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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

내일은 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다. 스트롱은 본격적으로 프라이머 8기부터 파트너로 조인했으니까, 이제 나도 4기 수에 걸쳐 파트너 활동을 한 셈이다. 솔직히 악셀러레이터 일을 한 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절대적으로 회사 수가 많고, 각 파트너당 최소 4개의 완전초기-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일을 하려면, 체력도 강해야 하고, 공부도 상당히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힘든 거보다는 배우는 게 더 많으므로, 매 기수 데모데이를 할 때가 되면, 보람차고 상당히 행복하다.

이번에 나는 4개의 회사와 같이 일을 했다. 이젠 물리적으로 한국에 있으므로, Skype가 아니라, 매주 한 번씩 직접 만나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창업가들과 했다. 나는 각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가서,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냥 전반적인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그 이유는 일단 내가 각 비즈니스에 대해서 깊게 들어갈 정도의 지식이 없고, 이 단계의 회사들에 필요한 건 운영 면에서의 도움보다는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도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기부터 11기까지, 지금까지 난 14개의 프라이머 회사들과 아주 밀접하게 일을 했는데, 내가 과연 이 회사들한테 어떤 도움과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매주 한두 시간씩 만나는 게, 지금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창업가들한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이 바쁜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데모데이 전 마지막 미팅에서는 각 팀한테 물어본다. 프라이머 프로그램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 나랑 매주 만나면서 했던 미팅들에 대한 솔직한 의견, 그리고 혹시 앞으로 내가 더 잘하려면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나쁜 피드백보다는 좋은 피드백이 더 많았다. 그리고 특히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한 회사들에는 프라이머 파트너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수치, 매출, 운영적인 차원보다는 그냥 스타트업이나 인생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선배 같은 파트너들과 정기적으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게 심리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어차피 사업은 본인들이 풀어야 할 장기적인 숙제).

Good luck with 데모데이!

스케치웨어

sketchware_meta_en우리 투자사 스케치웨어는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나같이 코딩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모바일 앱을 만드는 건 쉽지 않지만, Scratch 기반의 스케치웨어를 사용하면, 큰 학습곡선 없이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들고, 이걸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가 있다.

비 개발자에게도 많은 돈과 시간의 투입 없이,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제품을 흔히 empowerment tool이라고도 하는데, 최근에 이를 증명해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생겼다. 시현수라는 한국 여고생이 스케치웨어를 사용해서 만든 앱이 한 달 만에 10만 번 이상 다운되면서 구글플레이스토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1위에 올라간 것이다. 한국의 인기 보이그룹 EXO 콘서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EXO-LIGHT 라는 앱인데, 물리적인 EXO 라이트스틱은 가격이 4만 원 이상이라서 학생이 사기에는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학생이 방법을 찾다가 직접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콘서트 시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EXO 라이트스틱이 출시되기 때문에, 이걸 앱으로 만들어서 적절히 업데이트만 하면, 현수양같은 고등학생들이 비용부담 없이 EXO를 응원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어서 – 실은, 고등학교에서 기본적인 코딩 수업을 듣긴 들었지만, 학교 수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걸로 모바일 앱을 직접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 앱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플레이스토어에서 여러 가지 앱을 시도해본 후, 가장 직관적으로 앱을 만들 수 있는 스케치웨어를 선택했다. 큰 기대 없이 만든 EXO-LIGHT는 첫날 22,000번 설치되었고, 현재 110,000번 다운로드, 3,500개의 리뷰, 평점 4.9를 받는 인기 앱으로 급부상했다. 지금은 순위가 떨어졌지만, 한때 인도네시아 플레이스토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9위, 그리고 중국에서는 6위까지 올라갔다.

코딩 지식이 없는 여고생이 며칠 만에 인기 앱을 직접 개발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 과정을 계기로 이 학생은 코딩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 조금 더 복잡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창업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시현수 학생의 꿈을 실현하는데 스케치웨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케치웨어팀에서 현수 학생을 직접 인터뷰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스케치웨어앱을 다운받아서(안드로이드 only) 자기만의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스케치웨어 홈페이지>

직업은 직업일 뿐

통계적으로, 한국에서 대기업 공채 준비하는데 드는 평균 비용은 4,300만 원이라고 한다. 이 비용에는 취업을 위한 9가지 스펙이 – 학교, 학점, (각종) 영어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십, 동아리 활동(자원봉사), 그리고 성형수술 – 포함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과제 중 하나는 취업문제 해결이고, 여기에 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TV만 켜면, 학교 졸업하고 취직 못 해서 방황하는 청년들과 위에서 언급한 9개의 스펙을 갈고 닦는 졸업반 학생과 취준생들이 나오고,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 지옥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제작되고 있는 거 같다. 이런 프로만 보면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취직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런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는, 젊은이들을 필요로 하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못 뽑아서 쩔쩔매고 있는 현상도 보인다. 직원 4명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내 친구랑 얼마 전에 식사하다가 들었는데, 사람 좀 뽑으려고 면접 약속까지 잡았는데,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노쇼’하는 면접생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회사가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평균 연봉에 4대 보험까지 제공하는데, 이렇게 나타나지도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물어보니, 뭐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졸업생이 작은 벤처나 중소기업보다는 남들이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만약에 대기업 면접 약속이랑 중첩되면, 무조건 그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면접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삼성이나 현대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무슨 벤처기업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아는 경기도에 위치한 꽤 건실한 중소기업 오너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아무리 회사가 건실하고, 대기업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아도, 2년제든 4년제든 대학 졸업생들을 채용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연봉도 나쁘지 않고, 혜택도 나쁘지 않지만, 지방에 위치한 회사고, 남들이 잘 모르는 회사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물론, 대우나 혜택이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로 택도 없는 건 절대 아니다.

나 자신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사회, 그리고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문화가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인 거 같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내 생각에 직업은 그냥 직업이다. 좋은 직업도 없고, 나쁜 직업도 없다. 그냥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일한 만큼의 보람을 얻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가는 곳이 직장이다. 서울 한복판 대기업에서 양복 입고 일하는 게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것보다 좋다는 게 한국이 직업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인데, 실은 그냥 두 개의 다른 직업일 뿐이다.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생이 졸업 후 현대나 삼성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인 교수한테 물어보니, “이게 참…웃긴 현실인데, 남학생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나중에 결혼할 때 불리하거든…미래 장인, 장모가 듣도 보도 못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딸 시집 안 보내더라고….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아직은”

연봉이 높은 직업이 있고, 낮은 직업도 있다. 사무실에서 내근하는 직업이 있고, 계속 밖에서 외근하는 직업도 있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직업도 있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업도 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냥 직업일 뿐이다.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을 구분하는 시각이나 편견은 서서히 없어졌으면 좋겠다.

상호존중 커뮤니티

벤처 업계에서 일한다면 누구나 다 실리콘밸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실리콘밸리를 동경한다. 나도 미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실리콘밸리와 Bay Area 지역에 대한 이야기 중 근거 없는 ‘소문’도 한국에는 은근히 많이 떠도는 거 같다. 나도 이젠 미국을 떠난 지 1년이 넘어서, 내가 감이 없어진 것도 있겠지만, ‘실리콘밸리는 ~카더라’라고 말하고 다니는 분이 너무 많다.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커뮤니티에서는, 서로서로 돕는다. 그것도, 상대방한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돕는다. 실은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 그 어떤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봐도,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면, 나중에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그냥, 같은 커뮤니티에 있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성장을 하니까, 선의의 동료의식에서 우러러 나오는 그런 행동인 거 같다. 제 한 몸 편하자고, 남을 등쳐먹을 궁리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훌륭한 분들이 모여있는 곳은 스타트업 커뮤니티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커뮤니티의 또 다른 특징은, 나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서로를 같은 동료로서 진심으로 존중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창업가의 학벌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투자하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창업하기 때문에, 스트롱 투자사 대표들은 대부분 젊다. 우리 투자사 중 학생들이 창업한 회사도 있는데, 20대 초반 대표이사도 있다. 20대 초반이면, 내 나이의 거의 절반이고, 일반 대기업이었으면 상사들이 반말하면서 온갖 잡일이나 시키는 신참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동등한 기업인으로 대하고, 반말이 아닌 “대표님” 하면서, 의미 있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한다. 아니, 어떨 땐 나랑 동등한 게 아니라,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식과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창업가다.

나는 이런 커뮤니티가 좋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 어떤 산업에서 43살의 투자자와 그의 나이 절반도 되지 않은 21살의 벤처기업 대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스타트업 커뮤니티 말고는 없다.

한국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죽이는가?

이거 참 민감하고, 의견이 가지각색인 주제라서, 실은 많은 분이 나랑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안다. 요새 가는 곳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고, 항상 같은 답변을 하는 나는 맹비난을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는 내 생각은 절대 다르지 않다.

한국의 exit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 일단 exit 사례가 별로 없고, 우리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수천억 원 또는 수조 원짜리의 exit은 – IPO보다는 인수 –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창업가의 수준이나, 한국 스타트업의 서비스나 제품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는데, 왜 높은 가치에 인수되는 성공스토리가 안 만들어지고 있느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수를 해야 하는 대기업이 오히려 스타트업을 죽이고 있다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간다.

물론, 선례들이 많으므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이 오랫동안 같이 일해왔던 협력업체의 기술을 카피하면서, 중소기업이 망한 사례나, 네이버가 작은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서 욕을 먹은 사건들은 누구나 다 하나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미국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아주 높은 가격에 인수하는데, 왜 한국 대기업은 항상, “저거 우리가 직접 하자”라는 마인드를 갖고 스타트업을 죽이는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공적, 사적 자리에 있어 본 경험이 나도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항상 내 생각을 물어본다.

실은, 나는 이걸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대기업이 작은 회사의 서비스를 직접 카피하는 건 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만큼 자주 일어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환경에서 대기업이라고 작은 기업이 하는걸 따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기업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때 본인들이 직접 하는 거랑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걸 여러모로 따지면서 잘 검토한다. 그리고 인수하는 거보다 직접 하는 게 경제적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되면, 직접 팀을 만들어서 이 분야로 들어온다. 새로운 분야로 들어올 때, 이 분야에서 이미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연히 그 회사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심한 경우 아예 카피해버린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작은 스타트업이 정말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면, 대기업이 아무리 막강한 화력을 갖고 공격을 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제품의 껍데기는 카피할 수 있지만, 정말로 잘 만든 서비스라면 제품 내부에 녹아들어 간 수만 번의 iteration과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민은 돈만 있다고 단시간 내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 작은 스타트업보다 단시간 내에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애초부터 그 스타트업의 제품은 고객에게 큰 감동이나 유용성을 제공하지 못 했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이와 비슷한 말을 했는데, 청중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줄 알았다” , “한국의 생태계를 강화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이다” ,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거 아니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 수천억 원에 회사를 exit 하고 싶으면, 수천억 원 짜리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냥 돈 있는 회사가 베꼈는데, 우리 서비스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면, 이건 대기업이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어차피 결국엔 죽을 서비스를 우리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리고 한국 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내가 전에 쓴 포스팅을 여기서 다시 소개하니, 이걸 읽어 보시면 조금은 다르게 보실지 모르겠다.

[과거글: 나는 좇밥 회사들에 투자한다]

얼마 전에 올린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라는 글에 대해서 논란도 많았고 예상치 못했던 코멘트들도 많이 달렸다. 솔직히 나는 이 글을 나쁜 의도 보다는 좋은 의도에서 썼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들도 많았나 보다. 전반적인 의견은 한국과 미국은 환경 자체가 다르므로 미국과 같은 exit을 한국에서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많은 댓글 중 솔직히 상당히 거슬렸던 내용이 있었는데, 여기서 한번 공유해 본다(내 블로그에 직접 올라온 거는 아니고 비석세스에 올라온 답글이다). 그런데 이 정도 소신으로 답글을 쓰시려면 왠만하면 ‘익명’이나 ‘가명’이 아닌 본명을 쓰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딴 욕지거리를 익명으로 쓰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다기보다는 그냥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글을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그냥 너는 ‘미국 상황 잘모르는 병신’ ‘너는 자본주의 개념조차 모르는 jot밥’ ‘자유경쟁이 뭔지 모르는 개병신’ 이렇게 상대를 기본적으로 하대하고 글을 적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기업가 분이였는데 정말 큰 실망했습니다.

.중략.

미국식 자본주의 개념 많이 배우고 똑똑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에서 창업 경험해보았고, 대 성공(?)은 모르겠으나 투자자로 활동하셔서 스타트업 평가하는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상황 잘 모르는 한국 스타트업에 ‘닥치고 개발해라’라고 좋은 말씀해주시면 ‘어익후’ ‘이런 좋은 말씀을’ 하고 립서비스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중략.

끝으로 배기홍님. 아무리 좆밥처럼 보이는 아시아 변방, 한국의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소통하시길 권합니다.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잘나셨는지 모르겠으나 겸손하시길 권합니다.

솔직히 난 이 분의 정확한 포인트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분이 옳다 틀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싶지도, 할 자격도 없다. 이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어차피 우린 우리만의 의견이 모두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 Strong Ventures는 이 분이 말하는 ‘좇밥’같은 한국 회사들에 매우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 좇밥같은 회사들이 빨리 글로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회사들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가리 터지게 1년 365일 고민하고 있다. 이 분이 말하는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와, 제발 이렇게 되길, 그리고 제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이렇게 훌륭한 기업이 되길 나랑 내 파트너 John은 매일 기도하고 있다. 이 분은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결과에 따라서 천국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과 커리어가 이 분이 말하는 ‘좇밥’같은 한국 스타트업에 달려있는데 내가 과연 ‘너무 잘나서’ 한국 회사들이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가 투자한 한국 회사들이 잘 돼야 하지만, 이 중 너무 매력적이어서 대기업이 당장 큰 금액에 인수를 고려하게끔 하는 회사들은 아직 없다. 아니 – 우리가 투자해서 어떻게 보면 우리 얼굴에 침 뱉기지만 – 대부분의 회사는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라면 항상 가능성은 존재하며, 우리 모두 창업팀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전에 쓴 글에서 내가 한국 스타트업들을 ‘좇밥’으로 보고 있다는 냄새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야말로 이 회사들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같이 일하고 있고 한국 회사들이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도 제발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분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댓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제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시길. 벤처를 운영하시는 분이라면 자신의 회사가 ‘좇밥’이 되지 않도록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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