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를 얼마 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교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동양인 학생이 학교 과제에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보다는 이미 죽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해오자, 담당 교수가 버럭 성을 냈다고 한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오라고 했지, 아담 스미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라면서.

이런 현상을 장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옛날에 맹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 공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라면서 고전을 인용해야 하고, 그렇게 과거의 권위를 끌어대야지만 자기가 뭔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대다수의 동양인들이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수긍을 하는데, 이 현상을 동양과 서양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어떤 서양 교수가 “서양에서는 다 옛날에 한 얘기도 어떻게 하면 내가 새로 발명한 얘기처럼 하려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꼭 인용한다.”라고 정리했다고 한다.

나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걸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다. 실은, 오늘도 미팅하면서 “미국에도 혹시 비슷한 서비스가 있나요? 펀딩은 얼마 받았나요? 그 회사는 잘하고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했고,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였는데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잘하고 있고, 투자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하니, 왠지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이 어떻고, 이 창업가가 이 비즈니스를 정말 잘하고 있냐가 핵심인데, 난 자꾸 내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봤다.

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복잡하다. 많은 것들과 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을 모두 다 종합한 후에 혼자 생각을 해서 나만의 주체적인 답을 끌어내야 하는데, 실은 나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