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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권 – 2023년

1년 동안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서 포스팅하는 게, 처음엔 그냥 실험적으로 해봤는데, 이제 해마다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되어 버렸다. 작년에도 50권의 책을 읽는 걸 목표로 정했는데 – 나는 새해 결심을 안 하는데, 유일하게 결심하는 건 독서량이다 – 지난 몇 년 동안, 이 수치를 잘 지키다가 작년은 1권이 모자란 49권을 읽었다.

2023년은 밤에도 외국이랑 미팅하느라 바빴고, 주말에도 일을 많이 해서 여유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여유시간이 생겨도 머리 스위치를 OFF 하지 못해서, 책 대신 TV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잠시 머리 스위치를 OFF 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책을 평소와 같이 자주 접하지 못했다.(참고로, TV와 넷플릭스로 머리 스위치를 OFF 하는 노력은 정말 병신 같은 짓이다. 더 뜨거워지고 더 ON이 된다).

대신, 출장을 많이 다녀서 비행기 안에서 독서를 많이 했는데, 그래서 그나마 49권을 읽었던 것 같다. 운동과 독서는 항상 최우선으로 챙기고 싶은 활동인데,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50권을 채울 생각이다.

내 독서 습관은 한결같다.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여기에 없는 책은 집 근처 도서관에 직접 가서 빌린다.(평일 저녁에 공공 도서관 가는 게 내 삶의 낙 중 하나다. 조용한 도서관의 책 냄새, 그리고 책과 독서하는 사람들의 풍경만큼 몸과 마음을 힐링시키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 서평은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플라이북에서 체크해뒀다가 국민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보는데, 올해 살짝 바뀐 습관이 있다면, 공공도서관을 더 많이 갔다는 것이다. 국민도서관에서 책을 집으로 배달시키는 건 참으로 편리하지만, 도서관에 직접 가는 행위에서 오는 상쾌함은 이 편리함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거의 5년째 책을 구매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고 그냥 무조건 빌려서 본다.

작년에 내가 플라이북에서 별 5개를 준 나의 베스트 책(들)을 선정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김윤정의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박지현의 ‘참 괜찮은 태도’
하재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이영미의 ‘마녀체력’

이렇게 6권이다. 49권 중 6권이면 작년에 읽은 책의 12%에 별 5개 만점을 준건데, 너무 후하게 주긴 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론 매우 감동도 컸고, 느끼는 것도 많았고, 이 6권의 책들을 완독한 후에 뭔가 내가 더 성숙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나쁜 뜻에서의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내 가족과 내 죽음에 대비하려면 어떤 준비를 지금부터 하나씩 해야 하는지에 대한 건강한 고민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작년에 읽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런 나에게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고, 건강한 질문과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한국의 새로운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됐다. 내가 운동할 때 즐겨 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의 주인공 김하나와 황선우, 이들과 친한 김혼비, 엄청난 상상력의 정세랑,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최은영, 텍스트의 힘을 강조하는 장강명 등.(존칭은 생략). 나열해 보니 장강명씨 빼곤 여성 작가분들인데, 이분들이 앞으로 한국의 소설과 비소설 분야를 리딩할 것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없고 바빠서 책을 읽지 못 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변명이다.

올해도 50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벤처 혹한기의 장점

얼마 전에 스트롱의 주주총회(AGM: Annual General Meeting)가 있었다. 글로벌 벤처 시장에 대한 슬라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2021년부터 지금까지 벤처기업에 투입된 글로벌 투자금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돈이 넘쳐흘렀던 2021년에 전 세계 벤처기업에 투입된 자금은 자그마치 $646B 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단위의 돈을 취급하지만, 이 금액은 나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다음 해인 2022년은 이 수치가 $421B로 35%나 감소했다. 그리고 올해는 또다시 40% 정도 감소한 $260B 정도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가 아직도 반등의 시그널은 안 보이고, 금리 인상과 세상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은 경기 회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내년에는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개인적으로 생각했지만, 이건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되니, 우리에게 돈을 주는 LP들도 VC들에게 시원하게 돈을 투자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우리 같은 VC들도 매우 위축되어 있다. 자금의 가뭄 상태가 당분간 계속 지속될 것이고, 결국 이 먹이사슬의 가장 끝단에 있는 스타트업들은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벤처 혹한기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수치가 좋아지면서 팀의 자신감이 많이 올라 온 우리 투자사 대표와 미팅을 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투자 유치를 열심히 했다. 우리도 피드백을 많이 제공한 자료에도 많은 공을 들였고, 이 회사의 업을 이해할 만한 투자자들을 전략적으로 나열해서 아주 체계적으로 펀딩을 시도했는데, 결국엔 잘 안돼서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후에 펀딩을 중단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장에 돈이 없다는 걸 거의 기정사실로 하면서, 외부 자금의 투입 없이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다시 만들면서 회사의 제품과 방향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줬다. 예상치 못 했던 이 전략 수정의 결과는 현재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 회사의 대표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작년에 만약에 투자받았다면, 지금쯤 망했을 거예요. 당시의 회사 방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돈을 못 버는 전략인데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투자받았으면, 계속 흥청망청 돈을 쓰고, 사람을 채용했을 테고, 지금쯤 엄청나게 헤매고 있을 거예요. 오히려 그때 투자 못 받은 게 회사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 투자받지 못 한 창피함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현재 이 회사의 수치와 팀원의 자신감을 봤을 땐, 정말로 그때 투자를 못 받은 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 불경기가 어떤 회사들에겐 더 좋은 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돈이 없어서 너무 춥고 배고픈 벤처 혹한기다. 많은 창업가들이 어쩔 수 없이 돈을 아끼고, 그동안의 전략을 전면 재수정하고, 현실에 눈을 뜨면서 정신을 바짝 차린다. 이런 분들은 이 불경기를 잘 살아남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사업의 질 자체가 확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오히려 이 불경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B2B API 사업을 하는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 블로그의 ‘창업일지’ 시리즈를 추석 연휴 동안 재미있게 읽었다. 9편이지만, 짧기도 하고 그냥 쉽게 잘 읽혀서, 집중하면 한 25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다. 내가 페이지콜 최필준 대표님을 처음 만난 게 2017년이고, 프라이머 투자 이후 스트롱도 투자하면서 나름대로 서비스 창업 초기부터 봤기 때문에 이 팀과 회사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페이지콜에 투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7년만큼 긴 시간 동안, 이분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 개고생을 이미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은,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적힌 기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뭔가 더 짠하기도 했다.

이 블로그의 내용은 최근에 내가 읽은 창업가들의 글 중 가장 스타트업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스타트업한다는 것이 드라마 ‘스타트업’과 조금은 유사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다. 물론, 이분들은 본인들이 직접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지 않은 분들인데, 인구의 대부분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스타트업 드라마의 시각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 해도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이 시각은 그냥 틀린 게 아니라, 너무나도 왜곡됐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OST도, 낭만도, 감동도,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냥 주구장창 개고생밖에 없고, 정말로 대단한 체력, 정신력과 각오가 없으면 일반 사람들은 2년을 버틸 수가 없다.

후반부에 스트롱과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등장하는데, 나를 만난 이후 페이지콜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만나기 전의 이 회사와 창업팀의 여정에 대해서 읽어보니, 스스로가 겸허해질 정도였다. 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지금도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제정신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최필준 대표님과 페이지콜 팀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다 힘든 자신만의 전쟁을 지금, 이 순간에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게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력과 체력이 약한 분들에겐 정말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모든 해피 엔딩은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재난과 같은 엔딩으로 참혹하게 끝난다. 단지,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스타트업도 지나온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해피’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스타트업은 인간의 최선을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최악을 보게 된다. 이게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린 창업가들의 최악과 최선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결국 이 모든 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오늘도 선과 악의 싸움에서 이기는 하루가 되길. 모두 파이팅.

50권 – 2022년

해마다 이맘때에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 글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새해 결심 같은 건 안 한다. 오랫동안 사는 인생이라서, 그냥 인생 결심이 있을 뿐이지, 해마다 단타성으로 세우는 결심은 안 한 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래도 유일하게 새해 결심 비슷한걸 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해의 독서량이고 매년 50권의 책을 읽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도 열심히 읽어서 50권은 돌파했고, 이 페이스로 계속 독서하면 57권 정도로 2022년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얼마 전에 콘텐츠의 최고봉은 텍스트라는 내용의 을 쓴 적이 있는데, 이건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더 많이 쓸수록, 공감이 더욱더 가는 내용이다. 앞으로 갈수록 바빠져서, 바빠서 못 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고, 바빠서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면서 순위에서 밀리는 일들이 생길 것이지만, 운동과 독서만은 항상 우선으로 챙기고 싶은 활동들이다.

내 독서 습관은 항상 같다.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여기에 없는 책은 집 근처 도서관에 직접 가서 빌린다.(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평일 저녁에 공공 도서관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빌리는 것만큼 육체와 정신이 채워지는 행동은 없는 것 같다. 이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서평은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에 보관한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플라이북에서 체크해뒀다가 국민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참고로, 나는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고 그냥 빌려서 본다.

올해 나의 베스트 책을 선정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이다. 하루키 씨는 남들을 감동하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진 않은 것 같고, 글의 스타일도 드라이하고 밋밋했지만, 읽는 내내 나는 깊은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더 꼼꼼히 읽었고, 곱씹으면서 충분히 소화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했다.

그리고 서평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올해 읽은 책 중 one of the best. 솔직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픔을 아직 단 한 개도 안 읽었고, 이 책이 처음인데, 소설은 아니고 하루키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게 맞다. 러닝이 주제인 회고록.

소설을 쓰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고, 이 체력을 위해서 러닝을 시작했다는 하루키. 책을 쓰는 일이나, 마라톤을 뛰는 건 그냥 똑같은 일을 무한으로 되풀이한다는 점이 유사하고, 내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필요한데, 체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못 하고, 러닝을 매일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리셋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기억에 남는 quote: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가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면 어떤 엄청난 아웃풋이 나오는지 아주 잘 보여준 책이기도 하지만, 나는 하루키 씨의 습관과 태도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해답을 배웠다. 올해 나도 열심히 살았고,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지만, 이 책을 완독한 건 그중 나에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읽었던 모든 책이 감동을 준 건 아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덮고 완독하지 않은 책도 꽤 있었고, 다 읽었지만 시간 낭비였다고 스트레스받았던 책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간접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책은 모두 피와 살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에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꼈으면 한다.

유니스트 방문

2주 전에 정말 오랜만에 울산의 UNIST를 방문했다. 이젠 유니스트에서 더 이상 교편을 잡고 있지 않은 강광욱 교수님덕분에 나는 유니스트와 2014년도에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우린 학생 창업팀도 좋아하고,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고,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팬데믹 이전에는 유니스트에 정기적으로 가서 학생 창업가와 미래의 창업가와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유니스트 출신 창업팀 3개에 투자했다. 이젠 꽤 큰 회사가 된 클래스101 또한 유니스트 학생팀이고, 울산에서 시작한 회사이다.

이 학교의 창업생태계 형성에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신 강교수님도 다른 대학으로 옮기셨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는 거의 3년 동안 유니스트에 못 갔지만, 역시 좋은 기업의 실마리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나와는 학업적으론 상관없는 유니스트에 학생창업가를 만나러 공식적으로 3년 만에 방문했을 땐 마치 모교를 찾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캠퍼스는 새로 생긴 건물들로 더 꽉 차 보였고, 학생들의 에너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대로 충만했다. 이번엔 학생 창업센터에서 몇 팀과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창업, 사업, 학업, 인생 이야기를 골고루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트롱은 계속 유니스트 출신 팀과 만나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이 친구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학생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유도 큰데, 나는 대학생/대학원생일 때 내가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고, 생각을 했어도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아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팀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걸 보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고, 아직도 속으로는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팀이나 제품이나 시장은 차치하고, 그냥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술 먹고 놀러 다녔던 저 나이에 회사를 만들었다면, 분명히 이런 생각과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학생창업을 존경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학생팀에 투자하면서 좋은 점만 보고 느낀 건 아니고, 학생 창업의 부작용 또한 많이 경험했다. 전에도 내가 쓴 적이 있지만, 학생들에겐 미래의 좋은 옵션이 너무 많다. 창업해서 안 되면 대학원 진학할 수도 있고, 창업했던 경험을 이력서에 잘 포장해서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학생팀은 그냥 취업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서 창업하는 게 너무 뻔히 보이고, 옵션이 너무 많아서인지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 자주 봤다. 그리고 한국의 남자 학생들에겐 군 복무라는 큰 걸림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학생팀을 만나면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건 정말로 이 사업을 하고 싶어서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고 멋있는 스타트업 대표놀이를 하기 위해서인지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학생 창업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한국의 미래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요새 젊은 애들이 싸가지가 없든, 있든, 이 나라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고, 앞으로 이 학생들 중에 미래의 쿠팡, 토스, 배민, 당근마켓, 마켓컬리를 만드는 창업가가 나올 것이다. 우린 이런 가능성을 찾아서 여기에 작은 불씨만 만들어주면 이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활활 태울 것이다. 좋은 울산 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