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shake

모험

직업을 대하는 태도의 경우,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많이 다른 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실은, 나도 어떻게 하다가 VC를 하고 있는지 신기한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마다 큰 모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즐기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2008년 1월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워튼스쿨에서 MBA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실은 생각보다 수업도 어려웠고, 프로그램도 학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한테는 큰 도움이나 영감을 주지 못 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뮤직쉐이크의 미국 일을 도와주면서 뭔가 내 인생의 기회가 왔고, 이걸 이번에 잡지 못하면 나는 평생 후회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후 2008년 2월에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LA로 와서, 미래가 불확실했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과 불확실함을 남이 아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2009년 자금줄이 마르면서, 1년을 무급으로 일했다. 다시 학교로 갈 수 있는 옵션도 있었고, 실은 당장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난 내가 시작한 걸 한번 마무리 지어 보고 싶었다. 큰 모험이었지만, 내가 잘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못 하면 결과는 나쁠 것이기 때문에, 실은 이건 무모한 모험이라기보단 계산된 모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까지 뮤직쉐이크를 운영했는데, 이후에 몇 가지 커리어 옵션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이들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도와줄 수 있는 작은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펀드를 만드는 건 내가 예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시작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후 규모가 조금 더 큰 두 번째 펀드도 결성했고, 앞으로 또 어떤 게 될진 모르겠지만, 우린 계속 모험을 하면서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감행한 큰 모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당시 이런 모험이 없었다면, 솔직히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와 팀도 나와 같은 이야기가 최소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안전한 길을 가고 있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들은 모험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실은 이렇게 하면서 주위의 격려나 부러움보다는 질타와 손가락질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고,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질문을 매일 받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모험을 한 다는 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어깨 위에 스스로 더 많은 짐을 실으면서,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로 자신의 몸을 과부하 시키는 거다. 실은 조금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들은 살면서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 지식, 인맥, 그리고 운이 잘 합쳐지면 언젠가는 더 큰 보상을 맛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큰 비전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한다. 물론, 이런 시도는 대부분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 확률이 더 높지만, 이런 모험을 할 때야 말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과만 봐서는 실패와 성공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는 좋지 않은 결과고, 성공은 좋은 결과다. 하지만, 모험이 우리에게 주는 설렘, 흥분, 그리고 가능성은 실패와 성공을 초월한 그 이상의 정신상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네트워킹에 대해서

나는 행사나 모임 같은데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는 시간이 없고,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 우리 투자사가 이제 40개가 넘는다. 나는 매달 우리 투자사를 3그룹으로 분류한다. 아마도 이런 걸 영어로 triage라고 하는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부상자 분류’라고 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는 의사가 귀하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3그룹으로 분류한다. 다쳤지만 가만히 놔두어도 생존할 병사; 너무 심하게 다쳐서 수술해도 죽을 병사; 그리고 다쳤지만, 수술을 잘 하면 생존할 수 있는 병사, 이렇게 분류한다. 전장에서 의사는 이 마지막 그룹을 집중적으로 치료한다. 우리 투자사도 대략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내가 굳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아도 잘 하는 회사; 내가 아무리 개입을 해서 도움을 줘도 생존하기 힘든 회사; 그리고 지금 엄청 어렵지만 내가 많이 도와주면, 어쩌면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는 회사다. 나는 여기서 주로 두 그룹의 회사와 적극적으로 같이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어떤 두 그룹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힘들다. 고생하는 창업가를 옆에서 지켜보는 거 자체가 심한 스트레스인데, 이런 회사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 같이 미팅 한 번만 해도 내 진이 다 빠진다. 그리고 우리 기투자사와도 이렇게 같이 일해야하지만, 우리도 신규 투자를 하려면 새로운 회사를 또 많이 만나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오후 6시 정도 되면 나는 녹초가 된다. 그래서 일 –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비즈니스인 투자와 직접 연관된 일 – 외의 행사나 모임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그다음 날이 너무 힘들고, 내가 정말로 잘 해야 할 일이 그렇지 않은 일 때문에 지장을 받는 게 싫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요샌 귀도 잘 안 들려서 그런지, 너무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가면 대화 자체가 힘들어져서, 가능하면 식당도 예약할 때 단체 손님이 혹시 그 날 있는지, 방은 있는지 등 아주 까칠하게 따져가면서 예약한다. 또한, 모임을 위한 모임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스타트업 분야의 모임, 데모데이, 네트워킹, 이벤트 등이 이젠 실리콘밸리만큼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한다면, 매일 이런 행사가 있기 때문에, 가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나도 몇 번 행사에 참석해 봤는데, 항상 똑같은 얼굴이고, 흔히 우리가 원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녔다. 내가 항상 느끼는 건, 정말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이런 모임에 참석할 시간에 제품에 집중하거나 고객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네트워킹이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뭔가 확실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즉, 내가 비즈니스 때문에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참석하거나, 내가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VC가 참석하면, 가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하는 건 좋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네트워킹 행사는 참석자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아서 이게 쉽지가 않다. 나도 뮤직쉐이크 할때 1년 반 동안 LA와 실리콘밸리에서 한다는 tech와 스타트업 이벤트에 50번 이상 참석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그냥 이런 행사에는 무조건 가야 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1년 반 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얻은 건 없었고, 소중한 시간만 잃었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사람 만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술 먹는다고 의미 있는 네트워크가 생기지는 않았다.

우린 흔히 어떤 행사에 유명한 사람이 오니까 꼭 가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내가 잘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내가 바로 그 남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제품과 고객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게 정답인 거 같다.

이걸 굳이 여기서 왜 말하냐 하면,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네트워킹 혐오증이 있다고 해서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심한가 생각해봤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거 같다. 나는 정말 네트워킹 혐오증이 있을 정도로, 이런 모임 같은 걸 싫어하는 게 맞다. 그냥 개인 취향이다.

가장 힘든 오늘

요새 나는 운동 횟수를 조금 줄인 대신,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강도를 높이는 데 음악이 도움이 많이 돼서, 계속 유투브 뮤직을 들으면서 웨이트를 하는데, 주로 복싱 관련 음악을 많이 듣는다. 특히 영화 ‘록키’ 음악을 즐겨 듣는데, 피로도도 감소하고,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요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록키 트레이닝 뮤직이다.

미국에서 한 일 년 정도 복싱을 했다.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그때 스트레스가 심해서, 뭔가 때려야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거 같아서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흘린 땀에 미끄러질 정도로 샌드백을 미친 듯이 치는데, 땀과 함께 눈물이 막 쏟아졌다. 뭐, 그냥 이유도 없이 갑자기 펑펑 흘렀다. 실은 참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아마도 속에 있는 불안감, 우울함, 창피함, 나약함,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눈물로 방출되었던 거 같다. 따뜻한 눈물을 흘리면서 샌드백을 치다 보니, 기분이 다시 진정되고, 내 주변을 다시 사심 없이 볼 수 있었다. 뭔가 정화가 되고, 새로운 희망이 생긴 거 같았고, 이는 내가 다시 몇 주 동안 일에 열심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런 패턴이 가끔 반복됐다.

스트레스.
스타트업을 한다면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나도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거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안 풀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잘 풀려도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것도 강도가 상당히 높다. 워낙 힘든 분야라서, 일이 좀 잘 풀리면, 솔직히 막 불안해진다. “왜 갑자기 일이 잘 풀리지?” , “곧 상황이 다시 나빠질 텐데 그땐 어떻게 하지?” , “이걸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뭘 더 해야 할까?”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항상 스스로 위안 삼는 게 있다. 투자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창업가가 받는 스트레스와는 그 차원이 다르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 대표들이 더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서 자신을 달랜다. 그래도 불안하면, 일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좀 걷기도 한다. 와이프랑 이야기도 한다. 뭐, 솔직히 인생 자체가 스트레스의 연속이긴 하지만, 인생의 스트레스는 그래도 up and down이 있다. 하지만, 창업의 스트레스는 조금 다르다. 이 스트레스는 up으로만 가지, 좀처럼 down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참, 끝이 안 보인다는 건 더욱더 무섭고 stressful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오래 하려면, 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고, 그냥 잘 관리하고 최대한 스트레스와 타협을 하면서 사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주로 운동, 가족과의 대화, 개 산책 등으로 이걸 잘 해소했는데, 작년부터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는 가벼운 명상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꽤 유용하고, 이걸 계기로 마음 챙김 관련 앱과 비즈니스도 좀 보기 시작했는데, 미국에서는 이 분야가 전망이 꽤 밝은 거 같다.

스타트업을 하면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실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긴 한데, 그래도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였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길.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힘들고 미친 짓을 오래 할 수가 없다.

카나리아섬의 코리안 커넥션

스트롱벤처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기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랑 존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섬에 대해서도 여기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았던 Gran Canaria 섬은 인구 백만이 안 되는, 제주도보다 인구가 조금 더 많은 섬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이 섬의 수도인 라스팔마스에 거주하는 한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라스팔마스 한인의 기원은 1960년대부터 이 섬을 기지로 원양어업을 하던 선원과 관련 종사자들로부터 시작했다. 원양어업은 건설업과 함께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외화벌이 주력산업이었는데, 1970년대에는 무려 7,000여 명의 한인이 이 섬에 살았다(이는 라스팔마스 인구 350,000명의 2%). 많은 한인이 가족과 함께 이민 와서 스페인에 정착했고, 2세들을 스페인의 현지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한국의 원양어업 산업이 하락하면서, 한인 인구는 1,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와중에 많은 한인은 원양어업에서 손을 떼고 다른 산업으로 진출했고, 이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꽤 부유하고 성공적인(=relative affluence)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에는 창업과 스타트업도 포함된다. 이 작은 섬 출신의 한인 창업가, 벤처투자자, 스타트업 종사자가 몇 명 있는데, 오늘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 드라마와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스트리밍 하는 서비스로 시작한 뉴욕의 DramaFever를 창업한 박석 대표와 그의 친동생 박현 이사 모두 우리와 같이 이 섬에서 자랐다. 우리한테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스트롱도 드라마피버 초기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심하게 반대해서 투자하지 않았다(John은 매우 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도대체 누가 한국 드라마를 보겠냐?”라면서 이 투자를 반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멍청한 발언이었다. 드라마피버는 2014년도에 소프트뱅크에 좋은 가격에 인수됐고, 나는 후회했다.

우리 첫 번째 펀드에서 투자한 Recomio는 쿠팡에 인수됐는데, 2명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은 서철이라는 친구다. 서철 또한 라스팔마스에서 자랐고, 여기서 존이랑 나랑 같은 초등/중학교에 다녔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철이는 나랑 LA에서 고생하면서 뮤직쉐이크를 함께 운영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실은 레코미오를 쿠팡에 소개하고, 연결해 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쿠팡맨을 만든 쿠팡의 물류 담당(전) 정태혁(Kevin Chung) 이사다. 태혁이도 우리랑 이 섬에서 같이 자랐고, 모두 다 같은 초등/중학교 동창이다. 어릴 적, 섬에서 코 흘리면서 같이 축구하고, 수영팬티만 입고 물장난치던 친구들이 커서 이런 좋은 딜을 같이 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우리 두 번째 펀드에서 투자한 SnackFever라는 회사에 대해서도 내가 가끔 포스팅을 한다. 실은 이 회사의 창업자 장조경(Jo Jang) 대표도 우리랑 같이 이 섬에서 자랐다. 조경이는 나보다는 동생인데, 나랑, 존이랑, 위에서 말한 철이랑 태혁이랑 모두 다 같은 초등/중학교/고등학교에 다녔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산동네에 있어서 스쿨버스로 약 45분 정도 가야 했는데, 내가 가끔 어린 조경이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직은 작고, 우리 이름과는 아직은 어울리지 않게 ‘약한’ Strong Ventures를 만든 존과 내가 있다. 페이팔 출신들이 모두 다 엄청난 회사를 만들고 성공해서 이들을 좋은 의미로 ‘페이팔 마피아’라고 하는데, 우리도 우리끼리 농담처럼 ‘카나리아 또는 라스팔마스 마피아’라는 말을 가끔 한다. 실은, 아직 그 누구도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진 못했지만, 이 작은 섬 출신의 한인들이 이렇게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 분야로 진출해서, 성공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참 재미있다.

참고로, tech 분야가 아니라서 여기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카나리아섬 출신의 가장 성공한 한인 창업가/기업인은 매출 1조 원의 기업 인터불고를 창업한, ‘스페인의 선박왕’ 권영호 회장님이다.

변하지 않는 절실함에 대해

“대표님은 남의 돈으로 편하게 투자하고 있잖아요.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데, 우리같이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화난 창업가한테 받은 적이 있다. 미래가 불투명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극도로 느끼고 있는데, 내가 이에 대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뭐, 여기에 대해서 내가 반박할 생각은 없다. 실은, 반박할 수도 없다. 나도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VC들도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다. 투자한 회사들이 잘 안 되고, 이로 인해서 펀드의 LP들에게 출자금을 회수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면, 더 이상 펀드 만드는 게 힘들고, 그렇게 되면 VC의 커리어는 끝나기 때문에, 투자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고민과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는 창업가의 스트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사내벤처 관련 과거 포스팅에서 언급한 부분과 비슷한데, 실제 사업하는 사람과 남의 돈을 갖고 투자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위 창업가의 화난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네, 저도 실은 잘 모르죠.”라고 대답하지만, 이 분의 그 절실한 마음가짐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 분보다 더 절실한 입장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나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집으로 1원도 못 가져가면서 정말 아슬아슬하고 힘들게 일했던 경험이 있다. 이 창업가는 모든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가져가고 있었다. 펀드레이징이 힘들지만, 그래도 회사만 잘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여기에 투자할 수 있는 VC 돈이 현재 한국에는 넘쳐흐른다. 이와 반대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 2010년도는 정말 돈 구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웠던 시기였다.

실은, 내가 미국에서 일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기술도 다르고, 비즈니스도 다르고, 시장도 다르고, 모든 환경이 다르므로, 이 창업가의 고민이나 이 분의 비즈니스에 대한 건 내가 전혀 모른다. 내가 가진 스타트업 운영 경험은 이미 구닥다리 경험이기 때문에, 이 분에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일이 안 풀릴 때 느끼는 그 절실함, 이건 시대를 초월하는 감정이고, 많은 창업가가 느끼는 이 절실함을 나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런 힘듦이나 절실함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면,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건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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