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7년 7월에 결혼했다.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바로 필라델피아(=필리)로 이사 와서 9월부터 워튼 MBA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교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휴학하고 뮤직쉐이크를 하기 위해서 2008년 2월에 LA로 이사하였다. 원래 계획은 3년 만에 잘 성장시키고 대박 나서, 성공한 동문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널럴하게 MBA를 마치는 거였지만, 실은 내가 필리를 떠나면서 그렸던 그림과 잘 만들었던 3년 전략은 LA 도착 첫날부터 계획대로 되는 게 없었고, 결국 나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필리를 찾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 10년 만에 필라델피아 출장을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리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워튼 스쿨도 다시 가보고,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지현이랑 내가 살던 아파트도 지나 가봤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이 동네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도 10년 전 필리를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참 신기했다.

사진 2018. 10. 4. 오후 4 38 07

그땐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이제 갓 결혼해서 멋진 인생 2막에 대한 꿈을 갖고 미국으로 온 촌놈이었다. 달랑 수트케이스 몇 개, 그리고 와이프를 데리고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신혼집인 필리의 아파트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가구 한 점 없는, 정말 텅 빈 아파트였고, 우린 저녁 늦게 도착한 관계로 미국에서의 첫날 밤을 그냥 텅 빈 아파트 마루에서 이불도 없이 잤다. 새벽에 추워서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꺼내서 입고 잤던 기억에 대해서는 아직도 와이프랑 가끔 낄낄거리면서 이야기를 한다. 필리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동시에 학창 생활을 해서 그런지, 힘들었지만 나름 좋은 기억과 추억이 많았다.

이후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MBA 학위를 받은 후 월가에서 일하고 있지 않고, 미국에서 정착하려고 했던 계획과는 달리 한국에서 살고 있다. 계획에도 없었던 스타트업도 5년 동안 직접 해보고, 1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게 됐고, 정말 상상치 못했던 건데, 내가 직접 책을 2권이나 썼다. 내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우리의 회사를 만들었고, 남들한테 수 백억 원의 돈을 받아서 다양한 분야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리라곤 10년 전 필리를 떠날 때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직업적인 면에서나, 개인적인 면에서나 장족의 발전을 한 거 같다. 뭐, 그렇다고 내가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남들한테 영감을 주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10년 전보단 더 좋은 인간, 그리고 직업인으로 성장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랑스럽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그림이 우리 가족, 나 개인, 그리고 Strong에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주변 모든 분도 같이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