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3062032_1280스트롱과 같은 초기 투자자, 그리고 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와 같은 악셀러레이터는 단순 돈보다는 더 큰 도움을 스타트업한테 제공한다. 어떤 투자사는 체계적으로 제품 빌딩, 팀 빌딩, 투자유치 등과 같은 주제로 교육 코스를 만들어서 초기 창업가들을 도와주면서 포트폴리오 회사에 큰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제 시작하는 회사가 필요한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product market fit을 같이 찾고, 능력 있는 인재를 유치할 때 나도 그분을 면접하기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타트업이 성장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좋은 제품, 좋은 돈, 좋은 인재인데, 여기서 좋은 제품은 VC들이 아무리 도와줘도 한계가 있다. 제품 자체는 투자자보단 창업가들이 더 잘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VC들의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은 후속 펀드레이징과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이 성장을 잘 관리하고 가속할 수 있는 좋은 인재 소개 및 연결이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가 120개가 넘기 때문에, 모든 회사에 내가 이런 도움을 매일 적극적으로 줄 수가 없다. 마음이야 항상 회사의 co-founder와 같이 열심히 대표들과 같이 바닥에서 구르고 싶고, 체력도 아직 20대랑 맞짱뜰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7년 전에 1호 펀드 하나만 운용할 때는 투자사가 별로 없었고, 우리 일도 지금같이 복잡하고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존이랑 나랑 우리 투자사들과 정말 타이트하게 같이 일했고, 특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회사들의 미국 지사 역할을 했다. 비석세스가 시작할 때 2012년 beLaunch라는 2,000명 이상이 참석한 큰 행사를 한국에서 했는데 해외에서 온 대부분의 이름있는 손님은 존이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했고, 비론치 행사 준비와 운영에 우리도 깊게 관여했었다. 코빗 같은 경우도, 우리가 제일 먼저 투자했고, 2차 투자는 Tim Draper와 엔젤리스트의 Naval Ravikant와 같은 미국의 좋은 엔젤한테 받았는데, 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투자 관련 대부분의 일을 존이 미국에서 하면서 투자유치를 성공시켰다. 쿠팡에 인수된 Recomio라는 회사의 경우도, 인수 전 과정에 우리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이 회사에는 엔지니어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회사의 비즈니스 담당자 역할을 했다.

실은,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뭔가 뿌듯했고, 결과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면, 투자자가 또 너무 이렇게 앞단에 나서서 창업가들과 같이 실무를 하는 게 항상 좋지는 않은 거 같다. 일단 우리같이 많은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게는 한 회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시간을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다. 많은 회사,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에, 한 회사와 깊게 일하다가, 다시 빠지고, 또 다른 회사와 깊게 일하고, 이 과정을 지속해서 반복해야 하는데, 특정 회사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면 다른 곳에서 빵꾸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실은…나는 힘들어하는 특정 회사들과 시간을 상당히 많이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안 좋은 건, VC가 힘든 일을 다 대신해주면, 창업가의 경쟁력과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있는 창업가들한테 투자하고,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걸 도와주는 게 초기 VC인데,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도 없고,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일단 일을 처리하는 게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앞단에 내가 나서서 창업가 대신 많은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렇게 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창업가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해진다는 걸 많이 느꼈다. 펀드레이징 예를 들면, 전에는 피칭 자료를 아예 내가 수정해주고, VC 직접 소개하고, 미팅까지 참석하고, 그 이후의 과정을 follow-up 하는 것까지 내가 다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훨씬 더 익숙한 과정이라서 시간도 절약하고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과 소음을 줄일 수 있지만, 창업가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어려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배우는 게 별로 없다. 결국, 그다음 라운드를 진행하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걸 많이 경험했고, 이러면 오히려 나만 지치고 더 피곤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웬만하면 모든 걸 창업가들한테 위임한다. VC 소개가 필요하면 당연히 연결은 내가 해 주지만, 이메일로 한 번 연결하고, 그 이후의 모든 건 알아서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투자사와 다른 VC와의 미팅에는 참석하지 않고, 진행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좋은 창업가들은 알아서 본인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걸 종종 경험한다. 대표의 경험 부족과 미숙함 때문에 큰 실수를 해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안타깝긴 하지만, 이것도 나는 이분한테는 값진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더 잘할 것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투자를 하다 보면, 한 회사에 우리 단독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VC랑 같이 투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VC마다 철학이 다르고, 전략이 다르고, 투자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 창업가가 이런저런 미세 조정과 조율을 잘 해야 한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조금만 어긋나도, 큰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가 생길 때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다른 VC한테 직접 전화해서 우리끼리 잘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항상 창업가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이 창업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향상되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라운드와 인간관계를 핸들링 할 수 있는 경험과 배움이 쌓이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이젠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주면 하루의 양식이 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의 양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도 요샌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있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나한테도 훨씬 편하고, 단기적인 스트레스는 생기지만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덜 생긴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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