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fish-little-pond과거에 ‘서울만 중요한가?‘ 라는 포스팅에서 나는 굳이 모든 회사가 서울로 올 필요가 없다는 걸 강조했다.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우리가 투자한 몇 안 되는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항상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내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지방의 열악한 환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러다 보니, 회사의 위치에 대한 대화를 한번 시작하면, 지방에서 완전히 뿌리를 박고, 회사가 커지면 서울에 지사나 사무실을 하나 만들자는 내 주장과 지방에서 시작하지만, 조금만 회사가 성장하면, 본사를 서울로 옮기자는 팀의 주장이 극과 극으로 충돌하고, 답이 없는 대화로 끝난다. 물론, 내가 강압적으로 이런걸 강요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결정은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하는 거고, 대부분 회사는 돈을 어느 정도 벌면, 지방을 떠나서 서울로 이사하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이에 대한 내 입장을 한번 정리해본다. 지방에서 창업했는데, 사업 규모가 커지면 서울로 본사를 옮길 생각을 하는 창업가를 지금까지 꽤 많이 만났는데, 이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보, 네트워크, 벤처캐피털, 공간, 그리고 채용이다. 간혹 겉멋에 사업하는 창업가들이 본사 주소가 강남이 아니면 파트너나 고객이 무시한다는 이유로 서울, 그것도 강남으로 이전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가짜 창업가들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들을 주로 fauxpreneur라고도 한다.

하나씩 짚고 넘어가 보자. 지방에 있으면 서울보다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음 항목인 네트워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 같다. 일단, 단순 정보에 대해서는 이건 무조건 틀린 말이다. 대부분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널려있는데,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그 접근성은 똑같다. 의지만 있다면, 그래서 충분한 시간만 투자하면, 전 세계 모든 정보는 손가락 하나로 접근할 수 있다. 충분한 의지와 끈기만 있다면,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지 않고도, 구글 검색으로만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아마도, 지방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지방에는 서울과 같은 좋은 네트워킹 모임이나 행사가 없다는 말을 하는 거 같다. 즉,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과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모임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반만 동의한다. 서울에는 지방보다 네트워킹 모임이 많은 거지, ‘좋은’ 네트워킹 모임이 많은 건 아니다. 솔직히 서울의 네트워킹 행사나 모임 대부분 별로 영양가가 없다. 새로운 사람 또는 이미 아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는 건 맞지만, 이게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나 투자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 오히려 제품을 만들고, 고객한테 집중해야 할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그러니까 회사를 서울로 옮겨서, 이런 화려한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면, 갑자기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거라는 순진해 빠진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나만 잘하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좋은 정보와 좋은 사람에 대한 접근성은 저절로 생긴다. 오히려 이들이 나를 찾아온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다.
지방에는 VC가 거의 없다.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지방에는 서울만큼 쉽게 투자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방의 스타트업이 투자받을 수 있는 확률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자자도 좋은 회사 냄새는 금방 맡고, 좁은 투자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잘 나가는 회사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진다. 지방에 있는 회사가 좋은 실적을 내면서 잘 성장하고 있으면, 투자자들이 돈 보따리를 싸서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럼 왜 우리 회사는 투자자가 안 찾아올까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의 회사가 후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디캠프, 마루180, 구글캠퍼스, 카우앤독 등 코워킹스페이스가 많은데, 지방은 이런 공간이 전혀 없어서 창업이 활성화되기 힘들어요.”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아주 많이 듣는다. 스트롱도 구글캠퍼스 안에 사무실이 있고, 디캠프와 마루180에도 나는 가끔 가는 편인데, 이런 공간이 지방에 없어서 창업하는 데 불리하다는 생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 공간이 있든 없든, 창업은 할 수 있고, 회사를 키울 수 있다. 그리고 혹시나 서울로 이사 오면, 이런 코워킹공간에 누구나 다 입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후진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서울이든 지방이든 대접받지 못한다.

실은, 채용에 대해서만 나는 서울로 오고 싶어하는 창업가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대한민국의 좋은 인재들이 서울로 많이 몰리는 건 사실이다. 좋은 대학교도 서울에 많고, 좋은 직장도 서울에 많기 때문에, 서울에는 좋은 인재들이 많다. 하지만, 그래서 무조건 서울로 와야겠다는 대표이사들은 채용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서울에 너무 꽂혀서, 처음부터 지방대학 출신이나, 그 지역의 인재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걸 나는 여러 번 느꼈기 때문이다.
채용에 대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데려오려면, 큰 물의 작은 고기가 되기보다는 작은 물의 큰 고기가 돼야 하는데, 이게 서울로 올라오면 쉽지가 않다. 서울에 오면 우리 회사는 수많은 벤처기업 중 하나가 될 텐데, 과연 최고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을까? 한국 최고의 회사, 그리고 간혹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회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우리가 이들과 경쟁해서 더 좋은 인재를 데려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경쟁이 덜 치열하고, 그나마 우리가 남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지역이나 시장에서, 그 지역 최고의 인재들을 채용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CNBC의 2017년도 조사에 의하면, 서울은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이다. 이 결과의 신빙성은 좀 떨어지지만, 어쨌든 서울은 물가가 높은 도시다. 아직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스타트업이 서울로 이사 오면, 비용 구조는 최악이 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활주로(runway)가 엄청나게 짧아진다. 이렇게 비싸다 보니, 사무실은 서울에 있지만, 직원들은 서울에서 멀리 살 수밖에 없고, 여기에 서울의 교통지옥이 합쳐지면, 출퇴근 시간이 짜증 나게 늘어난다. 그리고 위에서 이미 언급한 인재 채용의 문제는 실은 지방보다는 서울이 더 심각하다.

그런데도 굳이 우리 회사를 서울로 이사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우리의 본사이고, 내가 제품을 만들고 있는 곳이 우리의 본사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Shout It Out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