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개발은 정말 왕

trust+me+i+am+an+engineer인터넷이나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창업가는 개발자와 이들의 개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왕이라는 말을 항상 하고, 이에 대해서 2012년2013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우리도 창업팀에 개발력이 없으면 웬만하면 투자하지 않는 것을 우리랑 이야기해 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개발조직이 없어도 잘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다. 일반화하는 건 옳지 않지만, 대부분 이커머스나 O2O 분야 회사들이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이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들이고, 특히 오프라인에 더 비중을 두는 회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회사의 개발력을 강조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우리는 오프라인 운영이 더 중요한 회사라서 개발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거나 개발력이 약하지만 잘 운영되는 회사들을 언급하면서 본인들도 개발력 없이 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은 이분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내부 개발조직 없이 잘 성장하는 회사도 있고, 실은 스트롱 회사 중에도 개발을 외주처리하면서 성장하는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개발력이 없는 스타트업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그리고 이런 회사들을 조금 더 깊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역시 개발력이 약한 회사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과거에 살고 있다면, 개발력이 없어도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 변화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더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면 하다못해 가게 웹사이트라도 있어야 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라도 운영하고, 현장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한 모바일 플레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작은 가게에서 개발자를 채용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더라도 기술을 거부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분야가 같이 존재하는 O2O나 이커머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월매출 1억 – 5억까지는 몸으로 때우면서 성장하는 걸 나도 봤지만, 이를 넘어서 정말 큰 비즈니스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좋은 개발팀이 필요하다. 비즈니스의 특성상 오프라인 요소가 중요하고, 이를 활용해서 성장을 도모하면, 매출이 증가할수록 이에 따른 비용 또한 매출과 함께 거의 선형적으로 증가하는데, 이 오프라인 요소가 비용구조를 해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 기술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간편결제, 물류의 시스템화, 동선 최적화, 추천, 봇, 데이터, 머신러닝 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어야지만, 남들보다 더 lean 하게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성장을 더 빨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창업가보다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다 – 회사가 잘 안 되더라도, 개발력이 있다면 다른 회사에 인수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흔히 이 바닥에서 이야기하는 acq-hire(재능인수)는 대부분 개발력이 뛰어나지만, 딱히 product/market fit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스타트업한테 적용되지, 비즈니스모델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에 해당하는걸 나는 별로 못 봤다. 특히 한국 스타트업이 외국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 아직 이런 사례가 거의 없지만 – 개발력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이커머스나 O2O 비즈니스들은 오프라인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게 참 힘들다. 한국에서 O2O 비즈니스를 아무리 크게 운영해도, 한국 밖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팀을 뽑아야 하고, 외국 시장에 맞는 오프라인 운영 모델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시장으로의 확장 계획이 없다면, 이런 비즈니스모델 위주의 스타트업을 외국 회사에서 인수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거 같다.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은 조금 다르다.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좋은 개발력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면, 미국 회사에는 꽤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다. 미국보다는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인수 이후 바로 현업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개발력에 영어 실력까지 좋다면 정말 금상첨화이다.

어쨌든 비즈니스 분야와는 무관하게, 개발력은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다 못해 “개발은 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meydansozluk.com/gorsel/trust+me+i+am+an+engineer>

롤러코스터 인생

rollercoaster흔히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한다. 나도 40년 넘게 살아보니, 이 말이 맞는 거 같다. 평범한 인생도 롤러코스터인데, 스타트업 인생은 오죽하랴. 이제 우리도 투자한 회사가 70개가 넘었다. 이 중 잘 되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힘들어하고, 항상 돈이 부족하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항상 힘들고, 항상 돈이 부족한 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경험하지만, 이 밑바닥 경험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인간의 멘탈 한계가 가끔 찾아온다.

창업가의 정신적 건강 리스크에 대해서는 이미 2013년, 2014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새 이런 생각을 더욱더 자주 하게 된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포함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최근 많이 느끼고 있다. 스타트업은 모두를 위한 건 아니다. 창업가를 보면 주로 비전이 있고, 자존심이 강하고, 열정과 야망이 넘쳐흐르는 분인데, 예상대로 일이 잘 안 풀리면 이런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 비해 더 크게 좌절하고, 더 큰 자괴감에 빠진다.

인생 살다 보면 일이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고, 또는 일을 아예 못 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풀릴때가 거의 없고, 특히 초기에는 밑바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너무 오래 지속하면 – 그리고 대부분 이 처절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경험한다 – 정신이 공격을 받는다. LG 전자에 다니는 내 월급쟁이 친구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나한테 했다. “야, 승진하니까 스트레스가 장난 아냐.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가 내일은 확 다운되는데, 이러다가 조울증 걸릴 거 같네.” 물론, 이 친구가 정말 힘든 건 내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도 난 별로 불쌍하다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분의 업다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는 동안 매출이 발생했거나, 유저들이 등록을 했다면 마치 마약 한 거같이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 이후로 몇 시간 동안 매출이 안 생기고 유저 등록이 더디어지면 또다시 기분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 감정의 변동이 하루에도 수차례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니, 롤러코스터도 이런 기가 막힌 롤러코스터가 없다.

자, 이게 반복되다 보면 정신적인 타격이 누구한테나 다 오게 되어 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스트레스를 잘 견디기 때문에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느끼지 않는 창업가가 있다면,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로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거나, 목숨 걸고 비즈니스를 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름대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이런 경험이 있으므로, 창업가들의 어두운 경험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스트롱 대표이사님들 보면 마음이 짠하다. 사업이 도대체 뭐길래……. 그런데 이분들이 아셔야 하는 게 있다면, 사업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문제는 더 많아지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사업이 안 풀리면 이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사업이 잘 풀려도 이에 따른 다른 차원의 문제점들과 스트레스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하기로 했으면 미친 롤러코스터를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명심을 하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 다만, 이런 감정의 변화와 기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면 주변에서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가족, 친구, 동료, 투자자, 선배, 후배,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그 누구도 괜찮고, 아무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까 걱정 마라. 혼자 끙끙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interest.com/explore/roller-coaster-quotes/>

대업(大業)

창업과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요새 창업이 큰 화두이다. 정부의 엄청난 지원, 웬만한 대학교마다 볼 수 있는 창업보육센터, 강남을 주축으로 여기저기 생기고 있는 창업 지원공간, 그리고 미디어에서 계속 떠드는 벤처, 스타트업, 청년창업 때문인지 마치 한국이 창업 국가라는 착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의 제대로 된 창업 역사는 상당히 짧다. 스타트업 바이블이 2010년도에 출간되었는데, 실은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생소했다. 그 전에는 모두 ‘벤처’라는 말을 사용했다.

즉,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지가 이제 몇 년도 안 됐을 정도로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걸음마 단계라는 점을 나는 항상 개인적으로 강조한다. 그래서 너무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올 한 해 자주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두 다르지만, 1957년 창업된 Fairchild Semiconductor가 그 시초라는 이야기를 많은 분이 한다. 이렇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60년 정도이며, 우리가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는 이 동네 스타트업들은 분명 전통적인 대기업보다는 훨씬 바른 고속성장을 했지만, 이 성장은 실리콘밸리의 60년 시행착오 노하우가 전제된 배움의 성장이다.

솔직히 나는 제대로 된 한국 스타트업 역사는 5년밖에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은 자꾸 우리의 성장을 실리콘밸리와 비교하려고 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과 같은 성장 곡선을 따라 하려고 한다. 따라 하는 건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이게 맹목적인 카피가 아니라, 우리보다 역사가 깊고 더 잘하고 있는 회사의 지표나 문화를 우리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벤치마킹하는 건 후발주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라 한다고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회사같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실패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회사가 주저앉을 수도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왜 우리는 실리콘밸리같이 못 할까?”라면서 자신을 너무 자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실리콘밸리보다 역사가 짧고, 그래서 배움도 당연히 짧고 한정되었기 때문에 잘 안되고 실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계속 도전하고, 잘 안된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는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지만, 개인과 기업은 발전하고, 생태계는 만들어진다.

나는 우리 같은 VC는 금융업이 아니라 건설업에 종사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회사를 만드는 건(=building a company), 땅을 파고, 거기에 토대를 튼튼히 기초공사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건설과 똑같다. 이렇게 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죽을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하는 대업(大業)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모든 창업가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두 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 하고, 나도 실은 여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생태계라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기초공사도 못 끝낼지도 모른다. 그동안 많은 회사가 생기고, 투자를 받고, 망하고, exit을 하게 될 것인데, 이 모든 게 회사가 성장하고 생태계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보고 가자. 5년 안에 exit 할 비즈니스를 만들기보다는, 평생 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다 보면, 운 좋으면 1년 안에 exit 할 수 있다. 물론, exit 한다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돈 보다 신뢰

평판 관련해서 내가 자주 인용하는 워런 버핏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We can afford to lose money – even a lot of money. But we can’t afford to lose reputation – even a shred of reputation(버크셔헤서웨이가 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많이 잃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명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단 한 티끌이라도)”

특히 스타트업이나 VC같이 작은 커뮤니티에서는 이 평판과 명성이 더욱 중요한데, 며칠 전에 접한 기사를 보면서 정말 정직하고 투명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2010년에 창업된 스타트업 중 Fab.com이라는 이커머스 회사가 있었다. 3,000억 원 이상 투자를 받았고, 한때는 기업 가치가 1조 원이 넘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유니콘 회사 중 하나였지만, 4년 만에 비즈니스는 급격하게 하락했고, 결국 200억 원 정도에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다. 한때는 가장 성공적인 유니콘 회사였지만, 결국 가장 크게 망한 스타트업 낙인이 찍혔고, 이 회사에 투자한 엔젤투자자와 VC들은 돈을 거의 다 날렸다. 창업자이자 대표는 Jason Goldberg라는 친구인데, Fab을 비롯 여러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대부분 잘 안되거나 피봇을 한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연쇄 창업가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Pepo라는 또 다른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이 회사가 최근에 약 27억 원의 시드 라운드를 유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Pepo의 투자자들이 대부분 망한 Fab.com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음….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약간 의아해했을 것이다. 3,000억 원을 날린 창업가한테 왜 다시 투자했을까?

TechCrunch에 의하면 제이슨 골드버그는 회사의 경영과 상황에 대해서 매우 투명했다고 한다. 비즈니스가 잘 되면 투자자들과 업데이트 공유가 잘 안 되거나 늦어도 상관없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투명하게 즉각 소통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실제로 제이슨은 Fab.com이 왜 잘 안 되었고, 뭐가 문제였는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많은 발언을 했고,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여러 번 인정했다. 이런 내용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초기 시점부터 투자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이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었던 거 같다.

창업자들이 투자자와 투명하게 소통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우리도 투자하면서 항상 부탁드리는 건 회사를 잘 키워달라기보다는 궂은일이 있을 때는 아주 솔직하게 우리한테 너무 늦기 전에 알려달라는 거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모든 게 계획대로 안된다. 돈은 항상 부족하고, 제품개발은 지연되고, 고객은 항상 늦게 돈을 준다. 대부분의 VC는 이런 스타트업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일이 생각같이 잘 안 풀려도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스타트업과 같이 으쌰으쌰해서 어떻게라도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노력의 정도나 깊이는 VC의 규모 또는 성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이러므로 회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투자자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는 노력을 하는 게 모두에게 좋다. 대표이사의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이런 좋지 않은 상황을 숨기다 보면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곪아서 문제가 더 커지고, 최악의 경우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런 일이 발생하면, 투자자는 이 창업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은 창업자는 평판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한 번 타격을 입은 평판은 절대 회복되지 않거나,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참고로, Pepo의 초기 수치들이 매우 좋긴 하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다시 투자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3,000억 원을 날려 먹은 창업자한테 기존 투자자들이 다시 투자한 이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재미있는 인연

우리 투자사 중 오라이츠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출판과 책 분야의 비즈니스인데, 글로벌 출판 시장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업데이트해주는 서비스이다. 일반인들한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분야이지만, 꽤 의미 있는 규모의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명확한 고객들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가는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이사인데, 오늘은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2009년도 뮤직쉐이크 시절, 콜드 이메일을 받았다. ‘파이카’라는 한국의 신생 출판사인데, 내가 쓰는 블로그 내용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메일이고, 당시 굉장히 바빴던 시기라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출판사이길래 나같이 못 나가는 사람한테 책을 쓰자고 할까 궁금했고, 출판사 김혜원 대표가 워튼스쿨 후배라서 한 번 이야기는 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책 출판 의도 자체가 벤처로 성공한 선배 창업가가 후배들한테 “이렇게 하니까 성공하더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같이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동료 창업가가 “나도 같이 구르고 있는데, 미국에서 남들보다 약간 먼저 구르다 보니 이런 경험을 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라서 책을 써보기로 했고, 그 책이 ‘스타트업 바이블(1권)‘이다. 실은 책 내용도 나쁘지는 않지만, 책 제목을 워낙 잘 지었는데,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제목은 파이카 김혜원 대표의 작품이다.

책 출간 몇 개월 후, 파이카에서 연락이 왔다. LA에서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오토바이 종단 여행을 떠난 이정도 씨와 용현석 씨에 대한 소개였는데, 종단을 마친 후에 파이카에서 책을 만들 계획이었다. LA에서 나는 이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 친분을 유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단은 성공했지만,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얼마 후 파이카의 김혜원 대표와 오토바이 청년 이정도 씨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다. 에브리클래스라는 미국의 Skillshare와 비슷한 비즈니스였는데, 이 회사는 프라이머의 투자를 받았다(Strong이 프라이머 활동하기 전).

에브리클래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이 팀은 글로벌 출판 정보 플랫폼인 Frontlist를 운영하는 오라이츠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피봇을 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그리고 에브리클래스에서 오라이츠로 서비스가 피봇하는 기간 중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씨는 결혼을 해서 스트롱벤처스가 투자한 3번째 부부창업 스타트업이 되었다. 참고로 에브리클래스에서 오늘의 오라이츠가 탄생하기까지는 거의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이사가 스스로 코딩을 공부해서 개발자로 다시 탄생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오라이츠팀과 미팅을 하고,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참 재미있는 인연이어서 혼자 씩 웃었다. 우리가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오래 알고 지낸 분들이고, 그만큼 인간적으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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