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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휴에 대한 단상

일을 하다 보면 나 혼자 할 때보다 다른 회사랑 같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위해 많은 회사가 파트너십을 통한 제휴나 소위 말하는 콜라보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런 게 초기 스타트업한테는 득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초기 스타트업이 제휴마케팅을 하는 이유는, 본인들이 워낙 작고, 돈이 없으니까, 다른 스타트업이나 조금은 더 큰 기업의 힘을 빌려서 홍보와 고객획득을 더 저렴하고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이 시점에 남의 역량을 leverage 하는 이 전략은 내가 보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단,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잘 모르는 두 스타트업의 콜라보이다. 둘이 워낙 작지만, 타겟고객층이 비슷하면, 그래도 혼자 하는 거 보다 둘이 같이 뭔가 하면 그 효과는 조금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하지만, 이 파트너십은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가 너무 뻔하다. 두 회사가 서로한테 바라는 것만 있지, 줄 수 있는 건 없다. 서로에게 도움은 안 되고, 제휴를 준비하는데 들어간 돈과 시간만 낭비된다.

다른 형태의 제휴는 매우 큰 플랫폼이나 마켓플레이스의 규모와 트래픽을 활용해서 작은 스타트업의 상품을 판매하는 거다. “우리 제품을 매주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 판매할 수 있는 대박 기회”라는 기대를 하고 열심히 준비하지만, 대부분 스타트업의 피드백을 들어보면 그 결과에 대해선 상당히 불만족스러워한다. 실은 이런 형태의 제휴는 큰 회사에는 좋다. 어차피 롱테일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덩치가 큰 회사는 이 많은 작은 스타트업의 상품이 하나씩만 팔려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잘 팔리면 좋고, 안 팔려도 비즈니스에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구색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는 치명적이다. 특히, 대형 플레이어들과 제휴하려면,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고, 항상 이 큰 회사의 정책에 끌려다니다 보면 우리보다는 남 좋은 일만 하게 된다. 한쪽만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이런 불균형이 발생한다. 또한, 작은 스타트업은 이 제휴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대형 플랫폼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그러다 보면 실제 해야 할 일에 소홀해질 수 있다.

두 개의 대형 기업이 제휴하면, 이건 성공확률이 조금 더 높다. 양쪽 모두 상대방이 갖지 않은 걸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동등한 파트너십이 가능하다. 다만, 서로 자존심이 강하고, 각자 원하는 걸 주장할 수 있는 덩치가 있으므로 제휴 조건 조율에 애먹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제휴를 제대로,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하려면, 결론은 우리가 잘 돼야 지만 가능하다. 그래야지만, 우리도 남이 원하는 걸 갖게 되고, 이게 우리의 힘과 협상력이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게 더 크고, 남의 힘을 이용하려고만 하면, 우리가 항상 아쉬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이렇게 되면 동등한 파트너십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성장 조절하기

growth-copy12-650x552최근에 실리콘밸리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 특히, Y Combinator와 관련된 사람들 – 꽤 많은 사람이 월 30% 성장을 강조한다. 매출이든 사용자든, 회사에 중요한 수치를 매달 30%씩 성장시키는 건데, 얼핏 이 30이라는 숫자를 보면, 그렇게 큰 수치 같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월 매출 100만 원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다음 달에는 130만 원 하면 되고, 또 그 다음 달에는 169만 원 하면 된다. 하지만,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매달 30%씩 성장하면, 1년 동안 23배 성장하게 된다. 즉, 1월 매출 100만 원인 스타트업이 12월에는 2,300만 원 매출을 달성한다. ‘미친 성장’이다.

잘 exit 한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한 분들, 또는 유니콘 회사에 투자해서 이런 성장을 가까이 지켜본 분들은, 잘 된 회사 중 초기에 이렇게 미친 듯이 성장하지 않은 회사는 없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회사에 투자해 본 적이 없어서,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J 커브를 그리면서 성장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는 성장은커녕, 매출이 감소하는 경우도 많고, 어떤 달은 성장하고, 그 다음 달은 다시 감소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이 회사들이 나름 잘하고 있고, 언젠가는 큰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우리 투자사들이 시간이 갈수록 계속 성장하는 곡선 또는 직선을 그렸으면 좋겠다. 월 30% 성장이 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비하더라도, 꾸준한 성장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 투자사 중, 절대적으로 큰 수치는 아니지만, 그 전달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회사가 있다. 3월 중순의 매출로 봐서, 3월이 마감될 때는 그 전달 대비 약 100% 성장도 가능할 거 같았고, 팀원들은 역대 최고의 성장과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서 제품 고도화와 마케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이 팀한테 조심스럽게 제안한 건, 인위적으로 성장을 조절하자는 거였다. 즉, 전 달 대비 2배의 성장을 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20%만 성장하자고 했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면 마케팅과 같은 판매 관련 활동을 일부러 늦추자고 했다. 그래서 3월 매출을 2월 대비 20% 성장시키고, 4월 초부터 다시 성장을 가속해 4월 매출 또한 3월 대비 20% 성장하자고 했다.

내가 이렇게 성장을 조절하자고 제안한 배경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커머스를 하는 이 회사는 아마도 자체적으로 돈을 벌기 전에, 또 외부 펀딩을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받지 않고 자생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이커머스의 특성상, 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펀딩을 받기 위해서 투자자들과 만나면, 이들이 모두 보고 싶어 하는 건 지속해서 성장하는 비즈니스이다. 매달 30%씩 성장을 못 하더라도, 매달 성장하는 걸 보여줘야지만, 이 팀이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고, 이 비즈니스와 시장도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투자자들은 믿을 것이다. 만약에 두 달 연속 100% 성장하고, 그다음 달 반 토막 나고, 그 다음 달에 또 조금 성장하지만, 즉시 또 감소하는 롤러코스터 곡선을 그리면, 대부분 투자자는 이 비즈니스를 좋지 않게 볼 것이다. 왜 비즈니스가 지속해서 성장하지 못하냐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텐데,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게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달 조금씩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배움 때문인데, 단시간 안에 비즈니스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면, 회사가 그 성장을 견인하면서 이를 통해 배움을 얻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성장에 의해서 회사가 견인되면서 급한 불 끄는 데 급급해지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성장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 성장을 가속하거나, 필요하면 늦출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외형만 커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좋은 회사들은 대부분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성장의 페이스에 맞춰서 회사가 조절되기보다는, 회사의 페이스에 맞춰서 의도적으로 성장을 조절한다. 이 회사들은 다음 달에 20%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어떤 제품을 판매할지, 어떤 마케팅을 할지, 페이스북에서 얼만큼의 마케팅 예산을 집행해야 할지, 꽤 정확하게 알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어떤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채용도 계획적으로 적시에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이렇게 성장을 조절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대부분, 조금이라도 커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조금 성장하는 거 보다는 많이 성장하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 성장을 현명하게 계획하고 조절해서, 꾸준한 성장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이미지 출처 = Rental Housing Business>

실행의 차별화

최근에 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많은 회사와 비즈니스들을 보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정말로 이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그런 비즈니스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거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뭔가 갑자기 바뀌는 거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DNA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약간의 새로운 변화가 있는 익숙함에 더 끌린다. 갑자기 너무나 새로운 게 나타나면, 이게 좋은 비즈니스가 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다.

기존에 존재하는 비즈니스보다 더 빠르고(faster), 더 좋고(better), 더 저렴한(cheaper)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점진적 혁신을 추구한다고 한다. 실은, 대부분 한국 스타트업이 다른 서비스보다 조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점진적 혁신 카테고리에 속하는데, 이런 스타트업 대표들이 투자자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제품을 내가 5개 이상 알고 있는데, 그 회사들이랑 차별점이 뭔가요?” 또는 “내가 보기에 다 똑같은 회사들이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만드는 거 같은데, 우리만의 진입장벽은 뭐예요?” 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나도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기존 배달 서비스보다 더 빠르게 배달하고,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보다 더 맛있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보다 무려 10%나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한 서비스들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이고, 이로 인해 대체되는 기존 회사들은 망하겠지만, 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비슷한 분야의 새로운 회사들이 계속 창업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진입장벽이 약한 차별화 전략으로 과연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

이런 회사는 대부분은 본인들이 타사보다 실행력이 엄청 강하다고 한다. 그 실행력이 강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면, 오랫동안 같이 고생한 가족 같은 팀, 회사와 고객만을 생각하는 벤처 정신, 발로 뛰는 화이팅, 그리고 말보다는 액션이 앞서는 성향 등이 언급된다. 그러면 나는 다른 팀도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팀만의 실행력의 차별점은 또 뭐냐고 물어보고, 여기서 똑같은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더는 거의 없는 이 세상에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갖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고, 실행력이 우리의 차별점이라면, 이걸 증명하려면 가장 효과적이고, 실은 유일한 방법은 그 실행력이 만들어내는 차별화된 ‘숫자’ 이다. 이커머스 비즈니스라면, 우리랑 완전히 똑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우리가 다르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매출, 성장, 사용자 등의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실행한다면, 이건 그 회사의 무형의 화이팅이 아니라 유형의 숫자로 그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유료화냐 아니냐

paid-vs-free유료화. 이 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창업가마다 다를 것이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회사가 생존하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거에 대해서는 전원 동의할 것이다. 힘들게 팀을 만들었고, 더 힘들게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실은 이걸 고객한테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게 가장 힘들다.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무형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주로 초반에는 무상으로 서비스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유료화 전환을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보다는 ‘언제’ 인 거 같다.

언제부터 우리 서비스를 유료화 전환해야 할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고, 많은 우리 투자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을 하고 있다. 작년에 나도 이 부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분들과 이야기도 해봤는데,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한번 정리해본다.

솔직히 물리적인 제품을 고객한테 판매하고 배달해주는 전형적인 이커머스 비즈니스는 첫날부터 유료화를 시작하면 된다. 이는 돈을 받고 물건을 판매하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런 회사들이 돈을 벌 방법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 과금, 또는 광고로 인한 수익, 이 정도인 거 같다(물론, 깊게 들어가 보면 굉장히 다양해진다). 서비스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B2B 소프트웨어 회사, 드롭박스나 에버노트와 같은 삶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B2C 서비스, 또는 게임업체 정도가 있을 거 같다. 실은 이런 스타트업도 제품을 출시하고 바로 유료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반에는 무료로 시장에 풀고, 이를 미끼로 사용자들을 lock-in 시킨 후에 유료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우리한테 너무나 익숙한 전략이다.

“BM을 붙인다”라는 말을 한국에서는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의 유료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음식, 화장품, 패션 커뮤니티로 시작한 컨텐츠 스타트업들이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유발하면서 사용자층을 확보한 후에, 비즈니스모델을 붙여서 이커머스 플레이 또는 광고 노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 회사들도 과연 그 유료화 시점이 언제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는 걸 옆에서 봤다. 회원이 1백만 명일 때가 그 시점인지, 회원들이 포스팅하는 컨텐츠가 하루에 1만 개가 되었을 때 인지, 평균 체류 시간이 7분 이상일 때인지, 비즈니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큰일이다.

유료화 시점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만약에 내가 소셜미디어와 같은, 광고가 거의 유일한 비즈니스모델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트래픽, 높은 체류 시간, 많은 인당 방문 페이지수가 있어야지만 의미 있는 광고 수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광고 단가는 아직 낮으므로, 모바일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비즈니스는 당분간 돈 벌 생각은 하지 말고, 가장 빨리 스케일 할 수 있는 전략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괜히 어중간한 수치에 도달했을 때 광고를 노출하다 보면, 회사는 상상 이상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어중간한 트래픽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매출은 실은 굉장히 낮은데, 그동안 짜증 나는 광고를 보지 않고도 재미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던 기존 사용자들을 화나게 해서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도 못 벌고, 고객도 떠나가는 이중 위기가 회사 닥칠 수 있다. 계속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광고도 노출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게 말같이 쉽지는 않다. 일단 광고를 보여주기 시작하면, 나같이 광고를 싫어하는 사용자들을 획득하는 게 쉽지 않고, 절대적인 고객 수가 모자라면, 의미 있는 광고수익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은 회사가 사용자 확보와 수익 창출이라는, 어떻게 보면 초기에는 상반된 개념의 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없는 거 보다는 조금이라도 매출이 있는 스타트업이 ‘갑’이라는 건 나도 100% 동의한다. 그렇지만, 섣부른 유료화 정책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되지 않는 몇백만 원 수준의 월 매출을 발생시키면서, 훨씬 더 중요한 스케일에 타격을 주는 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 고민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도 많다. 모두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지만, 유료화 관련해서는 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광고로 돈을 버는 서비스는 일단 스케일에 무조건 집중하고, 매출은 조금 나중에 걱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먼저 스케일하고, 매출은 나중에 걱정’하는 모델을 믿는 투자자들을 찾아서, 성장해서 돈 벌기 전까지는 계속 투자를 유치하라고 한다. 괜히 어정쩡한 시점에 광고를 노출해서 돈도 못 벌고, 성장도 못 하는 상황에 갇혀버리면, 이 비즈니스는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들은 스케일도 중요하지만, 고객당 매출에 더 집중하면서 유료화 정책을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spinbackup.com/blog/free-vs-paid-why-move-to-paid-account/>

깊은 틈새

Siren Care라는 스마트 양말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좀 갸우뚱했다. 우리가 입는 모든 것에 ‘스마트’를 갖다 붙이면 멋져 보이지만, 스마트 양말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에 내가 말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일단 일반인들을 위한 양말이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양말이었다. 제1형과 2형 당뇨병 환자들한테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은 당뇨발인데, 이게 관리가 제대도 안 되면 이 중 25%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말에 있는 센서를 통해서 발의 감염상태나 온도 변화를 24시간 감시하고 저장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들한테 발을 확인해보거나 병원에 가라는 알림을 전달해주는 게 이 양말의 핵심이다.

실은 나는 웨어러블 제품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 몸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것은 – 그것도 별도의 외부 기기가 아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이미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기기를 통해 – 굉장히 멋지고 미래지향적인 거 같지만, 대부분의 기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웨어러블 회사들을 검토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기가 아닌,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기기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흔쾌히 열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만큼 시장도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스마트 양말을 내가 관심 갖고 봤던 이유는,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삶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고객들에게 반드시 즉시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들에게 당뇨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발을 절단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서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 제품은 있으면 좋은 기기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깊은 틈새’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2,9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이 중 150만 명이 당뇨족궤양을 경험하고, 10만 명이 발을 절단한다고 한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2,900만 명이 될 수도 있고, 10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두 숫자 모두 틈새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 2,900만 명 모두에게 당뇨발 발병 확률이 존재하고, 이는 생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틈새시장이 될 수가 있다. 나도 우리 식구 또는 내가 당뇨에 걸리면, 이 스마트양말은 단순한 옵션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될 것 같다(물론, 회사가 마케팅하는 대로 양말이 스마트하다는 가정하에)

이런 프레임은 굳이 웨어러블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사람한테 있으면 편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 시장 크기는 큰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큰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크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 볼륨으로 승부하거나, 또는 무료로 배포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들을 lock-in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사람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고민은 시장 크기이다.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고객은 존재하지만, 그 시장이 작아서 볼륨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고가전략이다. 볼륨은 적지만,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론은, 절대다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장래가 밝다. 시장을 선점하면,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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