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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전에 왕테일

롱테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건 아마도 Wired 잡지의 편집장 Chris Anderson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모든 제품들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틈새 상품이 중요해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뜻하는데, 이걸 그래프로 표현하면 틈새 상품들이 마치 긴 꼬리와도 같아서 long tail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테크 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롱테일이라는 말을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

얼마 전에 우리 투자사 중 물리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이걸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기업의 창업가와 만나서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잘 버틸 것인지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 한때는 이커머스와 D2C 스타트업이 활활 타오를 정도로 핫 할 때가 있었지만, 요샌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가 거의 멸종했다 – 꼬리 이야기를 많이 했다. 롱테일, 숏테일, 팻(fat)테일, 씬(thin)테일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뭔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 롱테일 전략은 필수다. 소수의 제품만으론 큰 매출을 만들기 어렵고,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기업도 가끔 있었지만, 공급망과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다 비슷한 제품을 훨씬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이 저렴한 제품을 경쟁사보다 더 저렴하게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대의 매출을 만드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이젠 힘들어졌다.

롱테일 전략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단일 또는 소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면, 이 제품들에 문제가 발생해서 리콜하거나, 또는 유행이 갑자기 바뀌어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면, 회사를 일으켰던 이 의존도 자체가 회사를 다시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결국엔 다양한 제품과 SKU를 만들어서 롱테일 전략을 구사해야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성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둘이 신나게 했다.

그런데 이 대표님에 의하면 롱테일 전략이 장기적으로 먹히려면, 그 전에 짧지만 두꺼운 왕테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수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단일 제품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매출을 발생시키는 단일 제품, 즉, 이 회사를 대표하는 flagship 제품이 있어야지만,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조금 더 물어보니까, 이 의미 있는 왕테일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롱테일 전략을 구사하려면, 여러 가지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중 많은 제품이 실패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회사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기본 매출을 깔아주는 대표적인 단일 제품이 있으면, 삽질을 연속적으로 해도 현금을 어느 정도 확보해서 회사가 운영될 수 있다. 그러면서 게임 회사 이야기를 했는데, 넥슨이 이런 플레이를 잘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게임 업계에 있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텐데, 절대적인 숫자로 따지면, 넥슨이 출시한 크고 작은 게임 중 망한 게 너무나 많다고 했다. 아무리 작아도 게임 하나 출시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한데, 이런 게임들이 수없이 망해도 넥슨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파와 같은 대표적인 왕테일 게임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계속 이런 실험을 하면서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롱테일 전에 왕테일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나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 임직원들의 자신감과 연관되어 있다. 한 번이라도 베스트셀링 제품을 만들어 본 회사의 임직원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남들이 하지 못한, 업계를 대표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생긴 엄청난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중무장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감은 이후에 출시하는 다른 롱테일 제품들이 계속 실패해도 유지된다. 어쨌든 본인들은 남들이 다 구매하는 대표적인 제품을 만들었고, 몇 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인드로 계속 시도하다 보면, 결국엔 또 다른 히트 상품을 만들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엔 롱테일 전략이 중요하지만, 그 전에 더 중요한 건 왕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서 배웠다.

오래 가는 해자

얼마 전에 돈으로 해자(垓字)를 만드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본이 해자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사용자를 많이 모아야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플랫폼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포스팅이었다. 아마도 매크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돈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고, 이게 유행이 되면 무분별한 자본의 해자는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변해도 항상 경쟁사보다 한 발 또는 두 발 앞서는 기업들은 어떻게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자를 만들어서 차별화에 성공할까?

최근에 내가 정말 오랜만에 두 개의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 한 3년 만에 사용한 듯 – 이런 지속 가능한 해자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가 미국의 ‘당근마켓’인 개인 간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원조 Craigslist였다. 1995년에 창업했으니 이제 거의 30년 된 회사인데, 이 서비스 UI와 UX를 보면 아직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새도 이렇게 촌스럽고 낙후된 UI를 사용하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도 매우 놀라운데, 아직도 미국에서는 절대다수가 크레익스리스트를 통해서 중고 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쇼킹하다. 비상장 스타트업이고 투자도 안 받았기 때문에 수치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 사이트의 MAU는 2.5억으로 알려져 있다. 당근마켓의 13배 이상의 트래픽이다. 이런 후진 UI를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매우 좋아하고, 만족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오랜만에 이용해 본 두 번째 서비스는 eBay이다. 이베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아직도 이베이를 사용해?”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매달 1억 명 이상이 이베이를 애용하고 있다. 크레익스리스트와는 다른 면에서 너무 정신없는 UI와 UX의 대명사가 된 이베이지만, 아직도 매달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생각해 보면, 크레익스리스트와 이베이만큼 겉으로 보면 단순하고 시장이 큰 비즈니스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경쟁사들이 등장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비슷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새로운 회사가 돈을 아무리 써도 이 두 회사가 만든 견고한 해자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시장과 고객의 오래된 신뢰를 기반으로 해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수십 년 동안 수억 ~ 수십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신규 경쟁사들은 경험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슈를 개선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를 얻었고,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가 시장의 신뢰로 발전하면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신뢰를 기반을 만들어진 해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으로 만드는 해자는 상당히 무섭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시장의 신뢰와 고객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product iteration과 가설 검증을 해야 하고, 아주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 아주 작은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 이런 작은 접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누적되면 돈의 핵폭탄을 투척해도 무너지지 않은 해자가 완성된다.

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최근에 미국에 2주 넘게 출장을 갔었다. 한국은 이제 대부분의 직장이 재택근무를 끝냈거나,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미국은 아직도 많은/대부분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WFH(Work From Home)가 이젠 복지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문화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채용 공고를 보면 “3-2” , “4-1”과 같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3일 출근-2일 재택, 4일 출근-하루 재택, 뭐 대략 이런 의미이다.

스트롱도 팬데믹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했고, 이땐 어쩔 수 없이 WFH의 기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하고 출근을 기본으로 바꿨다. 이젠 기본적으로 모두 다 출근하고, 상황에 따라서 재택근무 하는 체제로 돌아왔는데, 생산성이나 집중력 면에서 훨씬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그 어떠한 데이터를 참고한 적도 없는, 100%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재택근무를 회사의 기본방침으로 바꾸면서 미국 회사들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엔 미국 전체의 생산성 문제로 확산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미국 출장에서 나는 6개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많은 회사를 만났고, 서부/중부/동부 직장인들의 업무 패턴을 살짝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는데, 지역, 나이, 직군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발견한 요소는 ‘사이드잡’이다.

모든 미국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이 월급을 받는 풀타임 직업 외에 사이드잡 한두 개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이건 고액연봉자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풀타임 직장에서 벌고, 평소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두 개씩 몰래 하고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재택근무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 꼭 해야 해서 사이드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태도는 많은 걸 말해주고, 이런 직원들이 있는 회사의 장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므로 언제든지 그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사이드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이 분야에서도 좋은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직장인들을 위한 사이드잡/긱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회사에 나오면 전반적인 분위기와 peer pressure가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집에서 혼자 일하면 마음대로 놀고, 쉴 수가 있다. 여기에 이번에 내가 또 목격했던 건, 빠르게 합법화되는 마리화나인데,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피는 걸 봤다. 중독성이 담배보단 약하다곤 하지만, 마리화나를 핀 후에, 이 정신으로 다시 바로 업무로 돌아가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직장인들의 농땡이, 사이드잡, 그리고 레크리에이셔널 마리화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인고, 내가 이야기했던 어떤 CEO들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옵션이 없으면 요새 젊은 친구들 채용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이제 재택근무는 옵션이 아니라 영구적인 고용 형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미국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이분들 중 일부는 오히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이 tech를 이끄는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완전히 없애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말이 anti-근로자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한국같이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없앤 국가들이 생산성의 경주에서 이번 기회에 미국을 뛰어넘길 바란다.

Z세대, 음식, 그리고 건강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좋은 시장 조사, 그리고 이를 통해 통찰력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The New Consumer에서 2023년도 음식과 웰니스에 대한 리포트 ‘The New Consumer Food & Wellness Special 2023’를 얼마 전에 발행했다. 특히, 이번 리포트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나이대의 청중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이 결과를 보강하기 위해서 Instacart의 온라인 구매 데이터와 비교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발견들이 꽤 많았다.

이 분야에서 일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리포트를 완독하면 되는데,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MZ 세대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며, 좋은 음식이 건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
2/ 온라인으로 식음료를 구매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3/ 젊을수록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새로운 음식과 식당을 발견한다
4/ 경기가 나빠도 미국인들은 먹고 마시는 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실은 내가 제일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3번째 포인트인데, 이 차트가 특별히 흥미로웠다. 새로운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레시피를 주로 어디서 발견하냐에 대한 답변인데 MZ 세대 대부분은 유튜브나 틱톡인데, 나 같은 X 세대는 친구나 요리책을 통해서 찾는다고 답변한 걸 보니까 그냥 웃음이 나왔다.

MZ finds recipes on YT and Tiktok

Gen. Z and Millennials discover recipes differently: On YouTube and TikTok

그리고 이 차트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틱톡에서 음식 관련 영상이 바이럴을 타면, 실제로 이 제품이 온라인에서 굉장히 많이 팔린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다. ‘Baked Feta Pasta’ 관련 틱톡 영상이 바이럴을 타자, 곧바로 인스타카트에서 이 요리의 재료들이 많이 팔린걸 볼 수 있다.

Baked Feta Pasta

A viral TikTok food video can drive a real shift in online grocery orders

많은 젊은 세대가 모든 걸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해결하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 보고서를 통해서 이런 현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직접 확인하니까 더욱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음식과 웰빙/웰니스를 바라보는 태도는 솔직히 우리 X 세대나 MZ 세대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위 4가지 항목 중 3번을 빼곤, 나머지는 나도 100% 같은 입장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내가 오히려 Z 세대들보다 더 건강과 웰빙에 민감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다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은 비슷하고, 그냥 시대의 흐름에 대한 각 개인의 민감도에 따라서 이런 생각과 관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통채널의 진화

우리가 투자한 많은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가까이서 보면서 배운게 하나 있다면, 온라인으로 뭔가를 파는 게 쉬워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쉬워 보이는 이유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까페24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코딩을 못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고, 여기에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등록해서 판매하면 매출이 발생하니까, 겉으로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빨리 셋업해서 매출을 빨리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쉽게 셋업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건 맞다. 그리고 거의 설립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아마도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부업으로 쇼핑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직접 해 본 분들이라면, 실은 굉장히 어려워서 대부분 얼마 안 가서 포기한다.

만약 이 단계를 지나서 어느 정도의 제품력을 기반으로 약간의 브랜딩이 만들어졌다면,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시도한다. 실은 모든 이커머스 업체들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다른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내가 우리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과의 접점이 생기고, 이들에 대한 데이터도 많이 확보하면서, 계속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신제품이 나와도 성장하고 확장하는 게 수월하다. 그런데 계속 우리가 직접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의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면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사도 계속 출현하고, 이들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다. 가끔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구언효과와 바이럴로만 시장을 다 먹어버리는 회사들이 나오는데, 요샌 이런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다른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입점한다. 식품을 판매하면 마켓 컬리, 화장품이면 올리브영, 그리고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쿠팡 같은 곳들이 이런 대형 플랫폼/마켓플레이스다. 미국이라면 아마존에 대부분 입점할 것이다. 이런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면 노출과 트래픽은 극대화되지만,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이 잘 안 생기고, 우리 브랜드를 고객이 잘 기억 못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예를 들면, 나도 마켓컬리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제품 이름은 잘 안 보고 그냥 마켓컬리에서 구매한 제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더 좋지 않은 건 남의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통행료(=수수료)를 내야하고, 이 수수료 또한 상황에 따라 매우 늦게 받는 경우가 있다. 노출이 잘 되고, 판매가 어느 정도 되지만, 결국엔 돈은 못 벌고, 이 돈 또한 늦게 받는 경우가 있어서 회사의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누가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왔다면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하는 비즈니스가 됐을 것이고, 이런 성장을 이해하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이후에는 계속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 외부 플랫폼과 유통채널을 통해서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 비즈니스의 특성상 주문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초기 제조 비용이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수금은 늦어지기 때문에, 수익성과 현금흐름의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성장을 멈출 순 없기 때문에, 그동안 온라인 위주의 판매를 하다가 결국엔 오프라인 채널로도 확장하는 걸 우린 많이 봤다. 오프라인 채널은 또 다른 어려운 사업이지만, 편의점과 같은 궁극의 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면 외형적인 매출 규모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오프라인 채널은 수익성의 면에서는 주로 최악인 경우가 많다. 수수료가 높고, 원치 않는 프로모션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오프라인은 돈을 버는 목적보단, 브랜드와 제품의 노출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노출이 되면서 브랜딩이 확고해진 제품이 실제로 많이 있고, 이를 통해서 크게 성장하고 투자를 받은 곳도 있지만, 반대로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어떤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발생해서 오프라인 채널에서 완전히 발을 뺀 곳도 있다.

실은 여기까지 와서,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고민하고 있다면, 그래도 월 매출이 수 억 ~ 수십억 원 단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한 제품보단 더 큰 브랜드와 사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오프라인에서 발자취를 계속 넓혀가면서, 여기서 발생한 규모로 원가를 계속 낮추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곳도 있고, 온라인을 오히려 더 강화하면서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어서 계속 이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어떤 D2C 스타트업은 결국 유통채널단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체 공장을 만들어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한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한가지의 정답은 없다.

그래도 내가 봤을 때, D2C 스타트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은 온라인 판매이다. 최고의 제품과 가장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면서 D2C 왕국을 만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곤 있지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