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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 회사 그 자체다

내 세대보다 어린 벤처인이라면 Khosla Ventures의 비노드 코슬라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을거 같은데, 내가 기계공학을 포기하고 스타트업 분야로 뛰어들게 한 간접적인 영향을 지대하게 행사한 아주 고마운 분이다. 내가 1999년도 스탠포드 수업에서 처음 코슬라씨를 만나게 된 이야기는 여기에서 전에 한번 쓴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안 알려져 있고, 최근에 내가 실리콘밸리 쪽으로 거의 안 가서 이 분의 소식을 못 듣다가, 얼마전에 Y Combinator의 샘 알트만 대표가 비노드 코슬라와 1대 1 인터뷰 하는 영상을 통해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많이 늙었지만, 광채가 나는 눈과, 아직도 강한 인도 억양으로 돌직구를 뿜는 모습은 참 반가웠고, 인상적이었다. 산전수전 다 경험했고, 여러 유니콘에 투자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 노신사가 항상 강조하는건 ‘사람’과 ‘팀’이다. 이 분야에 있다보면 워낙 능력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이 사람들의 주옥같은 명언을 많이 듣지만, 내가 99년도 스탠포드 유학시절 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 관련 말들은 비노드 코슬라가 한 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대표이사는 시간의 80% 이상을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데 사용해야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금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남도록 하는데 사용해야한다”와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 이다.

얼마전에 내가 좋은 창업가의 자질 중 하나가 바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멀리서 찾지 않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만봐도 이 말이 너무나 맞다는걸 매일 느끼고 있다. 결국 million dollar 비즈니스와 billion dollar 비즈니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사람들이 이 회사를 이끌고, 이들 밑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냐인거 같다. 잘 되는 회사를 방문했을때, 그 회사의 사람들한테 받는 에너지와 감동이 남다른데, 이걸 정량화해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건 바로 이런 좋은 사람들이 외부로 풍기는 ‘아우라(에네르기파?)’ 때문인거 같다.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실리콘밸리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채용의 제 1원칙은, 모든 매니저들이 자기보다 일 잘하고 똑똑한 부하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장은 자기보다 똑똑한 부사장을 채용해야하고, 부사장은 본인보다 더 똑똑한 이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로 가다보면, 회사에서 가장 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말단 직원이고,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사람은 대표이사가 되어야 하는데, 뭐, 현실적으로는 이렇지 않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채용을 하면, 좋은 사람을 채용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인거 같다(아이러니컬 한 건, 이 말을 유행시킨 사람은 이젠 “이렇게 회사를 경영하면 안되는 대표적인 예”가 되어 버린 에버노트의 필 리빈이다).

나는 큰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채용해 본 경험도 없어서 내가 채용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넌센스이긴 한데, 미친듯이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점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이 단어의 정의이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케하고, 절대 할 수 없는걸 현실화하려면 합리적으로 행동해서도 안되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하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밖에 만들 수 없는데, 미친 성장과 유니콘 회사는 합리와 이성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초고속 성장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힘들게 채용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team 되고, 이 팀이 결국엔 내가 만들 회사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면서 사람을 채용하길 바란다. 결국, 비즈니스의 승패는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격책정

내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들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격’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나, 소비재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나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가격을 책정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MBA 가면, 이 주제만 다루는 과목이 여러 개 있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정책은 바로 그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 차이가 클수록 더 많이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판매 가격을 비용보다 무작정 높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경쟁 때문이다. 유일하게 우리만 제공하고, 우리 아니면 절대로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판매한다면, 독점이기 때문에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비즈니스는 거의 없다. 올리브영 같은 가게에 가면 마스크팩 종류가 수십, 수백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가격은 1,000원 ~ 2,000원 이다. 비슷한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만 가격을 높이면 아무도 안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 당 10,000원 하는 마스크팩도 시장에서는 볼 수 있는데, 굉장히 비싸고 탁월한 효과가 있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SK-II와 같은 고급 화장품 회사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제품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더 비싸게 판매하고, 후자의 경우는 브랜드파워로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경우다(좋은 브랜드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소프트웨어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다. 마이크로소프트같이 독점적인 위치에 있으면, 솔직히 부르는 게 값이고, 특히 윈도우스나 오피스가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값이 정말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않다면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에 Windows 외의 다른 좋은 품질의 OS도 많이 등장했고, 오피스를 대체할만한 무료 사무용 소프트웨어도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브랜드 때문인지, 아직도 기업에서는 오피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아직도 PC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제품을 애용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품질면에서도 아직 마이크로소프트가 월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브랜드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이 고객한테 얼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분야의 회사가 제공하는 비슷한 제품의 가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라면, 제조업보다 제조원가의 장점은 있기 때문에 – 소프트웨어는 한 카피 만드는거랑 백만 카피 만드는거랑 제조원가는 비슷하다. 요새는 웹으로 뿌리는 SaaS라서 더욱더 그렇다. 즉, 한계비용이 제로라는 장점이 존재한다 – 조금 더 가격을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복잡한 계산을 통해서 가격을 산정하기보단, 일단 우리와 비슷한 외국계와 국산 소프트웨어 회사의 가격 정책과 거의 같게 가거나, 이들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책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실은, 이 방법이 가장 쉽고, 판매할 때도 편하다. “우린 우리 경쟁사 A 사보다 더 저렴합니다”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뭐, 이렇게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래도 가격을 책정할 때 우리 소프트웨어가 고객한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원화로 한 번 산정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업무를 자동화해주는 B2B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라면, 우리 소프트웨어를 기업이 도입하면 일 년에 얼마 정도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보고, 이 비용을 12로 나눈 금액을 매달 기업에 과금해 볼 수 있다. 만약에 콜센터를 자동화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특정 기업이 사용해서, 콜센터 직원 수를 10명에서 5명으로 줄일 수 있고, 콜센터 직원 한 명의 연봉이 5,000만 원이라면, 우리 소프트웨어는 한 해에 2.5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해준다. 매달 약 2,100만 원을 절감해줄 수 있고, 이 회사 사장님한테 우리 소프트웨어 월 사용료를 2,100만 원 과금할 수 있다.

실은 위의 시나리오는 좀 이상적이긴 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논리가 통하겠지만, 아직 B2B 소프트웨어를 돈을 내고 사용한다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한국 같은 곳에서는 1년에 2.5억 원 절감 효과가 명확해도, 이 정도 금액을 소프트웨어 사용료로 지급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논리로 고객을 설득하고, 결국 좀 깎더라도 일단 이 금액에서 네고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에 2,100만 원을 절감해주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월 20만 원을 과금하는 건 정말 멍청하고, 매출을 스스로 차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낮은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도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 한대로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가격을 낮게 책정해서 엄청나게 많은 기업을 고객으로 만들어서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회사도 있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내가 말 한대로, 우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고객에게 확실한 가치를 제공하고, 그 가치가 우리 경쟁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보다 명확하게 월등한 고급 가치라면, 가격을 굳이 낮추지 않더라도 고객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된 가격을 받으면서 볼륨까지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고객이 구매하지 않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고객한테 제공하는 가치가 높지 않고, 우리 제품 가격 대비 그 가치가 낮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면 가격을 인하해야 하지만, 명확하게 정량화할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것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고 사는 편리함

spotifySubscription 서비스에 대해서는 전에 많은 글을 올렸고, 난 아직도 정기구독 서비스만큼 한번 해놓으면 미래의 비즈니스가 조금 수월해질 수 있는, 이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성공하고 있는 섭스크립션 서비스가 미국같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이 있지만, 솔직히 왜 그런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될 거 같은데 잘 안되면, 이건 계속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올해도 계속 한국에서 정기구독하는 서비스가 많이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기구독서비스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3개월, 6개월, 12개월 등의 플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한 방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6개월 치 섭스크립션을 구독하면 6개월 동안 한 명의 고객한테 정기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매출을 한 번에 확보할 뿐만 아니라 즉시 수금할 수 있다. 이런 고객의 수가 늘어나면 회사는 이 많은 현금을 다시 재투자해서 더 좋은 플랫폼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유용한 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이렇게 한 방에 벌 수 있는 현금만큼 좋은 건 없다.

이런 꾸준한 캐시플로우가 발생하면, 꽤 정확하게 수요와 재고 예측을 할 수 있다. 12개월 섭스크립션 고객이 1,000명이 있다면 12개월 동안 회사가 배송해야 하는 제품 숫자를 예측할 수 있고, 재고 또한 상당히 정확하게 관리해서 최소화할 수 있다. 이커머스를 하고, 판매하는 제품 수(=SKU)가 많다면, 특정 제품이 얼마만큼 팔릴지 모르니 항상 재고를 가져가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B2C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게 회사의 지상과제이다. 섭스크립션 모델을 잘 활용하면 신규 고객 유치에 회사의 대부분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기구독 기간에는 고객을 완전히 lock-in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 기간에는 이 회사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취소하는 고객도 생기지만, 이 수치 또한 데이터가 쌓이면, 예측이 가능하다. 한 개의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한 후에 어떻게 하면 이 고객한테 다른 제품도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그 시간에 신규 고객 유치 전략에 대해서 생각하면 된다. 섭스크립션은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음악 스트리밍의 강자 스포티파이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실은 스포티파이보다 Pandora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 유료구독서비스를 마스터한 건 스포티파이다. 약 8,300만 명이 유료 사용자인데, 이는 전체 사용자의 40%나 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와 반대로 판도라는 사용자 대부분이 광고기반의 무료 서비스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참고로 판도라는 미국에서만 들을 수 있고,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에서 들을 수 있다). 실은 나도 미국에서부터 애용하던 스포티파이를 한국으로 이사 와서도 계속 매달 $9.99를 내면서 이용하는데, 실은 광고 기반의 무료 서비스로도 대부분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도 유료 서비스를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 때문이라기보단, “편리함” 때문이다. 즉, 겉으로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매달 $9.99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고의 방해 없이, 내가 음악을 하나씩 선택하지 않고, 자동으로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편리함”에 매달 돈을 지급 하는 것이다.

Subscription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거나, 운영하는 팀은 이 개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서 기꺼이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고객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편리함 때문에 돈을 기꺼이 지급하는 고객도 시장에는 많기 때문이다. 솔직히 음악 스트리밍에 내는 돈이 아까우면, 그냥 유튜브에서 음악을 일일이 검색하고 들어도 되지만, 대부분 소비자는 그게 귀찮고, 그렇게 하는데 들어가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투자해야 하는 시간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데 큰 저항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저항이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금액을 찾아서 과금하면 된다.

이 편리함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생리대, 기저귀, 개밥, 물 등은 모두 정기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이고, 섭스크립션 모델이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제품군이다.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에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받아 보면 편하다. 여기서 섭스크립션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똑같은 제품을 매 번 주문할 필요가 없는 편리함이다.

또 다른 편리함은 위에서 말한 스포티파이류의 편리함이다. 음악, 음식, 와인과 같은 제품의 특징은 개인마다 취향이 명확하게 다르고,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하고, 대부분 사람이 깊은 전문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 섭스크립션은 소비자가 돈만 내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알아서 골라준다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앞으로 음악의 종류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고, 선택은 더욱더 복잡해질 텐데, 나는 아마도 평생 스포티파이의 유료 고객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spotify.com>

입장료

우리는 주로 최초의 투자는 2억 원 정도를 한다. 이후, 금액은 크진 않지만, 몇 번 더 후속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 실은 초기 투자금 1~2억 원은 요새는 큰돈은 아니다. 워낙 경쟁이 심해졌고, 인력이 비싸져서, 이 돈으로 뭔가 엄청난 제품을 만들거나, 초고속 성장을 하는 회사는 드물다. 실은, 이 돈으로 MVP도 못 만드는 회사도 많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삽질만 하다가 자금을 다 소진하고, 후속 투자가 필요한 회사도 있다.

나도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1억 원 정도 투자하면 이 돈으로 엄청난 제품을 만들고, 막강한 매출과 사용자 수를 달성해서, 훨씬 큰 밸류에이션에 후속 투자를 받고, 곧바로 유니콘 회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7년 동안 9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내가 참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요새 나는 우리의 이 작은 초기 투자금은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설명해보면, 너무 초기 회사라서 제품과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대표와 팀이라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이 팀과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알아가고 싶은 경우가 자주 있다. 한 두 번 정도는 내가 회사 사무실로 찾아가고, 팀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 두시간 정도 이야기 하는 건 괜찮지만,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 팀의 시간을 뺏는 건 서로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이 팀을 내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두면서, 회사에 대해서 배우고, 제품에 대해서 배우고, 팀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면, 그때 소액의 초기 투자를 한다.

이 투자금으로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 실은 이게 모든 VC의 꿈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안 된다. 다만, 우리는 회사에 소액 투자를 해서 주주가 되었고, 이 팀은 우리의 돈을 받아서 우리와 가끔 만나서 비즈니스에 대한 업데이트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줘야 하는 어느 정도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분들한테 연락해서 조금은 귀찮게 하는 거에 대해서는,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보단 덜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소액의 초기 투자금은 이 회사를 더 알아가고, 회사의 성장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입장료는 말 그대로 어느 곳에 들어가기 위해 지급하는 돈이다. 클럽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또 돈 내고 술을 먹어야 하고, 놀이동산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놀이기구를 타려면 또 돈을 내야 하듯이, 초기 투자를 한 후에,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다.

이 후속 투자를 할 때, 초기에 이미 투자했으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일단, 초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pro-rata 권리), 이미 회사의 대표와 창업팀과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혹시나 이런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어도,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인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회사 시작부터 비즈니스를 같이 봤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참여를 했고, 시장과 고객을 분석하는 과정도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팀, 제품, 시장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팀을 처음 보는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회사의 성장이 더디고, 매출이 없고, 수치가 약하더라도, 오랜 시간 이 팀을 본 투자자는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재투자를 할 수 있다.

우리도 자주 경험하는데, 스트롱 투자사가 후속 투자가 필요할 때, 대부분의 VC가 관심 없어서 우리만 후속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은 왜 이런 회사에 또 투자하냐고 의아해하지만, 위에서 말한, 단시간 안에는 파악할 수 없는 회사의 장점을 우리는 알고, 또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상대로 잘 되는 회사도 있지만, 잘 안 되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 :)

습관을 바꾸는 훈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 원이 넘는 투자를 새로 받으면서, 한국 최초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의 영광을 곧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우리도 쿠팡의 소액주주로서 상당히 기쁘고 자랑스럽다. 대단한 기업이지만, 아직 경쟁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기업가치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아직도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쿠팡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잘 성장할 거라고 믿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른 서비스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 시장을 직접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시장과 고객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시장과 고객의 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쿠팡이나 티몬 이전에도 한국에는 지마켓을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 이커머스 사이트는 누가 봐도 깔끔 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로 인해 사용자 경험이 불편했다. 쿠팡과 티몬의 창업자들은 미국식의 UI와 UX를 많이 도입해서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한국 시장에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이걸 보고 전문가들은 원래 한국 시장은 미국같이 깔끔한 디자인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복잡한 UI를 선호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렇게 사용자들이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티몬과 쿠팡,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매우 직관적이고, 깔끔하고, 눈에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UI를 사용함으로써, 쉽고 재미있는 온라인 쇼핑의 경험을 제공했다. 여기에다가 모바일 플레이까지 합쳐지면서, 인터넷/모바일 쇼핑은 단순 구매가 아닌,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장의 온라인 쇼핑 습관도 바뀌었다. 쿠팡은 사용자들이 쉽고 깔끔하게 온라인 쇼핑을 하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의 경험도 비슷한 선상에서 설명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쿠팡맨 이전에는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고객의 물건을 문 앞에 던지다시피 하고, 빨리 다음 배달장소로 가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쿠팡맨이 등장하면서 그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객과 회사의 마지막 접점인 last mile 담당자 택배기사들의 중요성을 시장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쿠팡은 고객들이 자신들이 구매한 물건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택배기사들한테 받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 정도까진 아니지만, 많은 택배기사가 요샌 조금 더 친절해진 거 같다.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처음엔 고객의 저항도 있고, 경쟁사의 저항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뭔가를 하도록 시장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바꾸기 힘든 걸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존은 책과 세상의 모든 물건을 온라인으로 사고팔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한번 훈련된 아마존의 고객을 빼앗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Craigslist는 중고제품을 개인들이 직거래할 수 있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 오래된 UI와 최적화되지 않은 UX를 기반으로 아직도 중고거래의 일인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우리 서비스는 기존 방식을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개선하고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을 훈련하고 있는지 한 번 정도 고민해봐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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