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샌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서 B2B와 B2B SaaS 창업가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시장이 바뀌고 있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전에 한 번 공유한 적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이렇게 한국의 B2B SaaS 시장도 커지면서 성숙해질 것이고, 이건 단지 시작일뿐이다. 우리도 5년 내로 B2B SaaS 시장이 상당히 커질 것이고, 이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도 탄생할 것이고, 아마도 일본의 SaaS 시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B2C 시장과 B2B 시장은 같으면서도 다른데,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제품을 팔기 위한 영업 방법이 아닐까 싶다.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B2C 제품은 최종 사용자를 대상으로 따로 영업할 필요는 없고, 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매스마케팅을 해서 확률적으로 고객을 획득한다. 공략할 고객군을 정의하고, 여기에 전달할 마케팅 메시지나 캠페인을 만들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마케팅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퍼포먼스를 측정하면서, 여기서 배운 점들을 지속적으로 체계화하고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제품을 사용할만한 고객군이 워낙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홍보할 수가 없고, 고객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전통적으로 고객 한 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매출이 작기 때문에, 이렇게 시스템을 활용한 GTM(Go To Market)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B2B 제품은 모든 게 이와 반대이다. 기업에서 사용할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을 사용할만한 고객이 한정되어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홍보할 수 있고, 이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알 수 있고, 고객 한 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시스템을 활용한 전략 보단, 직접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가장 좋은 마케팅이자 판매 수단이다. 특히나, 시장에서 새로 출시된 제품이라면,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입증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잠재 고객을 찾아다니면서 제품을 영업하면서 홍보해야 한다.

B2B 제품의 영업은 어렵다. 기업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결재도 법인에서 이뤄지지만, 판매자와 구매자 최초의 접점은 사람이고, 마지막 접점도 사람과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 길면 1년이 훌쩍 넘게 걸릴 수 있는 이 영업 과정이 아마도 B2C와 B2B 사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영업 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많은 B2B SaaS 제품이 기업의 핵심 프로세스를 건드리고,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의사결정 체제를 180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많은 내부 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정말 힘들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어떤 제품은 top-down 영업 방식으로 사장만 설득하면 된다. 이 경우엔 주로 위에서 강압적으로 B2B SaaS 제품을 사용하라고 실무진을 압박한다. 하지만, 기업이 점점 더 수평적인 조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장이 오너가 아닌 이상 이런 방식은 요샌 잘 안 통한다. 대부분의 영업은 top-down과 bottom-up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지급에 대해 결정을 하는 사장과 경영진은 당연히 설득해야 하고, 이 제품을 실제로 사용할 현업도 설득해야 한다. 이런 영업이 실은 가장 전략적이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나도 과거에 제조업을 대상으로 B2B 소프트웨어 영업을 했었는데, 1년이 넘게 걸린 경우도 있었다.

ERP와 같이 전사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SaaS 제품은 당장 live로 적용하지 않고, PoC(Proof of Concept)라는 테스트 과정을 선호하는 고객사도 있는데, 이것만 영업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PoC를 한다고 실제로 도입하는 경우도 절반밖에 안 된다.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 때문에, 우린 B2B 영업은 시스템화해서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가구 회사에 B2B SaaS 제품을 잘 판매했다고 해서, 동일한 영업 방식으로 다른 가구 회사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고,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영업해야 한다. 그래서 B2B 영업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B2B 회사들이 J 커브를 그리면서 성장하는 게 참 힘들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영업 프로세스를 체계화해서 계속 다른 잠재 고객사에 반복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도입과 동시에 바로 subscription 모델을 시작할 수 있다면, B2B SaaS 분야에서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