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요새 크립토 시장은 아주 작살났다고 하는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웠을 때, 너도나도 이 시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게 불과 1년 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단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up and down이 – 지난 12개월 동안은 거의 down 이었다 – 있었던 시장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거 같다. 정말 개나 소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사고팔기를 미친듯이 했고, 이는 블록체인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일반인들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랑 같은 VC 업계의 투자자 중, 100년에 한 번 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뒤로 하고 크립토에 올 인 한 분들도 꽤 많다. 창업가들도 기존에 하던 걸 다 멈추고, 회사의 방향을 ICO와 암호화폐로 돌린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다.

그동안 암호화폐 시총은 거의 90% 떨어진 거 같다. 그리고 크립토 시장은 현재 핵겨울에 꽁꽁 얼어있다. 이 와중에, 아직도 계속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개발하고 있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이 “이게 아닌가 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원래 하던 분야로 돌아가거나, 다시 next big thing을 찾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더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트코인 가격인 $1,000 이하로 떨어져야지 정말로 이 분야를 믿고, 제대로 사업할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주축으로 다시 한번 크립토의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호화폐 시총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비트코인 가격이 $5,000 이하로 떨어지고, 또 $4,000 이하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면서, 역시 시장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더는 그 어떤 시장을 예측하는데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2018년도에 만났던 수많은 수학, 통계학, 공학, 경제학 박사들 중 암호화폐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하던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학적으로 비트코인은 절대로 $5,000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연구도 많이 하고, 나보다 시장을 잘 아는 분들이고, 이 예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학적 논리를 너무 자신 있게 제공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게 맞는 거 같았다. 5,000 달러 이하로 떨어질 거 같으면, 다시 반등했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4,00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나한테 절대로 5,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고 했던 위의 많은 분이 이젠 암호화폐 분야를 떠나서 다른 걸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당연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대략 이렇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이에 익숙지 않은 대중과 시장이 여기에 적응하려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새로움의 정도가 클수록 이 저항은 더욱더 크다. 중앙화에 익숙했던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경험한 세상과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하고, 이 과정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저항이 너무 크면, 변화는 완전히 덮이고 소멸된다. 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도 이 새로운 노력은 소멸된다. 저항이 강해지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변화와 새로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믿음 또한 약해지고, 이 믿음의 네트워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보고 느끼는 암호화폐 시장 바닥은 아직도 활발하다.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 이 ‘의지’라는 게 무슨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의 그런 의지라기보단, 기술의 의지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아직 블록체인은 어리고 갈 길이 멀다. 마치 전화선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던 다이얼업 모뎀 시대와 비슷한 거 같다. 아직 속도, 확장성, 변동성, 개발자 네트워크, 개발자 도구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분명히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많은 똑똑한 개발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테스팅하면서 아직 구체화 된 건 없지만, 지속적인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블록체인계의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나오고, 그 이후에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우린 코빗에 투자하면서 2013년도에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눈을 뜨게 됐고, 이는 한국에서는 꽤 이른 편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암호화폐에 모든 걸 올인 한 적은 없다. 대단한 기술이고, 앞으로 엄청나게 크게 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분야가 없어지거나, 시장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정말 믿어서 암호화폐에 올인한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조금만 더 참고 계속 이 게임을 했으면 한다. 투자가 되어야지만, 좋은 개발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시장이 전반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투자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시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는 게 시장이지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것도 시장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이걸 우리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이 시장에 있으면, 시장이 내려갈 때는 같이 추락하지만, 시장이 올라갈 때는 그만큼 빨리 같이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