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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직면하기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서는 세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문제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 그리고 문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 실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냥 어떻게 되거나, 누군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결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방치하는 동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이유는 그냥 전 세계 대부분 사람이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골치 아프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해야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 들어야 하고, 고장 난 걸 내 손으로 고치려고 시도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웬만한 사람은 그냥 이런 상황을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혼자 뭉개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다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아예 문제에서 등을 돌리고,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구나잠수 타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어쨌든 둘 다 사회나 집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소수지만,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커도, 절대로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go-getter형의 problem solver들도 가끔 만나는데, 이런 사람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실은, 그렇다고 이런 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들이 실수한 걸 인정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테 하기 싫은 소리도 많이 하고, 필요 이상으로 욕도 먹고, 정말로 몸과 마음이 불편한 행동과 말을 해야 하기도 하다.

나도 굳이 어떤 사람인지 분류를 하자면, 그래도 문제로부터 도망가기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진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말만큼 쉽진 않다. 가끔은, 별거 아니지만,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남한테 전화 한 통 거는 것조차 너무 하기 싫고, 전화가 오면 정말로 받기 싫고, 진짜로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내 과거 경험에 의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그냥 가만히 있거나 도망가는 것보단 좋은 결과를 만든다. 당장은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정신과 육체 건강에 훨씬 좋다.

며칠 전에 소프트뱅크가 실적 발표를 했는데, 1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을 냈다. 자그마치 7조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했는데,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위워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 폭락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적자가 발생한 거야 놀랍진 않지만, 나는 손정의 회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현실을 아주 객관적으로, 그리고 똑바로 직시하고, 아주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하는 자세에 감명받았다. “내 판단에 문제가 있었고, 이건 제가 정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 “변명 없이, 있는 그대로 실적을 설명하겠습니다” , “이만큼 적자를 낸 것은 창업 이래 처음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등과 같은, 어떻게 보면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 하지 않는, 그런 발언과 행동은 나한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나도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문제가 있으면 도망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고, 그냥 그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라고 자주 조언한다. 실은 스타트업 하는 분들은 대부분 problem solver지만, 간혹 현실로부터 도망가려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의 특징은, 회사의 실적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고, 변명이 많고, 이런저런 관련 없는 수치들을 대충 섞어서 얼버무리는 건데, 이러면 그 순간은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결국엔 이게 훨씬 더 큰 문제가 돼서 돌아오고, 그땐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수가 있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현실이 내 뒤통수를 친다. 그것도 아주 세게.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

157196504812610월은 많이 바쁜 한 달이었다. 뭐, 우리 같은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다 바쁘지만, 이번 달은 스트롱 미팅, 프라이머 16기 선발 미팅, 그리고 두 번의 짧은 해외 출장이 있었다. 일본과 동남아에 도착하자마자 미팅만 몇 개 하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오니까, 시차는 거의 없지만, 역시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회사들과 미팅하니까, 집에 오면 온종일 노가다 한 사람같이 쓰러졌다.

그중 하루는 집에 오니까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기가 다 빠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메일 받은편지함을 비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메일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런 긴 하루를 보내면, 중간에 이메일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이 읽히길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이날은 보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냥 중요한 내용만 답변해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이메일은 읽기만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온 이메일은 그냥 대충 넘어가고 빨리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 이메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모르는 주소에서 온 이메일이라서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진정성 있는 내용과 창업가의 구구절절한 스토리에 잠이 확 달아났고, 나는 어느새 그 긴 이메일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읽고 있었다. 이메일의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매 줄에서 묻혀 나오는 절박함에서 이분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심정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으니, 이건 엄청나게 잘 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피곤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그런 하루였고, 빨리 자고 싶었고,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장황한 이메일에 사업계획서를 첨부해서 보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굳이 이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왠지 이분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가 생각났던 거 같다. 솔직히 그땐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지만, 내가 스타트업 경험이 없어서 아는 투자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스탠포드와 워튼 동문 주소록을 뒤지면서, 현재 직업이 VC인 동문들한테 하나씩 이메일을 했다. 이때 내 심정은 정말 절실했다. 2018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우리한테까지 돌아올 투자금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의 VC한테 이메일을 쓰기 위해서, 이분과 이 VC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공부하고 뒷조사를 한 후에야 이메일을 썼는데, 하나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내 마음이 0과 1의 바이너리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비치고 내 간절함이 전달되길 기원하는 (전자)편지를 썼다. 이 중 90%는 답장을 못 받았고, 아마도 읽히지도 않았겠지만, 10%는 어떤 형태로든 나한테 답장을 해줬다. 물론, 이 10%도 결국 “우린 관심 없다” 였지만, 이 중 몇 명의 투자자는 당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한테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지원과 위로의 답변을 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아,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 이런 심정이었지. 이분들은 정말 얼마나 절실하게 나한테 본인들의 사업과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꼭 답해주고, 가능하면 만나봐야겠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 이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손가락으로 치고, 이게 0과 1로 표시되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나한테 화면으로 전달됐지만, 나한테는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였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 이메일을 읽은 후에는 참 평온하게 잘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키보드가 필요없는 세상

voice-4414962_640음성인식 기술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기계를 상대로 음성을 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아직도 전화나 컴퓨터나 TV한테 말을 하는 게 좀 어색하기도 하고, 평소에 목을 많이 써서 그런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게 말하는 것보단 편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음성인식 기술이 별로여서 똑같은걸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냥 웬만하면 손가락을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에 음성으로 메모를 작성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음성인식 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고, 키보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에 전자책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전자 하이라이트를 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했는데, 한 2년 전부터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면서, 맘에 드는 부분을 핸드폰에 메모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핸드폰에 작은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타를 계속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얼마 전부터 그냥 음성으로 VTT(Voice to Text) 메모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 한 4년 전만 해도 음성과 텍스트가 따로 놀아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요샌 웬만하면 한번 말하고, 한 번 정도 손으로 글을 수정하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물론,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사람들은 항상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단기적인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애플이 Siri를 발표하고, 아마존이 Alexa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키보드가 없어지고,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세상이 당장 올 것처럼 과대평가했지만, 나처럼 기술의 한계점에 부딪히면서 “역시 기계는 기계야”라는 생각을 하고, 음성인식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어느 순간 음성인식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온 것을 느끼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마치 내가 요즘 그런 것처럼.

1868년에 타자기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인류는 키보드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직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썼다. 지금도 우리는 손으로 글을 쓰지만, 내가 지금 이 내용을 쓰는 것처럼 물리적인 키보드로 글을 쓰고, 터치스크린의 가상 키보드로 글을 쓰고, 음성으로도 글을 쓴다. 주위를 보면, 특히 어린 친구들은 음성인식 기술과 훨씬 친하고, 마치 친구들과 부모님과 대화하듯이 핸드폰, 리모컨, 스피커, 전자기기와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더 커질 것이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CTRL-Labs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4년밖에 안 된 회사지만, 이 스타트업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상당히 흥미롭다. 팔찌를 통해서 사용자의 뉴런 활동을 측정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 사람의 생각을 가상 아바타로 전달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이 아바타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다. 키보드가 필요 없고, 내 생각을 남한테 전달할 때 손가락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 활짝 열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기준점

요새 내가 읽고 있는 건, TBWA의 광고인 박웅현 씨의 “여덟 단어”라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인데, 그 내용은 상당히 맘에 든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박웅현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덟 단어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책을 요약하자면,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내가 내 인생을 잘 사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기준점을 밖에 찍고 그걸 따라가지 말고, 기준점을 내 안에 찍고 나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다.

이 여덟 단어 중 첫 번째 단어인 ‘자존’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요새 와서 자존감이라는 말이 꽤 중요해진 거 같다. 과거에는 이 말 자체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는데, 요샌 미디어나 여러 강연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존감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자존감 없이 살고 있다는 의미인 거 같고, 현대인 대부분 스스로 자존감을 찾거나 회복할 수 없으니, 또 여기서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면서, 다양한 책, 강연, 자존감 학습 도구 등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자존감이 부족한 채로 세상을 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같이 일하는 창업가는 모두 하나같이 자존감이 넘쳐흐르는 분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사업이 잘될 때 보단 안 될 때가 더 많고, 이에 따라서 자존감 또한 요동치긴 하지만, 남들이 다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밖에 있는 기준점을 따라가지도 않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내 기준점에 따라 삶을 사는 이분들을 보면, 자존감 없인 정말 힘든 일인 거 같다.

이 책에서 박웅현 씨가 미국 유학 갔을 때 교수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한국 교수는 학생들한테 지식을 주입하면서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면, 미국 교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강조하면서 사람 안에 있는 고유의 무엇을 끌어내는 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나도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교육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맞는 거 같다.

남들이 찍어 놓은 바깥의 기준점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내가 가진 나만의 기준점에 세상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창업가들 모두 화이팅이다.

K-Entrepreneurs

1566547639303우리가 처음으로 투자하는 회사 대부분은 꼬꼬마 스타트업이다. 법인도 없는 회사, 이제 막 시작한 회사, 그리고 이제 막 고객과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회사들이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70%를 차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안 되는 회사가 확률적으로 더 많지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상당히 아름다운 성장 곡선을 그리는 회사도 가끔 생기고, 이 곡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더 큰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금액보다 더 큰 투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보다 더 큰 후속 투자를 하는 좋은 VC가 한국에도 많이 있고, 나도 우리 투자사들을 자주 소개하는데, 영어를 잘하는 대표님, 또는 한국보다 외국 VC들이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성격의 비즈니스라면 – 예를 들면, B2B SaaS 또는 매출보단 다른 지표의 성장을 추구하는 회사들 – 미국이나 일본 VC와 연결을 자주 시도해본다. 실은 VC 투자라는 게 돈이 들어가기 전에 투자자와 창업가의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해야지 이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인지 투자자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외국에 있으면, 그만큼 투자 받는 게 어렵다. 그래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투자사와 함께 외국에 같이 가거나, 아니면 외국 VC를 한국으로 초대해서 미팅 자리를 알선한다.

2주 전에 미국과 아시아에서 투자를 크게 하는 일본계 VC를 한국에 초대했다. 나랑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한 사이고, 한국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투자자라서 우리 투자사의 시리즈 A/B 후속 투자를 위해서 가끔 연결해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2박 3일 동안 한국으로 불러서,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 미팅룸을 사흘 내내 잡아주고, 우리 투자사들과 미팅을 주선했다. 영어를 잘하는 대표들은 알아서 잘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경우 내가 같이 참석해서 중간 중간에 통역도 해주면서 좋은 이야기를 같이 많이 했다.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나랑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 창업가들이 너무 “inspiring” , “focused” , “smart” , “energetic” , “fearless” 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일본 창업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강조했다. 3일 내내 같이 이동하고 미팅하면서 들었던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에 대한 요점은:

1/ 일본 창업가는 경쟁을 싫어하고, 누군가 먼저 특정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면, 그 분야에서 창업을 잘 안 한다. 실은, 이게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한국은 어떤 게 잘 된다 싶으면, 3개월 내로 비슷한 사업을 하는 카피캣들이 5개~10개는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친구들은 이미 한국에 전동스쿠터 스타트업이 5개 이상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일본의 경우, 대형통신사 KDDI가 유니콘 스쿠터 회사 Lime에 투자했고, KDDI가 직접 Lime을 일본에서 론치 한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이 소식을 들으면, “대기업이 전동스쿠터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시장이 있다는 의미고, 대기업은 빨리 못 움직이니까, 내가 똑같은 사업을 시작해서 더 빨리 성장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너도나도 이 분야에서 창업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이 하니까 잘하겠지. 나는 빠지자”라는 식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2/ 일본 시장도 현재 돈이 넘쳐흐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창업가들이 투자를 많이 받아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도 전에, 그리고 product market fit을 찾기도 전에 돈을 흥청망청 쓴다고 한다. 제품도 제대로 안 만든 상태에서 TV 광고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쓴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들 만나서 더욱더 놀란 것 같다. 정말 적은 돈으로 정말 오래 버티고, 그러면서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다고 했다.

3/ 한국 창업가들이 전반적으로 focus가 좋다고 한다. 많은 일본 창업가들이 자기들이 만드는 제품이나 시장에 대해서 잘 모르고, 도대체 뭘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데, 이번에 만난 한국의 창업가는 모두 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전문가이고 집중도가 높다고 한다.

4/ 나는 우리 대표들이 영어를 너무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일본 VC들은 일본 창업가에 비하면 한국 창업가는 영어를 너무너무 잘한다고 칭찬까지 한다.

5/ 어쩌다가 Y Combinator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YC 들어간 회사가 4개인데 (미미박스, 센드버드, 숨고, 미소) 아마도 일본에서는 YC에 지원한 회사가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이 숫자는 한국에서 직접 YC 지원하는 스타트업 숫자지만, 미국에서 지원하는 한국계 창업가까지 합치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만큼 일본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인 거 같다.

6/ 이 친구들은 쿠팡을 상당히 부러워 하는 거 같았다. 손정의 회장은 일본 회사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만큼 한국 회사들이 더 quality가 높다고 한다.

7/ 아베 정권도 2023년도까지 20개의 유니콘을 일본에서 만들겠다고 발표한 기사에 대해서는, 일본 VC들은 오히려 “절대로 말도 안 된다”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으면서, 한국 시장과 한국 창업가의 수준과 가능성에 대한 내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중국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조차도 한국보다 훨씬 큰 시장이지만, 우리도 나름 아주 탄탄하고 자랑스러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고, 오히려 옆 나라 일본의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에 투자자나 창업가 모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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