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노련한 VC한테 배울 수 있는 점

CB Insights는 여러 분야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기사와 리포트를 만들어서 매일 출간한다. 얼마 전에 발표한 리포트는 USV의 프레드 윌슨이 USV를 설립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종교적으로 쓰는 블로그의 내용을 기반으로 그의 VC 경력을 통해서 배울만한 교훈 11가지를 정리해준다. USV는 2011년부터 거의 해마다 1조 원 이상의 엑싯을 통해서 큰 수익을 만들었고, 트위터, Indeed, Etsy 등이 그런 유니콘들이다.

참고로 프레드 윌슨은 40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1,00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그의 블로그를 보면 노련미 넘치고 인사이트가 작렬하는 내용이 아주 많이, 그리고 쉽게 설명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쓸 수 있는 그런 통찰력 있는 글을 매일 쓰는 프레드 윌슨한테 배울 수 있는 점을 정리한 이 리포트를 읽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11개의 포인트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Keep your vision simple at the beginning – 시작할 때는 돈도 없고 자원도 없으니, 간단한 거부터 시작해서 이 걸 완벽하게 한 후, 다른 기능이나 시장으로 이동
2/ Early revenue growth isn’t always a positive – 사업 초반부터 매출이 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대신, 초반 매출보단 더 많고 안정적인 미래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product-market fit에 집중
3/ Social networks are most effective when bundled with other services – 소셜 서비스는 “소셜”과 특정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같이 제공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링크드인은 소셜 네트워크지만 이력서 DB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더 파워풀함
4/ Second order network effects – 소프트웨어 자체는 결국 일용품이지만,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사용자 네트워크를 만들면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음
5/ Social networks for the single user – 소셜 네트워크는 단순히 내 지인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나한테도 뭔가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줘야지 중요함
6/ Spend the most energy on your middle portfolio pack – 투자자는 가장 잘하는 투자사나 가장 못 하는 투자사가 아니라, 중간에 있는 투자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여기 회사들이 펀드에 가장 큰 수익을 만들어 주기 때문
7/ Invest in bits, not atoms – atom은 옷과 음식과 같은 물리적인 제품을 구성하지만, bit은 정보와 같은 정형화 할 수 없는 제품을 구성한다. Bit에 투자해야지 더 짧은 시간에 더 빠른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atom에 투자하면 VC가 원하는 시간 내에 수익이 발생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함
8/ Investors need to love their losers – 잘 안 되는 투자사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지만, 정말로 안 될 회사라면 빨리 손실 처리해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는 회사라면 더 많은 지원을 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
9/ Discipline – 남들이 투자한다고 따라서 투자하기보단, 나만의 철학을 갖고 투자를 하다 보면, 1년에 20개 회사에 투자할 수도 있고, 1개 회사에만 투자할 수도 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님
10/ Crisis can make a company stronger –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하기 어려웠던 과감한 결정을 대표이사가 할 수 있고, 이렇게 하는 게 오히려 회사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음
11/ Growth isn’t always worth it – 빨리 성장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성장에는 그만큼 희생이 따름

10년의 인내심

1562317042967USV의 프레드 윌슨이 얼마 전에 올린 포스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너무 공감했다. “Seven to Ten Years” 라는 글인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분이 이제 VC 투자를 한 지가 벌써 33년이 됐고, 그 기간 동안 3개의 VC 회사에서 대략 15개의 펀드를 관리하면서 투자를 했다고 한다. 나도 프레드가 투자를 오래 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 오래 한 줄은 몰랐는데, 이분의 인사이트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업력이 충분히 이해간다. 또한, 프레드의 와이프도 개인 투자를 오랫동안 했는데, 지난 12년 동안 약 140건의 투자를 했다고 한다. 또한, 다른 펀드에도 간접 투자를 했으니, 프레드 윌슨은 40년 동안 다양한 펀드에서 직접 투자와 간접 투자를 통해서 약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 데이터를 관찰하면서 나름 방대한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다양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 글에서 프레드가 강조하는 건 바로 초기 투자는 인내심이 엄청 필요하다는 점이다. 망하는 회사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망하고, 잘 되는 회사는 생각보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이 데이터가 보여주는 극명한 패턴인데, 숫자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초기 벤처투자에서 제대로 된 엑싯이 나오는데 평균적으로 7년~10년이 걸린다고 한다. 5년 ~ 7년도 아니고, 10년 ~ 15년도 아니고, 제대로 된 투자를 했고, 인내심을 갖고 버티면, 이 회사가 잘 돼서 펀드에 수익이 발생하는데 딱 7년~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나는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제 투자를 한 지 8년이 됐는데, 프레드 윌슨의 공식이 맞는다면, 이제부터 우리 1호 펀드 투자사한테는 – 망하지 않았다면 –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2호 펀드 투자사는 아직 4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인 거 같다. 그리고 우리도 한 10년 정도 더 투자하고, 투자사가 300개가 됐을 때 이런 좋은 데이터를 분석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7년~10년이 스트롱한테도 적용될지, 아니면 이보다 더 짧을지 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비즈니스는 인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나의 스타트업이 결실을 보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이런 회사의 집합체인 우리 같은 벤처펀드가 전체 펀드의 차원에서 결실을 보려면, 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더 상위 개념으로 우리 같은 펀드의 집합체인 여러 펀드에 투자하는 LP의 입장에서는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운 좋으면 대박이 터질 수도 있지만, 이 긴 기다림 후에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없으면 절대로 지속될 수 없는 산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기다림의 게임을 기꺼이 같이 해주는 우리 LP 분들과 우리의 창업가들이 오늘따라 더 고맙게 느껴진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증권거래위원회 대 Kik

2017년 5월부터 9월까지 Kik이라는 메신저 서비스는 Kin이라는 코인을 ICO를 통해서 판매했고, 미국과 해외 투자자로부터 약 1,200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했다. 암호화폐에 대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시기부터 암호화폐 시장이 미친 듯이 가열됐고, 수많은 사람과 회사가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ICO를 통해서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Kin 코인이 다른 ICO랑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ICO만을 위해서 갑자기 없는 법인과 재단을 만들고, 실체가 없는 프로젝트를 판매한 게 아니라, 거의 10년 동안 꽤 성공적인 메신저 제품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던 스타트업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메신저 플랫폼 생태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Kin이라는 자체 코인을 발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Kik은 이미 USV랑 Spark Capital과 같은 좋은 VC로부터 1,5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었다.

그런데 미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6월 Kik의 ICO가 불법이었고, 투자자를 기만했다면서, Kik을 상대로 증권법위반 소송을 냈다. 내가 얼마 전에 한 변호사가 이 고소장에 꽤 자세하게 본인의 생각과 코멘트를 달아 놓은 걸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라면, 여기서 전부 다 읽어볼 수 있다. 49장짜리 고소장이지만, 핵심 내용은 단순하다. Kin은 유틸리티 토큰이 아니라 시큐리티 토큰이며, 투자자를 모집할 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ICO는 불법이라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미증권법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한테 투자를 받으려면, 회사의 상황과 앞으로 이 투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매우 투명하게 투자자한테 공유를 해야 하는데, Kik은 말도 안 되는 백서로 – 그것도, 대부분 지키지 못할 거짓말로 가득한 – 돈을 1,000억 원 이상 모집했으며, 심지어는 Kin 코인으로 투자자들은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약속까지 했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돈으로 Kin 생태계를 만들 생각이 없었고, 원래 하던 메신저 서비스의 사용자 수와 매출이 계속 하락하자, 최후의 발악으로 그냥 ICO를 해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투자자의 돈을 모집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동안 수집한 여러 가지 증거를 고소장에 나열했다. 마치 한 편의 하버드 MBA 케이스 스터디를 읽는 것과 같았다.

SEC한테 고소를 당하자,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소송에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Kik은 Defend Crypto 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암호화폐로 기부를 받기 시작했고, 현재 약 20억 원의 후원을 받았다. 뭐, 나는 이 사건의 당사자도 아니고, Kin을 구매하지도 않아서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이 고소장을 읽어보면, Kin ICO는 사기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어떤 ICO가 제대로 된 ICO일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본다.

실은 Kik보다 더 큰 메신저 플랫폼이 ICO를 통해서 더 크게 펀드레이징을 한 사례도 있는데, 바로 텔레그램의 ICO다. Gram이라는 코인을 통해서 자그마치 2조 원이라는 투자금을 받았는데, Kik이랑 비슷하게 텔레그램도 정확히 이 돈으로 뭘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다. 이번 사건의 결과에 더욱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Kin이 유틸리티가 아니라 증권형 토큰으로 판명이 나고, Kik이 재판에서 패한다면, 그동안 진행됐던 수많은 ICO에도 지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말도 안 되는 ICO가 너무나 많았는데, 이 결과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좀 궁금하긴 하다.

매일 출석하기

runner-1863202_640구글캠퍼스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엄마캠: 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을 해마다 운영하고 있다(올해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이 구글캠퍼스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서로에게 가장 보람찬 과정과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하고 육아 때문에 창업의 꿈을 접거나, 아니면 자의보단 타의에 의해서 ‘경단녀’가 된 엄마들한테 창업과 스타트업에 대해서 9주 동안 교육하고 지원해주는 비상주 프로그램이다. 마지막 주에는 엄마들이 그동안 열심히 만든 사업계획서를 발표하고, 주로 VC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이에 대한 조언을 주는 작은 데모데이로 이 프로그램은 끝난다.

우리 사무실이 구글캠퍼스에 있어서, 나는 이 데모데이에 자주 초대받는다. 실은 나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서 누구를 평가하고 조언을 주는 걸 썩 좋아하진 않지만, 엄마캠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항상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났던 엄마들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열정이 넘치고, 창업 생태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못 잡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라서, 누군가 이분들한테 조금만 길을 안내해주고, 뒤에서 등을 살짝만 밀어주면,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VC는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게 최종 목표이지만,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의무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없는 시간을 이왕 쪼개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면, 배울 의지가 강하고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 그 시간과 자원을 할애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나는 이 엄마들이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들은 모두 진지하고 열심히 하지만, 9주 프로그램이 끝나면 육아와 가정이라는 현실에 다시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 중 90% 이상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엄마캠에서 만든 사업계획서는 잠시 접어 둔다(대부분 잠시가 평생이 된다). 하지만, 이 중 몇 분은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계속 꿈을 현실로 만드는 노력을 한다. 힘들고 더디지만, 계속 여러 가지 방법을 찾으면서, 자원을 확보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계속 스타트업이라는 게임을 한다. ‘육아말고 뭐라도‘는 이 게임을 계속했고, 현재도 하고 있는, 엄마캠 출신 6명의 엄마 창업가들의 실제 창업 이야기다. 이 회사 중 유니콘은 없고, 유니콘이 과연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분들이 멈추지 않고 매일 출석하면서 게임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힘든 허슬을 가깝게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린 이 중 한 분한테 결국 투자도 했다. 한글로 “게임을 계속한다”라고 하면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staying in the game”이라는 영어를 직역한 의미다.

지금은 너무 힘들고, 삽질만 하고 있고, 앞으로도 도무지 사업이 잘될 기미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자신을 믿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다면, 무조건 매일 출석하라고. 스타트업이라는 마라톤은 42.2km보다 훨씬 더 길고 힘든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결국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냥 계속, 꾸준히 뛰는 것이다. 지치지 말고, 매일 러닝화를 신고, 도로로 나가서, 뛰다 보면, 그리고 이 길이 맞는 길이라면, 언젠가는 목표에 와 있을 것이다. Keep staying in the game.

<이미지 출처 = Pixabay>

빙산의 일각

iceberg-1321692_640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스페셜리스트 투자자가 있고, 우리같이 특정 버티컬 상관없이 모든 분야를 보는 제너럴리스트 투자자도 있다. 주로 바이오/제약/메디컬/우주공학 분야와 같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는 쪽에 투자하는 VC는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은 드문 거 같은데, 내가 아는 미국의 많은 메디컬분야 전문 VC는 의학박사이고, 전직이 의사였던 분도 있다. 이 분야는 비즈니스모델보단, 기술 자체가 사업의 성공에 더 크게 기여하는 거 같은데, 이런 분야에 투자하려면 전문지식이 많아야 한다. 실은, 나 같은 제너럴리스트 VC는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은 거의 없기 때문에, 기술이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한 산업군의 스타트업은 잘 안 보게 되고, 봐도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어떤 팀이 하냐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기술이 회사의 성공의 90%를 결정하는 경우에는 이 논리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크게 consumer internet이라고 분류한다. 더 쉽게 말하면, ‘이해하기 쉬운 비즈니스’ 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투자하는 회사가 기술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기술력은 좋지만, 기술 자체를 파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이 기반이 되는 고객의 생활과 접점에 있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다양한 분야가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물건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나,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O2O) 마켓플레이스 등이 주로 이해하기 쉬운 비즈니스 카테고리에 속한다. 이 분야에 우리도 워낙 많이 투자하다 보니까 – 같은 분야라도 모든 비즈니스가 조금씩 틀리지만 – 그래도 공통으로 몇 가지 항상 발견되는 점들이 보이고, 이런 배움을 비슷한 분야의 다른 비즈니스에 적용해보니 가끔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해보면, 비슷한 분야의 비즈니스에 많이 투자했으니까,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우린 이런 이해하기 쉬운 비즈니스를 검토하고 있었고, 나는 나름 이 분야에 몇 번 투자도 해봤고, 안 되는 회사도 있었고, 잘 되는 회사도 있어서, 이렇게 하면 잘되고, 이렇게 하면 안 되고, 특정 수치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이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 결정이 점점 한 방향으로 굳어가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현업 업무를 한 큰 회사의 임원과 이 스타트업의 경영진이 사업 이야기를 하는 걸 옆에서 관찰하면서 들을 기회가 우연히 있었다.

전문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바로 내가 아무리 이 사업을 잘 안다고 생각을 해도, 나는 현업에서 오퍼레이션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겉만 볼 수 있는 투자자이며, 내가 아는 사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이분들의 대화를 약 2시간 이상 들었는데, 그중 내가 이 분야의 많은 회사에 투자하면서 했던 질문은 하나도 거론되지 않았고,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정말 현업을 아는 내부자만 알고 있는 실무에 대한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실은, 내가 처음 듣는 개념과 용어도 몇 번 등장하긴 했다. 이 미팅 이후에 내가 이 회사에 가지고 있었던 의견이 많이 바뀌었고, 투자에 대한 결정 또한 다시 고려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역시 나 같은 제너럴리스트 VC의 전문지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아무리 특정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해도, 직접 현장에서 그 일을 오랫동안 해보면서 몸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 분야에 대해서 아는 지식은 책으로 배우거나 어깨너머 배운 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투자 결정은 아는 사실보단 모르는 미지수가 더 많은 상태에서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까? 최대한 많은 연구, 조사, 경험하는 건 기본이지만, 결국 그 창업팀과 대표를 보고 투자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투자자로서 특정 비즈니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전체 내용의 빙산의 일각이긴 하지만, 창업팀은 그 빙산 자체를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