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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수업료

우리가 VC를 처음 시작할 때 한국/미국의 업계 선배님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각자 다양한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 중 공통된 충고가 2가지 있었다:
1/ 투자를 정말 하고 싶은가? 명심할 건, VC에 입문하면 평생 fundraising 해야 한다(창업가들이 VC한테 피칭해서 fundraising을 하듯, VC들도 피칭해서 fundraising을 한다)
2/ 대부분의 VC는 첫 번째 펀드를 수업료로 사용한다(“It takes one fund to train a VC”)

오늘은 두 번째 조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VC들도 사람이고, 불확실성이 상당히 큰 벤처투자를 하므로, 투자하는 회사마다 돈을 벌 거나, 성공할 수는 없다. 아니, 실은 이와는 반대이다. 모든 VC의 포트폴리오에는 잘 되는 회사보다는 잘 안 되는 회사 수가 훨씬 더 많다. 이는 이제 갓 입문한 투자자나 수십 년 동안 투자를 한 투자자나 마찬가지이다. 한 회사가 창업되어, 성장하고, 튼튼한 기반을 갖추기까지는 예측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이기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성공방정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회사가 잘 안 되고, 예상치 못한 회사가 대박 나는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그만큼 벤처투자는 정형화된 패턴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한국에서 창업된 벤처기업 10개 중 6개가 3년 내 폐업한다는 기사를 오늘 봤는데, 나는 이 바닥의 습성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4개의 벤처기업이 3년 이상 사업을 한다는 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될 수도 있었던 비트패킹컴퍼니가 작년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이 회사에 투자되었던 돈은 170억 원 정도인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 스타트업치곤 상당히 큰 금액이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회사도 아니지만, 최근에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비트 문 닫은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한테 많이 물어본다. 그리고 투자사가 폐업하면, “원래 벤처기업이 성공확률이 낮으므로 어쩔 수 없죠.”라고 투자자들이 말하는 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이분들이 한다. 특히, 한국의 많은 VC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의 모태펀드로부터 출자를 받아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데, 정부 돈이라고 너무 대충 집행하는 게 아니냐는 공격도 한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이제 투자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간다. 이제 천천히 망하는 투자사들이 생기고 있는데, 실은 이 회사들이 폐업하는 거에 대해서 나도 똑같이 “어쩔 수 없죠”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어쩔 수 없죠”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조금 변명을 하고 싶다. 스트롱도 다양한 기관과 개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받고, 이를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현재 우리 두 번째 펀드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모태펀드도 들어와 있다. 많은 분이 우리 같은 VC가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므로, 책임감 없이 투자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정말로 잘못된 오해이다. 오히려 내 개인 돈으로 투자를 하면 편안하게, 수익성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투자를 하겠지만, 나를 믿고 돈을 주신 분들을 대신해서 투자를 하므로 우리는 정말로 신중하게 투자금을 집행한다. 그리고 우리도 투자를 잘해서 수익률이 높아야지만 계속 펀드를 만들면서 VC 업을 길게 할 수 있는데, 투자하는 회사마다 잘 안되면 우리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 업계를 떠나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제대로 된 투자자라면, 병신이 아닌 이상,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고민하고, 더 신중하게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신중하게 투자를 해도, 스타트업은 쉽지 않다. 스타트업 생태계 이해관계자들 모두 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 또한 확률 게임이다. 갈수록 더욱더 많은 회사가 창업되지만, 이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고, 살아남는 회사 중 극소수만이 좋은 비즈니스로 성장한다. 이 산업을 잘 아는 분들이 VC들의 첫 번째 펀드는 수업료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큰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여서, 신중하게 투자했고, 이 비즈니스가 많은 걸 시도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좋은 비즈니스가 되지 못했으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망한 포트폴리오 회사에 대해서, “아쉽고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VC들의 태도나 입장은 “어쩔 수 없다”가 피상적으로 보여주는 무책임과 무성의와는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한 가지 더. 한 회사가 폐업하면, 그 회사의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많은 배움을 얻는다. 왜 잘 안되었을까? 어디서 뭐가 잘 못 되었을까? 앞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뭘 다르게 해야 할까? 난 이 경험을 통해서 뭘 배었을까? 등 많은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배우고, 발전한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아주 탄탄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엄청난 회사들이 만들어진다. 물론,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유니콘을 만들려면

how to create unicorns in Korea스타트업 분야에 몸을 담고 계신다면, 유니콘 – 뿔 달리고 날개 달린 하얀 말 말고 – 에 대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관련해서 2014년, 2016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어제 내가 검색을 해보니까 CB Insights에 의하면, 2016년 2월 기준으로 한국에는 3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는데 쿠팡($5B), 옐로모바일($4B), CJ게임즈($1.79B)가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긍정적인 투자자들은 앞으로 5년~10년 후에 한국에서 최소 5개~10개의 유니콘 기업들이 더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더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될까 아니면 유니콘 제조를 공식화할 수 있을까?

나도 이 질문에 대해 귀국 이후 작년 한 해 동안 생각을 많이 해봤다. 왜냐하면, 우리도 스트롱 투자사들이 유니콘 기업들이 되는 걸 희망하기 때문이다(물론, 유니콘 기업이 무조건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되는 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절대 아니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여기서 살짝 정리해본다.

일단 가장 궁금한 건, 유니콘들은 왜 유니콘일까? 우버는 80조 원, 쿠팡은 5조 원짜리 유니콘이라고 하는데, 이 기업이 어떻게 이런 기업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유니콘으로 분류될까? 솔직히 별거 없다. 우버랑 쿠팡이 유니콘인 이유는 바로 이 회사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들한테 1조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면서 투자했기 때문이다. 쿠팡의 경우, Sequoia가 1,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쿠팡, 너네 밸류에이션은 1조 원이야.”라고 했기 때문에 유니콘이 된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유니콘이 이렇게 해서 1조 원 이상의 회사가 되었다. 물론, 한 번 유니콘이 된 회사들이 항상 유니콘으로 남는 건 아니다. 성장을 멈추거나, 실적이 좋지 않아서, 더는 투자를 못 받고 망하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후속 투자를 받지만,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인들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프레임을 적용해보면, 한국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이라고 인정해주는 VC들이 이 밸류에이션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야지만 한국에서도 유니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대규모 투자’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이다. 스트롱같은 초기 소액 투자사가 어떤 스타트업에 1조 원 밸류에이션에 1억 원을 투자하면서, “이번 투자로 우리가 당신들 회사 0.01%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당신들 기업가치는 1조 원입니다. 유니콘이 된 것 축하드립니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은 여기서 한국에서 많은 유니콘이 탄생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생겨버린다. 아직 한국에는 한 기업에 한 번에 1,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국내 VC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3대 유니콘 기업들도 국내가 아닌 해외 투자자로부터 1조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으면서 유니콘 스타트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쿠팡-Sequoia, 옐로모바일-Formation 8, CJ게임즈-Tencent). (당분간은) 국내 VC가 아닌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아야지만, 한국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실은, 한국도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기관들이 있긴 있는데, 재미있는 건 한국 투자자들이 한국 스타트업한테는 먼저 1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해외 투자자들이 유니콘 기업가치를 인정해주면, 한국 투자자들도 그냥 그 가치에 같이 투자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일단은 외국에서 투자를 유치해야지만 유니콘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인이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외국의 큰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까? 나는 전체적으로 다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좋은 기술과 좋은 제품 – 뭐, 이건 너무 당연한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최근에 많이 급상승했지만, 그렇다고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돈 보따리를 가지고 올 정도는 아니다. 해외 VC의 관심을 끌려면, 그만큼 좋은 기술력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전자상거래나 O2O와 같은 비즈니스모델 위주의 스타트업보다는 순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강한 스타트업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커머스나 O2O와 같이 오프라인이 포함된 비즈니스는 어쩔 수 없이 지역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장이나 인수를 통한 exit의 문이 순수 소프트웨어 회사보다는 좁아진다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순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특정 오프라인 비즈니스 모델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대기업이 인수해도 흡수해서 잘 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그 비즈니스를 이미 하고 있고, 한국이라는 시장으로 확장을 고려하고 있는 외국 대기업이 아니라면 인수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장이라는 좋은 exit 방법도 있지만, 한국의 O2O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상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한국에서 상장할 경우 회수율의 문제도 있다.

2/ 한국계 미국 VC – 한국 스타트업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해도, 이 소식이 외국 VC들의 귀에 잘 안 들어간다.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 VC에 투자를 받으려면, 이런 회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그 투자자한테 알리고 일단 만나야 하는데, 투자자와의 그 첫 번째 연결조차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렵다. 그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한국계 미국 VC들이다. 특히, 미국의 투자자 커뮤니티에 좋은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계 미국 VC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면, 그리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의미 있는 비즈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한국계 미국 VC인 기존 투자자가 실리콘밸리의 큰 VC와 연결해 줄 수 있다. 실은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내용이다. 쿠팡이 Sequoia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계 미국 VC인 알토스가 이미 기투자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인정받고, 브랜드가 좋은 알토스와 한킴 대표님을 Sequoia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팅과 후속 투자가 더 수월했다고 난 생각한다.
아직 유니콘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우리도 비슷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의 후속 투자에 실리콘밸리의 DCM Ventures가 참여했는데, DCM의 파트너를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텀블벅을 편안하게 소개했었고, 그 이후에 투자가 진행됐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DCM은 한국에 텀블벅이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고, 알았어도 기존 투자사들을 본인들이 모르거나 믿지 못했다면 후속 투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3/ 영어 – 아무리 강조해도 영어의 중요성을 많은 창업가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서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라면 영어를 해야 한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고, 한국계 미국 VC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아서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실리콘밸리 VC 소개를 받았는데,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서 대표이사가 영어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투자자한테 그 매력도가 많이 떨어진다. 실은 우리 스트롱 포트폴리오 중 해외 투자사 소개를 요청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내가 아무리 소개를 해줘도 그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이 막막하고 걱정되어서 그렇게 못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우리 투자사 중 크든 작든 해외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회사들은 모두 대표이사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아니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비즈니스의 속사정을 잘 숙지하고 있는 공동 창업가 또는 다른 직원이 있는 경우이다.
우리 투자사 중, 최근에 괜찮게 투자를 받아서 현금이 충분하고, 비즈니스도 잘 성장하고 있어서 그다음 라운드는 미국으로부터 받았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이제 조금씩 생기고 있다. 대표이사가 영어를 매우 잘하면, 나는 그냥 소개만 해주고 지원해주면 된다. 하지만, 영어가 부족하다면 나는 항상 영어 잘하고 미국 비즈니스를 해본 (비싼) 인력을 채용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많은 업계 분들과 학자들이 한국과 이스라엘을 비교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도 더 환경이 척박하고 자원이 부족한 이스라엘이 우리가 알만한 스타트업을 많이 배출한 이유는 바로 위 3가지 조건들을 잘 충족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올해도 한국과 유니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거 같은데, 새로운 배움이 있을 때마다 포스팅을 통해서 공유하도록 하겠다.

깊은 틈새

Siren Care라는 스마트 양말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좀 갸우뚱했다. 우리가 입는 모든 것에 ‘스마트’를 갖다 붙이면 멋져 보이지만, 스마트 양말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에 내가 말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일단 일반인들을 위한 양말이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양말이었다. 제1형과 2형 당뇨병 환자들한테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은 당뇨발인데, 이게 관리가 제대도 안 되면 이 중 25%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말에 있는 센서를 통해서 발의 감염상태나 온도 변화를 24시간 감시하고 저장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들한테 발을 확인해보거나 병원에 가라는 알림을 전달해주는 게 이 양말의 핵심이다.

실은 나는 웨어러블 제품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 몸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것은 – 그것도 별도의 외부 기기가 아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이미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기기를 통해 – 굉장히 멋지고 미래지향적인 거 같지만, 대부분의 기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웨어러블 회사들을 검토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기가 아닌,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기기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흔쾌히 열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만큼 시장도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스마트 양말을 내가 관심 갖고 봤던 이유는,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삶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고객들에게 반드시 즉시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들에게 당뇨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발을 절단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서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 제품은 있으면 좋은 기기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깊은 틈새’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2,9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이 중 150만 명이 당뇨족궤양을 경험하고, 10만 명이 발을 절단한다고 한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2,900만 명이 될 수도 있고, 10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두 숫자 모두 틈새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 2,900만 명 모두에게 당뇨발 발병 확률이 존재하고, 이는 생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틈새시장이 될 수가 있다. 나도 우리 식구 또는 내가 당뇨에 걸리면, 이 스마트양말은 단순한 옵션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될 것 같다(물론, 회사가 마케팅하는 대로 양말이 스마트하다는 가정하에)

이런 프레임은 굳이 웨어러블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사람한테 있으면 편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 시장 크기는 큰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큰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크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 볼륨으로 승부하거나, 또는 무료로 배포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들을 lock-in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사람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고민은 시장 크기이다.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고객은 존재하지만, 그 시장이 작아서 볼륨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고가전략이다. 볼륨은 적지만,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론은, 절대다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장래가 밝다. 시장을 선점하면,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은 정말 왕

trust+me+i+am+an+engineer인터넷이나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창업가는 개발자와 이들의 개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왕이라는 말을 항상 하고, 이에 대해서 2012년2013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우리도 창업팀에 개발력이 없으면 웬만하면 투자하지 않는 것을 우리랑 이야기해 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개발조직이 없어도 잘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다. 일반화하는 건 옳지 않지만, 대부분 이커머스나 O2O 분야 회사들이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이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들이고, 특히 오프라인에 더 비중을 두는 회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회사의 개발력을 강조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우리는 오프라인 운영이 더 중요한 회사라서 개발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거나 개발력이 약하지만 잘 운영되는 회사들을 언급하면서 본인들도 개발력 없이 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은 이분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내부 개발조직 없이 잘 성장하는 회사도 있고, 실은 스트롱 회사 중에도 개발을 외주처리하면서 성장하는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개발력이 없는 스타트업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그리고 이런 회사들을 조금 더 깊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역시 개발력이 약한 회사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과거에 살고 있다면, 개발력이 없어도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 변화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더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면 하다못해 가게 웹사이트라도 있어야 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라도 운영하고, 현장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한 모바일 플레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작은 가게에서 개발자를 채용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더라도 기술을 거부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분야가 같이 존재하는 O2O나 이커머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월매출 1억 – 5억까지는 몸으로 때우면서 성장하는 걸 나도 봤지만, 이를 넘어서 정말 큰 비즈니스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좋은 개발팀이 필요하다. 비즈니스의 특성상 오프라인 요소가 중요하고, 이를 활용해서 성장을 도모하면, 매출이 증가할수록 이에 따른 비용 또한 매출과 함께 거의 선형적으로 증가하는데, 이 오프라인 요소가 비용구조를 해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 기술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간편결제, 물류의 시스템화, 동선 최적화, 추천, 봇, 데이터, 머신러닝 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어야지만, 남들보다 더 lean 하게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성장을 더 빨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창업가보다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다 – 회사가 잘 안 되더라도, 개발력이 있다면 다른 회사에 인수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흔히 이 바닥에서 이야기하는 acq-hire(재능인수)는 대부분 개발력이 뛰어나지만, 딱히 product/market fit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스타트업한테 적용되지, 비즈니스모델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에 해당하는걸 나는 별로 못 봤다. 특히 한국 스타트업이 외국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 아직 이런 사례가 거의 없지만 – 개발력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이커머스나 O2O 비즈니스들은 오프라인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게 참 힘들다. 한국에서 O2O 비즈니스를 아무리 크게 운영해도, 한국 밖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팀을 뽑아야 하고, 외국 시장에 맞는 오프라인 운영 모델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시장으로의 확장 계획이 없다면, 이런 비즈니스모델 위주의 스타트업을 외국 회사에서 인수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거 같다.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은 조금 다르다.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좋은 개발력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면, 미국 회사에는 꽤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다. 미국보다는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인수 이후 바로 현업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개발력에 영어 실력까지 좋다면 정말 금상첨화이다.

어쨌든 비즈니스 분야와는 무관하게, 개발력은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다 못해 “개발은 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meydansozluk.com/gorsel/trust+me+i+am+an+engineer>

블록체인과 마켓플레이스 – 중개인의 종말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은 마켓플레이스가 블록체인 기반의 신용평가플랫폼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이미 에어비앤비의 CTO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구현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조금 더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마켓플레이스가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자신의 비즈니스모델과 마켓플레이스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혁신할 수 있는 모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에어비앤비의 모델을 기반으로 계속 이 이야기를 해보겠다. 실은 에어비앤비는 전형적인 중앙집권화된 마켓플레이스이다. 집을 빌려주는 공급자와 집을 필요로하는 수요자가 거래하는 플랫폼을 에어비앤비라는 중개인이 완전히 소유하고, 사용자들은 이 플랫폼 위에서 거래하는 대가로 (내가 보기엔) 막대한 20%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우리 집을 다른 사람한테 빌려줘서 생기는 수익 중 일부를 왜 에어비앤비와 같은 중개인에게 지급해야할까? 너무 거저먹는 게 아닌가? 이건 마치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 같다. 내가 힘들게 번 돈을 내 친구나 가족한테 송금하는데, 왜 은행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나? 인터넷이나 SWIFT 망과 같은 신뢰할 수 없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불특정(또는 특정)다수와 거래를 할 때 발생하는 ‘신뢰’의 문제 때문이다. 내가 John이라는 친구한테 1만 원을 보냈는데, John은 안 받았다고 하면 누가 이 거래를 증명해 줄 수 있나? 내가 돈을 안 보냈는데 보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보냈는데 John이 안 받았다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은행을 통해서 보내면 이 거래가 증명된다. 적어도 은행은 나도 믿고, John도 믿는 중앙집권화된 중개인이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중개인이 없는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이 매칭되었을 때, 돈 송금 시나리오와 비슷한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신뢰하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중앙집권화된 중개인을 통해서 거래를 하는 것이다. 현재 에어비앤비 플랫폼의 거래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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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현재 모델

에어비앤비라는 중개인 없이, 하지만 이로 인한 골치 아픈 문제점도 없이 거래할 방법은 없을까? 여기에 블록체인이 도입될 수 있을 거 같다.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은행을 우회하고 송금하는 시나리오와 비슷하다.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집을 찾았다면, 사용자는 이 집의 public address로 해당 사용료만큼의 비트코인을 바로 보내면 된다(그리고 집 사용 기간을 이 비트코인 거래에 코딩할 수 있다). 이 거래가 블록체인에 기록되면서, 사용료가 지급되었다는 내용이 집(집주인)으로 바로 통지가 되면서, 거래에 프로그래밍이 된 내용처럼, 사용자가 이 집을 사용하기로 한 정확한 기간 동안에만 이 사용자를 위해서 집 문이 열리고, 전기나 물과 같은 편의시설이 제공된다. 거래가 종료되면, 집은 이 기간 동안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거래 내용을 다시 블록체인으로 보낸다. 블록체인이 적용된 에어비앤비 플랫폼의 거래 시나리오는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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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블록체인 적용 모델

실은, 위에서 말한 블록체인이 도입된 시나리오는 에어비앤비에서 발표한 내용은 아니고 그냥 나 같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시나리오인데,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뿐만이 아닌, 모든 마켓플레이스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이런 방식으로 구현하면 아주 큰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에어비앤비와 같은 마켓플레이스 오너들이 존재할 수 있는 땅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위의 시나리오에서도 수요자와 공급자가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직거래하면 에어비앤비의 존재 가치 자체가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에어비앤비의 주 수입원인 거래수수료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세상이 온다면 마켓플레이스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집주인과 사용자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중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을 거 같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생길지 나도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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