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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듀티

우리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고, 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포휠스가 만드는, 간호사를 위한 일정관리 앱 ‘마이듀티‘도 이런 좋은 제품인데, 이 앱은 간호사 일정관리 앱 분야에서는 글로벌 No. 1 이다. 한국 간호사들의 60%, 홍콩 간호사 90%, 및 대만 간호사 80% 이상이 매일 마이듀티를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좋은 성장 곡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모든 지표를 다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20만 개의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22만 MAU와 10만 DAU라는 상당히 높고 끈적끈적한(=sticky) 수치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프라이머 회사이기도 한 마이듀티 정석모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시장의 크기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간호사 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무지도 있었지만, 앞으로 절대적인 시장 자체가 더 크게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은 이 시장과 앱을 지켜봤는데, 그동안 내가 본 내용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10조 원짜리 시장은 확실히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이 시장을 마이듀티가 야금야금 먹으면서, 빨리 시장의 일인자가 되는 걸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무료 버전에 필요한 많은 기능이 내재하여 있어서, 앱을 유료화할 수 있는 빠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실험하고 있고, 다행히도 반응은 나쁘지 않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No. 1 필수 앱이 되니, 고객들의 다양한 피드백들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는 실험들이 사용자 경험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끊임없이 유지될 수 있었는데, 만약에 이런 유료화 실험들을 어설픈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을 때 했다면, 고객의 충성심보다 앱에 대한 실망감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을 거 같다.

얼마 전부터 스타트업의 growth hacking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몇 가지 꼼수를 이용해서, 단기간의 해킹은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growth를 위한 해킹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 회사가 원하기보다는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기능을 만드는 게 growth hacking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유료화냐 아니냐

paid-vs-free유료화. 이 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창업가마다 다를 것이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회사가 생존하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거에 대해서는 전원 동의할 것이다. 힘들게 팀을 만들었고, 더 힘들게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실은 이걸 고객한테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게 가장 힘들다.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무형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주로 초반에는 무상으로 서비스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유료화 전환을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보다는 ‘언제’ 인 거 같다.

언제부터 우리 서비스를 유료화 전환해야 할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고, 많은 우리 투자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을 하고 있다. 작년에 나도 이 부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분들과 이야기도 해봤는데,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한번 정리해본다.

솔직히 물리적인 제품을 고객한테 판매하고 배달해주는 전형적인 이커머스 비즈니스는 첫날부터 유료화를 시작하면 된다. 이는 돈을 받고 물건을 판매하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런 회사들이 돈을 벌 방법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 과금, 또는 광고로 인한 수익, 이 정도인 거 같다(물론, 깊게 들어가 보면 굉장히 다양해진다). 서비스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B2B 소프트웨어 회사, 드롭박스나 에버노트와 같은 삶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B2C 서비스, 또는 게임업체 정도가 있을 거 같다. 실은 이런 스타트업도 제품을 출시하고 바로 유료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반에는 무료로 시장에 풀고, 이를 미끼로 사용자들을 lock-in 시킨 후에 유료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우리한테 너무나 익숙한 전략이다.

“BM을 붙인다”라는 말을 한국에서는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의 유료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음식, 화장품, 패션 커뮤니티로 시작한 컨텐츠 스타트업들이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유발하면서 사용자층을 확보한 후에, 비즈니스모델을 붙여서 이커머스 플레이 또는 광고 노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 회사들도 과연 그 유료화 시점이 언제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는 걸 옆에서 봤다. 회원이 1백만 명일 때가 그 시점인지, 회원들이 포스팅하는 컨텐츠가 하루에 1만 개가 되었을 때 인지, 평균 체류 시간이 7분 이상일 때인지, 비즈니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큰일이다.

유료화 시점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만약에 내가 소셜미디어와 같은, 광고가 거의 유일한 비즈니스모델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트래픽, 높은 체류 시간, 많은 인당 방문 페이지수가 있어야지만 의미 있는 광고 수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광고 단가는 아직 낮으므로, 모바일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비즈니스는 당분간 돈 벌 생각은 하지 말고, 가장 빨리 스케일 할 수 있는 전략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괜히 어중간한 수치에 도달했을 때 광고를 노출하다 보면, 회사는 상상 이상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어중간한 트래픽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매출은 실은 굉장히 낮은데, 그동안 짜증 나는 광고를 보지 않고도 재미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던 기존 사용자들을 화나게 해서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도 못 벌고, 고객도 떠나가는 이중 위기가 회사 닥칠 수 있다. 계속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광고도 노출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게 말같이 쉽지는 않다. 일단 광고를 보여주기 시작하면, 나같이 광고를 싫어하는 사용자들을 획득하는 게 쉽지 않고, 절대적인 고객 수가 모자라면, 의미 있는 광고수익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은 회사가 사용자 확보와 수익 창출이라는, 어떻게 보면 초기에는 상반된 개념의 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없는 거 보다는 조금이라도 매출이 있는 스타트업이 ‘갑’이라는 건 나도 100% 동의한다. 그렇지만, 섣부른 유료화 정책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되지 않는 몇백만 원 수준의 월 매출을 발생시키면서, 훨씬 더 중요한 스케일에 타격을 주는 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 고민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도 많다. 모두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지만, 유료화 관련해서는 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광고로 돈을 버는 서비스는 일단 스케일에 무조건 집중하고, 매출은 조금 나중에 걱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먼저 스케일하고, 매출은 나중에 걱정’하는 모델을 믿는 투자자들을 찾아서, 성장해서 돈 벌기 전까지는 계속 투자를 유치하라고 한다. 괜히 어정쩡한 시점에 광고를 노출해서 돈도 못 벌고, 성장도 못 하는 상황에 갇혀버리면, 이 비즈니스는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들은 스케일도 중요하지만, 고객당 매출에 더 집중하면서 유료화 정책을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spinbackup.com/blog/free-vs-paid-why-move-to-paid-account/>

깊은 틈새

Siren Care라는 스마트 양말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좀 갸우뚱했다. 우리가 입는 모든 것에 ‘스마트’를 갖다 붙이면 멋져 보이지만, 스마트 양말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에 내가 말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일단 일반인들을 위한 양말이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양말이었다. 제1형과 2형 당뇨병 환자들한테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은 당뇨발인데, 이게 관리가 제대도 안 되면 이 중 25%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말에 있는 센서를 통해서 발의 감염상태나 온도 변화를 24시간 감시하고 저장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들한테 발을 확인해보거나 병원에 가라는 알림을 전달해주는 게 이 양말의 핵심이다.

실은 나는 웨어러블 제품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 몸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것은 – 그것도 별도의 외부 기기가 아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이미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기기를 통해 – 굉장히 멋지고 미래지향적인 거 같지만, 대부분의 기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웨어러블 회사들을 검토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기가 아닌,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기기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흔쾌히 열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만큼 시장도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스마트 양말을 내가 관심 갖고 봤던 이유는,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삶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고객들에게 반드시 즉시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들에게 당뇨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발을 절단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서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 제품은 있으면 좋은 기기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깊은 틈새’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2,9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이 중 150만 명이 당뇨족궤양을 경험하고, 10만 명이 발을 절단한다고 한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2,900만 명이 될 수도 있고, 10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두 숫자 모두 틈새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 2,900만 명 모두에게 당뇨발 발병 확률이 존재하고, 이는 생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틈새시장이 될 수가 있다. 나도 우리 식구 또는 내가 당뇨에 걸리면, 이 스마트양말은 단순한 옵션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될 것 같다(물론, 회사가 마케팅하는 대로 양말이 스마트하다는 가정하에)

이런 프레임은 굳이 웨어러블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사람한테 있으면 편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 시장 크기는 큰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큰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크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 볼륨으로 승부하거나, 또는 무료로 배포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들을 lock-in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사람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고민은 시장 크기이다.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고객은 존재하지만, 그 시장이 작아서 볼륨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고가전략이다. 볼륨은 적지만,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론은, 절대다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장래가 밝다. 시장을 선점하면,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Switching cost

고객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건 과거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보다는 현재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비해서 웹서비스나 모바일 앱들의 종류와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하루에도 수 백개의 새로운 제품들이 구상되고 개발되는거 같다.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 있지만, 뭔가 문제가 있거나 사용상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그런 단점들을 개선한 제품들이다. 그 누구나 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면 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제품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기능이나 경험을 우리 제품은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많은 경쟁 제품의 고객들을 다 가져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당장은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현실은 주로 그렇지 않다. 아니, 완전 반대다. 창업팀이 생각하는 대로 어쩌면 그들의 제품은 그동안 시장에 없던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할지도 모르지만, 이걸로 사용자를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는걸 많은 분들이 경험했고, 현재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경험할 것이다. 나도 이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아니, 거의 매일 만나는데 이 분들에게 내가 항상 강조하는건 switching cost 이다. 즉,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유사 제품이 있는데 조금 더 좋은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데(=switching)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현재 경쟁사는 초점을 잘 못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제품은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라며 자신의 제품과 논리를 방어한다. 어쩌면 이들이 맞을 수도 있다. 제품을 출시하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수 많은 앱들이 내 아이폰에 깔려 있는데 정말로 필수 앱이 아니라면 – 우리 투자사 앱들은 예외다. 필수 앱이 아니라도 대부분 설치해서 사용해본다 – 내 아이폰 스크린에 설치될 확률은 매우 낮다. 실은 나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내 주위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대인이라면 ‘앱 피로’ 현상을 매일 경험한다. 어떨때는 앱스토의 아이콘들만 봐도 토할거 같다. 현실이 이러니 사용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앱을 설치하게 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설치 후에 앱을 실행했는데 로그인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만약에 페이스북 회원가입 프로세스가 없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면 바로 나가버리고 다시는 그 앱을 사용하지 않는게 일반적인 행동이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게 만드는게 이렇게 힘들다.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은 커녕, 대부분 그 전에 앱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특히 이 앱이 이미 내가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과 비슷하다면. 그만큼 switching cost가 높다.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제품에 비해 아무리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어도, 내 인생에 정말로 유용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을 확보하는게 매우 어렵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모든 창업팀은 이 ‘더’의 의미를 잘 정의해야한다.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기존 제품이 아무리 완벽하지 않고 몇 가지 기능이 빠져있더라고,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 switching cost가 너무 높으면 원래 사용하던 익숙한 제품을 계속 사용할 확률이 높다. 이 말을 조금 더 간단하게 풀어보면,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새 기능들에 익숙해져야하는 귀찮음이 새로운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보다 크다면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은행도 먹어 치울 것이다

world money traffic얼마전에 “은행의 종말” 이라는 글을 통해서 전형적인 굴뚝산업인 은행들의 비효율성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다. 최근 한국 출장에서 은행거래업무를 몇 번 했는데 수수료를 부담할때마다 나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 비해서 한국의 수수료는 저렴한 편이다. 그래도 타은행 이체수수료가 나갈때마다 내 돈을 내 친구한테 송금하는데 왜 수수료를 내야할까라는 의문을 항상 하게 된다. 돈은 아니지만, Hotmail에서 Gmail로 이메일 보내는건 무료인데 왜 같은 은행끼리 돈 보낼때는 무료이고 타은행으로 보낼때는 수수료가 발생할까? 외환은행 직원이 국민은행으로 물리적으로 돈을 직접 가지고 배달하는것도 아닐텐데 어디서 이 비용이 발생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남의 돈도 아니고 내 돈을 움직이는건데. 은행 직원한테 물어보니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서 그렇다는데 역시 이해할 수가 없다. 불필요하게 많은 물리적인 은행 지점들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직원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방법이라는게 내 결론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토스(Toss)라는 제품을 사용해봤다. 전부터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아이폰 앱도 최근에 출시되어 드디어 사용해봤는데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경험을 했다. 회원등록부터 실제 송금까지 모든 과정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아쉬운 점은 제휴 은행이 몇 개 없었고 내 거래은행인 외환은행도 (아직) 등록되지 않아서 송금을 받은 친구가 실제로 돈을 받지는 못 했다. 토스가 mainstream이 되고 모든 은행과 제휴 된다면 상당히 편리하고 유용한 제품이 될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거 같다. 이 서비스가 크게 성장해서 은행들의 수수료 매출에 –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매출 규모 파악 불가 – 타격을 입히는걸 은행들이 절대로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누군가 침범하는걸 은행들은 분명히 규제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힘든 싸움과 hustling이 될 것이지만, 토스 팀이 잘 실행해서 좋은 합의점을 찾길 바란다. 진심으로.

토스같은 서비스의 성공에 필사적으로 반대할 은행들을 상상해보면 카카오톡과 이통사들이 생각난다. 엄청난 매출을 발생시키는 문자서비스를 죽일게 너무나 뻔한 카카오톡을 매장시키려고 이통사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생각해보면 참 못나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문자 서비스의 어두운 미래가 빤히 보이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런 변화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고객들의 데이터 사용을 더 늘려서 데이터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나 메시징 플랫폼을 활용해서 이통사들이 신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행들도 토스와 같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싫든 좋든 이미 시장은 이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보다 현실을 더 빨리 수용하고 토스와 같은 핀테크를(솔직히 이 단어를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국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알고 있는 용어가 되어버려서) 활용해서 은행 고객의 만족도를 늘리면서 추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은행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은행은 고객들의 소중한 돈을 관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하는 방식은 안전한가? 은행도 망하고, 해킹당하고, 크고 작은 금융사고는 항상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해야할 때가 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고, 곧 은행도 먹어 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은행과 스타트업/기술을 싸움 붙이려는 건 아니지만, 수백년 동안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공룡들이 더 작지만 빠르고 적응력이 월등한 생명체들한테 밀리면서 결국 멸종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짜릿하다.

*공시 – 우리는 토스의 투자사가 아니다. 나는 토스와 비즈니스적이나 개인적인 그 어떠한 관계도 없다. 다만, 토스의 대표이사와는 (막 친하지는 않지만) 친분은 있다.

<이미지 출처=http://www.xconomy.com/national/2014/10/29/currencyfair-rides-irish-fintech-wave-with-money-transfer-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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