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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또는 지루함)

꼰대 같은 내용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현재 세대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요즘 사람들은…” 하면서 불만족을 표현하는 건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행위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 세대랑 비교했을 때 요즘 세대가 부족한 걸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하면 나는 “인내심”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인내심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인내심은 기다림의 미학, 또는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언제 이 말을 대학생에게 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외계인처럼 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앞에 “바로”가 붙고, 오늘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로켓” 서비스가 기본이고, 글자 하나씩 읽으면 느려서 책도 잘 안 보고, 영상도 몇 배속해서 보는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의(=instant gratification) 시대에는 인내심이라는 말 자체가 촌스럽고 고인물들의 전유물이 된 것 같아서 많이 아쉽긴 하다.

반면에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하는 벤처 투자,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분들은 대부분 인내심의 미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보단 장기적인 만족과 보상을 위해 – “장기적”이 5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이 될 수도 있지만 – 불안, 초조, 공황을 참고 오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으면서 본인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분들과 항상 어울리다 보면, 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게 되고, 인내심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복리의 위력을 배우게 된다.

조만간 하와이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만약에 주말을 끼고 가게 되면 오랜만에 서핑해 볼까 해서, 호놀룰루에서 좋은 서핑 장소, 파도, 서퍼 등과 관련된 기사와 영상을 보면서 여기저기를 웹서핑하면서 생각났던 게 바로 서퍼들이야말로 인내심의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서핑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구릿빛 서퍼만큼 멋진 사람들이 없는데, 이 멋짐을 만드는 건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느 정도 잔챙이 파도와 씨름해서 서핑의 기본을 잘 다지면, 누구나 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좋은 파도’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파도를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어서,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보드 위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떨 때는 몇시간 동안 여러 번의 좋은 파도를 신나게 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 허탕 치고 귀가하는 서퍼들도 많다. 내가 LA에 살 때 서핑을 배웠던 강사는 3일 동안 매일 5시간 기다렸지만, 맘에 드는 파도를 못 찾아서 그냥 집에 왔다가, 4일째 엄청난 파도를 만나서 인생 최고의 서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분은 강습 시간 내내 서핑 기술보단 기다림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해 줬는데,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해했다.

스타트업도 이렇게 보면 서핑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장 성공을 맛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정말 큰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시장을 잘 파악한 후 나만의 믿음과 시각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이 잘 안 가는 길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자리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마치, 서퍼들이 남들보다 더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 지금은 잔잔하지만, 앞으로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올 만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보드 위에서 주변 상황과 여러 지표에 주목하면서, 파도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바람과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 다시 자리를 예측해서 옮겨야 한다. 그리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실은,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사업하면서 기다려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파도 한 번 못 타고 그냥 집에 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그다음 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운과 실력 사이 어느 지점에서 큰 파도를 만난다면, 그리고 인내심의 미학이 철저한 준비로 이어졌다면, 이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고, 그동안 쌓인 인내심과 기다림이 복리 폭발해서(=compounding explosion) 그 어떤 창업가들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스타트업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갖고 있는 짧은 경험도 성공한 경험은 아니다. 서핑으로 따지면 그냥 잔챙이 파도와 씨름만 하다가 집으로 간 경험밖에 없지만, 좋은 파도를 타는 것만큼 신나고 짜릿한 느낌이 없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고, 항상 연습해야 한다. 실은,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아무도 없는 뜨거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는 건 매우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안하고, 짜증 나고, 초조한 경험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내심의 미학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물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고 해서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 못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다면 성공할 수 있는 그 작은 확률조차 없어서 인내심은 모든 창업가의 기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또 막상 생각해 보면, 인내심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에게 부족한 자질인 것 같다. 우리 윗세대, 그 윗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를 봐도 인내심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화난 요즘 세대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

계속 “왜?”를 질문해라

몇 달 전에 꽤 공감이 가는 내용을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최근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팟캐스트를 들어서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 적어본다. “The Three Whys 원칙”이라는 질문에 관한 내용인데,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최소 세 번 반복해서 던짐으로써, 일차원적이고 표면적인 답변을 넘어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론에 대한 글과 인터뷰였다.

이 원칙은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어 진짜 문제의 파악 및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예시가 언급됐는데, 여기에 세 번의 “왜?”를 질문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타이타닉호는 왜 침몰했나요?
>> 빙산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2/ 빙산과 왜 충돌했나요?
>> 선장이 빙산을 못 피했기 때문입니다.
3/ 선장은 왜 빙산을 못 피했나요?
>> 과속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위의 타이타닉호 침몰에 대해 첫 번째 질문에서 멈춘다면,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서 침몰했기 때문에 앞으로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기 위해서는 빙산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거나 빙산을 부숴서 작은 얼음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레이저 장비나 무기를 모든 배에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세 번 해서 알아낸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진짜 원인은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바로 선장이 빙산을 발견했지만, 배의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해 방향을 못 틀어서 빙산에 박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 그리고 세 번의 질문으로 얻은,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과속 금지와 정속 주행이다.

이후에 나도 많은 현상에 대해서 한 번만 “왜?”라고 질문하지 않고, “왜?” , “왜?” , “왜?” 이렇게 세 번씩 질문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전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방식에 꽤 큰 도움이 되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왜?”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고,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잘 찾는다. 그런데 석학들만큼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분들이 바로 창업가들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많은 필수 제품과 앱들이 창업가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이들은 일반인처럼 불편함을 그냥 묵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왜?”를 계속 질문하는 습관은 결과적으로 사고를 더 깊게 만들고,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명확하게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원인을 계속 묻다 보면, 실제 해야 하는 행동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타이나틱호의 예를 다시 사용해 보면, 빙산을 분해하는 기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과속하지 않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계속 질문하고 “왜?”라고 묻는 걸 습관화해서 우리 모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하다 보면 더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후의 1인(=버티기)

우리는 분기마다 투자팀 전원이 모여서 현재 살아 있는 포트폴리오를 검토한다. 각 멤버는 담당하는 회사의 기업 가치가 현실적인지를 판단하고 만약 현재 상황 대비 기업 가치가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회사 가치를 감액한다. 예를 들면, 가장 최근 투자를 기업 가치 100억 원에 받았다면, 서류상 이 회사의 적정 기업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하는데, 만약에 이 가치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50억 원과 같은 더 낮은 가치로 감액한다.

만약에 투자사가 사업은 영위하지만, 담당하는 분이 이 회사는 그냥 이렇게 가다가 망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아예 손실 처리한다. 위의 예시를 그대로 사용해 보면, 서류상 회사의 적정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치를 0원으로 수정하고, 이 회사는 손실 처리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적극적으로 감액하고 손실 처리하는 VC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이 생태계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건강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그 회사의 실제 비즈니스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걸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우리의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좋다는 게 스트롱의 생각이자 원칙이다.

이런 적극적인 감액과 손실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어떤 분기엔 10개의 회사를 감액하고 손실 처리했다. 손실 처리한 회사 중 정식으로 폐업한 곳도 있지만, 아직 버젓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전에 내가 이런 우리의 프로세스를 다른 VC와 공유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완전히 기겁하면서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고, 더 낮은 밸류에 투자받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 자기 살을 깎을 필요가 있냐면서 깜짝 놀랐다. 이 분이 정확히 사용했던 표현은 “자해”였는데, 본인이 이렇게 스스로 회사의 가치를 감액하거나 손실 처리하면 – 즉, 자해하면 – 이걸 본인도 못 견디고, 몸담은 VC의 임직원 분들도 못 견딜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의 회사는 투자 손실이 발생하는 건 정말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손실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돈을 잃는 걸 견딜 수 없다면 투자를 하면 안 된다. 내가 운에 대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투자는 운의 영역이 크고 실력이 약간의 조미료 역할을 하므로, 아무리 투자를 잘해도 돈을 잃을 수 있고, 언젠가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얼굴에 펀치 맞는 게 너무 싫고, 내 얼굴이 못생겨지는 걸 견딜 수 없는데도 복싱을 직업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천재 복서라도 언제나 얼굴에 펀치 맞을 수 있고, 많이 맞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얼굴에 펀치 맞는 걸 못 견디면 복싱하면 안 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너무 싫고, 항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야 하고, 이 계획과 예측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어긋나는 걸 견딜 수 없다면, 스타트업하면 안 된다. 그 무엇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로 하루가 가득 채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투자든, 사업이든, 복싱이든, 그냥 계속 버티면서 ‘경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손실이 엄청나게 발생하고, 이에 따라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매일 경험해도 버티면서 계속 투자해야 한다. 얼굴에 펀치를 너무 많이 맞아 피범벅이 돼서 너무 아프고 괴롭더라도 버티면서 계속 펀치를 날려야 한다. 너무 많은 서프라이즈로 과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이미 공황 상태가 됐더라도 일단 버티면서 계속 일을 쳐내야 한다.

결국 남들이 다 쓰러지고 나가떨어져도 계속 투자, 경기, 사업을 하는 최후의 1인이 돼야 한다. 영어에서는 이 상태를 표현하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멋진 말이 있다.

“The name of the game is to stay in the game”

계속 투자하면서 결국엔 발생한 손실 이상을 버는 게 잘하는 투자이고, 계속 펀치 날리면서 결국엔 맞은 펀치보다 더 많이 상대방을 때리는 게 잘하는 복싱이다.

(강제) 모바일 디톡스

지난주 미국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탔는데, 다음 미팅으로 가는 도중 급하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야 해서 차 안에서 핫스폿을 키고 일을 좀 했다. 정신없이 이메일 쓰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급하게 짐을 챙기고 내렸는데 아뿔싸,,,옆에 잠깐 빼놨던 전화기를 차 안에 놓고 내린 것이다. 사람이 운전하는 우버라면 그냥 다시 문 좀 열어달라고 할 텐데, 웨이모는 한 번 잠기면 그다음 승객이 탈 때까진 문이 안 열린다. 내가 놓고 내린 전화기가 창문으로 보이는데 문은 안 열리고, 야속한 웨이모는 뒷좌석에 내 전화를 실은 채 그다음 승객에게 달려갔다.(나중에 와이프랑 통화하니, 그냥 발로 차든지 해서 차에 흠집을 내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추고 경찰이 왔을 테고, 그러면 전화를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다음엔 그렇게 해야겠다).

웨이모가 간 후,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과는 다른, 뭔가 다른 차원의 공황 상태를 경험하면서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졌다. 정신 차리고 웨이모에도 연락하고 아이폰도 리모트로 잠가서 전화기 안의 정보 도난 관련 걱정은 사라졌는데 – 아이폰의 보안 기능은 정말 대단하게 잘 만든 것 같다. 실은 너무 과하게 잘 만들어서 나같이 분실한 경우가 아니라 실수로 애플 계정이 날아가거나 하면 좀 짜증 날 정도다 – 내 인생 자체가 전화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이 당황스러웠다.

제일 힘든 건 우버였는데 다행히 노트북으로 우버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서 우버를 부르면 차를 내가 찾을 수 있지만, 워낙 차가 많은 공항은 너무 힘들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에서 우버를 부르는 건 문제없지만, 특히 LA 공항은 워낙 개판이라서 우버 기사와 문자와 통화를 하면서 서로를 찾아야 하는데, 공항 밖으로만 나오면 와이파이가 끊겨서 기사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지고, 밖에서 차를 못 찾아서 다시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우버를 확인해 보면 이미 기사는 갔거나 공항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노트북으로 우버를 공항에서 처음 부르고 차에 타기까지 거의 40분이 걸렸다.

이후에 내가 찾은 방법은 우버 기사에게 “제가 전화가 없어서 저를 찾아야 합니다. 173cm 아시아 남자, 블루 재킷을 입고 있고, 하얀 노트북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거였는데, 이렇게 하면 100% 다 나를 잘 찾았다.

그다음으로 힘든 건, 뱅킹이었다. 투자하기 위해서는 송금 승인을 해야 하는데, 2FA 장치가 모두 분실한 한국 전화의 번호 또는 거기 깔린 인증 앱과 연동되어 있어 납입하는 데 큰 지장이 있었다.

그다음 날, 그리고 다다음 날은 아침 일찍 비행해야 해서 내가 다시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을 새로 산 건 전화를 분실하고 3일 이후였다. 3일을 전화 없이 살 수 있다니! 그리고 그동안 계속 웨이모와 확인해 봤지만, 내가 탔던 차에서 전화기를 찾지 못했다는 답변을 받았고, Find My로 확인해 보니 내 아이폰의 상태는 계속 오프라인이었다.

최신 아이폰을 새로 산 후, SK텔레콤에 전화해서 – 정말 몇 년만에 호텔 전화로 국제 전화를 했다 – 상황을 설명하고 비대면으로 다시 한국 번호로 eSIM을 받아서 설치하면 상황 정리될 줄 알았는데, 웬걸,,,이건 내가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야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아이폰을 새로 샀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더 답답한 상황이 됐다.

결국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미국에서 eSIM을 발급받고, 이 번호로 애플 계정을 완전히 새로 만들고 필요한 앱을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이메일이 이미 과거에 애플 계정을 만드는 데 사용됐었거나, 현재 계정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이메일이 고갈됐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메일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것도 여러 인증 과정을 거치면서 쉽진 않았지만, 결국 전화기 분실 5일 만에 우버와 은행 앱들을 설치하고 업무에 필요한 일들을 제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로밍하던 한국 전화기를 외국에서 잃어버린 이 상황, 그리고 외국에서 전화기 없이 업무를 처리한 5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솔직히 할 만했던 것 같다. 첫날은 너무 불안해서 힘들었지만, 둘째 날부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고, 몇 가지 급한 업무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남은 열흘을 전화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과거에 전화 없이도 잘 살았고, 전화가 없으니까 전화하는 사람도 없고, 카톡도 안 오고, 문자도 안 오고, 불필요하게 페이스북이라 링크드인을 계속 열어보지도 않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하지도 않고, 뭔가 궁금할 때 구글이나 AI에 물어보지도 않고,,,이렇게 살아보니, 기계가 아닌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했고, 이동하면서 내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었던, 정말 인간답게 살았던 짧지만 길었던 5일이었다.

비록 강제적이었지만, 미국에서의 5일 동안의 모바일 디톡스는 내 52년 인생이 들어있던 작은 기계로부터 내 인생을 다시 내가 되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도 나는 핸드폰이 있는 인생이 더 좋은 것필요한 것 같아서, 귀국 후 옛날 번호를 되찾고 다시 이 작은 기계의 노예가 기꺼이 됐지만, 전화기 없던 기간은 나름 행복했고, 혹시나 또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당황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배웠던 좋은 경험이었다.

일단 작은 습관을 만들어라

한국에서는 미국만큼 인기가 있진 않지만,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James Clear의 “Atomic Habits”라는 책이 있다.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 혹시 안 읽었다면, 특히 의지가 약한 분들에겐 일독을 추천한다.

이 책은 거창한 습관보단 작은 습관을 만드는 걸 강조하고, 이렇게 계속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으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몸에 쌓인 나쁜 습관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작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 클리어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속 강조하는 건 – 나는 이 분의 인터뷰를 몇 개 들어서 잘 안다 – 습관을 개선하고 싶다면, 일단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습관 자체가 없으면 개선해야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하는 건 작은 습관을 만들고, 작은 습관이 좋은 습관이 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나를 좀 알거나, 이 블로그를 몇 년 동안 읽은 분들이라면 알 텐데, 나는 습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관과 루틴의 동물이다. 스트롱을 시작하고 14년 동안 나는 매일 거의 비슷한 루틴을 지켜오고 있고,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습관은 몸에 잘 배게 꽤 집요하게 노력한다. 습관이 몸에 배게 하려면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Atomic Habits를 읽다 보면 내가 그동안 했던 게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일단 작은 습관을 만들고, 이 습관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노력을 수십 년 동안 한 것이다.

저자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자주 언급되는 예시가 몇 개 있다. 운동을 평생 하지 않던 남성이 운동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헬스클럽에 여러 번 등록했지만, 운동을 습관화하는 데 매번 실패한 이야기가 있다.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매일 헬스장에서 한 시간씩 운동하는 습관을 만드는 건 비현실적이고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분이 선택한 방법은, 일단 한 달 동안 매일 헬스장에 가서 2분만 있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매일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이 몸에 배었다.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을 만든 후에는? 매일 한 시간씩 운동 했을까?

아니다. 그 이후 한 달 동안은 일단 매일 헬스장에는 갔지만, 가서 푸쉬업을 5개만 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이걸 한 달 동안 매일 반복했다. 매일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을 만들었고, 매일 푸쉬업 5개씩 하는 또 다른 작은 습관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인 운동 습관을 개선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헬스장에서 매일 2분 서 있다 돌아온 건 실제 책에 있는 내용인데, 그 이후 푸쉬업을 5개만 했다는 내용은 내가 그냥 이 남자의 그다음 행보를 상상해 본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평생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달에 책 한 권씩 읽겠다고 다짐하고, 도서를 수십 권 구매하는 걸 나는 주위에서 여러 번 봤다. 그래도 이들은 일 년에 책 한 권도 못 읽는데, 그다음 해에 같은 다짐을 하고, 또 수십 권의 책을 사면서 집에 읽지 않는 책이 계속 쌓인다. 독서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작은 습관부터 만들어라. 일단 책을 항상 가까운 곳에 둬라. 눈에 책이 보이면 더 자주 만지고, 더 자주 만지다 보면 더 자주 열어서 읽게 된다. 책을 더 자주 보고 만지고 여는 작은 습관이 만들어지면, 하루에 딱 두 페이지만 읽는 습관을 만들어라. 더 많이 읽고 싶어도 한 달 동안은 매일 두 장만 읽어라. 두 장만 읽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그 이후엔 페이지수를 늘려라. 이렇게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인 독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헬스장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는 헬스장 출입문이다. 무게를 치려면 일단 헬스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습관을 일단 만들어야지 운동하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부분은 책 표지다. 책을 읽으려면 일단 표지를 열어서 읽어야 하는데 이 습관을 만들어야지 독서하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

다행인 건 이 작은 습관은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빨리 작은 습관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