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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단어, ‘도전’

rockybalboa도전. 벤처 쪽에서 일하면, 이 말 정말 많이 듣는다. 그리고 또 많이 사용들 한다. 너무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도전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매번 큰 희망과 에너지를 준다. 며칠 전에 ‘SBS 스페셜’ 478회 ‘성신제의 달콤한 인생‘ 편을 보고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짜릿하고 찌릿한 느낌을 다시 한번 깊게 경험했다.

성신제. 내 나이 또래 분 중 이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성신제 피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토종 피자 프랜차이즈였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맛은 별로였지만, 독특한 재료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한 외식업체였다. 솔직히 나는 성신제 대표는 성신제 피자만 창업한 줄 알았는데, 이보다 훨씬 더 깊은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분이다. ‘피자헛’을 한국으로 가져온, 그래서 피자라는 음식이 매우 생소했던 1984년에 한국에 피자를 소개한 분이고, 이후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천당과 지옥을 9번이나 왔다 갔다 한, 한국 외식업계에 한 획을 그은 사업가다. 그동안 엄청난 돈도 벌었지만, 이후 계속되는 실패로 모두 다 날렸고, 지금은 70의 나이에 케이크 사업을 다시 시작한 1인 창업가이다. 궁금해서 성신제를 검색해보니,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나름 엘리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그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냐?”라고 묻는다. 이 분은 넘어지면, 계속 자빠져있거나, 아니면 다시 일어나거나, 두 가지 옵션밖에 없는데, 자빠져 있으면 죽는 거니까, 다시 일어나는 방법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세계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베이킹을 하고 있다.

왜 난 이 실패한 아저씨 이야기를 잠도 안 자고 봤을까?(난 보통 11시 전에 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말 불행한 이야기인데, 왜 가슴이 벅찼을까? 잠자리에서도 왜 와이프한테 계속 성신제 대표 같은 분이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었을까?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어떻게 보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이 도전정신 때문인 거 같다. 좀 식상하고,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난 이런 스토리가 좋다.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요새 수 십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 연예인 이상민 씨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돼서 더 짠했던 거 같다.

<이미지 출처 = Total Rocky>

변하지 않는 절실함에 대해

“대표님은 남의 돈으로 편하게 투자하고 있잖아요.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데, 우리같이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화난 창업가한테 받은 적이 있다. 미래가 불투명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극도로 느끼고 있는데, 내가 이에 대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뭐, 여기에 대해서 내가 반박할 생각은 없다. 실은, 반박할 수도 없다. 나도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VC들도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다. 투자한 회사들이 잘 안 되고, 이로 인해서 펀드의 LP들에게 출자금을 회수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면, 더 이상 펀드 만드는 게 힘들고, 그렇게 되면 VC의 커리어는 끝나기 때문에, 투자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고민과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는 창업가의 스트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사내벤처 관련 과거 포스팅에서 언급한 부분과 비슷한데, 실제 사업하는 사람과 남의 돈을 갖고 투자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위 창업가의 화난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네, 저도 실은 잘 모르죠.”라고 대답하지만, 이 분의 그 절실한 마음가짐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 분보다 더 절실한 입장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나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집으로 1원도 못 가져가면서 정말 아슬아슬하고 힘들게 일했던 경험이 있다. 이 창업가는 모든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가져가고 있었다. 펀드레이징이 힘들지만, 그래도 회사만 잘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여기에 투자할 수 있는 VC 돈이 현재 한국에는 넘쳐흐른다. 이와 반대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 2010년도는 정말 돈 구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웠던 시기였다.

실은, 내가 미국에서 일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기술도 다르고, 비즈니스도 다르고, 시장도 다르고, 모든 환경이 다르므로, 이 창업가의 고민이나 이 분의 비즈니스에 대한 건 내가 전혀 모른다. 내가 가진 스타트업 운영 경험은 이미 구닥다리 경험이기 때문에, 이 분에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일이 안 풀릴 때 느끼는 그 절실함, 이건 시대를 초월하는 감정이고, 많은 창업가가 느끼는 이 절실함을 나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런 힘듦이나 절실함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면,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건 말해주고 싶다.

The Soft VC

VC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물론, 자기 돈으로만 투자하는 부러운 VC도 있다). 그래서 실은 모든 걸 굉장히 냉정하고 냉철하게 보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기술, 재미있는 기술, 좋은 팀에 투자를 하는 거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펀드 출자자분들한테 원금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배수의 자금을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결국에 “이 회사에 지금 100원을 투자하면, 이게 몇 년 후에는 얼마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투자자’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차갑고, 욕심 많고, 인간미 없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어떤 투자자들은 정말로 이렇다. 실은, 나도 한때는 제대도 된 투자를 하려면, 감성적인 면은 철저히 배제하고, 이성으로만 모든 걸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펀드의 수익만을 생각하면, 잘하는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상대적으로 못 하는 회사에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고, 망할 거 같은 회사는 그냥 과감하게 버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선배 투자자들이 말하는 double down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한 회사가 많아져서, 회사들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너무나 잘하고 있는 회사, 고생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 그리고 고생하고 있고 망하는 게 거의 확실한 회사, 이렇게 나눌 수가 있다. 펀드의 수익률만 고려한다면, 잘하고 있는 회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 이 회사들에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 망할 회사들은 그냥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회사들은 대부분 잘 안될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펀드를 계속 만들어서,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냉정한’ VC가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요새 오히려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 같다. 워낙 많은 창업가를 만나는데, 대부분 힘들어하고, 밖에서 내가 말은 안 하지만, 모두가 나름대로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하나씩 있어서 그런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이 많이 발달하는 거 같다. 요새 나를 오랜만에 본 분들은 내가 많이 유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도 여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거 같다.

전에 Fred Wilson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VC 투자의 특성상 극소수의 잘 되는 회사가 펀드의 수익률을 좌지우지 하므로, 다수의 회사가 망해도, 이 망하는 회사는 펀드 수익률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보면, VC 한테 이런 망하는 회사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망하는 회사들의 창업가와 가족한테 이 회사는 인생 그 자체이자 전부이다. VC의 수익률과는 눈곱만큼 상관 없을 수 있지만, 이들의 인생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훌륭한 VC이기 전에,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회사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 배를 탔다는건 이런 의미인 거 같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많은 VC가 투자자 이전에 훌륭한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생존과 밸류에이션

snail-graph-slow얼마 전에 구글캠퍼스 카페에서 정말 오랜만에 어떤 창업가를 만났다. 한 2년 만에 만났나? 내 기억으로는 당시에는 내가 큰 흥미를 갖지 않았던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같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조금 애매하다고 할 수 있는 비즈니스인데, 아예 돈을 못 버는 건 아니지만, 성장이 굉장히 더디고(또는,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될 듯), product/market fit을 찾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는 비즈니스라고 판단을 했다. 물론, 찾기 전에 돈이 떨어져서 회사가 망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년 동안 회사는 잘 버틴 거 같다. 그것도 팀원이 외주나 정부 프로젝트를 한 것도 아니고, 계속 왔다 갔다는 했지만, 그래도 본업을 통해 간신히 먹고 살 정도의 매출을 만들면서 생존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단 대표이사에게는 정말 축하한다는 진심의 말을 전했다. 돈 없는 스타트업이 2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거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고, 매출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 분이 “우린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니까 투자 받을 때 밸류에이션이 더 높아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에 대해서 나중에 조금 생각을 해봤다.

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거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로 높은 존경심을 표시하고 싶다. 회사의 객관적인 밸류에이션도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높게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밸류에이션에는 창업자와 창업팀의 자질도 참작되어야 하고, 이들의 끈기와 바퀴벌레 근성은 자질의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오랫동안 죽지 않고, 시장에서 버틴 것만으로도 이 회사의 가치는 높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유니콘 성장에 익숙한 우리 같은 VC들을 설득하기에는 생존만으로는 힘들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실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VC들은 “내가 아는 유니콘 기업 중, 창업 초기에 J 커브를 그리면서 미친 성장을 하지 않았던 스타트업은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글 초반에 언급한 회사는 이 논리로는 절대로 큰 회사가 될 수 없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만 남았고, 성장이 없거나, 또는 굉장히 더디게 성장을(=수평선) 하는 회사는 오히려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

나도 투자자이다. 그리고, 나도 유니콘 회사에 투자하고 싶지만, 큰 VC와는 조금은 다르게 본다. 일단, 한 분야에서 아주 오랫동안 같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살아남는 창업가들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이미 이 포스팅을 통해서 밝혔듯이, 한 분야만 10년 이상 파고들어 가서 연구하고 고민한 창업가들은 남이 보지 못한 통찰력을 가진다는 걸 나는 믿는다. 하지만, 꾸준한 성장은 있어야 한다. 성장이 없는 버티기는, 살아 있지만,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J 커브는 아니더라도, 오래 버틴 만큼 남보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성장이 있어야지만,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 그 성장은 1%도 좋고, 10%도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이 가능하다면.

그냥 생존하는거와,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 BetaNews>

끝없는 달리기

keep_running_by_phat7-d9mbo4x이제는 고인이 된 인텔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 관련 책은 개인적으로 모두 즐겨 읽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Only the Paranoid Survive(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에서 그로브는 비즈니스가 살아남으려면, 좋든 안 좋든 계속 변화해야 하는데,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편집증 환자같이 항상 모든 걸 의심하고, 경계하고, 조바심 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편집증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능력 있는 대표이사들은 이런 편집증 환자의 기질을 갖고 사업을 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이 잘 안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될 때에도 힘들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의식과 조바심으로 무장하고 미친 듯이 달린다. 실은, 내 주변에는 사업이 정점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일 망할 거 같은 자세로 긴장하면서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통장에 현금이 넘쳐 흐르지만, 곧 자금이 소진될듯한 자세로 투자자들한테 절실하게 피칭하고,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곧 고객이 떠날 거 같은 자세로 영업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이런 위기에 대비할 계획을 만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건강도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 같다. 회사가 잘 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모든 걸 A부터 Z까지 하나씩 다시 짚으면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뭔가 적신호가 잡히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갑자기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고객들이 우르르 떠나가기 시작하면, 이때 잘못된 걸 고치려면 이미 늦었다. 모든 질병은 예방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조기 치료인데,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예방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사업이 가장 잘 될 때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일해야 한다.

나도 가끔, 굳이 저런 강박관념을 가지면서 사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하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분야라서, 스타트업에 발을 담갔다면 이런 끝나지 않는 달리기 시합을 계속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이미지 출처 = Devian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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