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 그리고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대기업들 부럽지 않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큰’ 스타트업들은 확실히 한국 회사들이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기업 문화부터 시작해서 구성원들이 일을 바라보는 자세, 나이나 경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과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철저한 실력주의는 아직 우리한테는 조금 생소한 개념들이다. 이런 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고 많은 혁신이 이 동네에서 시작되는 거 같다.

확실히 부러운 점들이 많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가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특히나 모든 기업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문화를 닮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연구해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일하는 방식이 있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봐도 공부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지 능률이 오르지만, 이와는 반대로 어떤 이들은 늦게 시작해서 밤을 새우면서 일해야지 잘한다. 모두 각자의 방식이 있는데 이는 개개인들의 DNA, 성향, 성장환경, 교육환경, 지역적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요새 언론에서 진짜 많이 들리는 말이 있다. 어떤 대기업은 기업문화를 스타트업과 같이 바꾸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어떤 대기업은 구글과 같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새로운 미래전략이라고 한다. 어떤 대기업은 갑자기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모든 호칭을 ~님, 또는 영어 이름을 쓰겠다고 공포했다. 솔직히 발표용으로는 좋은 기삿거리지만 나는 이런 소식을 접하면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모든 회사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 대기업은 그 나름대로 장점들이 존재한다. 흔히 대기업의 문화라고 하면 좋지 않은 생각만 떠올리게 된다. 특히 한국 대기업의 이미지는 딱딱한 수직적 조직, 줄타기, 정치 싸움, 관료주의, 갑질 등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이 회사의 문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런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아서 오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런 회사들이 굳이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문화를 그대로 모방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세상은 바뀌고 있고 이에 적응하려면 사람도 변해야 하고 기업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context 기반의 변화이어야 한다. 즉, 기업의 성장 배경,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격, 기업이 위치한 나라의 문화, 조직원들의 성향 등이 반영된 자기만의 변화를 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문화와 역사가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은 미국의 다른 지역과도 매우 다르고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동네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무형자산인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이나 무역업으로 시작했고 모든 산업에 걸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채용하는 직원들도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고유한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다. 이렇게 DNA 자체가 다른 한국의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을 따라 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삼성의 역사는 78년, 현대는 69년이다. 반면에 구글은 18살이고, 페이스북의 역사는 12년밖에 되지 않았다. 실은 삼성과 현대가 훨씬 오랫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남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항상 욕하고, 대기업의 임원들이 실리콘밸리와 비슷하게 바꾸고 싶어 하는 ‘구시대적’인 기업문화일 수도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의 문화는 겉으로 보면 솔직히 한국 대기업보다는 훨씬 섹시하기 때문에 따라 하고는 싶다. 하지만 이들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정장을 입던 한국의 대기업에 갑자기 양말도 신지 않은 하얀 다리에 반바지와 구두를 신고 나타난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직원과 임원들이 ‘과장’ , ‘이사’ 와 같은 호칭이 아니라 서로에게 ‘톰’ 또는 ‘제인’ 이라는 영문 이름을 쓰는 걸 상상하면 정말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이렇게 하면 기업의 창의성이 더 오른다는 발상은 정말 잘 모르겠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변해야 한다. 하지만, 잘 연구해서 그들만의 방법을 찾아서 변화해야 한다. 누구나 다 구글이 될 수도 없지만, 누구나 다 구글이 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