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계속 빠르게 바뀌고 있고, 우리같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의 낌새를 빠르게 포착해야하며, 현재에 투자하기보단 미래에 투자해야지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 행동은 아직 과거의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고, 우리 팀원은 모두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는데, 가끔 나만 구시대적인 발상과 편견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 내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유연한 태도로 모든 걸 접근하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게 생각같이 잘 안 돼서 정말 힘들긴 하다.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중, 얼마 전에 스포츠 구단,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그리고 OTT 관련 포드캐스트를 듣다가 변화와 관련된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OTT 플랫폼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전통적인 TV는 이제 덜 보고, 인터넷으로 모든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때문에, 이제 드라마나 방송프로를 본방 사수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본방 사수를 못 하면, TV 재방송을 해주면 재방송 시간에 다시 보거나, 비디오로 녹화를 해놨다가 봤지만, 이젠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에서 얼마든지 거의 무료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꼭 생방송이 의미가 있는걸 꼽자면 바로 스포츠다. 다른 건 모두 다 녹화방송으로 봐도 되지만, 운동경기는 반드시 생방송으로 봐야 하고,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은 더욱더 맞는 말이 됐다. 이런 배경을 잘 이용하여, 스포츠 리그나 협회는 생방송 중계 라이센스를 말도 안 되게 비싸게 팔았고, 그래도 방송국들은 앞다퉈서 라이센스를 비싸게 구매했는데, 비싸지만 이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MZ 세대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좋아하는 팀이 경기하면, 운동경기를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하지만, 10대들의 성향은 아주 다르다. 이들이 운동경기를 보는 방법은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한 경기를 생방송으로 다 보지 않고, 여러 경기의 주요 하이라이트만 보는데, 그렇게 해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손흥민 선수 경기를 다 안 보고, 그냥 골 넣는 하이라이트만 봐도 친구들과 “야 너 소니가 5명 재끼고 골 넣는 거 봤지? 대박!”이라는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이 친구들에게는 이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하이라이트는 유튜브나 트위터에 널려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생방송을 보지 않고도 시청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 쪽에서는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스포츠 리그와 방송국은 이걸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했다기 보단, 그냥 보기를 거부했다고 하는 게 맞을것 같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주위의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스포츠 중계 라이센스도 가격을 낮추던지, 무료화하는 방법을 찾자고 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TV에서 NFL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 경기 시작하고 종료하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4시간 동안 실제로 볼이 플레이되는 시간은 15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3시간 45분은 광고, 작전, 타임아웃 등이다. 우리 같은 구세대는 상관없지만, 젊은 친구들은 이런 걸 다 볼 시간도 없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시간에 다른 거 하고, 경기 끝나면 하이라이트 2분만 보면 친구들과 이 NFL 경기에 관한 대화를 실컷 할 수가 있다.

어떤 e스포츠 종사자가 MLB 임원과 토론하는 걸 전에 봤다. 야구 쪽 분이 e스포츠는 아직 장난이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면서 공격하자, e스포츠 종사자는 여러말 하지 않고, “MLB의 팬은 이제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e스포츠 팬은 이제 태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죠”라는 말로 받아쳤는데, 이 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시대가 바뀌는 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우렁차므로 들으려고 하면 들린다. 실은, 이건 독자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따끔한 경고이자 충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