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shake

한 발짝만 앞서기

내가 썩 잘 하진 못했지만,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음악 관련 스타트업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음악 관련 사업을 하는 창업자들에게 콜드 연락을 꽤 많이 받고 있다. 반갑기도 하고, 이분들은 어떤 사업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만나보면, 참 대단하고 다양한 창업가들이 재미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하고 나도 자극을 많이 받는다.

모든 창업가들은 하루하루가 문제의 연속이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게 이들의 과제이지만, 특히 음악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과 유료화이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제일 힘들고 괴로웠던 게 바로 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음악이라는 시장 자체가 흥미롭고,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또한 너무 재미있어서 매력적인 분야인데, 돈을 버는 게 정말로 어려운 시장이다. 특히나, 인터넷 기반의 음악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 monetization이 참으로 어렵다. 16년 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것 같다.

요새 새로 나오는 음악 앱들을 보면 AI를 기반으로 저작권 이슈가 없는 음악을 만드는 제품들이 꽤 많다. 이런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너무 신기한 게, 바로 16년 전에 뮤직쉐이크가 만들던 제품/사업과 거의 동일 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되겠지만,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기본적인 틀은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우린 당시에 AI/인공지능이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AI라는 용어가 존재했지만, 굉장히 무거운 개념이라서 지금같이 막 갖다 붙일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아니었다.

뮤직쉐이크는 자체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홍보했고, 당시엔 비슷한 제품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요새 나오는 제품들은 AI가 음악을 만든다고 홍보하는데, 비슷한 제품이 정말 많다. 이런 시장 상황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건, 바로 우리가 너무 앞서갔다는 것이다. 솔직히, 굉장히 앞서갔다고 생각한다. 한 발짝만 앞선 게 아니라, 두 발짝이나 앞섰는데, 실은 이게 문제였던 것 같다.

한 발짝만 앞서면 꾸준함과 인내심이 결국 메인스트림 시장을 만날 수도 있는데, 두 발짝이나 앞서면 메인스트림 시장이 따라오기가 쉽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대부분의 벤처 펀드엔 10년이라는 주기가 있어서, 두 발짝이나 앞서면 투자자들이 엑싯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 걸리기 때문에 메인스트림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창업가가 지쳐서 나자빠진다. 그래서 내가 요새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AI 음악 앱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시대를 앞서는 건 정말로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직결되지만, 딱 한 발짝만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발짝만 앞서자.

마지막 한 삽

사업이 잘 안될 때, 언제까지 해야지, 이제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하자는 결정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시점에 나한테 이 질문을 하는 우리 창업가분들이 요새 부쩍 많아졌고, 스타트업에서 정답이란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답이 없는 질문 중 하나라서 나도 답답하고, 미안하고, 항상 고민하는, 그런 질문이다.

이 질문은 내가 11년 동안 VC로서 활동하면서 꾸준하게 받았던 질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사업을 몇 년 동안 했는데, 만족할 만한 성과는 항상 안 나오지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느낌과 희망을 가진 창업가 – 실은 이건 모든 창업가에게 해당할 것이다 – 라면 누구나 다 이 질문을 한다. 이런 분들은 딱 3개월만 더 해보면, 그동안 찾지 못했던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서 우리 제품이 대박 날 것 같고, 딱 2달만 더 펀딩을 시도해 보면 우리 사업을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날 것 같고, 피봇팅을 한 번만 더 하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분들의 생각, 고민, 스트레스, 그리고 마음을 나는 아주 정확하게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스트롱 전에 몸담았던 뮤직쉐이크라는 스타트업에서 5년 동안 내가 이런 생각과 고민을 거의 매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엔 어느 순간 멈췄다. 5년 동안 열심히 삽으로 땅을 팠다. 열심히 파면 분명히 저 땅 밑 어딘가에는 금광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금광을 찾을 때까지 계속 땅을 파겠다는 의지가 초반에는 너무 강했다. 그런데 계속 깊게 파고 들어갔는데, 금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하고 그 옆을 파고 들어갔고, 또 그 옆을 팠고, 금광이 없으면 계속 다른 곳을 파고 들어갔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는데, 그래도 한 삽만 더 뜨면 분명히 금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엔 나는 삽질을 멈췄다. 삽질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내 속에서는 “야, 배기홍. 다 왔는데 여기서 멈추면 어떻게. 한 삽만 더 파면 네가 5년 동안 한순간도 못 잊었던 금광이 있다니까. 한 삽만 더 파봐.”라는 생각이 계속 멤돌았다. 하지만, 나는 지쳐있었다. 너무 지쳐서 한 삽만 더 파면 정말로 금광이 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고집과 집착에 몸과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금광이 있다는 환상을 믿었던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후자일 거라고 스스로를 힘들게 설득하고 멈췄다. 그리고 다시 내가 판 땅굴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맞는 결정을 한 것일까? 원래 금광이 없었는데, 혼자서 최면을 걸면서 개고생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딱 한 삽만 더 팠으면 노다지를 발견했을 텐데 그걸 못 견디고 포기한 걸까? 아마도 진실은 무엇인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실은 지금도 삽을 들고 다시 땅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최근에 어떤 대표이사를 만났다. 7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본인 돈 25억 원을 회사에 투입하면서 계속 사업을 연명하고 계신 분이다. 몇천만 원, 또는 많아도 5억 원 정도를 대표이사가 회사에 투입한 사례는 봤지만 본인 돈 25억 원은 내가 아는 액수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까, 딱 이 말을 했다. “한 삽만 더 파면 분명히 금광이 있을 거예요. 지금 포기하면 너무 아깝잖아요.”

다행히도 이분은 개인적으로 돈이 좀 있는 분이라서 나중에 개인 파산하는 상황까진 안 갈 것이지만, 과연 저 밑에 금이 있는데 더 깊게 안 들어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집착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이분에게 그만하라는 충고도 못 했고, 계속 열심히 삽질하라는 충고도 못 했다. 그냥 “열심히 하세요” 하고 헤어졌다. 뭘 열심히 하라고 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정말로 한 삽만 더 파니까 금이 있어서 대박 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고, 한 삽이 열 삽이 됐고, 열 삽이 백 삽이 됐지만 금은 못 찾아서 폐인이 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기 때문이다. 내가 충고해 줄 영역은 아니라서 그냥 입 닥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삽의 진실. 이 질문은 나에겐 영원한 스타트업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

경계선

지난주에 창업, 번아웃, 자존감, 그리고 운동에 대해서 몇 자 적어봤다. 실은, 이 글에서는 매우 단순하게 힘들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이보단 훨씬 복잡하다.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자존감이 조금 떨어진다고 운동만 하면 다시 원상태로 100% 복귀되는 건 아니다.

나도 과거에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2010년 전후로 이런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처음으로 직접 경험했는데, 처음엔 내 몸이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고통이었다. 당시엔 이런 현상을 지금같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기 때문에, 내 몸과 정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을 경험하기 전에는 나는 스스로 불도저라고 생각했고, 내 체력과 정신력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 무한자원이라고 바보같이 믿고 있었다. 이런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한 번 켜진 몸의 스위치를 끄지 않았고, 너무 오랫동안 스위치가 켜진 채 혹사당한 몸과 정신이 제대로 고장 났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가라는 원망을 하면서 오만 감정이 교차했고, 난생처음 내 몸과 정신을 컨트롤할 수 없어서 너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몇 달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못 했던 때가 있었다.

이때 내가 안정을 찾고, 다시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 몇 가지 있다. 너무 부끄럽고 싫었지만, 나랑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몸이 좀 망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당분간 쉬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주워 담아야겠고, 한동안 잠수타야겠으니 내가 그동안 하던 일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가장 먼저 와이프에게 말했고, 그리고 뮤직쉐이크 동료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 나는 남들이 나를 나약하고 실망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 모두 다 너무 따뜻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공감했고, 나에게 아주 용감하다고 하면서 격려해 줬다.

그리고 계속 몸을 움직였다. 격렬한 운동을 시작했고, 마일로랑 매일 산책을 했다. 실은, 이때 나랑 마일로랑 많은 본딩을 했고, 나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나 혼자 중얼거렸지만) 마일로는 이젠 죽었지만, 내 은인이기도 하다. 너무 하기 싫어도 그냥 강제로 매일 무거운 웨이트를 들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서 매일 새벽에 뛰었다. 이걸 몇 달 반복하니까, 다시 정상 생활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몸 안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쭈욱 느껴온 건, 창업이든 투자든 뭐라도 너무 과하게 열심히 하면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우린 모두 번아웃과 공황장애와 함께 살아야 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이 그때 상황에 맞춰 스스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학습과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번아웃을 완전히 예방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몸담은 이 빠르게 변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스타트업 분야에서 이런 방법이 존재하는진 잘 모르겠다. 오히려,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완전히 예방할 순 없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내 몸에서 어떤 시그널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경고하는지 꾸준히 스스로를 학습시키는 게 효과적인 방법 같다.

소셜비 전략

나는 소셜미디어랑 이 블로그를 통해서 행사와 이벤트 참석에 대한 내 의견을 자주 공유했었다. 얼마 전에 이제 사업을 시작한 젊은 창업가가 이런 외부 활동에 대한 내 생각과 의견을 물어봐서 같이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는데, 이날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록을 남겨본다.

한국만 해도 스타트업 관련 행사가 넘친다. 맘만 먹으면, 1년 365일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는 이벤트가 많고, 이제 코로나로부터 서서히 해방되면서 오프라인 행사가 폭발적으로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행사에 많이 참석하는 소셜비(social bee) 전략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참고로, 나도 2008년과 2009년 뮤직쉐이크 첫 2년 동안엔 LA와 실리콘밸리의 웬만한 이벤트는 모두 다 참석했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관련 행사에서는 꽤 얼굴이 알려진 “흔들면 음악을 만드는 그 뮤직쉐이크 guy”로 통했던 적이 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년 동안 거의 100개 넘는 스타트업 행사에 참석해서 얼굴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그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런 곳에 가서 업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교류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고, 스타트업하는데 다른 창업가나 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지 않으면 의미 있는 협업도 못 하고 결국엔 투자도 잘 못 받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갰고, 가기 싫어도 행사에 참석했다. 사업은 잘 안됐지만, 왠지 이런 행사에 가서 자주 보던 업계 사람들과 아는 척하고 술도 먹으면서 노가리 까면 기분도 더 좋아지고 사업이 더 잘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 할 업계 동료들도 많이 알게 됐고, 이들과 나중에 의미 있는 협업도 했다. 또한, 아주 거물급은 아니지만 적당한 규모의 VC와 개인 투자자들도 많이 알게 돼서 뮤직쉐이크를 세게 피칭하고 데모도 열심히 했었다.(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은 고음질로 들어야지만, 이 사업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시 꽤 큰 휴대용 BOSE 스피커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기회만 나면 주변 환경 신경 쓰지 않고 노트북과 스피커로 열심히 데모를 했었다.)

그리고 어떤 창업가와 투자자들에겐 이렇게 모든 행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얼굴 익히고, 행사에 오는 사람들을 아는 척하는 소셜비 전략이 잘 먹혔다. 이들에게 나는 이 행사 저 행사에 매번 보이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만 만나면 뮤직쉐이크 이야기를 하면서 제품 데모를 휴대용 스피커를 통해서 보여주는,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스타트업 창업가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이들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도 소개받고, 내가 잘 몰랐던 분야의 네트워크도 생기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행사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후 2년 만에 이 소셜비 전략을 완전히 끝냈다. 위에서 말 한대로 가끔은 좋은 사람도 만났지만, 결국 이렇게 나를 도와줄 누군가를 내가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행사는 영양가가 별로 없다는 걸 몸소 체험했고, 어느 순간 이후로는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행사만 자주 찾아다니는 같은 얼굴만 보이기 시작해서, 네트워크 확장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소셜비 전략을 완전히 버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진짜로 유용한 뭔가를 만드는 창업가들은 이런 행사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스타트업 이벤트에서 네트워킹에 열을 올리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말로만 창업했고, 말로만 제품을 만들고 있었고, 이 사람 중 아무도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 진짜 창업가들은 이런 행사에 참석할 시간에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을 만나고 있었고, 실제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은 모두 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도 이젠 스타트업 강국이 되면서 관련 행사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지만, 내가 오래전에 미국에서 느꼈던 그 분위기랑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행사에 참석하지 말고, 내가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제대로 된 창업가가 되어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얼마 전에 한 상장사 대표님과 즐거운 점심을 같이했다. 나는 이 분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젊은 분들이 한 아이디어에 꽂혀서, 처음에는 장난으로 뭔가를 시작했는데, 이게 취미가 되고, 취미가 열정이 되고, 열정이 사업이 돼서 성공한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성장 이야기를 이분에게 직접 듣는다는 건 나에겐 영광 그 자체였다. 물론,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충분히 있지만, 창업자들의 founding story는 항상 다르고,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날의 대화는 내가 올 한 해 나눴던 수많은 대화 중 가장 흥미롭고 배움이 많은 대화 중 하나였고, 그 감동과 여운이 며칠 동안 지속됐다.

이분은 지금은 상장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꽤 많은 직원분과 함께 하고 있고, 사업을 하면서 보람차고 기억에 남는 일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래도 사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 사업도 잘 안되고 돈도 없어서 허덕이면서 오늘, 내일 하던 그 순간이라고 한다. 그땐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 재미있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변태적인 상황인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지만,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런데 이 말이 나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왜냐하면, 나도 생각해보면, 이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도와 2012년도에 나에겐 이런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LA에서 뮤직쉐이크 북미사무소를 시작했을 때가 2008년인데, 돈이 없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인 넥슨 아메리카의 작은 방 하나에 조촐한 사무실을 차렸다. 좁은 공간이었고, 모든 가구는 이케아에서 직접 사 와서 조립했지만, 그 방에서 단위 면적당 발산했던 에너지는 세계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2012년도는 존과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이다. LA 코리아타운의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창을 등 뒤로 하고 나란히 둘이 앉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땐 정말로 아무것도 없고, 자신감과 체력만 있었는데, 미국 서부 시간 오후 5시면 한국 시각 오전 9시라서, 오후 5시가 되면 둘이 번갈아 가면서 한국으로 전화를 돌리고,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LA에 있는 스트롱벤처스라는 투자사의 배기홍이라고 하는데요,,,”라면서 우리도 펀딩을 하고 투자할만한 회사들을 발굴했다.

생각해보면, 2008년과 2012년은 나에겐 정말로 힘든 시기였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 자신감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현실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죽고 싶을 정도로 짜릿짜릿하게 재미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당시의 생각을 해보면 그때 그 작고 허름한 사무실, 근거 없는 자신감, 그리고 그냥 그때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의 사정이 훨씬 좋아졌고, 현재 사무실도 너무 좋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뮤직쉐이크와 스트롱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간, 그 사람들과 그 사무실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이제 5명인 회사가 언제쯤 토스나 당근마켓같이 커질 수 있을지 한숨을 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분들에게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으니까,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꼭 기억하라고 한다. 나중에 성공해서 더 커지면, 5명인 지금의 이 허접하고 힘든 순간이 매우 그리워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