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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왕국

우리에게 투자금을 제공해 주는 외국 LP 중 한국에 정기적으로 출장을 오는 분들도 몇 명 있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시장 자체를 매우 좋아해서, 스트롱을 포함한 본인들이 출자한 다른 VC들과 만나기 위해서 한국에 자주 오기도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 사람, 문화, 언어, 음식, 기술 등에 진심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 중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도 있다.

최근에 이분들이 나랑 대화하면서 많이 언급된 단어가 ‘꼰대’랑 ‘눈치’였다. 꼰대는 그나마 영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전 세계에 존재하니까, 설명하면 금방 이해했다. 그런데 눈치라는 말을 영어로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긴 했다. 이건 정말 한국의 고유한 단어이자 고유한 문화라서, 열심히 설명했고, 외국인이지만 이들은 대략 눈치로 이해했지만 ㅎ, 눈치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건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눈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로 상황을 잘 파악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나 같은 사람을 정말 피곤하게 만드는 단어이다.

얼마 전에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라는 책을 읽다가 눈치와 관련된 챕터가 있어서 너무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읽었고, 이 책의 내용과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에 대해 몇 자 적어본다. 일단 김하나 작가가 한국 사람들이 수도 없이 나누는 이런 대화를 예시로 들었다.

“오늘 저녁에 뭐해?”
“왜?”

한국에서는 이게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서양 사람들에게 오늘 저녁에 뭐 하냐고 물어보면, 말 그대로 저녁에 뭐 한다고 말해준다. 한국에선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왜”라고 다시 맞받아쳐서 물어보는 이유는 상대의 질문엔 뭔가 다른 의중이 있다고 미뤄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기한 건, 정말로 물어본 상대방은 뭔가 다른 의중이 있는데, 저녁에 뭐 하냐고 물어본 것이다.

집이나 회사에서 나도 눈치 없는 사람으로 통한다. 누가 어떤 의중이 있는데, 이걸 나한테 대놓고 말하지 않고 그냥 돌려서 말하면, 나는 이분의 의중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했는데, 나는 도대체 왜 사람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걸 그대로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홍님, 이걸 왜 이렇게 처리했나요?”
“전에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왜 이렇게 눈치가 없나요. 그렇게 말했다고, 그 말을 그대로 들으시면 어떡해요.”
“그럼 정확하게 말씀을 해주시죠…”
“그걸 꼭 말해야 하나요? 사람이 참 눈치가 없네요 ㅠㅠ”

김하나 씨의 책에서는 ‘영어권에서는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 책임이 발화자에게 있기 때문에 상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정확히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나는 이 말에 너무나 동의한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라. 그게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할 말은 그냥 하는 게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주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했는데, 이로 인해서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멀어졌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그 사람과 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인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고도로 발달한 두뇌와 입이 있다. 아름다운 말은 축복이고, 험한 말은 무기가 될 정도로 말하기는 인간이 가진 특권이자 능력이다. 이런 좋은 말을 잘 사용하면 좋겠다. 내가 무슨 텔레파시를 가진 초능력자도 아닌 이상, 상대방이 원래 A를 말하고 싶었는데 B를 말하면, 이걸 어떻게 A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상대방의 숨은 의중을 파악하려고 하는 한국인의 눈치 보기 노력을 다 합치면 큰 국가적 낭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할 말은 똑바로 하고, 그런 것까지 굳이 말로 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이 글을 읽고 배기홍은 정말로 눈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확신과 자기최면

우린 상당히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회사를 만나야 한다. 이 많은 회사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deal sourc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동안 이미 260개가 넘는 포트폴리오에 투자했기 때문에,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주변에 있는 다른 창업가들을 많이 소개해 주고, 다른 투자자들이 소개해 주고, 데모데이 같은 곳에서도 만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인바운드로 다양한 창업가들이 콜드 이메일로 회사 소개자료를 보낸다.

이런 콜드 이메일로 오는 회사들은 매력도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인바운드 이메일을 읽고, 이 중 재미있는 사업이나 창업가 같으면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한다. 얼마 전에 이런 미팅을 했는데, 만나서 한 20분이 지났나,,,이 분한테 나는 미안하지만 우린 검토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안 됐다고 느꼈고, 더 이상 미팅을 하면 서로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준비되면, 그때 VC 미팅을 하라고 솔직한 피드백을 줬다.

이분이 나한테 그러면 도대체 투자자는 언제 만나면 되는지 물어봤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럼, 언제 준비가 되는 건지,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최소한 본인이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실은 그 누구도 창업가를 믿어주지 않는다. 주위 친구들도 말릴 것이고, 가족들도 말릴 것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지인들 10명에게 내 사업 아이디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10명 모두 망할 거라고 하면서 말릴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사업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스스로는 설득되어야 하고, 본인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이 가짜 창업가는 본인도 자신의 사업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게 온몸을 통해서 느껴졌다.

내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어느 정도의 감과 적당한 데이터를 통한 확신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창업가는 본인이 하려고 하는 게 가능하다는 어느 정도의 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감과 느낌만으론 본인도 확신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느낌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적당한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일한 경험이 기반이 되는 감과 이를 보강할 수 있는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있으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자기 최면이다. 잘될 거라는 느낌도 확실치 않고, 조사를 좀 해보니까 데이터도 신통치 않으면 자신감이 확 떨어질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해야 한다. 마치, 어떤 펜싱 선수가 경기 중 계속 “할 수 있다.”라면서 스스로에게 긍정의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이렇게 해서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만약에 본인도 확신이 안 서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웬만한 VC는 이런 불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업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고, 이분의 눈빛, 동작, 그리고 태도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판단할 수 있다.

100% 확신이 있어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하는데, 이 기본적인 확신마저 없다면 투자자와 안 만나는 게 좋다. 서로의 시간만 낭비할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절대로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

대량 해고와 저렴한 인수

내가 작년부터 창업가, 우리 펀드에 투자하는 LP, 그리고 다른 VC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하지만 가장 대답하기에 자신도 없고 무지했던 질문이 바로 경기에 대한 질문이다. 올해 경기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언제쯤 좋아질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냥 별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인데, 이렇게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바로 현재 경기가 안 좋고, 미래에도 안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고, 경제 관련 뉴스를 많이 보고 스스로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성향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굳이 내 개인적인 생각을 알고 싶다면, 나는 작년에도 경기는 안 좋았고, 올해도 안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공유한다. 미국의 벤처 시장 숫자를 보면 작년 3사분기부터 약간의 반등이 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이 수치를 보면 대부분 AI 회사의 거품 펀딩 때문이고, 그 외의 다른 시장은 아직도 크게 좋아지고 있진 않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지만, 그 타이밍은 한 6개월 정도 뒤처지는데, 여기에 자본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금리의 불확실성까지 감안하면 올해도 경기가 크게 좋아질 것 같진 않다. 실은, 나도 한국은행이 금리를 어떻게 할지 매우 궁금하긴 하다. 금리를 낮춰야지 돈이 시장에서 더 원활하게 돌 텐데, 한국은 기업/가계부채가 이미 너무 많아서 이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금리를 낮추면 더 많은 기업과 개인들이 돈을 빌릴 것인데, 이건 장기적으로 또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크로 경기는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중요하지만,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그래도 계속 신규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은 어차피 5년~7년 후에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고, 우린 7년 후에 제대로 된 가치가 만들어지는 자산에 오늘 할인된 가격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시장을 보면 매크로 경기와 상관없이 우린 계속 투자해야 하고, 실제로 스트롱은 우리 페이스대로 매달 신규 투자를 1~2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전혀 신경을 안 쓸 순 없다.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아직 우린 불경기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대표적인 시그널은 (저렴한)M&A와 (대량)해고 소식들이다.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돈이 많기 때문에 M&A가 꽤 활발하게 일어나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도 M&A 활동은 활발하게 일어난다. 펀딩을 못 받는 돈 떨어진 스타트업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면 할 수 있는 건 그냥 회사 문 닫거나 아니면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것이다. 이미 투자자들이 있고, 직원들이 있다면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게 그냥 폐업하는 것보단 그나마 좋은 선택이지만, 인수 가격을 네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대부분 그냥 인수기업이 부르는 헐값에 팔린다. 우리도 경험해 봤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헐값에 인수되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반대로 불경기 때 현금이 많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인재,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아주 싼값에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오히려 저렴한 M&A의 빈도와 건수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의 해고 소식은 작년 내내 들려왔는데, 경기가 악화할수록 해고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전체 인력의 10% 해고도 많게 느껴졌는데, 올해는 많은 스타트업이 기본 50%의 인력을 해고하고 있다. 우리 투자사를 통해서, 그리고 해외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이런 대량 해고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더 큰 불경기에 대비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실은, 이런 내가 틀려서 올해부턴 경기가 좋아지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로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 그냥 좋은 거고, 일단 경기는 무조건 안 좋다고 가정하고 사업하는 게 2024년에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상호존중

나는 2000년도 중반에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중소기업 영업/마케팅 부서에서 3년 동안 일했다. 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뭔가 체계가 잡힌 대기업에서 일 한 경험이었는데, 일은 매우 재미있었고,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와 이 회사를 만든 빌게이츠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사심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팀의 상무님과 이사님이 나에게 항상 잔소리같이 했던 말이 있는데, “너는 왜 맨날 혼자 샌드위치 같은 걸로 밥을 때우냐?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어야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일도 많았고, 아주 바빠서 밥은 그냥 혼자 조용히 먹고 싶었다. 굳이 부서 사람들이랑 우르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굳이 밥까지 같이 먹는 것도 싫었다. 또한, 당시에만 해도 한국 기업에는 회식 문화가 뿌리를 깊게 박고 있어서 일주일에 거의 매일 회식하는 걸 보고 팀워크라는 명분으로 술 먹는걸 아주 아주 증오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매니저들과 1대1 미팅하면 항상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일은 잘하지만, 우리 부서와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야 하고, 당시 내 매니저분들의 머릿속에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그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고,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는 당시에 과장 나부랭이였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하게 반박했다. 직장 동료분들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회사의 이익이라는 공통 목적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술을 같이 먹는 거랑 일을 잘하는 거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항상 매니저들에게 지적받았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내 인사고과에 이런 게 영향을 미쳤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름 일은 잘했고, 실적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팀워크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술 먹는 회식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스트롱은 이 흔한 회식이 아예 없다. 그리고 우린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저녁 자리도 없다. 모든 식사는 점심이고, 모든 팀원이 같이 밥 먹는 건 일 년에 두 번 정도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점심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안 친하고, 팀워크가 안 좋은가? 그 반대다. 스트롱의 팀워크는 매우 스트롱한데, 이 스트롱 한 관계는 같이 일하면서 쌓인 신뢰와 존중 때문이지, 서로 형.누나.언니.동생 하면서 술 먹고 밥 먹어서 생긴 팀워크가 아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좋은 팀워크는 정말 중요하다. 팀워크가 없으면 개인적이나 단체로나 일의 능률이 잘 안 오르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매우 저하된다. 하지만, 이 팀워크는 같이 술 먹고 밥 먹으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존중과 신뢰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그런 쓸데없는 친함과는 전혀 상관없다.(참고로,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남이다). 오히려 너무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한국의 수직적 기업 문화와 나이 처먹은 게 그 어떤 것 보다 중요시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가 없다. 직장 상사가 후배.동생이라는 명목하에 “야” , “너”라고 하는 팀원과 어떻게 존중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좋은 팀워크는 상호존중에서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려면 나이, 직급, 성별 등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 회사를 같이 만들거나, 친한 친구들이 공동 창업을 해도, 회사와 일과 관련된 곳에서는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게 직장에서 거의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가끔 내가 놀라는 게, 효율과 생산성이 중요하고, 격식이 상대적으로 없는 이 스타트업 현장에서도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서 너무 자주 술 먹고 밥 먹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남들이 본인들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든, 이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과연 팀워크가 만들어질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팀워크가 오래 갈 수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이런 분들은 팀원 간에 갈등이 생기면 딱 하나의 지침이 있다.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으쌰으쌰 해야죠.”가 해결책인데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명 없는 한 해

나는 신년 계획이나 연간 계획 같은 걸 안 세운다. 내가 하는 모든 건 12개월 동안 고치거나, 완성해야 하는 단기 과제들이 아니고, 평생 노력해서 고치거나 개선해야 하는 일들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연초에 이런저런 연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이런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이지만, 그래도 다른 개인적인 목표보단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들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는데 올해 내가 많이 집중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이거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되도록 안 하는 거였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내가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말, 그리고 나도 너무 자주 했던 말이다. “운동 해야 하는데…” , “담배 끊어야 하는데…” , “술 그만 먹어야 하는데…” 등 우린 이런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데, 결국 “뭐 해야 하는데…”라는 말은 변명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후회까지 더해진 말이다. 누구나 다 변명도 싫어하고, 후회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 두 가지 감정이 혼합된 말이라면,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과 말이 아닐까 싶다.

올해 나는 의식적으로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새벽에 “오늘도 후회하거나 변명하는 말을 하지 말자. “뭐 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지 말자.”를 스스로 되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대신, 정말로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거나, 지금 하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 행동으로 옮겨서 시작하거나 또는 아예 하지 않았다.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어릴 적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못 만났고 카톡이나 전화로만 수년 동안 연락을 하고 있다면, “우리 언제 한 번 만나야 하는데….”라는 말만 수년 동안 하면서 실제로는 안 만나고 있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도 항상 “언제 한번 봐야 하는데…”라는 말만 하고 안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올해는 이런 변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정말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면, 그 말을 하는 대신, 바로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 모두 다 가능한 시간을 잡기가 힘들면, 그냥 시간 되는 친구들만 만났고, 이후에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지인들이라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만나고 싶지 않고, 안 만날 사람들이라면 굳이 “아, 우리 언제 한번 봐야지…”라는 실없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내년에도 변명도 안 하고, 후회도 안 하는, 그런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