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안 치는 분들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달성한 커리어 골든슬램에(=4개의 메이저 대회를 ‘그랜드슬램’이라 하는데, 이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고, 올림픽까지 우승하면 골든슬램 달성이라고 한다) 대해서는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골프를 좀 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기록인지는 잘 알 것이다. 엄청난 역사를 새로 쓴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그리고 한국 여자 골퍼들한테 진심으로 존경심을 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인비 선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박인비 선수의 스윙은 ‘폼’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골프라는 게임에서 봤을 때,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석 폼은 아니다. 백스윙도 연결성이 부족하고, 체중 이동도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이고, 눈으로 봤을 때 뭔가 시원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즐겨 보는 선수는 아니다(운동 선수 치고는 체중이 과한 것도 한몫을 한다). 실은 많은 골퍼들이 박인비 선수의 스윙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은 하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걸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지적질은 거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골프는 작은 공을 막대기로 쳐서 남들보다 더 적은 타수로 구멍에 집어넣는 게임이고, 폼이 좋든 나쁘든 더 낮은 점수로 18홀을 끝내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봤을 때 박인비 선수만큼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박인비 선수가 리디아 고를 제치고 아주 가뿐하게 금메달 따는 걸 보고 앞으로 더는 이 선수의 스윙에 대한 지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는 겉만 보면 절대로 안 될 거 같은 비즈니스들의 고정관념들이 나름 머릿속에 박혀있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장, 학벌이 없는 창업가, 왠지 이상한 비즈니스 모델 등….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런 껍데기가 아니라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확보하고, 이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박인비 선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선수들도 있다. 외모는 화려하고 스윙도 FM인 골퍼들도 많은데, 막상 가장 중요한 수치인 점수가 별로다. 아무리 폼이 좋고 스윙이 좋아도 골프라는 게임에서는 점수가 높으면 우승하지 못한다. 이런 비즈니스들도 많다. 엄청난 경력과 학벌의 창업팀이 수십억 원의 펀딩을 받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도 꽤 있다. TV나 지하철역에 비싼 광고를 집행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비즈니스의 성공에 대해서 확신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전에 블로깅 했던 샤크 탱크 일화도 똑같다. 잘 나가는 투자자들이 “저게 과연 될까?” , “내 경험에 의하면 저런 아줌마들은 사업 성공 방정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 “말하는거나,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스타트업을 잘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두 다 한마디씩 지적을 했다. 나도 이 방송을 보면서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들을 확보하고 매출을 만들면 이길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고, 이 게임에서 이 아줌마 CEO는 월등하게 잘하고 있었다.

샤도우 복싱에 대한 과거 글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샤도우 복싱이랑 링에서의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복싱의 본질은 상대방을 제대로 쳐서 쓰러뜨리는 거다. 외모와 자세가 아무리 둔해 보이고, 투박해 보여도 펀치를 잘 날려서 쓰러뜨리고 이기면 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껍데기를 꿰뚫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본질 외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잡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