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몇몇 회사 내부 미팅에 참석했다. 우리 투자사도 있었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같이 미팅에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 모두 뭔가를 축하하기 위한 미팅이었는데, 그동안의 비즈니스 성과와 성장을 직원 및 투자자와 공유하는 자리라서 상당히 들뜬 분위기에 미팅이 진행됐다. 대표와 경영진은 회사의 핵심 KPI 대비 몇 퍼센트 성장했다는 자료를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서 손뼉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상황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대부분 비즈니스는 무리한 외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 비용을 과도하게 지출했고, 시장과 제품을 테스팅한다는 명복 하에 너무 많은 것들을 해서 본인들의 코어 비즈니스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껍데기와 숫자들만 보면 많은 성장을 했고, 자축을 해야 하지만, 조금만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면, 실은 자축이 아니라 자숙해야 하고, 오히려 위기의식을 바짝 가져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이런 상황을 나는 자주 접한다. 창업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실적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전에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시장을 연구했기 때문에 이건 분명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확신을 하는 경우가 많고, 정말 힘들게 만든 매출과 수치이기 때문에 이게 대단한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이런 분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투자자의 역할 중 하나는 비현실 속의 구름 위에 있는 창업가를 지속적으로 현실로 끌고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창업가는 열정적이고 비전이 큰 사람들이다. 원대한 비전에 이끌려서 사업을 시작하고, 실행은 하나씩 작게 하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바라보고 있는 큰 비전이 있다. 어렵지만 계속 즐겁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창업가가 꿈꾸는 미래, 즉 비전이다. 그런데 현실과 비전을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가끔 이 둘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하다 보면 팀원들도 이런 대표한테 영향을 받는다. 비전과 꿈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큰 기업을 운영하신 경험 있는 분들은 비즈니스가 잘 될 때가 가장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기업을 운영할 때는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잘 되도 잘 안된다고 가정해야 하고, 잘 안되면 더욱더 명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이게 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안 되는 거 같다. 이런 창업가의 눈을 지속적으로 뜨게 해주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투자자들인 거 같다. 적당히 회사 내부에도 들어와 있지만, 그래도 항상 외부에서 회사를 보는 위치에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분위기 킬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들이 봤을 때는 잘 되고 있는데도 나는 항상 비관적인 말을 해서 그런 거 같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 킬러들이 많아야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지 발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