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많은 창업가들이 번아웃을 경험했을 것이다. 번아웃의 의미가 워낙 광범위해서 그냥 피곤한 것도 번아웃이라고 하지만, 심각한 공황장애나 우울증 또한 번아웃에 포함된다. 육체가 너무 피곤해서 오는 번아웃 현상은 휴식을 취하면 좋아지지만, 정신이 피곤해서 오는 번아웃 현상은 그냥 쉰다고 바로 개선되진 않는다. 특히, 이런 번아웃 현상이 아주 오랫동안 쌓이기만 했다면, 육체는 물론 정신이 매우 피곤해지는데, 이걸 그냥 방치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정신병으로 번질 수도 있다.

작년에 이런 번아웃 현상을 호소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요새 대표들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대표님 요새 정신은 괜찮으신가요?”이다. 그리고 전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좀 민망했고, 이런 질문을 받는 분들도 불편해했지만, 이젠 정신병이 감기와 같이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편안하게 이런 정신 건강에 대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스타트업 대표나 직원들이 번아웃 증상을 호소하면, 일단 좀 쉬어야 한다. 되도록 회사에서 좀 멀어져야 하고, 업무 생각을 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떤 대표는 공황장애가 너무 심하게 와서 가족들과 한 3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하고, 어떤 스타트업 팀장은 우울감이 너무 커져서, 한 달 동안 휴직하고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거나, 같은 회사 또는 주변에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일이 인생보다 먼저 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생이 위험해지면, 일단은 일을 좀 손에서 놓고 무조건 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분들이 공통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회사 상황이 어렵거나, 일이 잘 안 돼서 오는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아무리 오랫동안 휴식을 취해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히려 본인들에겐 일을 안 하고 쉬는 것 자체가 더 큰 번아웃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떤 분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두 달 동안 가족들과 멀리 강원도로 휴가를 갔고, 이 기간에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아예 안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업무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더 큰 공황장애를 유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해도 힘들고, 일을 안 해도 힘들어서 돌아버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도 참 안타깝게 들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미안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표나 직원분들의 번아웃을 한 방에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성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는 매출이 될 수도 있고, 유저증가가 될 수도 있고, 엄청난 제품 출시가 될 수도 있고, 또는 대규모 펀딩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야기했던 많은 분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많은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상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컬 한 건, 이런 성과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려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상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