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 중 하나인 윔블던이 얼마 전에 끝났다. 테니스 대회야 항상 재미있지만, 이번 윔블던은 내가 좋아하는 로저 페더러 선수가 준결승에서 라파엘 나달을 이겼고, 노박 조코비치와 결승에서 5시간 접전 후에 비록 지긴했지만, 잊지 못할 경기를 펼쳐줘서 정말 행복했다.

로저 페더러선수를 내가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세계 최강의 테니스 실력을 구사한다는 점이 대단한 거 같다. 나도 테니스를 오래 쳤고, 단순 취미가 아니라 정말 serious 하게 테니스를 친 경험에 비춰보면, 페더러만 한 선수는 앞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선수는 능력도 타고났지만, 주변 환경에 굉장히 잘 적응하면서, 내/외부 환경이 변할 때마다 스스로 조정하는 능력이 뛰어난 거 같다. 내부 환경의 변화란 바로 페더러 선수의 생체시계를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도 떨어지는데, 40대의 선수가 아직도 20대의 몸으로 하던 방식으로 테니스를 치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고 부상으로 고생할 텐데, 페더러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여기에 맞춰서 힘으로 치기보단 최대한 부드럽게 몸의 회전을 이용하고, 체력 안배를 잘하면서 자신의 테니스 스타일을 조정하고 있다. 외부 환경의 변화란 장비가 더 좋아지고, 더 무시무시한 경쟁자의 출현이다. 테니스 라켓은 더 가벼워지고, 볼은 빨라지기 때문에, 옛날 장비에 길든 몸 또한 새로운 장비와 기술에 조정을 해야지만 부상을 방지하면서, 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신인 테니스 선수의 나이는 계속 더 어려지고 체력은 강해지기 때문에, 페더러같이 나이 든 선수는 힘과 스피드보단 경험과 노련미로 승부하는 쪽으로 스타일을 조정해야 한다.

내가 잘 아는 분야라서 테니스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그리고 비즈니스와 투자도 이런 점이 적용될 수 있을 거 같다. 얼마 전에 나보다 투자 경험이 훨씬 더 많은 VC 선배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좋은 투자를 오랫동안 잘하기 위해서는 쓸 근육과 안 쓸 근육을 잘 구분하고, 힘을 써야 할 때랑 힘을 빼야 할 때를 잘 판별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투자와 나쁜 투자를 반복하고 – 주로 나쁜 투자를 더 많이 한다 – 투자 경험이 쌓이면서, 회사와 창업가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계속 조정돼야 하는데, 내부와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라서 자신을 조정하지 못하면 좋은 투자를 계속할 수가 없다.

전에도 내가 몇 번 말했던 거 같은데, 나는 나이가 들면서 밀레니얼들의 감을 따라가는데 계속 뒤처지고 있다. 분명히 과거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잘 될 리가 없는 서비스인데,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가 나오는 걸 보면서,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동안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걸 계속 미세하게 조정하는 노력을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바뀌듯이, 나 자신도 이 변화에 발맞춰서 계속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