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마다 다르지만, 검토하는 회사 중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상당히 낮을 것이다. 우리도 해마다 800 ~ 1,000개의 회사를 검토하지만, 실제로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5% 미만이다. 재미있는 건, 투자하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흑백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분야라서 명확한 기준이 있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롱이라는 하나의 VC만 봤을 때도 이렇게 다양한 투자의 기준이 있는데, 다른 VC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양한 기준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의 기준을 조금 더 일반화해보면, VC가 특정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려고 하는 사업이 현실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성이 없는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발산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라서, 투자자의 “팀이랑 대표는 괜찮은데, 사업이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투자는 안 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경우가 몇 번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현실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론 현실성이 없다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만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고, 조금만 다르게 본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장강명 씨의 “책, 이게 뭐라고”의 작가의 숙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창업가들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이 잘 정리됐다.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업가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제품은 현재에 있지만은 않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아이디어와 제품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와 제품을 상상하고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사용자들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들에게 욕을 먹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어떤 스타트업이 현실성이 없다는 건,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이 너무나 풍부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현재 세상이 만든 틀에 본인들을 맞추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본인들이 만든 틀에 미래의 세상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투자하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비이성적인 미래지향주의자이다.
어떻게 보면, 창업가의 사명은 오히려 현재의 세상과 충돌과 불화를 만드는 데 있고, 우리 같은 투자자는 이런 충돌과 불화를 더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끔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