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스탠포드 대학.

나는 작은 강당에 앉아 대형 스크린에 비친 커다란 파도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강당은 학생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시험이 얼마 전에 끝나서인지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학생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한 말쑥한 인도 신사가 연단 위로 올라왔다. 짧은 백발과 깊은 눈매가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마치 현자와도 같은 그의 모습에 강당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설립자이자 ‘실리콘 밸리 미다스의 손’,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의 등장이었다.

오늘의 강연자 비노드는 연단에 서서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인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가능한 꿈을 키웠던 소년 비노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인도 푸네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우연히 책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책에는 앤디 그로브라는 한 모험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소년은 그 짧은 이야기에서 평생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위대한 교훈을 발견했다. 어린 비노드가 읽었던 것은 인텔을 평범한 메모리칩 제조업체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일궈낸 바로 그 앤디 그로브(Andy Grove)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새로운 꿈을 가진 비노드는 이후 인도의 MIT라고 불리는 인도공과대학(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을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과정을 수학하던 중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 앤디 백톨샤임(Andy Bechtolsheim)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함께 공부하며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 세계 IT업계의 새 시대를 연 역사적 기업,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돌연 그만 두고 실리콘 밸리의 명문 벤처 캐피탈 기업인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에 합류해 자신의 또 다른 사명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가난하지만 꿈을 가진 청년 창업가들을 돕는 일이었다. 비노드는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빠른 속도로 두각을 나타냈고, 곧이어 ‘실리콘 밸리의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다. 그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은 99.99% 성공한다는 소문 덕분에 생긴 명예로운 칭호였다.

“그러니까 열다섯 살 때, 저는 ‘창업’이라는 무시무시한 독을 가진 벌레에 물렸던 것입니다.”
비노드는 앤디 그로브로 인해 지니게 된 창업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표현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끊었다. 노트 넘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강당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침묵 속에서도 강당 전체가 연단을 향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노드는 생각을 마친 듯 다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룬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의 선배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조 크라우스(Joe Kraus)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94년 학교 친구 다섯 명과 함께 Excite.com이라는 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이름만큼이나 매우 흥미진진한 서비스인 Excite.com은 당시 클라이너 퍼킨스에 있던 비노드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그는 이 가난한 청년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창업의 시작이 그렇듯, Excite.com의 첫 사무실은 조 크라우스와 그의 친구들이 스탠포드 재학 시절부터 지냈던 누추한 아파트였다. 그 낡고 허름한 곳을 비노드가 드나드는 것이 어찌나 이상해 보였는지 심지어 그 방에서 마약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람보르기니를 탄 말쑥한 인도 신사가 흐릿한 눈동자의 – 물론 프로그래밍을 하느라 잠을 못 자서 – 백수 청년들과 어울리고 있으니 이웃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찌 됐든 비노드의 안목은 역시 적중했다. Excite.com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당시 스물네 살이었던 스탠포드 졸업생 여섯 명은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됐다. 물론 2000년 초 닷컴버블이 터지자 Excite.com의 상징인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유리 빌딩’의 창문에도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이뤄낸 이 일은 분명 상상을 초월하는 업적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애송이들도 했는데,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이 왜 못하겠습니까?”

바로 이때, 비노드의 짧은 한 마디가 내 심장을 관통했다. 펜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어찌 보면 나는 지금까지 젊은 시절의 비노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나 역시 그처럼 아시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운 좋게 미국으로 유학 왔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이지 나라고 못 할 것은 없었다. 불과 몇 년 전 이곳 기숙사에서 전자공학과 박사였던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빗 파일로(David Filo)가 야후를 설립했고,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구글을 만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당시 나는 미국 명문대 중 하나인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기분에 취해 하루하루를 안일하게 보내고 있었다. 스탠포드를 졸업한 후 마이크로소프트, GE 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해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내 인생에 하나 밖에 없는 길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믿었다. 내게는 그들과 같은 야망과 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비싼 등록금까지 내면서 나는 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려졌다.
조 크라우스의 이야기를 마친 비노드는 연단 뒤 대형 스크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스크린 속 파도는 바위를 집어삼킬 듯이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그 파도를 가리키며 한층 더 힘찬 목소리로 마지막 연설을 시작했다.

“엄청난 부를 얻겠다는 욕심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류에 도움이 되고자 창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표가 무엇이든 창업을 하는 정신은 모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밤이 새도록 일에 몰두하게 하는 그 뜨거운 열정 말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여러분의 스타트업을 시작하십시오. ‘창업가 정신’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큰 꿈을 마음에 품고, 우둔할 정도로 꿈을 좇으며, 그리고 마침내는 그 꿈을 실현시키는 위대한 정신입니다. 여러분, 부디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Create the Next Tsunami.”

비노드의 연설이 끝났을 때, 가슴 속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세상을 뒤엎을 쓰나미를 일으켜라!’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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