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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와 나비

metamorphosis지난 3주 동안 프라이머 12기 후보 회사 47개와 미팅을 했다. 참고로, 이 47개 회사는 지원한 수백 개 회사 중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보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회사와 만나야 하므로, 그리고 나도 바쁜 일정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각 회사와 30분씩만 미팅을 했다. 늦은 오후까지는 나도 항상 다른 일이 있어서 평일은 주로 5시부터 7시까지, 30분 단위로 4개 후보 회사들과 만나고, 금요일은 6~7개 회사와 미팅을 했다. 짧은 미팅이 실은 긴 미팅보다 사전 준비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았고, 이렇게 하다 보니 지난 3주 동안은 매일 평균 7~8개 팀과 미팅을 한 거 같다. 프라이머 12기 후보 회사, 스트롱 기투자사, 새로운 회사, 이렇게 하루에 많은 미팅을 소화하고 집에 가면, 목은 맛이 가고, 몸은 녹초가 돼서 쓰러질 거 같다. 항상 새로운 회사를 만나고, 뭔가 하려는 창업가들을 만나는 건 즐겁고 흥분되는데, 이번엔 정말 힘들었던 걸 보면, 나이와 함께 체력의 한계도 같이 오는 거 같았다.

미팅 시간이 짧다 보니, Y Combinator 스타일로 딱 다섯 가지만 질문했다:
1/ 우리 회사는 뭘 만드는지
2/ 왜 이걸 만드는지
3/ 우리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
4/ 제품이 있다면, 현재 수치들
5/ 어떤 팀인지

매 기수가 특별하지만, 이번 12기 후보 회사도 매우 다양했다. 이미 수천만 원의 월 매출을 달성한 회사도 있었고, 작년 매출이 50억 원인 회사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몰래 창업한 분도 있고, 아직 학생인 창업가, 그리고 40대가 훌쩍 넘은 시니어 창업가도 있었다.

아직 외부 투자를 유치하지 않고, 나름 잘 성장하고 있는 팀 중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자칫 거만해 보이는 팀도 있었는데, 이런 팀한테는 일부러 비즈니스의 여러 가지 허점을 지적했다. 이 정도를 일구었다고, 벌써 자만하는 건 앞으로 비즈니스의 성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냉정한 현실을 자각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봤는데, 지금까지 모두 처참하게 실패한 팀도 있었다. 이런 팀한테는 본인들이 하는 걸 정말로 믿는다면, 계속 시도해보라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정말로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걸 나는 여러 번 목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47번째 마지막 팀과 미팅이 끝났다. 이 중 몇 개가 프라이머 회사가 될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미팅한 모든 회사에 이야기했듯이, 프라이머 선발이 되든, 안 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실은 대부분의 회사는 잘 안될 것이다. 확률적으로 거의 망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팀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기보다는,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는 우리 모두한테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소중한 마음가짐이다.

애벌레를 보면, 이렇게 희한하게 생긴 곤충이 나중에 화려한 나비가 될 거라는걸 예측하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같은 극초기 투자자의 역할이 더욱더 크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다. 수천억 원이나 수조 원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late stage의 회사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펀드도 당연히 중요하고 이들이 만드는 미래는 엄청나다. 하지만, 씨앗을 계속 뿌리면서, 토양을 기름지게 만드는 걸 도와주는 초기 투자자들은 정말로 독특하고 독보적인 존재들인 거 같다.

<이미지 출처 = eFinancialCareers>

가장 힘든 오늘

요새 나는 운동 횟수를 조금 줄인 대신,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강도를 높이는 데 음악이 도움이 많이 돼서, 계속 유투브 뮤직을 들으면서 웨이트를 하는데, 주로 복싱 관련 음악을 많이 듣는다. 특히 영화 ‘록키’ 음악을 즐겨 듣는데, 피로도도 감소하고,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요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록키 트레이닝 뮤직이다.

미국에서 한 일 년 정도 복싱을 했다.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그때 스트레스가 심해서, 뭔가 때려야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거 같아서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흘린 땀에 미끄러질 정도로 샌드백을 미친 듯이 치는데, 땀과 함께 눈물이 막 쏟아졌다. 뭐, 그냥 이유도 없이 갑자기 펑펑 흘렀다. 실은 참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아마도 속에 있는 불안감, 우울함, 창피함, 나약함,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눈물로 방출되었던 거 같다. 따뜻한 눈물을 흘리면서 샌드백을 치다 보니, 기분이 다시 진정되고, 내 주변을 다시 사심 없이 볼 수 있었다. 뭔가 정화가 되고, 새로운 희망이 생긴 거 같았고, 이는 내가 다시 몇 주 동안 일에 열심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런 패턴이 가끔 반복됐다.

스트레스.
스타트업을 한다면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나도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거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안 풀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잘 풀려도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것도 강도가 상당히 높다. 워낙 힘든 분야라서, 일이 좀 잘 풀리면, 솔직히 막 불안해진다. “왜 갑자기 일이 잘 풀리지?” , “곧 상황이 다시 나빠질 텐데 그땐 어떻게 하지?” , “이걸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뭘 더 해야 할까?”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항상 스스로 위안 삼는 게 있다. 투자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창업가가 받는 스트레스와는 그 차원이 다르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 대표들이 더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서 자신을 달랜다. 그래도 불안하면, 일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좀 걷기도 한다. 와이프랑 이야기도 한다. 뭐, 솔직히 인생 자체가 스트레스의 연속이긴 하지만, 인생의 스트레스는 그래도 up and down이 있다. 하지만, 창업의 스트레스는 조금 다르다. 이 스트레스는 up으로만 가지, 좀처럼 down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참, 끝이 안 보인다는 건 더욱더 무섭고 stressful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오래 하려면, 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고, 그냥 잘 관리하고 최대한 스트레스와 타협을 하면서 사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주로 운동, 가족과의 대화, 개 산책 등으로 이걸 잘 해소했는데, 작년부터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는 가벼운 명상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꽤 유용하고, 이걸 계기로 마음 챙김 관련 앱과 비즈니스도 좀 보기 시작했는데, 미국에서는 이 분야가 전망이 꽤 밝은 거 같다.

스타트업을 하면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실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긴 한데, 그래도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였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길.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힘들고 미친 짓을 오래 할 수가 없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전에 ‘어떻게 잘 되지 않는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오늘은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 얼마 전에 이제 처음으로 본인의 펀드를 만들기로 한 후배 VC가 찾아왔는데, “형님은 어떻게 남의 돈 받아서 펀드를 만들었나요? 난 지금 해보니까, 이거 장난이 아니던데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첫 번째 펀드를 만든 지 이제 5년, 그리고 두 번째 펀드를 만든 지 1년이 지났는데, 나도 실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봤다. 존이랑 나는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남한테 받아서, 펀드를 만들었을까?

남의 지갑을 열어서 돈 받는 거 정말 힘들다. 실은 엄청 힘들었고,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건, 가장 간단했던 거 같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게 있었고, 얻고 싶은 게 있었고, 이걸 하기 위해서 우린 열심히 문을 두드렸고, 구했다. 그냥 간절히 바라기만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있진 않았다. 실은,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우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내가 만나는 early stage 창업가는 대부분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과거에 뭐 하나 이룩한 게 없는, 처음 창업하는 젊은 친구들이다. 실은, 이렇게 남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면, 그만큼 절실해야 하는데, 많은 분이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아니, 어쩌면 속으로는 절실함이 폭발할지도 모르지만, 겉으로 봐서는, 그냥 뭔가 본인들이 바라는 일이 현실이 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벤처를 하다 보면, “저게 될까?” , “저 사람이 과연 나를 만나줄까?” , “내가 이런 소리 하면, 욕만 먹겠지?”라는 의구심이 매일 든다. 그리고 항상 과거에 이런 게 잘 안되었던 경험을 먼저 떠올리면서,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쪽팔리지 말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는걸 대부분 선택한다.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하는 창업가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거 같다. 또는, 상대방이 내 의도를 잘 아니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아직 정의라는 게 존재한다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기다린다.

현실은…이렇게 가만히 기다리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가서 물어보거나, 구하면 된다. 물론, 그래도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가끔 구하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If you don’t ask, you don’t get, and somebody else will.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단어, ‘도전’

rockybalboa도전. 벤처 쪽에서 일하면, 이 말 정말 많이 듣는다. 그리고 또 많이 사용들 한다. 너무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도전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매번 큰 희망과 에너지를 준다. 며칠 전에 ‘SBS 스페셜’ 478회 ‘성신제의 달콤한 인생‘ 편을 보고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짜릿하고 찌릿한 느낌을 다시 한번 깊게 경험했다.

성신제. 내 나이 또래 분 중 이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성신제 피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토종 피자 프랜차이즈였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맛은 별로였지만, 독특한 재료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한 외식업체였다. 솔직히 나는 성신제 대표는 성신제 피자만 창업한 줄 알았는데, 이보다 훨씬 더 깊은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분이다. ‘피자헛’을 한국으로 가져온, 그래서 피자라는 음식이 매우 생소했던 1984년에 한국에 피자를 소개한 분이고, 이후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천당과 지옥을 9번이나 왔다 갔다 한, 한국 외식업계에 한 획을 그은 사업가다. 그동안 엄청난 돈도 벌었지만, 이후 계속되는 실패로 모두 다 날렸고, 지금은 70의 나이에 케이크 사업을 다시 시작한 1인 창업가이다. 궁금해서 성신제를 검색해보니,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나름 엘리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그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냐?”라고 묻는다. 이 분은 넘어지면, 계속 자빠져있거나, 아니면 다시 일어나거나, 두 가지 옵션밖에 없는데, 자빠져 있으면 죽는 거니까, 다시 일어나는 방법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세계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베이킹을 하고 있다.

왜 난 이 실패한 아저씨 이야기를 잠도 안 자고 봤을까?(난 보통 11시 전에 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말 불행한 이야기인데, 왜 가슴이 벅찼을까? 잠자리에서도 왜 와이프한테 계속 성신제 대표 같은 분이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었을까?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어떻게 보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이 도전정신 때문인 거 같다. 좀 식상하고,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난 이런 스토리가 좋다.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요새 수 십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 연예인 이상민 씨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돼서 더 짠했던 거 같다.

<이미지 출처 = Total Rocky>

변하지 않는 절실함에 대해

“대표님은 남의 돈으로 편하게 투자하고 있잖아요.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데, 우리같이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화난 창업가한테 받은 적이 있다. 미래가 불투명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극도로 느끼고 있는데, 내가 이에 대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뭐, 여기에 대해서 내가 반박할 생각은 없다. 실은, 반박할 수도 없다. 나도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VC들도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다. 투자한 회사들이 잘 안 되고, 이로 인해서 펀드의 LP들에게 출자금을 회수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면, 더 이상 펀드 만드는 게 힘들고, 그렇게 되면 VC의 커리어는 끝나기 때문에, 투자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고민과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는 창업가의 스트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사내벤처 관련 과거 포스팅에서 언급한 부분과 비슷한데, 실제 사업하는 사람과 남의 돈을 갖고 투자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위 창업가의 화난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네, 저도 실은 잘 모르죠.”라고 대답하지만, 이 분의 그 절실한 마음가짐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 분보다 더 절실한 입장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나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집으로 1원도 못 가져가면서 정말 아슬아슬하고 힘들게 일했던 경험이 있다. 이 창업가는 모든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가져가고 있었다. 펀드레이징이 힘들지만, 그래도 회사만 잘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여기에 투자할 수 있는 VC 돈이 현재 한국에는 넘쳐흐른다. 이와 반대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 2010년도는 정말 돈 구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웠던 시기였다.

실은, 내가 미국에서 일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기술도 다르고, 비즈니스도 다르고, 시장도 다르고, 모든 환경이 다르므로, 이 창업가의 고민이나 이 분의 비즈니스에 대한 건 내가 전혀 모른다. 내가 가진 스타트업 운영 경험은 이미 구닥다리 경험이기 때문에, 이 분에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일이 안 풀릴 때 느끼는 그 절실함, 이건 시대를 초월하는 감정이고, 많은 창업가가 느끼는 이 절실함을 나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런 힘듦이나 절실함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면,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건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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