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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의 차별화

최근에 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많은 회사와 비즈니스들을 보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정말로 이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그런 비즈니스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거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뭔가 갑자기 바뀌는 거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DNA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약간의 새로운 변화가 있는 익숙함에 더 끌린다. 갑자기 너무나 새로운 게 나타나면, 이게 좋은 비즈니스가 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다.

기존에 존재하는 비즈니스보다 더 빠르고(faster), 더 좋고(better), 더 저렴한(cheaper)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점진적 혁신을 추구한다고 한다. 실은, 대부분 한국 스타트업이 다른 서비스보다 조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점진적 혁신 카테고리에 속하는데, 이런 스타트업 대표들이 투자자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제품을 내가 5개 이상 알고 있는데, 그 회사들이랑 차별점이 뭔가요?” 또는 “내가 보기에 다 똑같은 회사들이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만드는 거 같은데, 우리만의 진입장벽은 뭐예요?” 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나도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기존 배달 서비스보다 더 빠르게 배달하고,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보다 더 맛있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보다 무려 10%나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한 서비스들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이고, 이로 인해 대체되는 기존 회사들은 망하겠지만, 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비슷한 분야의 새로운 회사들이 계속 창업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진입장벽이 약한 차별화 전략으로 과연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

이런 회사는 대부분은 본인들이 타사보다 실행력이 엄청 강하다고 한다. 그 실행력이 강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면, 오랫동안 같이 고생한 가족 같은 팀, 회사와 고객만을 생각하는 벤처 정신, 발로 뛰는 화이팅, 그리고 말보다는 액션이 앞서는 성향 등이 언급된다. 그러면 나는 다른 팀도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팀만의 실행력의 차별점은 또 뭐냐고 물어보고, 여기서 똑같은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더는 거의 없는 이 세상에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갖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고, 실행력이 우리의 차별점이라면, 이걸 증명하려면 가장 효과적이고, 실은 유일한 방법은 그 실행력이 만들어내는 차별화된 ‘숫자’ 이다. 이커머스 비즈니스라면, 우리랑 완전히 똑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우리가 다르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매출, 성장, 사용자 등의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실행한다면, 이건 그 회사의 무형의 화이팅이 아니라 유형의 숫자로 그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유료화냐 아니냐

paid-vs-free유료화. 이 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창업가마다 다를 것이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회사가 생존하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거에 대해서는 전원 동의할 것이다. 힘들게 팀을 만들었고, 더 힘들게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실은 이걸 고객한테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게 가장 힘들다.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무형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주로 초반에는 무상으로 서비스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유료화 전환을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보다는 ‘언제’ 인 거 같다.

언제부터 우리 서비스를 유료화 전환해야 할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고, 많은 우리 투자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을 하고 있다. 작년에 나도 이 부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분들과 이야기도 해봤는데,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한번 정리해본다.

솔직히 물리적인 제품을 고객한테 판매하고 배달해주는 전형적인 이커머스 비즈니스는 첫날부터 유료화를 시작하면 된다. 이는 돈을 받고 물건을 판매하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런 회사들이 돈을 벌 방법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 과금, 또는 광고로 인한 수익, 이 정도인 거 같다(물론, 깊게 들어가 보면 굉장히 다양해진다). 서비스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B2B 소프트웨어 회사, 드롭박스나 에버노트와 같은 삶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B2C 서비스, 또는 게임업체 정도가 있을 거 같다. 실은 이런 스타트업도 제품을 출시하고 바로 유료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반에는 무료로 시장에 풀고, 이를 미끼로 사용자들을 lock-in 시킨 후에 유료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우리한테 너무나 익숙한 전략이다.

“BM을 붙인다”라는 말을 한국에서는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의 유료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음식, 화장품, 패션 커뮤니티로 시작한 컨텐츠 스타트업들이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유발하면서 사용자층을 확보한 후에, 비즈니스모델을 붙여서 이커머스 플레이 또는 광고 노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 회사들도 과연 그 유료화 시점이 언제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는 걸 옆에서 봤다. 회원이 1백만 명일 때가 그 시점인지, 회원들이 포스팅하는 컨텐츠가 하루에 1만 개가 되었을 때 인지, 평균 체류 시간이 7분 이상일 때인지, 비즈니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큰일이다.

유료화 시점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만약에 내가 소셜미디어와 같은, 광고가 거의 유일한 비즈니스모델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트래픽, 높은 체류 시간, 많은 인당 방문 페이지수가 있어야지만 의미 있는 광고 수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광고 단가는 아직 낮으므로, 모바일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비즈니스는 당분간 돈 벌 생각은 하지 말고, 가장 빨리 스케일 할 수 있는 전략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괜히 어중간한 수치에 도달했을 때 광고를 노출하다 보면, 회사는 상상 이상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어중간한 트래픽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매출은 실은 굉장히 낮은데, 그동안 짜증 나는 광고를 보지 않고도 재미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던 기존 사용자들을 화나게 해서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도 못 벌고, 고객도 떠나가는 이중 위기가 회사 닥칠 수 있다. 계속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광고도 노출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게 말같이 쉽지는 않다. 일단 광고를 보여주기 시작하면, 나같이 광고를 싫어하는 사용자들을 획득하는 게 쉽지 않고, 절대적인 고객 수가 모자라면, 의미 있는 광고수익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은 회사가 사용자 확보와 수익 창출이라는, 어떻게 보면 초기에는 상반된 개념의 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없는 거 보다는 조금이라도 매출이 있는 스타트업이 ‘갑’이라는 건 나도 100% 동의한다. 그렇지만, 섣부른 유료화 정책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되지 않는 몇백만 원 수준의 월 매출을 발생시키면서, 훨씬 더 중요한 스케일에 타격을 주는 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 고민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도 많다. 모두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지만, 유료화 관련해서는 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광고로 돈을 버는 서비스는 일단 스케일에 무조건 집중하고, 매출은 조금 나중에 걱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먼저 스케일하고, 매출은 나중에 걱정’하는 모델을 믿는 투자자들을 찾아서, 성장해서 돈 벌기 전까지는 계속 투자를 유치하라고 한다. 괜히 어정쩡한 시점에 광고를 노출해서 돈도 못 벌고, 성장도 못 하는 상황에 갇혀버리면, 이 비즈니스는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들은 스케일도 중요하지만, 고객당 매출에 더 집중하면서 유료화 정책을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spinbackup.com/blog/free-vs-paid-why-move-to-paid-account/>

깊은 틈새

Siren Care라는 스마트 양말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좀 갸우뚱했다. 우리가 입는 모든 것에 ‘스마트’를 갖다 붙이면 멋져 보이지만, 스마트 양말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에 내가 말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일단 일반인들을 위한 양말이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양말이었다. 제1형과 2형 당뇨병 환자들한테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은 당뇨발인데, 이게 관리가 제대도 안 되면 이 중 25%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말에 있는 센서를 통해서 발의 감염상태나 온도 변화를 24시간 감시하고 저장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들한테 발을 확인해보거나 병원에 가라는 알림을 전달해주는 게 이 양말의 핵심이다.

실은 나는 웨어러블 제품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 몸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것은 – 그것도 별도의 외부 기기가 아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이미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기기를 통해 – 굉장히 멋지고 미래지향적인 거 같지만, 대부분의 기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웨어러블 회사들을 검토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기가 아닌,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기기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흔쾌히 열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만큼 시장도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스마트 양말을 내가 관심 갖고 봤던 이유는,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삶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고객들에게 반드시 즉시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들에게 당뇨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발을 절단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서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 제품은 있으면 좋은 기기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깊은 틈새’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2,9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이 중 150만 명이 당뇨족궤양을 경험하고, 10만 명이 발을 절단한다고 한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2,900만 명이 될 수도 있고, 10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두 숫자 모두 틈새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 2,900만 명 모두에게 당뇨발 발병 확률이 존재하고, 이는 생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틈새시장이 될 수가 있다. 나도 우리 식구 또는 내가 당뇨에 걸리면, 이 스마트양말은 단순한 옵션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될 것 같다(물론, 회사가 마케팅하는 대로 양말이 스마트하다는 가정하에)

이런 프레임은 굳이 웨어러블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사람한테 있으면 편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 시장 크기는 큰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큰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크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 볼륨으로 승부하거나, 또는 무료로 배포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들을 lock-in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사람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고민은 시장 크기이다.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고객은 존재하지만, 그 시장이 작아서 볼륨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고가전략이다. 볼륨은 적지만,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론은, 절대다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장래가 밝다. 시장을 선점하면,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외모와 성격으로 보면 모두 다르고 가지각색이다. 스타트업도 비슷한 거 같다. 시장으로 따지면 몇 개의 분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같은 분야에서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도 깊게 들어가서 보면 모두 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나, 또는 최근에 만났던 회사 중 비즈니스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거나 아직도 방향을 못 잡은 스타트업과 이야기해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을 시작했으면,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조금 다르게 – 가끔 완전히 다르다 –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의 교집합이 지금 당장 내가 그나마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교집합이라서 매우 작겠지만, 이렇게 작게 시작해서 금방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그리고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창업가가 본인 또는 팀의 능력과 스킬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일에만 초점을 맞춰서 일을 벌인다. 즉, 내가 잘 못 하거나 아예 할 수 없는 일들에 계속 도전을 하므로 회사가 성장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단 이 교집합을 제대로 공략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와 자신감이 형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팀과 실력을 강화한 후 다른 더 큰 영역으로 확장하는 게 너무 당연한 접근 전략이다.

여기에 하나 더. 내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이 반드시 시장이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이 원하는 건, 이 글의 문맥상으로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내가 잘하는 분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 이 세 가지의 교집합에서 출발해서 안 그래도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한테는 가장 좋은 전략이자 방향이 아닐까 싶다.

실은 비즈니스는 굉장히 유기적이고 복잡해서 수학 공식같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보면, 나는 위처럼 단순하게 공식화, 도식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길까?

david-and-goliath-shane-robinson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송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많은 스타트업이 MailChimp를 사용한다. 이 분야에서는 워낙 독보적인 제품이라서, 메일침프라는 이름 또는 이 회사의 로고인 침팬지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메일침프를 자주 사용하다가 최근에 오랜만에 사용해봤는데, 이 서비스의 깊이와 세밀함에는 항상 감동과 감탄을 동시에 한다. 참고로 메일침프는 2001년 4월에 창업된 ‘늙은’ 스타트업인데, 메일침프를 통해서 한 달에 약 100억 개의 마케팅 이메일이 전 세계로 발송된다. 비상장 회사라서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수는 없지만, 년 매출은 약 2,200억 원 ~ 4,4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건, 이 회사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투자를 유치하지 않았다.

한때 나는 메일침프를 상당히 깊게 사용하는 유저였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용자 시나리오를 이보다 더 깊게 고민한 제품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메일침프를 사용하다 보면 “와, 이런 것까지 생각을 했다니” 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메일침프의 창업자들이 이메일 마케팅의 도사들이라서 창업 초기부터 제품을 설계할 때 이런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해서 완벽한 제품을 만든 것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내가 초기 제품을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제품 수정(=product iteration) 과정을 거치면서, 더 좋은 제품으로 진화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유저수가 늘어나고, 여러 가지 사용자 경험과 시나리오들이 발생하면서, 이에 발맞춰서 지속해서 제품을 수정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한 달에 100억 개의 이메일, 일 년에 1,200억 개의 이메일을 발송하면서, 이메일 마케팅 관련해서는 상상가능한 웬만한 사용자 시나리오가 이 서비스에 잘 녹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메일침프는 아직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면서, UI/UX도 계속 수정하고 있다.

아직도 대기업의 카피 현상을 두려워하는 창업가들이 시장에 많다. 이 분들의 전반적인 입장은, “우리 서비스가 지금은 월등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맘먹고 카피하려고 하면, 우리는 참 위험해져요.”이다. 우리 주위를 보면, 대기업들이 작은 스타트업의 제품을 그대로 카피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장성이 있고, 돈이 되면, 누구나 다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서 경쟁할 수 있다. 결과를 보면 대기업이 이런 카피 전략을 구사해서 작은 스타트업을 죽이는 사례도 존재하지만, 예상외로 돈과 자원이 훨씬 더 많은 대기업이 그렇지 못하고 고전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뛰어난 인재와 돈이 넘쳐 흐르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이 작은 회사가 하는 서비스를 금방 카피해서 이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각도에서 봤을 때, 한국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네이버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스타트업이 잘하는 거 같으면 이들을 카피하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봤다. 성공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30명 이하의 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유사 사업을 접는 것도 우리는 목격한 적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메일침프와 같은 다윗이 있으므로 골리앗이 항상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작은 회사들의 엄청 빠른 product iteration, 그리고 그 결과물인 ‘세밀한 사용자 경험의 완벽한 오너쉽’이 바로 대기업도 잘 넘지 못하는 커다란 진입장벽을 만들 수 있다. 실은 메일침프와 같은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이를 입증하듯이 이미 비슷한 여러 서비스가 존재한다. 심지어는, 아마존도 더 저렴한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만, 사용자들이 정말로 좋아하고,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진화시키는 건 그리 쉽지가 않다. 아니, 정말로 어렵다. 메일침프와 유사한 다른 서비스들은 – 대기업 제품 포함 – 껍데기만을 보면 메일침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메일침프의 경우, 제품을 깊게 사용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미묘한 섬세함과 사용자 경험이 최적화되어 있다. 아마도 수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제품 사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기능, UI, 경험을 빠르게 고치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지속적인 iteration이 가능한 속도와 민첩성은 대기업들이 카피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게 메일침프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시장이 크고, 이 시장에서 만들 수 있는 매출이 크다면, 수많은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같은 제품을 만들고, 서로 카피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 인력, 그리고 자원이 많은 대기업도 셀 수 없을 정도의 product iteration을 통해 오랫동안 시장과 사용자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용자 경험 자체를 완전히 own 하는 스타트업들과 맞짱 뜨는 건 쉽지 않다. 겉으로만 보면, “대량 메일 솔루션? 그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지만 메일침프를 통해 매달 700만 명의 사용자들이 1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형성된 관계와 제품에 녹아 들어가 있는 사용자 경험은 아무리 돈과 인력이 있어도 단시간 내에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첩성, 끊임없는 product iteration, 지속적인 피드백 수용, 시장 경청, 과감한 실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uefdelhi.wordpress.com/2014/06/19/acromegaly-the-hidden-defect-of-goliaths-gigan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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