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창업하고,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딱히 수치가 있는 제품도 없고, 이전에 아무런 실패나 성공의 경험도 없고, 과거 직장 경력도 5년 미만인 창업팀의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정하는 게 좋을까? 우리도 초기 투자를 주로 하니까 이런 팀을 자주 만나고, 이런 팀에 투자하게 되는 경우, 회사의 가치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얼마 전에도 이런 팀을 만났다. 이전 스타트업에서 3년 정도 일 한 공동 창업가 두 명이 힘을 합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아직 MVP 단계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제품을 만들었고, 과거 스타트업에서 일 한 경험은 있지만, 본인들이 실제로 뭔가를 창업한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와 거의 동일한 모델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잘 성장하고, 투자도 많이 받았다는 걸 계속 나한테 영업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업가치는 30억 원 ~ 50억 원이라고 은근슬쩍 주장했다.

솔직히 나는 창업가들이 원하는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이게 높다 낮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 한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정말 고무줄 같은 거고, 나는 그 가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그 가치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시장에 있다면 그 밸류에이션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두 번 만난 팀이고, 내가 잘 모르는 비즈니스라서,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내가 먼저 뭐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은 이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면서. 그러면 나는 옳고 틀리고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걸 말해주면서, 이건 정말 100% 내 생각이니까, 일단 시장에 그 밸류에이션을 받아들이는 투자자가 있는지 없는지 “쇼핑”을 좀 다녀보라고 한다.

위에서 말 한 창업가들도 나한테 계속 본인들이 생각하는 30억 ~ 50억 (물론, 본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건 50억 원이겠지) 밸류에이션이 내가 보기에 어떤지 의견을 굳이 듣고 싶다고 해서, 나는 이분들한테 내가 솔직하게 생각하는 밸류에이션은 3억 원이라고 했다. 좀 충격적이라는 표정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내가 왜 이 회사가 3억 원짜리인지 설명을 좀 했다. 일단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직장경력이 너무 짧아서 새로 시작하는 비즈니스는 그냥 완전히 맨땅에서 헤딩하는 거와 똑같고, 실패했든 성공을 했든 과거에 창업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이건 상당히 높게 평가될 텐데 그것도 이 회사는 아녔다. 그러면 나는 주로 이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몸값이 바로 회사의 현재 밸류에이션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 두 분이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에 가도 각각 최대 1.5억 원 이상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1년 연봉만을 기준으로 하냐면, 이 스타트업의 수명이 1년 이상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3억 원이라는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나온다.

만약에 이 두 분이 직접 창업한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진짜로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들었다면,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나는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값진 경험은 대한민국 인구의 5%도 해보지 못하는거라서 그 경험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나 실패 경험이 전혀 없다면, 창업가들의 몸값이 높을 수가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창업가들한테 내가 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어차피 내가 말한 3억 원이라는 밸류에이션은 맘에 들지 않고, 이 밸류에이션에 그 어떤 금액을 투자받더라도 희석이 너무 심하니까, 오히려 그런 걸 방지하게 위해서 우리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인위적으로 조금 높여서 5억 원에 투자하는 옵션이 하나 있고, 아니면 지금 투자를 받지 말고, 어떻게든 버티면서 제품을 만들고 출시해서, 이 제품을 시장이 원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초기 수치를 갖고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옵션이 있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 일단 희석이 많이 되고, 투자금이 많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투자받는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지금은 배고프지만, 수치를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괜찮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팀은 그래서 후자의 옵션을 선택했고, 나는 가끔 업데이트를 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가끔 터무니없이 자신의 몸값과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높게 평가하는 팀이 있는데, 다른 투자자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니,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