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딜에 대한 내 생각

얼마 전에 회사를 하나 검토하고 있었는데, 꽤 괜찮은 회사여서 우리 외에 다른 VC도 검토하면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딜을 스트롱이 다 가져가거나, 아니면 같이 투자해도 우리가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나한테, “대표님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그냥 5개 VC가 같이 사이좋게 동일한 금액 나눠 가져서 ‘클럽딜’을 하면 되잖아요.”라는 제안을 했다. 무슨 말이냐면, 다 같이 사이좋게 투자하면 좋지 않냐, 그리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초기 투자인데 다 같이 동일하게 투자해서 리스크를 분산하자, 뭐 그런 의미인 거 같다. 그리고 VC 업계에서도 나이가 같은 VC 친구들이 친하게 지내는 모임이 많은데, 이 모임에서 주로 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냥 하우스끼리 친하게 클럽딜을 자주 같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이런 일방적인 n빵 클럽딜은 VC나 투자사 모두에게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스타트업한테는 독이 되고, VC에게는 스스로 제 살 깎아 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VC는 기본적으로 업사이드를 극대화하는 비즈니스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VC라도 손대는 회사마다 다 잘 될 수가 없다. 딜 갯수로 따지면, 잘 안되는 투자사가 잘 되는 투자사보다 훨씬 많지만, 나름의 철학을 갖고 좋은 투자를 하다 보면, 소수의 잘 되는 투자사가 다수의 잘 안되는 투자사의 손실을 다 충당할 수 있다. 아니,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서, 실패한 투자로 인한 손실이 까마득한 소수점이 될 수가 있는 흥미로운 비즈니스이다. 이런 특성을 갖다 보니, 정말 좋은 회사라면 내가 이 회사의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누군가 같이 사이좋게 클럽딜을 하자고 제안을 해도, 이걸 거절하고 나 혼자 투자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20억짜리 라운드를 5개의 VC가 그냥 사이좋게 4억씩 나눠 갖는 건 이런 엄청난 수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클럽딜의 배경은 나도 이해한다. 극초기 회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위험이 존재하니 이 리스크를 서로 분산시키자는 – 그것도 나랑 개인적으로 친한 투자자끼리 – 의미이지만, 그렇게 리스크가 커서 겁나면 그냥 투자하지 않는 게 더 정상적이다. 심지어 혼자서 다 투자할 수 있음에도, 굳이 클럽딜로 가는 투자자의 성향을 보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전략을 추구한다. 이게 만약에 상장사 주식을 트레이딩 하는 투자자라면,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맞지만, 벤처투자자한테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은 의미가 없다. 벤처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해서 최대한 홈런을 치는 비즈니스이다. 뒤에서는 투자사들이 계속 망하고, 손실이 발생하지만, 앞에서는 손실이 발생하는 경사보다 훨씬 더 가파른 기울기로 수익이 만들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클럽딜을 너무 좋아하면, 본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 투자자를 믿고 돈을 출자한 LP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은, 클럽딜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에는 다른 배경도 있긴 하다. 본인이 발굴해서 투자한 딜이 대박이 나도, 파트너가 아닌 주니어 VC는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는 구조로 돌아가는 하우스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일하면 굳이 내가 아닌 남(=회사 파트너들) 좋은 일만 위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본인이 밀어서 투자를 했는데, 회사가 잘 안 되면, 이에 대한 책임은 엄청 타이트하게 추궁하는 하우스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일하면 당연히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기반으로 투자를 한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VC라면, 제대로 벤처투자를 하기가 너무 힘들 거 같다.

클럽딜은 투자사한테도 최악이다. 누군가 딜을 리드하면서 조건을 정하고, 책임을 지고 라운드를 진행해야 하는데, 여러 투자사가 같은 금액으로 들어오면, 투자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회사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대표이사는 이걸 어떤 투자자와 상의를 하고 도움을 구해야 할지 매우 당황스럽다. 또한, 이러면 기존 투자자들이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만들어져서, 새로운 펀딩라운드가 시작되면, 대표이사는 다시 맨땅부터 투자자를 모집하는 고생을 해야 한다.

투자는 친목사교활동이 아니다. 남의 돈을 갖고 –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 원 – 이 돈으로 큰 기업이 탄생하는 걸 도와주고, 나를 믿고 돈을 준 고마운 분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다 줘야 하는 비즈니스이다.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일방적인 클럽딜은 이 분야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방정식과 거리가 매우 멀다.

벤처펀드와 헤지펀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운용하는 벤처펀드는 큰 맥락에서 보면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라는 큰 카테고리에 속하는 펀드인데, 얼마 전에 누가 헤지펀드랑 벤처펀드에 대해 물어봐서 – 그리고 이 질문은 꽤 자주 받는 질문이라서 – 대충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이 두 펀드의 차이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만 몇 자 적어본다.

일단 두 펀드 모두 공모가 아닌 사모를 통해서 LP라고 하는 출자자(=펀드에 투자하는 사람 또는 기관)들로부터 돈을 모집하고, 모집한 펀드에서 투자도 하고, 월급도 받고 비용도 집행한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가장 큰 차이점은 유동성의 차이인 거 같다. 스트롱벤처스와 같은 벤처 펀드는 “약정”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A 기관이 우리 펀드에 10억 원을 약정하는 시나리오를 예로 사용해보겠다. 미국 벤처 펀드의 기간은 주로 10년이다. 즉, 나 같은 펀드매니저들이 LP들로부터 약정받은 금액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투자 집행하고, A라는 기관이 약정한 총 10억 원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특정 시점에 필요한 금액만큼 달라고 한다. 그리고 펀드에 출자한 LP들은 본인들이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본인이 원할 때 이 약정한 금액을 다시 돌려받을 수가 없다. 즉, 벤처펀드는 유동성이 약하다는 의미이다. LP들이 낸 돈을 돌려받는 방법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exit을 하면, 그때 이 금액에 따라서 회수할 수 있지만 이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벤처펀드에 출자하면 최소 10년은 유동성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은, 우리 같은 벤처펀드가 이렇게 오랫동안 유동성이 없게 설계된 이유는 창업가들이 비즈니스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리스키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런 비즈니스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금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다.

헤지펀드는 벤처펀드보다 유동성이 높은 편이다. 헤지펀드 LP들은 주로 출자 1년 후에 투자금 일부 또는 전부를 찾아갈 수 있고, 이와 비슷하게 펀드매니저들은 언제든지 새로운 LP한테 출자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 LP들이 계속 돈을 집어넣고, 빼가기 때문에 – “우리 펀드는 얼마짜리입니다”라고 하는 벤처펀드와 달리 헤지펀드의 운용자산규모는 유동적으로 항상 변한다. 그리고 시장이 좋지 않아서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갑자기 LP들이 대거로 출자금을 빼달라고 하면, 헤지펀드 자체를 해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동성 말고 또 다른점은 아마도 펀드매니저들이 보수를 받는 구조인 거 같다. 일단 벤처펀드나 헤지펀드나, 우리같이 돈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흔히 말하는 2-20의 보수 시스템(전체 펀드의 2%가 관리보수, 20%가 성과보수)을 사용한다. 100억 원짜리 벤처펀드의 예를 들면, 100억 원의 2%인 2억 원의 관리보수로 펀드를 운용하고(월급, 월세, 출장, 경비 등), 투자를 잘해서 펀드의 원금 100억 원을 LP들에 상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원금을 초과하는 수익의 20%를 성과보수로 가져가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VC는 펀드에서 나오는 관리보수가 아니라 성공적인 투자 때문에 받게 되는 성과보수로 돈을 버는 직업이다. 이 2-20 시스템은 벤처펀드나 헤지펀드나 같지만, 벤처펀드의 관리보수는 펀드의 총 약정액을 기반으로 책정되며, 성과보수 또한 주로 총 약정액을 LP들에게 상환한 이후에 적용된다. 즉, 위의 100억 원의 펀드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상승해서 100억 원 펀드의 가치가 1조 원이 되어도 관리보수는 2억 원이며, 종이 상으로는 펀드의 가치가 1조 원이지만, 원금 100억 원을 LP들에게 상환하지 못했으면 성과보수는 0원이다.

헤지펀드는 조금 다르다. 분기마다 펀드의 NAV(Net Asset Value: 순자산가치)를 계산하고, 이 금액을 기반으로 관리보수가 계산된다. 벤처펀드는 펀드의 자산가치와는 상관없이 고정적인 관리보수를 가져가지만, 헤지펀드는 펀드의 자산가치가 높아지면 관리보수도 높아지고, 낮아지면 관리보수도 낮아진다. 헤지펀드의 성과보수는 원금 상환과는 상관없이 해마다 순자산가치의 종이 수익을 기반으로 계산된다. 벤처펀드는 LP들에게 종이 상 수익이 아닌 실제 수익을 배분해야지만 성과보수를 받게 되지만, 헤지펀드는 종이 상 수익이 발생해도 성과보수를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위에서 말한 유동성과 보수가 아마도 벤처펀드와 헤지펀드의 가장 큰 차이 일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벤처펀드 매니저들은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를 할 수 있고,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단기적인 수익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벤처펀드는 시장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오랫동안 투자를 집행하는 반면, 헤지펀드는 시장이 변할 때마다 사고팔기를 계속한다. 물론, 두 펀드 모두 LP들에게 큰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데,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서 선호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걸 자주 봤다.

변곡점과 팀

많은 VC가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한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미팅하면서 어떤 창업가가 “스트롱은 팀에 투자한다고 들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몇 자 적어본다.

일단 우리랑 팀이 인간적으로 서로 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구체적이지 못 하지만, 이 비즈니스는 사람이 사람한테 투자하는 거라서, 서로 잘 맞아야 한다. 어떤 팀이 인간적으로 우리한테 끌리는가를 물어본다면, 이건 정말 과학이라기보단 예술과 감의 영역이라서 여기서 글로 풀어서 설명은 못 하겠다. 그리고 이런 팀은 팀원 대부분이 서로를 오랫동안, 깊게 알고 지냈다. 학교 동창들, 전 직장동료들, 같은 동네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 등등…관계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잘 알고, 이렇게 서로를 잘 알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이다. 대학 동창이면 인간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고, 직장 동료면 일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다 보면, 상황이 좋지 않은 down 시점에 팀워크가 상당히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웬만한 상황에 부딪혀도 끄떡없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생겨도 잘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팀원은 웬만하면 깨지지 않는다.

자, 그러면 이게 왜 중요한가? 사업을 하다 보면, up과 down이 많은데, 주로 항상 down, down, down이다.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up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역동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사업의 변곡점들이 가끔 찾아온다. 내 경험에 의하면, 좋은 팀은 이 변곡점이 온 것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리고, 이를 계기로 비즈니스를 그다음 레벨로 가져간다. 그리고 다시 down, down, down, down, up, down, down 뭐 이런 사이클을 거치다가 우연히 또 변곡점이 찾아오면, 이를 또 금방 알아차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면서 큰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반면에 팀이 후지면, 이런 변곡점이 찾아와도 이게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 한다는 걸 나는 많이 봤다. 또는, 알아차려도 이 변곡점을 기회로 활용해서 뭔가 잘 되게 하는 힘이 약한 것도 나는 옆에서 본 적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팀에만 투자한 건 아니다. 스트롱의 투자는 계속 진행 중이고, 우리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른 벤처기업같이 VC의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실수하면서 배우고 있지만, 이런 좋은 팀을 만나면 시장의 크기나 제품을 떠나서, 가능하면 투자하려고 이유를 만든다.

마지막으로…내가 나랑 인간적으로 케미가 맞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하면 많은 창업가가 도대체 저렇게 정량적이지 못 한 기준으로 팀을 판단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투자자인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비즈니스의 결과를 떠나서, 같이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되도록 우리랑 케미가 맞는 팀을 선호한다.

좋을 딜을 위한 나쁜 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결과로 끝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떠나면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다”는 너무나 딜메이커다운 말을 남겼는데, 실은 이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 누구도 나쁜 딜을 하고 싶어 하진 않고, 손해 보는 딜을 할 바에야 딜을 하지 않는 게 훨씬 좋다. 우리가 하는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나쁜 투자를 해서 돈을 잃기보단 그냥 투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런데 벤처투자는 – 특히, 초기 투자는 –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VC들끼리 하는 농담 중 하나가, “모든 VC의 첫 번째 펀드는,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펀드까지, 대부분 수업료다”인데, 그만큼 좋은 딜을 발굴하고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춰봐도, 벤처 투자를 시작하고 한 4년 정도 이 바닥에서 구르고, 실수하고, 나쁜 판단을 해야지만,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만들어지는 게 정말 맞는 말인 거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지만, 나쁜 딜을 많이 해야지만 좋은 딜을 할 수 있고, 노 딜만 하다 보면 좋은 딜은 절대로 못 한다. 왜 그럴까? 내가 다른 VC를 대변할 순 없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같이 작은 초기 투자자한테 더 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초기 투자의 성공은 확률과 운의 게임인 거 같다. 이제 유니콘이 된 회사에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 공적인 자리에서는 본인들이 그 회사의 미래를 예측했고 창업가의 포텐을 첫 만남에서 알아봤다고 하는 개소리를 가끔 하기 때문에 – 그냥 느낌이 좋았고, 여기에 베팅했고, 그게 운이 좋아서 잘 풀렸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는 아직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없지만, 잘 하는 회사를 보면 나한테도 이 확률과 운의 게임이 그대로 적용되었던 거 같다. 즉, 많이 투자해야지, 그중에서 확률적으로 잘 될만한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그냥 돈을 막 뿌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험과 통찰력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투자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는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능력이 만들어지려면 역시 많은 투자를 통해서 단맛 쓴맛 모두 경험을 해야한다. 여기에서 홈런왕 베이브 루스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을 거 같다. 많은 분이 베이브 루스가 홈런왕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삼진도 많이 당했다는 건 잘 모르는 거 같다. 그만큼 배트를 많이 휘둘렀기 때문에 홈런도 확률적으로 많이 칠 수 있었던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나쁜 딜을 많이 하면서, 가끔 운이 좋으면 좋은 딜도 하고, 뭐 이러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 살아남은 실적 자체가 고스란히 투자자의 평판이 된다. 위에서 초기 투자 성공은 운과 확률의 게임이라고 했는데, 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좋은 창업가와 좋은 팀이 알아서 투자자를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VC라도, 그리고 아무리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더라도, 모든 스타트업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 모든 회사를 다 찾아다니면서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본인이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좋은 딜이 나한테 수동적으로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판이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세쿼이아나 앤드리슨호로위츠와 같은 유명한 VC가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창업가들이 VC의 평판을 믿고 먼저 연락하고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린다. 아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이 긴 시간 동안 계속 투자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나쁜 딜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나쁜 딜을 하지 않으려고, 전혀 투자하지 않으면, 펀드의 원금은 보존하겠지만, 투자자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고 평판 자체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VC 평판에 최악의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쁜 투자를 많이 한 것보단,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를 아예 안 하면, 창업가 커뮤니티에서 잊히고, 이러다 보면 좋은 창업가들이 아예 찾아주지 않기 때문에 굿 딜을 하는 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쁜 딜을 많이 해도, 투자를 계속하면, 그래도 딜들이 계속 들어오긴 한다. 물론, 여기서 옥석을 가리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뭐, 결론은…투자는 참 어렵다는 이야기다. 나도 나쁜 딜은 하기 싫고, 나쁜 딜을 할 바에야 아예 딜을 하지 않고 싶지만, 이 다이나믹한 초기 투자 시장에서는 나쁜 딜은 좋은 딜을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워렌 버핏이 자주 하는 말 중, “공이 지나갈 때마다 휘두르지 마라”라는 말이 있고 나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초기 투자를 많이 할수록 이 말은 우리한테는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외부 의존도가 100% 이면

요새 카카오와 타다/쏘카가 택시 조합과 정부와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한국은 필요 이상의 규제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규제와 싸우는 것만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타다가 끝까지 버티면서 싸워주길 개인적으로는 내심 바라고 있다. 모빌리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데, 이 분야 말고도 정부의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묶는 분야는 상당히 많다. 규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걸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나는 정부의 규제가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단, 그냥 기존 플레이어들을 – 주로 대기업 또는 대량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 –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요새 더욱더 하고 있다.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힘도 없는 스타트업은 더 큰 기존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것도 벅찬데, 여기에 규제까지 골리앗을 돕는다면 작은 회사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낄 것이다. 한 1년 전에 이런 규제 때문에 발목이 묶인 산업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사업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고, “정부에서 이것만 해주면…” 이라는 말을 계속했다. 대기업을 보호하고 자기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부 부처에서 곧 없앨 것이라는 발표를 했기 때문에, 규제가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이렇게 되면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커져서 대박 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이 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보니, 정부에서 이와 비슷한 발표를 한 건 맞지만, “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 한 거지 당장 규제를 없애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이후에는 실제로 스타트업한테 유리하게 규제를 완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서 1년이 넘은 이 시점에도 이분은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정부가 이것만 해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하고, 직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분이 바라는 대로 정부가 규제를 곧 완화할까? 1년 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앞으로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정말로 규제가 완화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정말로 사업이 대박날까? 실은,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벤처인데,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을 되도록 최소화하는 게 사업의 목적 중 하나인데, 회사의 존재 자체를 내가 기본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남한테 의존해서 잘 된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 ‘남’이 정부일 경우에는 더욱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회사들을 만나면 “앞으로 어떤 굵직한 일이 외부에서 발생하면, 회사가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인 “만약에 이게 되면, 사업이 잘될 것이다”에서 그 일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부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잘 될 거라는 현실성이 부족한 희망이 만든 환상이라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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