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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aylee102 / 크라우드픽

VC들이 창업가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진입장벽에 관한 질문이다. 네이버나 구글 같은 회사가 우리랑 똑같은 비즈니스를 하면 어쩔거냐, 그렇게 했을때 우리가 그냥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만의 강점, 즉, 진입장벽이 뭐냐는 질문을 웬만한 창업가라면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요샌 잘 안 하지만, 전에는 항상 하던 질문 중 하나였다. 이 진입장벽이라는 용어는 참 애매하긴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VC가 원하는 진입장벽에 대한 답변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과 같은 측정할 수 있는 하드 팩트인데, 이런 하드 팩트를 진입장벽으로 가진 회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소위 말하는 이해하기 쉬운 소비자 인터넷 분야의 회사들은 대부분 아주 좋은 기술력을 지녔지만, 이 기술력이 밖으로 노출되진 않는다. 투자자의 눈에 보이는 건 이런 기술력이 뒷받침하는 재미있고 유용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커머스나 서비스 기반의 마켓플레이스 스타트업은 진입장벽에 대한 시원한 답변을 주는 게 쉽지 않다. 본인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확실한 진입장벽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게 항상 대기업이 돈과 사람으로 밀어붙이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분야에서 거의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회사들이 수없이 많아도, 이 중 항상 제일 잘하는 회사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사업을 남들보다 더 잘 하는 이유는 명확한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여러 회사를 보면서 느꼈던 다양한 진입장벽은 대략 이런 거 같다.

일단 분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회사라도 좋은 기술력은 훌륭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남들보다 브레인파워가 더 높은 엔지니어들이 있는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회사에 비해 월등한 기술적 장벽을 갖게 된다. 다만, 이 기술적 장벽에 대해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처음부터 높은 기술적 장벽을 갖고 시작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면서 기술적 장벽을 만들어 가는 회사가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전자에 관심이 많다. 즉, 창업팀에 공학 박사가 있거나 좋은 개발인력이 있으면, 이 회사는 기술적 장벽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높은 기술적 장벽을 갖고 시작해도, 그 어떤 진입장벽과 마찬가지로, 이건 따라 잡힐 수 있다. 다른 회사에서 더 뛰어나고 비싼 엔지니어를 더 많이 채용하면 따라 잡힐 수 있다. 나는 오히려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오랫동안 하면서 얻는 기술력이 훨씬 더 방어하기 좋은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기 쉬운 또 다른 진입장벽은 운영의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들의 강점이기도 한데, 이거야말로 겉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명하는 게 어렵다. 예를 들면, 유통기한이 있는 물건을 사입해서 자체 창고에 보관하고, 이걸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한 번 생각해보자. 겉으로는 그냥 모바일 앱으로 고객들이 물건을 구매하면 늦지 않게 배송해주는 그런 일반 이커머스 비즈니스랑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하는 방식도 달라야하고, 재고가 너무 많으면 물건이 상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요예측과 재고 관리를 해야 하고, 주문을 어떤 주기로 취합해서 하루에 한 번 배송할지 여러 번 배송할지 등을 잘 관리하고 최적화해야지만 이 비즈니스를 잘 운영할 수 있다. 이런 건 우리만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라서 책에서 배울 수도 없고, 남이 이미 경험을 했더라도 공개되지 않은 영업비밀이라서 스스로 터득해야한다. 말이 ‘터득’이지, 이건 수많은 시행착오, 실험, 그리고 노가다가 필요하다. 이런 운영의 진입장벽은 남들이 따라잡기가 쉽지 않고, 따라잡더라도 많은 시간, 돈, 그리고 피와 땀이 필요하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진입장벽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돈도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천억 ~ 수조 원의 투자를 받고 유니콘이 된 회사들이 코비드 19로 인해서 자금이 마르자 급격하게 망가지는 모습, 그리고 상장 후 시장에서 박살나는걸 목격한 후, 돈은 더이상 진입장벽이 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실은 초반에 잠깐 진입장벽이 되더라도, 돈만큼 무너뜨리기 쉬운 진입장벽은 없다. 그냥 더 많은 돈으로 이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고, 따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진입 장벽은 사람 그 자체이다. 전에 ‘불가항력‘이라는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걸 만들고 어떤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를 보면 시스템이 일을 하는 특정 시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회사의 사람 자체가 가장 극복하기 힘든 진입 장벽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돈, 기술, 운영과는 달리 사람이라는 진입 장벽은 복사하거나 따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젠 없어진 KBS 개그콘서트 프로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 개그맨 정종철 씨의 역할은 ‘옥동자’라는 캐릭터였다. 인물이 많이 빠지는 그런 캐릭터였는데, 다른 캐릭터들이 옥동자에게 “넌 얼굴 자체가 무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다. 만약에 얼굴 자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입 장벽이라면, 이걸 남들이 따라하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이런 진입장벽이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