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1668916_1280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시언이 배우 생활 힘들게 시작할 때 도움받았던 분들을 찾아가면서 감사의 말을 전달하는 걸 봤다. 무명일 때 같이 고생한 박성현이라는 친구이자 연극배우와 영화 ‘친구’에서 이시언을 캐스팅한 영화감독 곽경택을 찾아가서 배우로서의 시작을 가능케 해줘서 고마움을 표현하는걸 인상 깊게 봤다. 스스로 “대배우”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시언이 아직은 대배우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능청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고, 그 여유와 자신감이 싹틀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시언의 시작을 도와줬던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참 흥분되고 설레는 말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두렵고 공포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실은 스타트업이라는 말 자체도 시작과 여러 가지 면에서 관계가 깊다. 이 방송을 보면서 시작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도 스트롱의 시작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봤다. 2012년도 존이랑 정말 무모하게 맨땅에서 시작했을 때, LP를 모집하고 펀드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 줄 전혀 몰랐다. 실은 상당히 순진해 빠졌고, 어리석기까지 했고, 돈이 전혀 안 모여서 시작한 지 6개월 후에 그냥 접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접지 않고, 계속 허슬링하면서, 그래도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우리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 만난 많은 분이 소중하고 고맙지만, 나는 특히 우리의 시작을 도와줬고, 그래서 스트롱벤처스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분들한테 진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는 워낙 작았고, 처녀 펀드이다 보니, 그 누구도 선뜻 LP 참여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친구와 지인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줬는데, 그때 정말 운 좋게 다음커뮤니케이션이 LP로 들어왔다. 당시 다음 투자팀의 김주리 팀장님이라는 분이 스트롱을 많이 밀어주셨는데, 이분이 없었으면, 다음이 LP로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됐다면 오늘의 스트롱이 없었을 거다. 1호 펀드는 그렇게 꾸역꾸역 만들었지만, 금방 소진했고, 10배 규모의 더 큰 2호 펀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똑같은 악몽이 반복됐다. 아직 별다른 실적이 없어서, 그 누구도 선뜻 LP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모태펀드를 집행하는 한국벤처투자의 글로벌 팀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한테 커밋을 해줬다. 그리고 우린 “Korean Government가 우리 LP다. 나라가 우릴 믿는데, 너네는 왜 못 믿냐.”를 해외 LP들한테 엄청나게 마케팅했고,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무사히 2호 펀드도 마무리했다. 이때 한국벤처투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LA 촌놈들을 엄청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 지금 알토스에 계시는 조지윤 매니저님이다.

우리가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원동력은 우리 투자사이다. VC는 좋은 회사에 투자해야지만 계속 생존할 수 있는데, 우린 운이 좋게 첫 번째 펀드부터 좋은 창업가들한테 투자할 수 있었다. 우리가 8년 동안 120개 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중 스트롱 포트폴리오 1호 회사는 비석세스이다. 1호 투자사라는 이유만으로도 정현욱 대표님과 비석세스는 우리한테는 의미가 크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으면서 계속 펀드를 만들고 투자를 할 수 있게 한 스트롱벤처스의 실적과 숫자를 만드는데 압도적으로 기여를 한 코빗의 코파운더 유영석 대표와 김진화 이사님한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항상 이런 스트롱의 힘들고 미약한 시작을 기억하면서, 나도 누군가 시작하는 걸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는 하루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