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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와 소통하기

투자자 – 투자사와의 관계를 많은 분이 결혼에 비유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하는 거 같은데, 나는 우리 투자사와 스트롱의 관계가 결혼 정도까진 아니고,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명확한 비즈니스 관계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책임이자 의무 중 하나가 서로 잘 소통하기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소통이라면 좀 애매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뜻이 포함되는데, 창업가와 투자자 간의 소통 중,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간과되기 쉬운 게 투자자에 대한 비즈니스 업데이트/보고인 거 같다. 우리도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계약서에 투자사는 투자자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비즈니스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게 명시되어 있지만, 이걸 종교와 같이 잘 실행하는 대표도 있고, 아예 정기적인 업데이트는 안 하고, 특별한 일이 발생할때만 – 안타깝게도, 이 특별한 일이 주로 회사의 잔고가 거의 바닥났거나,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거나 하는 그런 나쁜 상황일때 – 연락을 하는 대표가 있다. 실은, 스타트업 운영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고, 일만 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나는 우리 대표님들한테 그래도 시간을 만들어서 투자자들한테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투자자’는 단지 스트롱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 회사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한, 개인과 기관 모두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투자를 받았으면, 회사에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에게는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비즈니스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업데이트를 하는 건 계약서를 떠나서,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창업가의 업무 시간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보고를 너무 자주 해달라고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대표나 한 달을 마감하면, 비즈니스를 정리하고, 한 달 동안의 수치를 트래킹하고, 잘한 점을 정리하고, 잘 못 한 점도 검토하고, 현재 은행에 얼마의 캐시가 남아 있는지 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좀 어색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발생하겠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우리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KPI들이 나올 것이고, 매달 이 KPI를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면서 우리가 뭘 잘하고 있고, 뭐가 부족한지를 감이 아닌 객관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자료를 그냥 그대로 투자자들과 공유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막 이쁘고 formal 한 자료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남을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비즈니스를 스스로 평가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만드는 그 내용을 그냥 공유하면 된다. 어떤 회사는 굉장히 자세하고 분석적인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이런 자료를 보면 대표이사가 비즈니스를 이렇게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한다는 사실에 우리도 가끔 놀랄 때가 있지만, 대부분 그냥 이메일로 내용을 공유한다.

이런 월간 업데이트를 투자자들과 공유하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냥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높이는 데 있다. 이 글의 초반에서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대표의 특징은,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때, 다급하게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주로, 회사 통장에 한 달 치 월급 밖에 남아 있지 않거나, 직원이 대부분 퇴사해서 회사에 인력이 몇 명 안 남았을 때이다. 6개월 만에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회사에 돈이 급하니까 투자를 검토해달라고 하거나,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우린 당연히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도와주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 때가 많다.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해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를 했다면,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회사에 현금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표의 우선순위 넘버 원은 무조건 비즈니스, 제품, 그리고 고객이다. 이걸 소홀히 하면서 투자자들한테 보고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건 우리도 원치 않은 거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매달, 매주, 매일, 검토하고, 트래킹하고, 모니터링하는 것 또한 위의 비즈니스, 제품, 고객이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되는 중요한 일이고, 이걸 그냥 그대로 공유해 달라는 게 내 포인트이다. 만약에 이런 걸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문제가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들한테 이런 정기 업데이트 공유를 부탁하면서, 항상 포함해 달라고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회사에 남은 현금 상황이다. 이걸 공유해줘야지만 투자자들도 다음번 펀드레이징은 언제부터 또 해야 하는지 같이 준비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회사가 투자자들한테 바라거나 부탁하고 싶은 내용이다. 이건, 좋은 엔지니어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될 수도 있고, 다른 VC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정기적인 보고나 업데이트를 잘 안 한다고 우리랑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언제든지 연락은 되고, 내가 만나서 비즈니스 상황 업데이트를 받고 싶으면, 연락하고 만나면 되지만, 우리가 워낙 투자사가 많다 보니까, 나야말로 꼭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주로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이메일을 통한 정기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벤치마킹하기

한국에만 존재하는 서비스나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더 큰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단한 창업가도 요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미국에서 먼저 생긴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되는 걸 보고, 이 컨셉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그대로 베끼거나 또는 한국 시장에 조금 더 맞게 로컬라이즈하고 화인튜닝해서 사업을 크게 하는 창업가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보단 미국 창업가들이 더 먼저 잘 만들고, 규제와 같은 이슈가 상대적으로 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더 빨리 받아서, 빠른 속도로 스케일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비즈니스를 보고, “저거 한국에서도 하면 잘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이렇게 시작한 서비스를 설명할 때 주로 “우린 한국의 xyz(우버, 아마존, 위워크 등) 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이러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꽤 편하다. 나도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만나는 회사의 50% 이상이 이렇게 미국에서 잘 되는 모델을 카피해서 한국에서 창업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카피”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다른 나라의 비즈니스를 베껴서 한국에서 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남들이 잘 만들어 놓은 게 있으면, 우린 그 비즈니스를 잘 연구해서, 우리가 사는 시장에 맞게 출시하면 된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무엇보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간 비즈니스가 잘 못 한거는 버리고, 잘 한 것만 참고하면 되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xyz” 또는 “한국형 xyz”를 만든다고 하는 창업가들한테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 특히 UX와 서비스의 흐름 관련된 – 잘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미 미국에서 이 제품을 유저로서 여러 번 사용해봤기 때문에, 서비스의 요모조모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걸 만들겠다는 분들이 나보다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이상해서 “혹시 이 서비스 직접 사용해봤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분이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미국에 사는 친한 친구나 가족을 통해서 이런 서비스가 있는데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지인들을 통해서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접했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그냥 웹사이트만 몇 번 봤고, 또는 검색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인지 공부하고, 기사를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스터디했다고 한다.

이 중 한국에서는 아예 제공되지 않아서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미국 신용카드가 없어서 결제 부분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 미국 주소가 없어서 직접 물건을 배송받아보지 못 한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아주 쇼킹하게, 영어를 못해서 제품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다 게으른 변명으로 들린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는 건 어렵지만, 이런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이 이미 우리보다 몇 발 앞서있는 비슷한 비즈니스를 A부터 Z까지 사용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iteration 했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유저도 압도적으로 많은 글로벌 서비스를 잘 벤치마킹하면, 그만큼 우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아주 빠른 follower가 될 수 있고, 이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든 후에 한국 시장에 맞게 로컬라이징 하면, 정말 많은 시간, 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벤치마킹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겉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깊게 들어가서 이 서비스는 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었는지를 모두 경험하고 이해를 해야 한다. 회원 가입부터 결제, 그리고 만약에 이커머스라면, 실제 물건을 받는 과정, 그리고 반품과정까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다 테스트해봐야 한다. 내가 이커머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배송이라는 오프라인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걸 경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전환율이 높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과정, 몇 시간 안으로 장바구니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받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과 같은 디테일은 그냥 남을 통해서 들어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거라서 직접 스스로 다 해봐야 한다.

내 주변에는, 본인들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롯이 이것만을 위해서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살다 온 창업가도 있다. 이분들같이, 필요하다면, 직접 미국까지 가서 경험해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고객마다 다르다

나도 자주 주장하고, 도 몇 번 썼지만, 나는 웬만하면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심플하게 가져가라고 한다. 여기에는 심플이 최고라는 뻔한 거 외의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창업가 스스로 자신이 하려고 하는 걸 너무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은 그 비즈니스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복잡한 기술과 비즈니스라도, 오랫동안 곰곰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과 고객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명쾌하고 간략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걸 나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분들한테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비즈니스를 쉽게 설명해보라는 조언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요즘 잠재 고객은 너무 바빠서, 조금이라도 설명이 길어지거나 어려워지면 더는 창업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하려는 사업을 설명하려면 무조건 심플, 심플, 그리도 또 심플하게 설명해야 한다. 있는 앱도 지우는 게 요새 트렌드인데, 복잡한 건 정말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위의 두 번째 이유는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B2C 제품에 해당하는 경우다. 기업이 사용하는 B2B 제품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B2B 제품은 기술이랑 비즈니스 모델이 좀 복잡해도,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 사용하거나 구매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속한 회사가 필요한 제품이고, 이 제품을 분석하고 도입을 검토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모든 걸 너무 심플 화해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가끔 머리가 너무 좋은 창업가를 만나는데, 이런 분들이 야망까지 크면, 주로 사업 초반부터 세상을 정복하려고 한다. 하드웨어도 만들고, 소프트웨어도 만들 수 있고, 자체 제품도 만들고 남의 제품을 OEM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B2C, B2B, B2G도 다 가능하다. 이분들의 논리는 이걸 그냥 패키징만 다르게 하면 된다는 건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 물론, 회사가 커지고 사람도 많아지만 결국엔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시작은 이 중 딱 하나만 선택하고 방향을 잘 잡아서 아주 깊게 들어가라는 조언을 나는 자주 한다. 이런 분들한테는 나는 그러면 오히려 B2B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아보라고 한다. 생각하는 게 너무 많고, 비즈니스가 복잡해서 B2C 시장은 힘들지만, 그래도 기업이 돈을 벌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누군가 진지하게 검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비즈니스 모델이 너무 복잡하냐 아니냐의 상대적인 기준은 내 제품을 과연 누가 구매할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이걸 잘 팔 수 있냐 없냐는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하다.

산 너머 산

정상인들이 보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실은, 나같이 이런 회사와 창업가를 매일 만나는 사람도 항상 신기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가는지 항상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신기하고, 매번 존경스럽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드는 걸 바로 옆에서 볼 기회가 많은 게 또한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이건 안 되는 게 정상이지만, 만약에 정말로 이 친구가 그리는 미래가 만들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젠가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유니콘 비즈니스 중, 한국에서는 거의 60개가 규제 때문에 불법이라는 기사를 봤다. 내가 생각해도 한국에는 이해하기 힘든 규제가 좀 많긴 하다. 규제가 무조건 필요 없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의 많은 규제가 특정 집단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강하다는 걸 매번 느낀다. 그리고 이런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시작하는 창업가들은 시작하는 첫날부터 이런 규제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그 무게가 너무 고통스럽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용감한 창업가도 가끔 만난다. 기존 은행과 제도권과 싸워야 하는, 돈이 관련된 핀테크나 암호화폐 분야, 택시조합 등과 싸워야 하는 모빌리티 등이 아마도 이런 대표적으로 규제가 강한 분야인 거 같다.

실은 이런 분야에서 이제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을 우리 같은 VC가 만나면,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나도 애매하다. 맘속으로는 스타트업은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 무조건 열심히 집중해서 하면 이런 규제는 넘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지만,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업을 하지 않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진정성이 없다. 그렇다고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창업가한테 그 어떤 스타트업도 정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까,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고 규제가 없는 다른 사업을 하라고 하는 것도 미래, 혁신, 변화, 불가능에 투자하는 VC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나는 그래도 굳이 한쪽을 택하라고 하면, 버티면서 하라는 쪽에 한표를 강력하게 주고 싶다. 실은 규제가 없는 분야에서 사업을 해도 너무나 많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규제가 심한 분야는 엄청나게 높은 산을 넘어야 하고, 이같이 엄청나게 높은 산이 한두 개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래도 나는 한번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실은 등산도 비슷한데, 높은 산을 처음 넘을 때가 가장 힘들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자신의 체력을 안배하면서 중간마다 쉬면서,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일단 한번 높은 산을 정복하면 그다음 산을 넘는 건 더 수월해진다. 이게 아마도 체력도 쌓이고, 자신감도 쌓이고, 불가능해 보인걸 가능하게 만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인 거 같다.

사업도 비슷한 거 같다. 높은 산을 하나 넘고, 두 개를 넘고, 세 개를 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력, 경험,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운 좋으면 같이 산을 넘을 수 있는, 옆에서 서로 격려해주는 좋은 동료도 생긴다. 그러다보면 높은 산을 여러개 넘을 수 있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주변에는 우리 팀 말고는 아무도 안 남게 된다. 경쟁사들이 알아서 하나씩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높은 산들을 꾸준히 넘다가 나 혼자만 남게 됐을때, 그리고 운도 어느정도 우릴 도와주면, 그때 우린 새로운 유니콘이 탄생하는걸 가끔 경험할 수 있다.

변곡점과 팀

많은 VC가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한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미팅하면서 어떤 창업가가 “스트롱은 팀에 투자한다고 들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몇 자 적어본다.

일단 우리랑 팀이 인간적으로 서로 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구체적이지 못 하지만, 이 비즈니스는 사람이 사람한테 투자하는 거라서, 서로 잘 맞아야 한다. 어떤 팀이 인간적으로 우리한테 끌리는가를 물어본다면, 이건 정말 과학이라기보단 예술과 감의 영역이라서 여기서 글로 풀어서 설명은 못 하겠다. 그리고 이런 팀은 팀원 대부분이 서로를 오랫동안, 깊게 알고 지냈다. 학교 동창들, 전 직장동료들, 같은 동네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 등등…관계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잘 알고, 이렇게 서로를 잘 알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이다. 대학 동창이면 인간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고, 직장 동료면 일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다 보면, 상황이 좋지 않은 down 시점에 팀워크가 상당히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웬만한 상황에 부딪혀도 끄떡없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생겨도 잘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팀원은 웬만하면 깨지지 않는다.

자, 그러면 이게 왜 중요한가? 사업을 하다 보면, up과 down이 많은데, 주로 항상 down, down, down이다.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up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역동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사업의 변곡점들이 가끔 찾아온다. 내 경험에 의하면, 좋은 팀은 이 변곡점이 온 것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리고, 이를 계기로 비즈니스를 그다음 레벨로 가져간다. 그리고 다시 down, down, down, down, up, down, down 뭐 이런 사이클을 거치다가 우연히 또 변곡점이 찾아오면, 이를 또 금방 알아차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면서 큰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반면에 팀이 후지면, 이런 변곡점이 찾아와도 이게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 한다는 걸 나는 많이 봤다. 또는, 알아차려도 이 변곡점을 기회로 활용해서 뭔가 잘 되게 하는 힘이 약한 것도 나는 옆에서 본 적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팀에만 투자한 건 아니다. 스트롱의 투자는 계속 진행 중이고, 우리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른 벤처기업같이 VC의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실수하면서 배우고 있지만, 이런 좋은 팀을 만나면 시장의 크기나 제품을 떠나서, 가능하면 투자하려고 이유를 만든다.

마지막으로…내가 나랑 인간적으로 케미가 맞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하면 많은 창업가가 도대체 저렇게 정량적이지 못 한 기준으로 팀을 판단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투자자인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비즈니스의 결과를 떠나서, 같이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되도록 우리랑 케미가 맞는 팀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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