down’ 이라는 말이 있다. 시합에서 패색이 짙어지거나, 또는 전쟁에서 죽을 게 확실해지는, 그런 불리한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모든 걸 걸고 최후의 한판을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말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엔 지거나 죽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굉장히 멋있고 창업가들의 정신을 아주 잘 반영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제 펀드에서 공식적으로 투자한 지 6년이 되어간다. 모든 펀드와 비슷하게,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가 있고, 잘 못 하는 회사가 있다. 잘 안되는 회사가 훨씬 많은데, 이 잘 안되는 회사 중, 잘 될 기미가 별로 안 보이는 회사도 많다. 물론, 공개적으로 티는 안 난다. 하지만, 대표이사와 이야기해보면, 회사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걸 대표와 투자자 모두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대표와 직원들이 이야기 할 때도 이런 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고, 그 산을 못 넘을 확률이 더 높다는 걸 모두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봐야 한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 중,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V자로 리바운드해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회사가 있는가 하면, 그냥 예상했던 대로 폐업한 회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회사의 창업가들이 다른 비즈니스로 다시 창업한다면, 둘 다 믿고 투자할 의향이 있다. 결과는 다르지만, 벼랑 끝까지 가는 과정을 지켜봤고, 여기까지 왔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정말 잘 버텼네. 이제 접자.” 하고 포기할텐데 – 그리고, 그렇게 포기해도 난 투자자로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 그 벼랑 끝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면서 putting up an awesome fight를 하는 것까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는 벼랑 끝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아서, 전투에서 이겼고, 이제 세상을 제패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너무 다행이고, 정말 자랑스럽다. 어떤 회사는 벼랑 끝으로 떨어져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너무 안타깝지만, 그래도 정말 자랑스럽다.

어차피 창업의 길을 가는 건, 남이 안 된다고 하는 길을 나 혼자 고독하게 걸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 끝도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끝내면 안 된다. 남들은 포기하고, 이 정도면 됐다고 할 때, 나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죽을 땐 죽더라도, “저런 독한 새끼는 처음이야”라는 말은 듣고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