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QA

피드백에 대해

우리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타파스의 창업가 김창원 대표님이 얼마전에 링크드인에 이런 포스팅을 올렸다.

VC들이 회사를 검토한 후에 투자하지 않기로(=pass) 하면, 왜 투자하지 않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창업가들에게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포스팅인데,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창업가의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다. 김창원 대표님은 VC들이 투자하지 않고 패스하는 이유를 창업가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실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이 내용에 동의할 것이다. 투자사와 스타트업의 관계는 비즈니스로 엮인 professional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VC라는 사람과 창업가라는 사람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자 교류라서,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왜 특정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지를 항상 명확하고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매우 많고, 나도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VC들이 패스하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조금 덧붙여서 말하자면, 그래도 나는 투자자들이 창업가들에게 간략하게라도, 명확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패스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의 돈을 관리해 주는 펀드 매니저들이고, 이 돈을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한다. 기계적으로 보면, 그냥 돈이 좋은 사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이지만, 이 구조 속으로 깊게 들어가 보면, 결국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고, 서로를 알게 되고,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구조이다.

나는 창업가들이 VC들과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도 오래전에 뮤직쉐이크 할 때, 투자자들과 한 시간 만나기 위해서 5시간을 준비했고, 그 미팅을 위해서 엄청난 시간, 돈, 에너지, 기대, 그리고 희망을 투자했기 때문에, 창업가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잘 안다. 특히, 유명한 VC랑 만나기 위해선 몇 달 전부터 약속을 잡고 수개월을 두려움과 설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미팅을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부분의 투자자 미팅은 거절로 끝난다. 거절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보면, 이력이 나기 때문에, 거절 자체로 맘 상하진 않는데, 왜 우리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는지 피드백을 줬던 VC들이 그렇게 고마웠다. 어떤 투자자는 굉장히 다정하게, 그리고 자세히 피드백을 줬고, 어떤 투자자는 “너는 너무 지루한 피칭을 했어.”라는 그렇게 생산적이진 않았던 피드백을 줬지만, 그래도 당시 바닥을 구르고 있던 나에겐 모두 큰 도움이 됐다. 어떤 투자자는 싸가지 없는 피드백을 줬지만, 어쨌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했던 부분이라서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했다.

가장 섭섭하고 아쉬웠던 투자자들은 미팅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고, 그 어떤 피드백도 없던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이제 투자를 조금 해보니까, VC들이 얼마나 바쁘고, 모든 거절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투자자와 만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한 창업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땐, 짧게라도 그 이유와 피드백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건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를 떠나서, 나와 같은 한 명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가장 안 좋은 건, 미팅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는 투자자들이다. 어장관리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하에 절대로 창업가들에게 싫은 소리를 안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런 분들 때문에 VC들이 단체로 욕을 먹는다. 이런 분들은 투자하면 안 된다.

소명과 책임

우리 펀드의 출자자(LP)는 국내, 해외, 기관, 그리고 개인들이 적당히 잘 섞여 있다. 이 중 최근에 알게 된 분들도 있지만, 스트롱 1호 펀드부터 출자하고 있는, 13년 넘게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우리랑 오랫동안 알고 지낸 출자자 중 아주 유명한 투자자들도 꽤 있는데, 최근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어떤 분이 했던 질문 때문에 내가 한 9년 전에 이 분과 나눴던 대화가 다시 생각났다.

일단 이 분과 9년 전에 나눴던 대화는 소명과 책임에 대한 내용이다. 이분은 수십 년 동안 좋은 투자를 많이 해서 그동안 큰 부를 축적했음에도, 가끔 보면 나보다도 더 열심히 창업가들을 만나고, 마치 이제 투자를 시작하는 심사역같이 용맹스럽게 투자하는 걸 보고 좀 의아했다. 이미 돈 많이 벌었고,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면 되는데, 굳이 이제 VC를 시작하는 나 같은 주니어만큼 열심히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그 대답이 당시에 나에겐 신박했다.

“Kihong. 너도 앞으로 좋은 투자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야. 네가 말 한대로 난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어. 내가 번 돈으로 우리 가족은 3대가 부유하게 살 거야. 그 정도로 돈은 많이 벌었어.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할 필요는 없지.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땐,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열심히 창업가들 만나고 좋은 회사를 쫓아다녔어. 너처럼 말야 ㅎ. 그런데 이젠 이게 나에겐 하나의 소명이자 책임이 된 것 같아.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창업가들에게 내가 제공하는 자금이 기회가 되고, 이 기회를 통해서 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길 바래. 돈보다 이런 책임과 소명이 나에겐 훨씬 더 강해.”

솔직히, 이 말을 내가 처음 들었을 땐, 속으로 “what the fuck?”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냥 부자들이 하는 전형적인 그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당시엔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돈을 많이 못 벌었고, 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낼 정도의 위치에 못 올랐지만, 이제 이분이 말한 게 어떤 말인지 아주 희미하게, 그리고 아주 어렴풋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길,,,아직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좋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있고, 절대로 이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이들이 큰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질적인 것들 외의 것들, 예를 들면 소명이나 책임에 대한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작은 힘’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 내가 동참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우리가 하는 작은 투자라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창업가들은 원래 부자였고, 좋은 학교 나와서 이미 남들보다 더 앞선 지점에서 스타트업이라는 경주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남들보다 뒤에서 출발하고, 실은 경주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기가 힘든 분들이다.

요샌,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들이 경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라는 경주에 참여한다고 모두 다 완주하는 게 아니고, 좋은 성적으로 완주하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전에 있었던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어떤 분이 프라이머 파트너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본인은 학벌도 없고, 경험도 없고, 돈도 없지만, 뭔가 해보고 싶은 의지는 충만한데, 이런 창업가에게도 프라이머는 투자하는지 물어봤다. 프라이머나 스트롱이나,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 투자한다. 우린 모든 창업가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위에서 말한 우리 출자자와 했던 9년 전의 그 대화가 다시 생각났었다.

의지가 있고, 준비되어 있는 창업가들에게 한 번은 뛰어볼 수 있는 자금과 기회를 제공하는 투자자로서의 소명 또는 책임. 뭐, 아직 나에게 이런 게 뚜렷하게 자리 잡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러길 바란다.

재미, 일, 그리고 창업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할까? 즉, Do What You Love가 중요한가, 아니면 Love What You Do가 중요한가? 말장난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이 내포하는 의미는 극과 극이다. 어릴 적부터 뭔가를 좋아했다면, 이걸 평생 직업으로 삼는 건 매우 이상적이다. 놀이가 일이 되는 거고, 일이 놀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놀이는 돈벌기가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론 이렇게 하는 게 쉽지 않다. 반면에 돈을 버는 직업은 대부분 재미나 놀이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그래도 오랫동안 해야 하는 일이라서 일을 즐기려고 많은 사람이 노력하지만, 이건 진짜 힘들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일을 평생 하는 것도 참 힘들다.

참고로, 위에서 말한 내용들은 취업이라는 범위에 국한되는 것들이다.

창업은 어떨까?

원래 창업가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게 사업이 되는 경우를 우린 꽤 많이 본다. 취미 생활이 사업이 되는 그런 경우다. 그런데 취업의 경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버는 게 현실적으론 쉽지 않지만, 창업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버는 경우를 나는 종종 봤다. 뭐가 다를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자주 말하는 ‘에너지 레벨’의 차이인 것 같다. 취미 생활로 사업하는 창업가들을 보면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취업한 분들과는 그 에너지 레벨 자체가 다르다. 이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걸 너무나 좋아해서, 이 분야에 평생 종사하기 위해서 창업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규모의 사업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 남의 밑에 들어가서 돈을 벌기 위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직장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좋아하는 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하다 보니 돈을 잘 버는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들 또한 본인들의 일을 사랑한다. 본인의 취미, 취향, 또는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창업해서 성공적인 사업을 하는 한 창업가에게 어떻게 해서 일을 즐기게 됐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이분은 그냥 기회만을 쫓아서 창업했는데, 이게 사업이 됐고, 사업이 돈이 됐는데, 돈을 잘 벌기 시작하니까 일이 너무 재미있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실은, 이분 같이 일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에너지 레벨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인, “즐길 수 있는 일로 창업을 해야 하냐, 아니면 그냥 창업하고 이 일을 즐겨야 하냐?”에 대한 답변은 그냥 “상관없다” 인 것 같다. 뭘 하든 간에 내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로 창업하면, 그 에너지 레벨은 이미 직장인들과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일로 창업을 하면 그 나름대로 재미있고, 그냥 일로써 창업해도 결국엔 그 일을 즐기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지는 싸움

얼마 전에 스트롱 같이 미국 펀드이지만 한국에 꽤 많은 투자를 하는 친한 몇 분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라서 개인적인 사소한 일들에 관해서 이야기도 했지만, 결국엔 우리가 하는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각자 투자한 회사와 창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자연스럽게 글로벌(=미국) 시장 진출 관련 대화도 했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시장을 오랫동안 관찰한 투자자 각자의 입장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관점에 대해서 듣고 배울 수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역시나 모두의 관점은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흥미롭고 배움이 많았던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모두가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너무 성급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하지 말고, 일단 한국에서 잘해서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든 후에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해서 내가 자주 하는 비교가 야구 선수 박찬호와 류현진 이야기다. 박찬호 선수는 한양대학교를 중퇴한 후 LA 다저스로 입단하면서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한국에서는 프로 선수 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글로벌 무대로 진출한 셈인데, 굉장히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류현진 선수도 매우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했는데, 박찬호 선수와는 반대로 한국에서 약 10년 동안 프로 활동을 했다. 한국에서 그는 최고의 투수가 됐고, 한국 시장을 제패한 후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박찬호 선수는 한국을 스킵하고 처음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류현진 선수는 국내 시장에서 1등을 먹은 후에 미국 시장에 진출한 셈인데, 둘 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사례를 스타트업에 적용해 보면, 어떤 한국 스타트업은 바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한국 스타트업은 일단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후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듯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하나의 성공 공식이란 없다는 게 과거의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샌 내 생각이 점점 더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나는 한국 스타트업은 일단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한국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한국에서 돈을 확실히 번 후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게 더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즉, 류현진 선수의 방법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회사들이 상당히 많다. 창업하자마자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곳들도 있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만들어서 product market fit을 이제 찾았고, 수치들이 나쁘지 않은데 훨씬 더 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곳들도 있다.

나는 두 부류의 대표님들 모두를 적극적으로 말린다. 이제 시작하는 팀이나 한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한 팀이나, 모두 다 돈을 못 벌기는 마찬가지다. 수치가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마이너스가 나는 회사들이고, 투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돈을 못 버는 회사들이다. 그런데 이런 회사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미국에서는 초기 몇 년 동안은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즉, 스스로 손실을 한 4배로 증가시키는 매우 멍청한 전략이다.(미국은 한국보다 비용이 몇 배나 더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피를 철철 흘리는 마이너스 나는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굳이 미국에서도 또 지는 싸움을 하는 건 자살 행위다. 왜 이런 멍청한 결정들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이렇게 무모하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하면, 절대로 이기는 회사를 만들지 못하고, 싸우는 싸움마다 무조건 지고, 결국 금방 망한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방법은, 일단 한국 시장에서의 싸움을 이기고 – 즉, 한국에서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들어라 – 그 이후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대표의 쓸데없는 야망이나 욕심 때문에 계속 지는 싸움을 하지 않길 바란다.

확신과 자기최면

우린 상당히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회사를 만나야 한다. 이 많은 회사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deal sourc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동안 이미 260개가 넘는 포트폴리오에 투자했기 때문에,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주변에 있는 다른 창업가들을 많이 소개해 주고, 다른 투자자들이 소개해 주고, 데모데이 같은 곳에서도 만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인바운드로 다양한 창업가들이 콜드 이메일로 회사 소개자료를 보낸다.

이런 콜드 이메일로 오는 회사들은 매력도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인바운드 이메일을 읽고, 이 중 재미있는 사업이나 창업가 같으면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한다. 얼마 전에 이런 미팅을 했는데, 만나서 한 20분이 지났나,,,이 분한테 나는 미안하지만 우린 검토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안 됐다고 느꼈고, 더 이상 미팅을 하면 서로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준비되면, 그때 VC 미팅을 하라고 솔직한 피드백을 줬다.

이분이 나한테 그러면 도대체 투자자는 언제 만나면 되는지 물어봤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럼, 언제 준비가 되는 건지,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최소한 본인이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실은 그 누구도 창업가를 믿어주지 않는다. 주위 친구들도 말릴 것이고, 가족들도 말릴 것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지인들 10명에게 내 사업 아이디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10명 모두 망할 거라고 하면서 말릴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사업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스스로는 설득되어야 하고, 본인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이 가짜 창업가는 본인도 자신의 사업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게 온몸을 통해서 느껴졌다.

내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어느 정도의 감과 적당한 데이터를 통한 확신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창업가는 본인이 하려고 하는 게 가능하다는 어느 정도의 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감과 느낌만으론 본인도 확신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느낌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적당한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일한 경험이 기반이 되는 감과 이를 보강할 수 있는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있으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자기 최면이다. 잘될 거라는 느낌도 확실치 않고, 조사를 좀 해보니까 데이터도 신통치 않으면 자신감이 확 떨어질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해야 한다. 마치, 어떤 펜싱 선수가 경기 중 계속 “할 수 있다.”라면서 스스로에게 긍정의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이렇게 해서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만약에 본인도 확신이 안 서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웬만한 VC는 이런 불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업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고, 이분의 눈빛, 동작, 그리고 태도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판단할 수 있다.

100% 확신이 있어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하는데, 이 기본적인 확신마저 없다면 투자자와 안 만나는 게 좋다. 서로의 시간만 낭비할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절대로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