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이유는 항상 있다

대표이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과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 회사는 우리보다 매출도 작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새롭지 않은데, 왜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할까?”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가끔 있다. 본인은 30억 밸류에이션에도 거의 12개월 이상 투자를 못 받고 있는데, 비슷한 카테고리에 속한 경쟁사는 300억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너무 쉽게 받고, 매출도 우리보다 작은 거 같은데, VC들이 투자하지 못해서 난리인 걸 보면 정말 화도 나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실은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 회사가 밸류에이션이 얼마인지, 왜 투자를 받았는지, 왜 우리 투자사보다 인기가 많은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그 회사보다 못하니까 투자를 못 받은 거니까 더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대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그냥 막 억울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음에 상당히 분개하는걸 여러 번 봤다.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어떤 회사는 큰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잘 받고, 어떤 회사는 낮은 밸류에이션이라도 투자를 못 받으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경쟁사의 제품을 자세히 분석해 사용해보면, 우리가 미쳐 구현하지 못하고, 캣치하지 못 한, 고객들이 유용하게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정말 별거 아니지만, 아주 미세한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실은, 많은 대표이사가 이런 걸 잘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자주 봤다. 현재의 매출은 우리 회사가 더 많이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회사는 경쟁사보다 스케일을 만들기 힘든 태생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투자받기가 힘든 경우도 있는데, 많은 대표가 우리도 투자만 받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본인이 느끼는 불공평과 불합리를 정당화한다.

어떤 회사는 정말로 우리 회사보다 매출, 성장, 인력 등이 한참 떨어지지만, 대표이사가 영업을 너무 잘하고, 펀드레이징을 잘한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불공평하다고 하면 안 된다. 후진 제품과 실적으로 투자를 잘 받는 것도 분명히 능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투자도 잘 받고, 남들이 더 알아주는 거에 대해서 전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나 잘하면 된다. 남 비판은 그만하자. 시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주체적 사고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를 얼마 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교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동양인 학생이 학교 과제에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보다는 이미 죽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해오자, 담당 교수가 버럭 성을 냈다고 한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오라고 했지, 아담 스미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라면서.

이런 현상을 장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옛날에 맹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 공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라면서 고전을 인용해야 하고, 그렇게 과거의 권위를 끌어대야지만 자기가 뭔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대다수의 동양인들이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수긍을 하는데, 이 현상을 동양과 서양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어떤 서양 교수가 “서양에서는 다 옛날에 한 얘기도 어떻게 하면 내가 새로 발명한 얘기처럼 하려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꼭 인용한다.”라고 정리했다고 한다.

나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걸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다. 실은, 오늘도 미팅하면서 “미국에도 혹시 비슷한 서비스가 있나요? 펀딩은 얼마 받았나요? 그 회사는 잘하고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했고,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였는데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잘하고 있고, 투자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하니, 왠지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이 어떻고, 이 창업가가 이 비즈니스를 정말 잘하고 있냐가 핵심인데, 난 자꾸 내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봤다.

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복잡하다. 많은 것들과 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을 모두 다 종합한 후에 혼자 생각을 해서 나만의 주체적인 답을 끌어내야 하는데, 실은 나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다.

모서리 자르기

2주 전, 북해도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있던 호텔에서 다른 건물로 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고 5분 정도 가야 하는데, 이걸 타면서 일본사람들의 꼼꼼함, 장인정신, 그리고 원칙에 충실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아주 오래된 구식 모노레일이라서, 한번 놓치면, 한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날도 덥고, 앉을 공간도 없어서 기다리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차가 오면 바로 들어가서 앉고 싶은데, 승객이 내리고 다시 타기까지의 과정을 준비하고 처리하는 기사님의 태도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일단 차가 도착하면, 운전석에서 기사가 먼저 내린다. 아주 천천히 가는 모노레일이고, 거리도 5분밖에 안 돼서, 솔직히 한국 같으면 기사분이 그냥 대충 앉아서 운전할 거 같은데, 이 일본 기사는 2중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탈 때마다 내가 눈여겨봤는데, 벨트를 매는 순서가 항상 매뉴얼대로 같았다. 일단 기사가 내리면, 승강장 쪽의 출구를 열고, 그러고 나서 모노레일 문을 열면 타고 있던 손님들이 내려서 승강장 밖으로 나간다. 그 이후에는, 각 차에 들어가서, 의자랑 바닥을 한 번씩 다 닦고 청소하고, 혹시나 좌석이 고장 난 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내가 여러 번 봤는데, 좌석을 확인하는 방법도 항상 같았다. 이렇게 하고 난 후에, 운전석에 있는 일지에 검사 시간과 이상 유무를 체크하고, 그러고 나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줄 서 있는 입구를 열면, 그제야 모노레일을 타게 된다. 5분 모노레일 타기 위해서 차가 승강장에 도착한 후 거의 5분을 기다리는 셈이다. 모노레일 기사는 이 과정을 하루에도 몇십번씩, 항상 같은 방법으로 반복했다.

대부분의 한국분은 뭐 그렇게 깐깐하게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작은 모노레일이고, 5분 가는 건데, 굳이 매번 저렇게 하지 말고, 바쁠 때는 그냥 운행하고, 한가할 때 한 번 정도 체크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할 텐데, 이 기사분이 개인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난, 후자인 거 같다 – 어쨌든 일을 처리하는 매뉴얼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매뉴얼을 원칙적으로 지킨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태도는 일과 인생 모두에 있어서 중요하다. 영어에는 cut corners라는 말이 있는데, 원칙대로 하지 않고 지름길이나 꼼수를 쓴다는 의미이다. 네모의 모서리를 다 잘라서, 조금 더 빠르게 코너를 돈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남들보다 조금 더 벌겠지만,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회사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렇게 모서리를 자르면서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위의 모노레일 기사와 같이 누군가 깐깐하게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 그걸 옆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일본은 사회 전반에 이런 원칙을 지키는 문화가 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위의 기사한테 그 누구도 화내지 않고, 질서와 원칙을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아직 한국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사회 질서에 있어서나, 제품을 만듦에 있어서나, 모두 다 꼼수 쓰지 않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곧 오길 바란다.

통합지표

얼마 전에 우버에 새로 부임한 다라 코스로샤히 대표에 대한 긴 글을 읽었는데, 조금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어서 공유한다. 한국에서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비즈니스의 건강과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를 의미한다. 사람의 건강으로 따져보면 KPI는 근육량, 체지방, 몸무게 등이 있을 거 같다. 기업의 KPI는 그 기업이 속한 산업군, 지역, 성장 단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기업의 비전과 미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비슷한 분야에 있더라도 어떤 기업은 절대적인 매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고, 다른 기업은 매출보다는 수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공급과 수요를 원활하게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는 매출이나 수익보단 공급과 수요의 볼륨이 이 비즈니스가 잘 되고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투자유치 할 때도 이 KPI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투자를 받는 이유는, 스타트업한테 가장 중요한 수치를 개선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돈을 받는 건데, 대표이사는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잘 성장하려면 수많은 지표 중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KPI다. 그런데, 문제는 핵심 KPI 마저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 할 때의 경험을 기억해보면, 회사 전체의 KPI 마저 한 10개가 넘었던 거 같다. 매출, 수익, 고객 만족 등의,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KPI를 목표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핵심 수치에 집중하기보단 그냥 모든 걸 다 잘 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우리 투자사들도 항상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한정된 자원과 돈으로 우리 회사가 집중해야 하는 단 하나의 핵심 지표와 수치는 무엇일까? 실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인데, 우버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이런 KPI에 대한 우버의 입장에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우버의 새로 온 대표는 그동안 우버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모든 KPI를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예약 건수 대비 기사/승객의 불평 수‘를 선택했다. 우버를 통해서 하루에 1만 개의 택시 예약이 이루어졌는데, 택시승차가 종료된 후 택시 기사가 손님에 대해서 불평, 또는 손님이 택시 기사에 대해서 불평한 건수가 1,000개면, 이 수치는 10%가 되는 거다. 이 예약대비불평 수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버의 운영, 물류, 제품, 기술 그리고 고객서비스가 잘 맞물려 최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이 지표가 개선되면 외형적인 매출과 수익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우버는 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회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모든 지표를 대표하는 이 단일지표를 ‘통합 지표(Unifier Metric)’라고 한다.

대표이사는 이 통합 지표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과 모든 자원을 딱 하나의 지표에 집중해야 한다면, 그 통합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 조금 더 하기

며칠 전에 프레드 윌슨이 쓴 이 을 읽으면서 많이 동의했다. 왜냐하면 나도 최근 이런 경험을 몇 번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회사 이메일로 콜드 이메일이 꽤 많이 온다. 대부분 투자유치를 위한 미팅 요청 이메일인데, 모든 이메일에 답변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 읽어보긴 한다. 그런데 몇 줄 읽다가 이메일을 바로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분들은 스트롱벤처스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숙제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웹사이트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또는 스트롱벤처스에 대해서 읽어보거나 검색을 해보면, 우리는 실리콘밸리 기반이 아니라 LA 기반이라는 사실이 너무 명확한데,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VC한테 투자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정말 많이 받는다. 이런 이메일은 바로 지워버린다. 이런 기초적인 숙제도 하지 않은 분들이 보낸 이메일에 굳이 내 시간을 낭비하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초기 투자를 하는데, 1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고 연락 오는 분들의 이메일도 바로 지운다.

얼마 전에는 “우리 회사 소개자료를 배기홍 심사역님한테 전달 부탁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이 분은 정말 스트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검색해보지 않았고, 주위 분들한테 물어보지도 않은 게 확실하다. 나는 처음부터 스트롱의 대표였고, 심사역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 기사에도 배기홍 심사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은, 전에도 비슷한 글을 내가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사전에 조금만 조사해보고,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정말 쉬운 거고, 솔직히 그냥 생각을 조금만 하면 되는 건데,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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