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fe sharpen시장에 아무리 돈이 많이 풀렸어도, 펀드레이징은 항상 어렵다. 나도 오래전에 스타트업을 하면서 투자유치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정말 어려웠고, 이제 시장이 더욱더 빡빡해지고, 더 좋은 경쟁상대들도 많기 때문에, 요새 투자 받는 건 더 어려워진 거 같다. 그런데 지금 투자받기 위해서 열심히 자료 만들고, 투자자들 연락하고, 피칭하고 있는 대표님들한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말을 하나 하자면, 우리 같은 VC들이 투자금을 모으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아니, 오히려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 받는 거 보다, VC가 LP들한테 투자 받는 건(이걸 ‘출자’라고 한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스타트업은 제품, 매출, 사용자 등 뭔가 보여줄 만한 게 있지만, VC의 실적은 최소 5년이 지나야지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펀드는 10년이 지나도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실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투자유치를 해야 한다.

우리도 요새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왜 펀드 규모를 더 키우지 않냐이고, 두 번째는 왜 스트롱은 한국과 LA 지역에만 투자하냐이다. 실은 항상 받는 질문들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 생각이 우리의 태생과 철학을 잘 반영하기 때문에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우리 현재 펀드 규모는 약 180억 원이고, 이번에 새로 만드는 건 조금 더 크다. 하지만, 그래도 대형 기관한테는 – 특히, 해외기관 – 너무 작은 사이즈다. 대형 기관들은 펀드에 출자하려면, 최소 규모 이상으로 출자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전체 펀드의 특정 퍼센트를 넘기면 안 된다. 예를 들면, 특정 기관투자자가 펀드에 출자할 수 있는 최소규모가 500억 원인데, 이게 전체 펀드의 10% 이하여야 되면, 그 펀드의 규모는 최소 5,000억 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펀드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해외 기관투자자들과는 항상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스트롱이 하려고 하는 건 좋은 거 같은데, 펀드 규모가 너무 작으니까, 아예 펀드 규모를 더 키우면 출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도 돈이 필요한 입장에서 귀가 솔깃해진다.

어쩌면 펀드 규모가 더 커지면 펀드레이징이 더 수월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태생과 뿌리를 항상 스스로 상기시킨다. 우린 초기 투자자다. 가끔은 법인도 없고, 제품도 없는 팀한테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가 항상 “저게 될까? 너무 초기라서 잘 모르겠네.”라고 하는 단계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스트롱은 이걸 공식적으로 7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존과 내가 이 전에 미국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해보면서 개고생한 경험이 풍부하고, 이 경험을 기반으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초기 투자를 해왔고, 이걸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펀드 규모가 커질수록 초기 투자만 하는 게 힘들어진다. 더 큰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하면서도 항상 큰 펀드의 큰 수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좋아하고, 그나마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초기 소액 투자를 할 수가 없게 된다. 펀드가 커지면 사람도 더 필요한데, 실은 이 부분도 나는 자신이 없다. 큰 규모의 팀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건 나에겐 매우 힘든 일이다.

왜 우리는 다른 지역에 투자하지 않나? 이게 우리가 펀드레이징 할 때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많은 한국의 VC나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왜 스트롱은 7년 동안 한국과 LA 지역에, 그것도 ‘한국’이라는 테마를 고집하는지 LP 들이 물어본다. 일단 나는 VC라는 업은 겉으로 보면 상당히 글로벌한 직업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상당히 로컬(=local)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로컬 하다 못해 하이퍼로컬 하다. 한 지역의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 지역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지역의 창업가/투자자/기업 커뮤니티와 깊숙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에 있어야 하고, 그 지역을 잘 알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과 LA에 7년 동안 투자하면서, 이 두 시장의 특성을 인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실은, 이 두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완전히 own 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기에, 이 시점에 내가 전혀 모르고, 말도 못 하고, 전혀 네트워크가 없는 새로운 지역에 투자하는 건 왠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위 두 개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을 쉽게 풀어 말하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하고, 잘하는 걸 더 잘 연마하는 거다. 7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느 정도 평판을 쌓았으면, 이걸 계속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욱더 집중하고 싶다. 내가 창업가들한테 자주 말하는 “칼날을 더욱더 날카롭게 다듬는” 작업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겁지만, 날이 뭉툭한 칼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자를 수가 없다. 반면에, 작고 가볍지만, 날이 예리한 칼은 깊게 자를 수 있다.

결국, 투자하는 투자자나, 투자받는 창업가나 지속해서 칼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InsideJapan T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