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회사를 하나 검토하고 있었는데, 꽤 괜찮은 회사여서 우리 외에 다른 VC도 검토하면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딜을 스트롱이 다 가져가거나, 아니면 같이 투자해도 우리가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나한테, “대표님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그냥 5개 VC가 같이 사이좋게 동일한 금액 나눠 가져서 ‘클럽딜’을 하면 되잖아요.”라는 제안을 했다. 무슨 말이냐면, 다 같이 사이좋게 투자하면 좋지 않냐, 그리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초기 투자인데 다 같이 동일하게 투자해서 리스크를 분산하자, 뭐 그런 의미인 거 같다. 그리고 VC 업계에서도 나이가 같은 VC 친구들이 친하게 지내는 모임이 많은데, 이 모임에서 주로 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냥 하우스끼리 친하게 클럽딜을 자주 같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이런 일방적인 n빵 클럽딜은 VC나 투자사 모두에게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스타트업한테는 독이 되고, VC에게는 스스로 제 살 깎아 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VC는 기본적으로 업사이드를 극대화하는 비즈니스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VC라도 손대는 회사마다 다 잘 될 수가 없다. 딜 갯수로 따지면, 잘 안되는 투자사가 잘 되는 투자사보다 훨씬 많지만, 나름의 철학을 갖고 좋은 투자를 하다 보면, 소수의 잘 되는 투자사가 다수의 잘 안되는 투자사의 손실을 다 충당할 수 있다. 아니,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서, 실패한 투자로 인한 손실이 까마득한 소수점이 될 수가 있는 흥미로운 비즈니스이다. 이런 특성을 갖다 보니, 정말 좋은 회사라면 내가 이 회사의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누군가 같이 사이좋게 클럽딜을 하자고 제안을 해도, 이걸 거절하고 나 혼자 투자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20억짜리 라운드를 5개의 VC가 그냥 사이좋게 4억씩 나눠 갖는 건 이런 엄청난 수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클럽딜의 배경은 나도 이해한다. 극초기 회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위험이 존재하니 이 리스크를 서로 분산시키자는 – 그것도 나랑 개인적으로 친한 투자자끼리 – 의미이지만, 그렇게 리스크가 커서 겁나면 그냥 투자하지 않는 게 더 정상적이다. 심지어 혼자서 다 투자할 수 있음에도, 굳이 클럽딜로 가는 투자자의 성향을 보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전략을 추구한다. 이게 만약에 상장사 주식을 트레이딩 하는 투자자라면,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맞지만, 벤처투자자한테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은 의미가 없다. 벤처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해서 최대한 홈런을 치는 비즈니스이다. 뒤에서는 투자사들이 계속 망하고, 손실이 발생하지만, 앞에서는 손실이 발생하는 경사보다 훨씬 더 가파른 기울기로 수익이 만들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클럽딜을 너무 좋아하면, 본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 투자자를 믿고 돈을 출자한 LP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은, 클럽딜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에는 다른 배경도 있긴 하다. 본인이 발굴해서 투자한 딜이 대박이 나도, 파트너가 아닌 주니어 VC는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는 구조로 돌아가는 하우스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일하면 굳이 내가 아닌 남(=회사 파트너들) 좋은 일만 위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본인이 밀어서 투자를 했는데, 회사가 잘 안 되면, 이에 대한 책임은 엄청 타이트하게 추궁하는 하우스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일하면 당연히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기반으로 투자를 한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VC라면, 제대로 벤처투자를 하기가 너무 힘들 거 같다.

클럽딜은 투자사한테도 최악이다. 누군가 딜을 리드하면서 조건을 정하고, 책임을 지고 라운드를 진행해야 하는데, 여러 투자사가 같은 금액으로 들어오면, 투자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회사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대표이사는 이걸 어떤 투자자와 상의를 하고 도움을 구해야 할지 매우 당황스럽다. 또한, 이러면 기존 투자자들이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만들어져서, 새로운 펀딩라운드가 시작되면, 대표이사는 다시 맨땅부터 투자자를 모집하는 고생을 해야 한다.

투자는 친목사교활동이 아니다. 남의 돈을 갖고 –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 원 – 이 돈으로 큰 기업이 탄생하는 걸 도와주고, 나를 믿고 돈을 준 고마운 분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다 줘야 하는 비즈니스이다.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일방적인 클럽딜은 이 분야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방정식과 거리가 매우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