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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의 차별화

최근에 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많은 회사와 비즈니스들을 보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정말로 이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그런 비즈니스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거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뭔가 갑자기 바뀌는 거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DNA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약간의 새로운 변화가 있는 익숙함에 더 끌린다. 갑자기 너무나 새로운 게 나타나면, 이게 좋은 비즈니스가 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다.

기존에 존재하는 비즈니스보다 더 빠르고(faster), 더 좋고(better), 더 저렴한(cheaper)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점진적 혁신을 추구한다고 한다. 실은, 대부분 한국 스타트업이 다른 서비스보다 조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점진적 혁신 카테고리에 속하는데, 이런 스타트업 대표들이 투자자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제품을 내가 5개 이상 알고 있는데, 그 회사들이랑 차별점이 뭔가요?” 또는 “내가 보기에 다 똑같은 회사들이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만드는 거 같은데, 우리만의 진입장벽은 뭐예요?” 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나도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기존 배달 서비스보다 더 빠르게 배달하고,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보다 더 맛있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보다 무려 10%나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한 서비스들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이고, 이로 인해 대체되는 기존 회사들은 망하겠지만, 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비슷한 분야의 새로운 회사들이 계속 창업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진입장벽이 약한 차별화 전략으로 과연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

이런 회사는 대부분은 본인들이 타사보다 실행력이 엄청 강하다고 한다. 그 실행력이 강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면, 오랫동안 같이 고생한 가족 같은 팀, 회사와 고객만을 생각하는 벤처 정신, 발로 뛰는 화이팅, 그리고 말보다는 액션이 앞서는 성향 등이 언급된다. 그러면 나는 다른 팀도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팀만의 실행력의 차별점은 또 뭐냐고 물어보고, 여기서 똑같은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더는 거의 없는 이 세상에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갖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고, 실행력이 우리의 차별점이라면, 이걸 증명하려면 가장 효과적이고, 실은 유일한 방법은 그 실행력이 만들어내는 차별화된 ‘숫자’ 이다. 이커머스 비즈니스라면, 우리랑 완전히 똑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우리가 다르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매출, 성장, 사용자 등의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실행한다면, 이건 그 회사의 무형의 화이팅이 아니라 유형의 숫자로 그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내 탓

나는 학부 때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은 다른 과로 했지만, 스탠포드 대학원 입학도 기계공학으로 했다. 그래서 스탠포드 기계과 동문이 많고, 이 중 많은 분이 한국의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교수님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 선배 중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님이 계시는데, 이 분의 요청으로 얼마 전에 학생들한테 창업에 대해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끝나고 어떤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라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5년 동안 운영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시면 잘 안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요동쳤다. 이렇게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사 대표들한테 마치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듯이, 이래라저래라 훈수도 두고, 학생들 앞에서 잘난척하면서 강연까지 하는데, 왜 나는 내가 했던 비즈니스는 성공시키지 못했을까?

실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워튼을 중퇴하고 야심 차게 LA로 이사해서 거의 5년 동안 내가 생각할 수 있던 모든 걸 시도해봐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뮤직쉐이크를 더 잘 성장시키지 못한 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 비즈니스를 지금 다시 처음부터 한다면, 뭘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다면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다짐을 하곤 한다. 2008년 말 금융위기만 없었다면, 중간에 사업이 꺾이지 않아서, 뮤직쉐이크는 지금쯤 큰 사용자제작음악 서비스가 됐을 것이다. Flash 기술이 더 발전했다면, 웹 버전을 더 빨리 출시해서, 애플리케이션을 PC에 설치하는 걸 싫어하는 미국 사용자들이 그냥 bounce 돼서 떠나는 걸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을 텐데. 미국과 한국, 양쪽에 팀을 운영하는 어려움을 미리 알았다면, 그냥 한쪽에만 집중했을 텐데. 비즈니스가 더 크고, 매출이 거의 100% 발생하는 미국 시장에 제대로 된 개발팀을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반영하면서 product iteration을 했으면, 진짜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을 텐데. 음원 라이센싱에 대해서 잘 아는 인력을 초반에 채용했으면, 이 바닥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AC와 LTV 개념을 더 빨리 배우고, 최적화할 방법을 더 많이 시도했으면, 마케팅을 더 잘 했을 텐데. 더 열심히 할 걸, 더 허리띠를 졸라맬걸, 더 많은 이메일을 쓸 걸,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 걸 등등….

실은, 위에서 언급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변명과 핑계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경기, 파트너, 투자자, 기술 등 남 탓만 하면 내 속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뮤직쉐이크를 성장시키지 못한 이유는 100% 다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 힘든 시기였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이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고전하고 있던 2008년~2012년, 이 기간 동안 대박 난 스타트업도 많다. 왜 이들은 잘 됐고, 우리는 못 했을까.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위의 학생이 질문하고 한 3초 동안 이 모든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 학생한테 나는 “잘 안 된 이유는 간단하죠. 사업을 하고 있던 제가 잘 못 했기 때문이에요. 영어로 하면 ‘I fucked up’이죠.”라고 대답했다. 내 사업이나 인생이 잘 안 풀리면, 그건 부모님 탓도, 나라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탓이다.

거품, 겨울, 그리고 흑조(Black Swan)

blizzard얼마 전에 구글캠퍼스의 2017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어떤 기자분께서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업계에 겨울이 올 거라는 소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봤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는 간단하게 답변을 드렸는데, 이에 대한 나의 조금 긴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 분야에 있다 보면, 거품과 겨울 이야기가 거론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고, 2017년 초에도 – 즉, 2개월 전 만 해도 – 투자와 밸류에이션 과열 현상으로 인해 거품이 곧 터질 것이고, 이와 함께 핵겨울이 올 것이니,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들은 빨리 돈 벌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하고, 돈이 없는 회사들은 빨리 펀드레이징을 하라는 이야기를 투자자, 창업가, 애널리스트 모두한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거품이 터졌나? 그리고 겨울이 왔나? 지난주 Snap의 성공적인 IPO를 보면서 아직 거품도 아니고, 겨울도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거품과 겨울은 내가 자주 언급하는 전형적인 블랙스완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는 저서 ‘Black Swan’에서 ‘흑조’는 다음 3가지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1/예측할 수가 없다
2/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다
3/후에 곰곰이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

현재 tech 시장에 거품이 껴있는지, 또는 겨울이 임박한 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거품이 터져야지만, 그리고 추워져야지만 비로소 우리는 거품과 겨울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고, 거품이 터지고, 추워서 업계가 얼어버리면, 그제야 우리는 “그럴 줄 알았어” 라는 말을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분석하고, 서로한테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렇다고 tech의 호황이 평생 가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반영하는 게 맞는다면, 10년 단위로 거품이 터지고 겨울이 올 것이고, 약 10년 전,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겨울을 경험한 창업가와 투자자는 모두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를 예측하는건 불가능하므로 곧 겨울이 닥칠 것인지, 거품이 터질 것인지를 물어보고 걱정하기보다는, 갑자기 추워지면 우리 조직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옷을 준비해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혹한기를 위해서 조직의 지방을 제거하고, 항상 최상의 체력을 유지해야지만 건강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여기서 따뜻한 옷은 불황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탄탄한 비즈니스모델, 체력은 지출을 최대한 줄인 ‘린’한 비즈니스를 말한다.

이 분야에 오래 계셨던 분은, 겨울이 오고 거품이 터지면, 하루아침에 시장의 유동성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을 텐데 – 나는 2000년도 초반과 말에 두 번 경험했다 – 시장에 널려있는 벤처투자금이 순식간에 마른다. 엄밀히 말하면, 돈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대부분 돈이 극소수의 잘 되는 스타트업에 몰리기 때문에, 이제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한테까지는 흘러내려 오지 않는다. 유동성이 사라지면 VC에 의지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수익성을 만들고 이를 계속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외주나 정부 프로젝트보다는 우리 제품의 코어 서비스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것이 아닌 건, 상황이 악화되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호황이고 회사가 잘 되어도, 항상 지출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매출이 없거나, 외형적인 매출은 있지만, 이 매출의 질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돈이 안 남는다) 까먹는 돈을 최소화 해야 한다. 가능하면 인력은 채용하지 말고, 만약 채용을 과하게 했다고 느끼면 정기적으로 해고해야 한다. 사무실도 가능하면 작고 저렴한 곳으로 옮겨라. 대표이사는 매일 비용구조를 감시하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 burn rate를 낮춰서 runway를 최대한 연장해야 한다.

스타트업계에 겨울이 곧 올까? 거품이 곧 터질까? 잘 모르겠다. 터져야지만 이게 거품이었다는걸 알게 되고, 추워져야지만 겨울이 온 것이다. 블랙스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패닉할 필요는 없지만 돈 없고, 비즈니스 모델 없고, 매출 없는 스타트업들은 최소한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allclip.net/td_d_slug_9/page/26/>

원칙과 철학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과거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아서 매우 후회하는 회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실은 이런 회사들이 모든 투자자에게는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누가 이 질문을 하면,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투자하지 않았고, 이 회사들이 아주 미친 듯이 잘 되어서, 내가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가끔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이젠 이런 후회를 안 한다.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은, 내가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는 회사들을 아까워하고 부러워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이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투자했는데 잘 안 되는 회사들에 사용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은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내가 투자하지 않은 회사는 실은 나랑 우리 펀드랑 전혀 상관없는 회사다. 이 회사가 잘 돼도, 잘 안 돼도 우리 펀드의 실적에는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하면, 그리고 이런 회사의 수가 누적될수록 우리 펀드에 악영향이 미친다. 그런데도, 과거의 나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가 기회가 있었음에도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어 있는 회사들을 아까워하는 걸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앞으로 저런 회사를 만나면 꼭 투자해야지!”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자주 듣는다.

어떤 이는 자기가 가질 수 있었음에도, 갖지 못한 남의 물건에 대한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이를 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 나는 이게 다 투자자가 확실하고 명확한 투자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도 과거에 투자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큰 회사로 성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지금 나를 찾아온다고 해도 나는 아마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투자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대로 투자 철학을 구성하고 있는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었고, 이 철학의 틀에서 봤을 때 투자할만한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실적이 좋고 안 좋고와는 상관없다. 남들이 봤을 때 아무리 좋은 회사고, (이런 회사는 세사에 없지만) 투자하면 무조건 대박이 날 제품을 만들어도, 우리가 고민 끝에 만든 투자 원칙에 어긋나면 투자집행을 하지 않는 게 맞다. 이런 고민과 과정을 거쳐서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 회사가 아무리 잘 되어도 별로 후회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 회사와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고, 행운을 빌어준다. “왜 내가 그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또는 “다음에 저런 회사에 꼭 투자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이 없으면, 귀가 얇은 투자자가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유행을 좇고, 남의 말에 영향받아 투자하게 될 확률이 커진다. 내가 아는 VC 중, 자신의 투자철학을 철저히 지키는 분이 있는데, 2년 동안 신규 투자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스윗 스팟(sweet spot)에 들어온 스타트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이 만났지만 투자하지 않은 회사 중 유니콘 기업도 몇 개 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대신, 투자한 포트폴리오 사 중 잘 안 되는 회사에 그 2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명확한 원칙을 갖고 투자하고, 이 원칙에 어긋나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잘 되고 있는 회사를 보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원칙에 맞아서 투자했는데 잘 안 되는 회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비싼 수업료

우리가 VC를 처음 시작할 때 한국/미국의 업계 선배님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각자 다양한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 중 공통된 충고가 2가지 있었다:
1/ 투자를 정말 하고 싶은가? 명심할 건, VC에 입문하면 평생 fundraising 해야 한다(창업가들이 VC한테 피칭해서 fundraising을 하듯, VC들도 피칭해서 fundraising을 한다)
2/ 대부분의 VC는 첫 번째 펀드를 수업료로 사용한다(“It takes one fund to train a VC”)

오늘은 두 번째 조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VC들도 사람이고, 불확실성이 상당히 큰 벤처투자를 하므로, 투자하는 회사마다 돈을 벌 거나, 성공할 수는 없다. 아니, 실은 이와는 반대이다. 모든 VC의 포트폴리오에는 잘 되는 회사보다는 잘 안 되는 회사 수가 훨씬 더 많다. 이는 이제 갓 입문한 투자자나 수십 년 동안 투자를 한 투자자나 마찬가지이다. 한 회사가 창업되어, 성장하고, 튼튼한 기반을 갖추기까지는 예측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이기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성공방정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회사가 잘 안 되고, 예상치 못한 회사가 대박 나는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그만큼 벤처투자는 정형화된 패턴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한국에서 창업된 벤처기업 10개 중 6개가 3년 내 폐업한다는 기사를 오늘 봤는데, 나는 이 바닥의 습성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4개의 벤처기업이 3년 이상 사업을 한다는 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될 수도 있었던 비트패킹컴퍼니가 작년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이 회사에 투자되었던 돈은 170억 원 정도인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 스타트업치곤 상당히 큰 금액이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회사도 아니지만, 최근에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비트 문 닫은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한테 많이 물어본다. 그리고 투자사가 폐업하면, “원래 벤처기업이 성공확률이 낮으므로 어쩔 수 없죠.”라고 투자자들이 말하는 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이분들이 한다. 특히, 한국의 많은 VC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의 모태펀드로부터 출자를 받아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데, 정부 돈이라고 너무 대충 집행하는 게 아니냐는 공격도 한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이제 투자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간다. 이제 천천히 망하는 투자사들이 생기고 있는데, 실은 이 회사들이 폐업하는 거에 대해서 나도 똑같이 “어쩔 수 없죠”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어쩔 수 없죠”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조금 변명을 하고 싶다. 스트롱도 다양한 기관과 개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받고, 이를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현재 우리 두 번째 펀드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모태펀드도 들어와 있다. 많은 분이 우리 같은 VC가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므로, 책임감 없이 투자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정말로 잘못된 오해이다. 오히려 내 개인 돈으로 투자를 하면 편안하게, 수익성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투자를 하겠지만, 나를 믿고 돈을 주신 분들을 대신해서 투자를 하므로 우리는 정말로 신중하게 투자금을 집행한다. 그리고 우리도 투자를 잘해서 수익률이 높아야지만 계속 펀드를 만들면서 VC 업을 길게 할 수 있는데, 투자하는 회사마다 잘 안되면 우리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 업계를 떠나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제대로 된 투자자라면, 병신이 아닌 이상,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고민하고, 더 신중하게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신중하게 투자를 해도, 스타트업은 쉽지 않다. 스타트업 생태계 이해관계자들 모두 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 또한 확률 게임이다. 갈수록 더욱더 많은 회사가 창업되지만, 이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고, 살아남는 회사 중 극소수만이 좋은 비즈니스로 성장한다. 이 산업을 잘 아는 분들이 VC들의 첫 번째 펀드는 수업료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큰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여서, 신중하게 투자했고, 이 비즈니스가 많은 걸 시도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좋은 비즈니스가 되지 못했으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망한 포트폴리오 회사에 대해서, “아쉽고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VC들의 태도나 입장은 “어쩔 수 없다”가 피상적으로 보여주는 무책임과 무성의와는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한 가지 더. 한 회사가 폐업하면, 그 회사의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많은 배움을 얻는다. 왜 잘 안되었을까? 어디서 뭐가 잘 못 되었을까? 앞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뭘 다르게 해야 할까? 난 이 경험을 통해서 뭘 배었을까? 등 많은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배우고, 발전한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아주 탄탄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엄청난 회사들이 만들어진다. 물론,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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