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et

암호화폐 – 2018년 이후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요새 크립토 시장은 아주 작살났다고 하는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웠을 때, 너도나도 이 시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게 불과 1년 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단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up and down이 – 지난 12개월 동안은 거의 down 이었다 – 있었던 시장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거 같다. 정말 개나 소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사고팔기를 미친듯이 했고, 이는 블록체인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일반인들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랑 같은 VC 업계의 투자자 중, 100년에 한 번 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뒤로 하고 크립토에 올 인 한 분들도 꽤 많다. 창업가들도 기존에 하던 걸 다 멈추고, 회사의 방향을 ICO와 암호화폐로 돌린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다.

그동안 암호화폐 시총은 거의 90% 떨어진 거 같다. 그리고 크립토 시장은 현재 핵겨울에 꽁꽁 얼어있다. 이 와중에, 아직도 계속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개발하고 있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이 “이게 아닌가 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원래 하던 분야로 돌아가거나, 다시 next big thing을 찾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더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트코인 가격인 $1,000 이하로 떨어져야지 정말로 이 분야를 믿고, 제대로 사업할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주축으로 다시 한번 크립토의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호화폐 시총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비트코인 가격이 $5,000 이하로 떨어지고, 또 $4,000 이하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면서, 역시 시장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더는 그 어떤 시장을 예측하는데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2018년도에 만났던 수많은 수학, 통계학, 공학, 경제학 박사들 중 암호화폐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하던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학적으로 비트코인은 절대로 $5,000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연구도 많이 하고, 나보다 시장을 잘 아는 분들이고, 이 예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학적 논리를 너무 자신 있게 제공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게 맞는 거 같았다. 5,000 달러 이하로 떨어질 거 같으면, 다시 반등했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4,00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나한테 절대로 5,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고 했던 위의 많은 분이 이젠 암호화폐 분야를 떠나서 다른 걸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당연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대략 이렇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이에 익숙지 않은 대중과 시장이 여기에 적응하려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새로움의 정도가 클수록 이 저항은 더욱더 크다. 중앙화에 익숙했던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경험한 세상과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하고, 이 과정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저항이 너무 크면, 변화는 완전히 덮이고 소멸된다. 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도 이 새로운 노력은 소멸된다. 저항이 강해지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변화와 새로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믿음 또한 약해지고, 이 믿음의 네트워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보고 느끼는 암호화폐 시장 바닥은 아직도 활발하다.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 이 ‘의지’라는 게 무슨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의 그런 의지라기보단, 기술의 의지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아직 블록체인은 어리고 갈 길이 멀다. 마치 전화선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던 다이얼업 모뎀 시대와 비슷한 거 같다. 아직 속도, 확장성, 변동성, 개발자 네트워크, 개발자 도구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분명히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많은 똑똑한 개발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테스팅하면서 아직 구체화 된 건 없지만, 지속적인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블록체인계의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나오고, 그 이후에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우린 코빗에 투자하면서 2013년도에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눈을 뜨게 됐고, 이는 한국에서는 꽤 이른 편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암호화폐에 모든 걸 올인 한 적은 없다. 대단한 기술이고, 앞으로 엄청나게 크게 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분야가 없어지거나, 시장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정말 믿어서 암호화폐에 올인한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조금만 더 참고 계속 이 게임을 했으면 한다. 투자가 되어야지만, 좋은 개발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시장이 전반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투자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시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는 게 시장이지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것도 시장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이걸 우리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이 시장에 있으면, 시장이 내려갈 때는 같이 추락하지만, 시장이 올라갈 때는 그만큼 빨리 같이 올라갈 수 있다.

돈을 주고 사는 편리함

spotifySubscription 서비스에 대해서는 전에 많은 글을 올렸고, 난 아직도 정기구독 서비스만큼 한번 해놓으면 미래의 비즈니스가 조금 수월해질 수 있는, 이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성공하고 있는 섭스크립션 서비스가 미국같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이 있지만, 솔직히 왜 그런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될 거 같은데 잘 안되면, 이건 계속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올해도 계속 한국에서 정기구독하는 서비스가 많이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기구독서비스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3개월, 6개월, 12개월 등의 플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한 방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6개월 치 섭스크립션을 구독하면 6개월 동안 한 명의 고객한테 정기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매출을 한 번에 확보할 뿐만 아니라 즉시 수금할 수 있다. 이런 고객의 수가 늘어나면 회사는 이 많은 현금을 다시 재투자해서 더 좋은 플랫폼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유용한 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이렇게 한 방에 벌 수 있는 현금만큼 좋은 건 없다.

이런 꾸준한 캐시플로우가 발생하면, 꽤 정확하게 수요와 재고 예측을 할 수 있다. 12개월 섭스크립션 고객이 1,000명이 있다면 12개월 동안 회사가 배송해야 하는 제품 숫자를 예측할 수 있고, 재고 또한 상당히 정확하게 관리해서 최소화할 수 있다. 이커머스를 하고, 판매하는 제품 수(=SKU)가 많다면, 특정 제품이 얼마만큼 팔릴지 모르니 항상 재고를 가져가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B2C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게 회사의 지상과제이다. 섭스크립션 모델을 잘 활용하면 신규 고객 유치에 회사의 대부분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기구독 기간에는 고객을 완전히 lock-in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 기간에는 이 회사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취소하는 고객도 생기지만, 이 수치 또한 데이터가 쌓이면, 예측이 가능하다. 한 개의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한 후에 어떻게 하면 이 고객한테 다른 제품도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그 시간에 신규 고객 유치 전략에 대해서 생각하면 된다. 섭스크립션은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음악 스트리밍의 강자 스포티파이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실은 스포티파이보다 Pandora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 유료구독서비스를 마스터한 건 스포티파이다. 약 8,300만 명이 유료 사용자인데, 이는 전체 사용자의 40%나 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와 반대로 판도라는 사용자 대부분이 광고기반의 무료 서비스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참고로 판도라는 미국에서만 들을 수 있고,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에서 들을 수 있다). 실은 나도 미국에서부터 애용하던 스포티파이를 한국으로 이사 와서도 계속 매달 $9.99를 내면서 이용하는데, 실은 광고 기반의 무료 서비스로도 대부분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도 유료 서비스를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 때문이라기보단, “편리함” 때문이다. 즉, 겉으로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매달 $9.99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고의 방해 없이, 내가 음악을 하나씩 선택하지 않고, 자동으로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편리함”에 매달 돈을 지급 하는 것이다.

Subscription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거나, 운영하는 팀은 이 개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서 기꺼이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고객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편리함 때문에 돈을 기꺼이 지급하는 고객도 시장에는 많기 때문이다. 솔직히 음악 스트리밍에 내는 돈이 아까우면, 그냥 유튜브에서 음악을 일일이 검색하고 들어도 되지만, 대부분 소비자는 그게 귀찮고, 그렇게 하는데 들어가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투자해야 하는 시간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데 큰 저항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저항이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금액을 찾아서 과금하면 된다.

이 편리함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생리대, 기저귀, 개밥, 물 등은 모두 정기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이고, 섭스크립션 모델이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제품군이다.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에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받아 보면 편하다. 여기서 섭스크립션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똑같은 제품을 매 번 주문할 필요가 없는 편리함이다.

또 다른 편리함은 위에서 말한 스포티파이류의 편리함이다. 음악, 음식, 와인과 같은 제품의 특징은 개인마다 취향이 명확하게 다르고,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하고, 대부분 사람이 깊은 전문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 섭스크립션은 소비자가 돈만 내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알아서 골라준다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앞으로 음악의 종류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고, 선택은 더욱더 복잡해질 텐데, 나는 아마도 평생 스포티파이의 유료 고객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spotify.com>

대체재가 없는 마켓플레이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걸 인터넷이 가능케 한 많은 비즈니스가 있지만, 그중에서 나는 마켓플레이스가 인터넷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글도 전에 한 번 쓴 적이 있다. 아직도 난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요새 계속 좋은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운영하거나 운영할 계획을 하는 팀을 만나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를 운영해봤거나, 이런 비즈니스를 많이 본 투자자는 잘 알 텐데, 마켓플레이스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공식 같은 게 존재하는 거 같다(물론, 비즈니스마다 다르고, 누가 하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양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면을 더 집중해서 성장시키고, 어떻게 하면 양쪽을 매칭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지에 대해서 이미 우리보다 전에 실험을 많이 한 사례들이 전 세계에 널려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량적, 정성적인 벤치마킹이 가능하다. 이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느끼는 점이 또 하나 있다. 우리 투자사 숨고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배운 내용이다. 우버는 공급(택시 운전자)과 수요(승객)를 적절하게 잘 매칭해주는 효율이 좋은 매칭엔진을 잘 운영하는 마켓플레이스인데, 특히 공급선을 잘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전문 택시기사들이 아니라, 일반 운전자들이 공급선이 되는데, 이 사람들은 우버라는 마켓플레이스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돈을 벌 수가 없다. 원래 다른 일을 하거나, 택시가 업이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운전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으면, 무조건 우버를 – 또는 리프트와 같은 비슷한 서비스 –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우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대체재가 없는 마켓플레이스를 독점할 수 있다.

수”인 전문가와 이들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일반인을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숨고도 공급과 수요를 적절히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지만 우버와 같은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한 플랫폼은 아니다. 숨고에 올라와 있는 피아노 선생, PT 선생 또는 배관수리공들은 이미 본인들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다. 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숨고가 없어도 이분들은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분들이라서, 숨고에 온보딩을 시키려면, 기존에 혼자 하던 것 보다 숨고를 통하면 더 많은 고객을 찾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즉, 이미 잘하고 있던 비즈니스를 더 잘하게 만들어야지만 숨고의 가치가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마켓플레이스를 볼 때, 여러 가지를 보지만, 이 마켓플레이가 없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한다. 대체재가 없는 우버와 같은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할 때 훨씬 더 강력한 매칭 엔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는 훈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 원이 넘는 투자를 새로 받으면서, 한국 최초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의 영광을 곧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우리도 쿠팡의 소액주주로서 상당히 기쁘고 자랑스럽다. 대단한 기업이지만, 아직 경쟁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기업가치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아직도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쿠팡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잘 성장할 거라고 믿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른 서비스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 시장을 직접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시장과 고객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시장과 고객의 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쿠팡이나 티몬 이전에도 한국에는 지마켓을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 이커머스 사이트는 누가 봐도 깔끔 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로 인해 사용자 경험이 불편했다. 쿠팡과 티몬의 창업자들은 미국식의 UI와 UX를 많이 도입해서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한국 시장에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이걸 보고 전문가들은 원래 한국 시장은 미국같이 깔끔한 디자인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복잡한 UI를 선호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렇게 사용자들이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티몬과 쿠팡,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매우 직관적이고, 깔끔하고, 눈에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UI를 사용함으로써, 쉽고 재미있는 온라인 쇼핑의 경험을 제공했다. 여기에다가 모바일 플레이까지 합쳐지면서, 인터넷/모바일 쇼핑은 단순 구매가 아닌,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장의 온라인 쇼핑 습관도 바뀌었다. 쿠팡은 사용자들이 쉽고 깔끔하게 온라인 쇼핑을 하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의 경험도 비슷한 선상에서 설명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쿠팡맨 이전에는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고객의 물건을 문 앞에 던지다시피 하고, 빨리 다음 배달장소로 가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쿠팡맨이 등장하면서 그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객과 회사의 마지막 접점인 last mile 담당자 택배기사들의 중요성을 시장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쿠팡은 고객들이 자신들이 구매한 물건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택배기사들한테 받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 정도까진 아니지만, 많은 택배기사가 요샌 조금 더 친절해진 거 같다.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처음엔 고객의 저항도 있고, 경쟁사의 저항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뭔가를 하도록 시장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바꾸기 힘든 걸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존은 책과 세상의 모든 물건을 온라인으로 사고팔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한번 훈련된 아마존의 고객을 빼앗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Craigslist는 중고제품을 개인들이 직거래할 수 있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 오래된 UI와 최적화되지 않은 UX를 기반으로 아직도 중고거래의 일인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우리 서비스는 기존 방식을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개선하고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을 훈련하고 있는지 한 번 정도 고민해봐도 좋을 거 같다.

한국 시장

전에 한 번 포스팅했는데, 우리가 펀드 만들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스트롱은 7년째 LA와 한국이라는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냐이다. 내용을 조금 더 들어보면, 요새 많은 한국 VC들이 동남아 같은 해외 시장에 투자해서 이 질문을 하는 거 같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7년 동안 LA랑 한국에만 투자하고, 이 시장을 나름 연구하고, 이 시장에서 네트워크를 만들다 보니, 이제야 조금 이 시장을 이해야겠는데, 이 시점에서 굳이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시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시장을 아주 잘 이해하는건 아니다. 워낙 빠르게 바뀌는 시장이라서,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한국 시장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력적이고 독특한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한 거 같다. 얼마 전에 전 세계에서 온 구글 사람들 대상으로 한국의 벤처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때 내가 했던 말을 좀 정리를 해본다.

일단 한국의 인구와 밀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제곱 km 당 526명(위키피디아)인데, 이는 전 세계에서 24위다. 그런데 인구가 1,000만 명 이상인 나라 중에서는 한국의 인구밀도는 3위다(1위 방글라데시 1,146; 2위 대만 651). 인구밀도가 높다는 말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고객획득 비용(CAC – Customer Acquisition Cost)을 아주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워낙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좋은 게 있으면 바이럴하게 퍼질 수 있는 확률이 더 높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의 특징은, 비교적 단일문화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점이다. 관심사와 성향이 매우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라서, 뭐가 하나 인기가 있으면, 몇 시간 안으로 전국으로 퍼진다. 이 또한 바이럴 확산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다가 한국의 빠른 인터넷 인프라와 인구의 거의 100%가 사용하는 모바일 사용을 더 하면 어쩌면 모바일 B2C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B2B 시장은? 실은 한국은 B2B의 무덤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B2B 스타트업이 별로 없지만, 나는 실은 B2C나 B2B나 그렇게 다르다곤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회사에서 B2B 제품을 사용하는 건 B2C 시장이 공략하는 개개인이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B2C 플레이를 위한 장점들이 결국엔 B2B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문제가 클수록, 그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시장이 커지는데, 한국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 나라다. 문제도 많지만, 그 문제들이 상당히 크고,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면, 정말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낮은 고객획득 비용, 바이럴확산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쉬운 시장의 성향, 엄청난 인프라,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시장. 어쩌면 우린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와 가장 좋은 지역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