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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새로운 시작

얼마 전에 장난감 회사 MGA Entertainment의 창업자 Isaac Larian의 긴 인터뷰를 들었는데, 지난 1년 동안 내가 읽거나 들었던 그 어떤 인터뷰 보다 영감을 주는 내용이었다. 사업의 규모를 떠나서, 무에서 유를 만든 창업가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색다르고,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특히나 이 팟캐스트는 나에게 매우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큰 힘이 됐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서 직접 들어보면 된다. 라리안씨는 이란 테헤란의 빈민가 출신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서 17살 때 미국에 왔다. 영어 한마디도 못 했고, 수중엔 몇백 달러밖에 없던, 불굴의 의지 외엔 아무것도 없던 한 창업가의 아메리칸 드림 이야기인데, 이분은 현재 70살 나이에 아직도 대표이사로서 날마다 딱 하루만 사는 사람처럼 치열한 자세로 살고 있다.

나도 의지가 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뭔가를 해야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도 과거에 영업을 꽤 저돌적으로 했고, 지금 내가 하는 일도 겉으로 보면 멋있는 벤처 투자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이 나를 누군가에게 팔고 설득하고, 설득하지 못 하면 다시 찾아가야 하는 하드 코어 영업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지난 24년 동안 항상 영업한다는 자세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 하면 “이 정도면 됐고, 더 이상 하면 너무 오바인 것 같다.” , “상대방을 더 이상 재촉하면, 부러질 테니 이 정도에서 그만하자.”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분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나선,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과 반성을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파는 게 영업이라면, 결국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파는 사람 그 자신을 먼저 팔아야 하고, 한 번에 파는 건 어렵다. 특히, 과거에 서로 전혀 몰랐다면. 그리고 대부분의 영업은 과거에 서로 모르던 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Selling starts when the buyer says no.”

라리안씨가 MGA Entertainment 성공의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본인은 지금까지 뭔가를 팔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시간이 걸릴 순 있지만, 결국엔 항상 파는 데 성공했는데, 그 비결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라고 한다. 노련한 영업사원도 사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 물러서지만, 이분은 누군가 No라고 하면, 그때가 영업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라, 실제 영업이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수많은 성공적인 딜들을 이런 방식으로 체결했다. 처음에는 모두 다 항상 거절했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저돌적으로 영업을 하면 안 될 계약도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나도 이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과 결심을 해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을 100%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기 보단,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항상 영업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나도 이와 비슷한 마음가짐에 대해 펀딩에 고생하는 창업가들에게 자주 한다. No라고 하면, 그건 No라는 의미가 아니라 Maybe 이다. 그리고 결국 Maybe는 Yes가 된다고…

소명과 책임

우리 펀드의 출자자(LP)는 국내, 해외, 기관, 그리고 개인들이 적당히 잘 섞여 있다. 이 중 최근에 알게 된 분들도 있지만, 스트롱 1호 펀드부터 출자하고 있는, 13년 넘게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우리랑 오랫동안 알고 지낸 출자자 중 아주 유명한 투자자들도 꽤 있는데, 최근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어떤 분이 했던 질문 때문에 내가 한 9년 전에 이 분과 나눴던 대화가 다시 생각났다.

일단 이 분과 9년 전에 나눴던 대화는 소명과 책임에 대한 내용이다. 이분은 수십 년 동안 좋은 투자를 많이 해서 그동안 큰 부를 축적했음에도, 가끔 보면 나보다도 더 열심히 창업가들을 만나고, 마치 이제 투자를 시작하는 심사역같이 용맹스럽게 투자하는 걸 보고 좀 의아했다. 이미 돈 많이 벌었고,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면 되는데, 굳이 이제 VC를 시작하는 나 같은 주니어만큼 열심히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그 대답이 당시에 나에겐 신박했다.

“Kihong. 너도 앞으로 좋은 투자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야. 네가 말 한대로 난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어. 내가 번 돈으로 우리 가족은 3대가 부유하게 살 거야. 그 정도로 돈은 많이 벌었어.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할 필요는 없지.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땐,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열심히 창업가들 만나고 좋은 회사를 쫓아다녔어. 너처럼 말야 ㅎ. 그런데 이젠 이게 나에겐 하나의 소명이자 책임이 된 것 같아.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창업가들에게 내가 제공하는 자금이 기회가 되고, 이 기회를 통해서 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길 바래. 돈보다 이런 책임과 소명이 나에겐 훨씬 더 강해.”

솔직히, 이 말을 내가 처음 들었을 땐, 속으로 “what the fuck?”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냥 부자들이 하는 전형적인 그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당시엔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돈을 많이 못 벌었고, 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낼 정도의 위치에 못 올랐지만, 이제 이분이 말한 게 어떤 말인지 아주 희미하게, 그리고 아주 어렴풋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길,,,아직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좋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있고, 절대로 이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이들이 큰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질적인 것들 외의 것들, 예를 들면 소명이나 책임에 대한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작은 힘’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 내가 동참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우리가 하는 작은 투자라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창업가들은 원래 부자였고, 좋은 학교 나와서 이미 남들보다 더 앞선 지점에서 스타트업이라는 경주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남들보다 뒤에서 출발하고, 실은 경주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기가 힘든 분들이다.

요샌,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들이 경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라는 경주에 참여한다고 모두 다 완주하는 게 아니고, 좋은 성적으로 완주하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전에 있었던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어떤 분이 프라이머 파트너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본인은 학벌도 없고, 경험도 없고, 돈도 없지만, 뭔가 해보고 싶은 의지는 충만한데, 이런 창업가에게도 프라이머는 투자하는지 물어봤다. 프라이머나 스트롱이나,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 투자한다. 우린 모든 창업가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위에서 말한 우리 출자자와 했던 9년 전의 그 대화가 다시 생각났었다.

의지가 있고, 준비되어 있는 창업가들에게 한 번은 뛰어볼 수 있는 자금과 기회를 제공하는 투자자로서의 소명 또는 책임. 뭐, 아직 나에게 이런 게 뚜렷하게 자리 잡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러길 바란다.

포화된 시장은 없다

수년 동안 Guy Raz의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HIBT)’를 운동할 때, 그리고 이동할 때 듣고 있다. 전에 내가 이런 포스팅을 했는데, 이분 같이 팟캐스트 진행을 잘하는 사람을 나는 못 만났다. 얼마나 잘하냐 하면, 내가 Guy의 톤, 그리고 질문 유형을 외워서, 누군가를 인터뷰하거나, 우리 포트폴리오 미팅에서 fireside chat을 할 때마다 비슷하게 또는 그대로 적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Liquid Death의 창업자 Mike Cessario의 HIBT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역시 명 팟캐스트였다. 마케팅, 컨슈머 제품, D2C, 포화된 시장 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Liquid Death는 세상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고, 포화됐고, 공룡과 같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7년 전에 창업해서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 하는 스타트업인데, 바로 물을 파는 회사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물처럼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이 아닌 캔에 담아서 팔고,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마치 술이나 에너지 드링크와 같은 디자인과 패키징을 사용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냐 하면, 이 창업자가 어느 날 야외 음악 축제에 갔었는데, 이 축제를 스폰서하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 Monster Energy가 현란하고 화려한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 캔에 물을 넣어서 제공하는 걸 보고 번뜩이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물이지만, 맥주나 에너지음료와 같은 캔에 넣어서 판매하면, 이걸 마시는 사람들은 마치 술을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주 재미없고 심심한 물도 재미있고 쿨 해 질 수있다는 걸 그 축제에서 보고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Liquid Death는 창업 첫날부터 본인들은 물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아주 기발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건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라고 포지셔닝을 했는데, 이 전략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물이 아니라서 물이 알프스 산맥에서 떠왔던, 미국의 호수에서 떠왔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이크 사장에게 중요한 건 브랜드였고, Liquid Death라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캔을 따서 이 물을 마실 때 어떤 느낌을 소비자들이 받을지가 이들이 스타트업으로써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우리도 D2C와 소비재 스타트업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다. 요샌 이 분야를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피하지만, 우린 꾸준하게 검토하고 투자하고 있다. 이 시장을 단순히 대규모 자본이 없으면 마케팅도 못하고,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해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못한다. 이미 웬만한 소비재 시장은 돈이 너무나 많은 대기업들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재치 있고 창의적인 브랜딩이 이기는 시장이라고 보면 나는 스타트업이 충분히 대기업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Liquid Death도 물의 성분, 생산, 보틀링, 공급망 등으로 대기업과 겨루는 건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의 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코카콜라가 150년 걸려서 만든 거대한 시장을 아주 재치 있고 튀는 브랜딩으로 5년 만에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5년 만에 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 팟캐스트의 핵심 주제는 포화된 시장이다. 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포화된 시장 중 하나가 바로 물 시장인데, 이 시장에서 Liquid Death는 엄청난 브랜드를 만들면서 성장했다.

포화된 시장이라는 건 없다. 단지 포화된 우리의 편견, 의심, 그리고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기

콘텐츠는 많지만, 점점 더 볼 게 없어지는 넷플릭스 구독을 다시 중단할까 고민하면서 손가락을 계속 까닥거리다가 “Nyad의 다섯 번째 파도”라는 영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아는 Nyad가 한 분 있는데, 이게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반가웠고, ‘파도’라는 단어가 있는 걸 보면 내가 아는 그 Nyad임이 분명해서 더 반가웠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톤 수영선수 Diana Nyad에 대한 영화였는데, 나는 11년 전에 이미 이분에 대해서 “이 여자 Diana Nyad (Never give up!)”이라는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의 177km를 철망 없이 바다 수영에 성공한 분이고, 4전 5기에 성공했는데 5기 때 이분은 자그마치 64살이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 읽었을 때, 그 자체가 그냥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거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라니. 마침 설 연휴여서 한 번에 다 봤다. 보면서 관련해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이분의 쿠바 – 플로리다 완영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아직도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진 않고 있었지만, 나에겐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큰 감동을 준 영화였다.

우리는 누구나 다 위대함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어느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달인이 되는 게 위대함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게 위대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위대함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라, 내가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꾸준하게 연마하면서 생기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만족감이 극에 다다르면 위대함이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이애드씨는 굳이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 “평범함에 굴복하기 싫어서”라는 대답을 하는데, 나는 이게 위대함인 것 같다.

위대함이란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뭔가를 계속 꾸준히 하는 그 행위 자체가 결국 위대함을 만든다. 비록 그 위대함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위대함일지라도. 나이애드씨가 64살에 철망 없이 177km 바다 수영에 성공하기 위해서 훈련했고, 5번 만에 성공했다면, 올해 50살밖에 안 된 나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목표는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로 가득 찬 넷플릭스를 끊으려다가 가끔 이런 보석 같은 영상이 있어서 계속 보게 된다…

모든 게 새로운 세상

올해는 스트롱 모든 팀원분들이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를 다녀왔다. CES 이후에 프라이머사제가 주최하는 미국의 가장 큰 한인 tech 행사인 82 Startup Summit 2024도 참석했고, 이후에 미국에서 각자 일을 보고 서울로 복귀했다.

나는 한국에 일들이 많아서 사무실을 지켰는데, 현지에서 팀 동료분들과 지인분들이 전달해 주는 CES 관련 소식과 사진을 계속 봤는데, 무척이나 futuristic한 제품과 서비스가 꽤 많았고 매우 흥미로운 회사들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올해가 참 흥미로웠던 게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CES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매우 커졌다. 이 기간에 라스베가스 인구 절반이 한국인이었다는 농담도 있었는데, 한국이 뭔가를 안 하면 안 했지, 만약에 하면 대충 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주는 또 하나의 좋은 본보기였다. 또한, CES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LG의 존재감은 항상 컸고, 올해도 좋은 기술과 제품을 발표했는데 이제 자동차 산업이 진화하면서 모빌리티가 CES의 큰 주제가 됐고, 이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한국의 현대와 기아의 존재감 또한 매우 컸다. 즉, 한국의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한국인들의 글로벌 시장 참여 또한 더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무거운 하드웨어, 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첨단 소프트웨어, 세상을 갈아 먹고 있는 AI,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갈수록 똑똑해지는 우리 인간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고 있고, 그 결과는 몇십 년도 아니고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젠 죽도록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고, 어떤 변화는 죽도록 열심히 노력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신 차리고 내 주변을 보면 모든 게 새로운 세상이다.

내가 VC 투자를 하면서 좋아하게 된 몇 가지 명언들이 있는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인 더글라스 아담스가 이런 말을 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건 정상적이고, 이 세상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개발된 건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지만, 이걸 잘 공부하고 연마하면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 35세 이후에 개발된 건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 나는 50이 됐다. 위 말에 의하면, 이미 지난 15년 사이에 개발된 건 나에겐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니 굳이 이렇게 힘들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뜻인데, 모든 게 너무 새롭다고 느끼는 게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현실은 이 정도로 우울하진 않다. 그래도 요새 만나는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를 절반 이상은 잘 이해하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조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잘 이해 가지 않는 기술이나 사업이 있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자하지 말자는 주장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실은, 과거에는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감이 좋은 다른 스트롱 동료분들의 의견과 판단에 맡기거나, 그냥 이해하지 않고 믿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꽤 있는데, 다행히 잘 안되는 곳 보단 잘하는 곳들이 많고, 이 창업가들을 볼 때마다 내 기준에 새로운 세상이라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새로운 세상에 내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다짐한다. 비록 이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