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벤치마크에 대해 포스팅했는데, 여기서 언급한 WSJ 기사에서 벤치마크의 파트너 Bill Gurley가 – 참고로, 많은 동료 VC의 존경을 받는 투자자다 –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올바른 판단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틀린 판단에서 나온다(good judgment comes from experience, which comes from bad judgment).”

이걸 내 탐라에 올렸는데, 상당히 많은 호응을 얻었고, 많은 분이 이 말에 동의했다. 실은, 일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 특히, 스스로 뭔가를 시작한 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창업가 – 누구나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세련되고 멋진 말로 표현을 못 했을 것이다.

아마도 빌 걸리 본인이 벤치마크에서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그만큼 실수를 많이 했고, 나쁜 투자를 많이 했고, 거기서 나온 통찰력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거 같다. 이 업계에서 “이왕 실패할 거면, 빨리 실패하고, 이왕 할 거면 아무도 모르는 작은 실패보단, 누구나 다 아는 그런 큰(=spectacular) 실패를 해라”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데, 같은 맥락인 거 같다. 실패가 커야지만, 그로 인한 쓰라린 아픔과 기억이 생기고, 이게 몸과 마음속에 남았을 때 소위 말하는 ‘경험’이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경험은 미래의 좋은 결정과 판단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투자를 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7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9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잘 엑싯한 회사도 있고, 비즈니스를 아주 잘 하는 회사도 있지만, 실은 망한 회사도 많고, 잘 안 되는 회사가 더 많다. 대부분의 펀드 상황은 비슷할 텐데, 우린 극초기 투자라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그 편차는 더욱더 커지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중 망했거나, 또는 현재 힘든 회사들을 보면 기업이 창업 순간부터 갖게 되는 태생적인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 한 거 같다. 시장의 리스크, 팀의 리스크, 펀딩의 리스크, 기술의 리스크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비단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리스크는 누구도 언제, 어떤 강도로 회사에 닥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다가 회사가 잘 안 되면 정말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판단을 초기부터 잘 못 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편견, 과거의 경험, 쓸데없는 고집, 경직된 사고 등으로 인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해서 이 회사가 잘 안 되는 경우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런 경험이 적다곤 할 수 없다(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씩 들진 않겠다). 확신을 하고 성공할 거라고 믿은 회사에 투자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그런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투자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경우가 있다. 또한, 확신을 갖고 절대로 안 된다고 판단해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가 완전 잘 된 경우도 수없이 많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이후 비슷한 회사나 창업가를 볼 때 그 이전의 경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즉, 실수로 인해 경험이 생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은 시작과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되면서, 경험이 더 풍부해지고, 이로 인한 판단의 정확도 또한 정교해지는 거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굉장히 잘 되면, 후회하면서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이와 거의 같은 회사를 다시 검토했을 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투자를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똑똑한 투자자라면 왜 이전 회사는 잘 됐는데 이 회사는 안 됐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계속 생각과 연구를 하면서 더 수준 높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완벽한 판단을 할 순 없어도,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판단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