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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작년 연말에 오랜만에 미국에 잠깐 다녀왔다. 장기 비행은 항상 지루하고 힘들어서 책도 보고, 잠도 자고, 영화도 좀 봤는데, ‘라멘덕후(Ramen Heads)’라는 음식 다큐멘터리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이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나열해 보고 싶다.

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2011년 작품인 ‘스시 장인: 지로의 꿈’과 비슷한 점들이 많은데, 안 보신 분들이라면 이 영상도 강추한다. 라멘덕후는 2017년 작품인데, 라멘의 본고장 일본에서 세계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 있는 장인들과 이들의 음식에 대한 헌신, 애정, 집착과 광기에 대한 내용을 영상으로 잘 담고 있다. 실은 영상으로 너무 잘 담아서, 어떻게 보면 아주 흔하고 평범한 음식인 라멘에 대한 경외심까지 갖게 할 정도였다.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다 설명하진 않겠다. 2013년부터 4년 연속 일본에서 ‘올해의 라멘 대상’을 수상한 치바현 마추도라는 곳의 ‘중화소바 토미타’ 식당의 라멘 장인 오사무 토미타씨의 라면에 대한 철학, 애정, 그리고 직업에 대한 헌신이 이 영상의 핵심이다. 이분은 본인이 식당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추구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고, 매일 먹어도 매일 맛있는 라멘을 만들어서 식당을 찾는 전 세계 손님들에게 단돈 8,000원에 세계 최고/최강의 식사 경험을 제공하는 마음으로 라멘을 만들고 있는 진정한 라멘덕후다.

특히 나에게 울림이 컸던 내용이 몇 개 있었다. 매일 최상의 라멘을 만들기 위해서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점이 그중 하나였는데, 토미타씨는 매일 10시에 출근하고 항상 같은 길을 이용해서 출근한다. 그리고, 본인이 가게 문을 직접 열어야 하고, 일이 생겨서 문을 열지 못하면 그날 영업을 아예 안 한다고 한다. 육수를 확인하는 등의, 출근 후에 하는 작업과 동작 또한 매일 같다. 이렇게 같은 루틴을 반복해야지만, 항상 최상의 라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 마치 최고의 운동선수나 사업가들이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내가 라파엘 나달 선수에 대한 글을 썼는데 루틴 관련 내용은 매우 비슷하다. 라멘에서 가장 중요한 면과 육수를 만드는 과정은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광기라고밖에 설명을 못 하겠는데, 정말 모든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라멘을 예술로 승화한 이 장인의 영상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현대인이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스스로 라멘에 미치지 않으면 절대로 감동을 주는 라멘을 만들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내가 하는 투자라는 업에 스스로 미쳐있는지, 그리고 미친 헌신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봤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고, 일을 종교와도 같이 믿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헌신하는 분들을 나도 살면서 몇 분 만나봤지만, 최근에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요새 직업에 헌신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지만, 토미타씨 같은 사람이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고, 내 주변에도 분명히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충분히 있지만, 집착과 헌신은 또 다른 이야기인데, 헌신을 갖고 투자하는 VC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직업에 대한 회의나 번아웃 증상이 온 직장인들, 또는 창업가분들에게 두 다큐멘터리 모두 권장하고 싶다. 느끼는 게 많을 것 같다. 나는 라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정이 동요하고 감동을 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갔는데, 이날 태평양 상공에서 내가 이랬다.

헌신. 생각날 때마다 요새 생각해보는 단어이다.

긍정의 단련

올해는 참 어려운 해였다. 그리고 내년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인내심과 그릿이 진정한 시험대 위에 오르는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나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말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사업했던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존경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10년마다 큰 불경기가 한 번씩 오고, 이 불경기는 1년~2년 정도 지속되다가 다시 호전되는데, 창업가들이 느끼는 이번 불경기는 아마도 4년, 심지어는 5년이지 않을까 싶다.

비대면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엔 거의 3년이라는 코로나19 기간이 오히려 기회가 됐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회사엔 엄청난 고난과 역경의 시기였을 것이다. 이 팬데믹 기간이 이들에겐 이미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했던 불경기였을 것이다. 팬데믹 창궐 후, 첫 6개월 동안은 대면, 비대면 서비스할 것 없이 모두 다 당황했던 시기이고, 이후에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렀던 기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팬데믹 초기에 떨어진 수치와 느려진 성장 때문에 이 기간에도 펀딩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끝날 기미가 보이면서, 이제 뭔가 좀 제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10년 만에 오는 제대로 된 불경기가 온 것이다.

최근에 내가 만났던,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공통으로 이런 말을 한다.
“창업하고 한 2년 개고생하다가, 2019년도 말에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것 같아서, 잘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원점으로 돌아와서 정말 힘들었지만, 잘 버텼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가 끝나면서 정말로 제대로 한 번 사업 해보자 했는데, 불황 때문에 펀딩도 못 받고, 정말 돌아버리겠습니다. 이젠 저도 좀 지쳤고, 팀원들도 다 번아웃 돼서 약간 절망적이긴 하네요.”

이런 대표들한테 나는 곧 불경기가 끝나고 다시 좋아질 거니까 계속 열심히 하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다. 아니, 하고는 싶지만,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경기가 곧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 싫었고, 과연 내가 저 대표라면,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모든 걸 불태우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라면, 못 할 것 같다. 온갖 고생 끝에 시장에서 인정해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팬데믹이라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요소 때문에 3년을 또 고생하고, 이제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10년 만에 오는 지독한 불경기 때문에 한 번 더 숨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그냥 포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 자책하면서 포기하는 창업가들이 굉장히 많고, 이분들에겐 비난이 아닌 존경심을 표시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고 7전8기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긍정을 단련했고, 긍정을 단련하는 게 아예 몸에 밸 정도로 훈련을 한 분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역경 앞에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계속해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를 찾아서 소중하게 단련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분들이 성공할진 잘 모르겠다. 또다시 고비가 찾아올 수도 있고, 그럴 때 이분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 나는 이런 분들을 존경하다 못해, 사랑하게 됐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미래를 위한 현실과의 불화

VC마다 다르지만, 검토하는 회사 중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상당히 낮을 것이다. 우리도 해마다 800 ~ 1,000개의 회사를 검토하지만, 실제로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5% 미만이다. 재미있는 건, 투자하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흑백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분야라서 명확한 기준이 있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롱이라는 하나의 VC만 봤을 때도 이렇게 다양한 투자의 기준이 있는데, 다른 VC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양한 기준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의 기준을 조금 더 일반화해보면, VC가 특정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려고 하는 사업이 현실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성이 없는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발산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라서, 투자자의 “팀이랑 대표는 괜찮은데, 사업이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투자는 안 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경우가 몇 번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현실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론 현실성이 없다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만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고, 조금만 다르게 본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장강명 씨의 “책, 이게 뭐라고”의 작가의 숙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창업가들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이 잘 정리됐다.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업가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제품은 현재에 있지만은 않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아이디어와 제품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와 제품을 상상하고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사용자들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들에게 욕을 먹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어떤 스타트업이 현실성이 없다는 건,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이 너무나 풍부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현재 세상이 만든 틀에 본인들을 맞추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본인들이 만든 틀에 미래의 세상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투자하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비이성적인 미래지향주의자이다.

어떻게 보면, 창업가의 사명은 오히려 현재의 세상과 충돌과 불화를 만드는 데 있고, 우리 같은 투자자는 이런 충돌과 불화를 더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끔은 한다.

50권 – 2022년

해마다 이맘때에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 글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새해 결심 같은 건 안 한다. 오랫동안 사는 인생이라서, 그냥 인생 결심이 있을 뿐이지, 해마다 단타성으로 세우는 결심은 안 한 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래도 유일하게 새해 결심 비슷한걸 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해의 독서량이고 매년 50권의 책을 읽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도 열심히 읽어서 50권은 돌파했고, 이 페이스로 계속 독서하면 57권 정도로 2022년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얼마 전에 콘텐츠의 최고봉은 텍스트라는 내용의 을 쓴 적이 있는데, 이건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더 많이 쓸수록, 공감이 더욱더 가는 내용이다. 앞으로 갈수록 바빠져서, 바빠서 못 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고, 바빠서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면서 순위에서 밀리는 일들이 생길 것이지만, 운동과 독서만은 항상 우선으로 챙기고 싶은 활동들이다.

내 독서 습관은 항상 같다.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여기에 없는 책은 집 근처 도서관에 직접 가서 빌린다.(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평일 저녁에 공공 도서관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빌리는 것만큼 육체와 정신이 채워지는 행동은 없는 것 같다. 이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서평은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에 보관한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플라이북에서 체크해뒀다가 국민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참고로, 나는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고 그냥 빌려서 본다.

올해 나의 베스트 책을 선정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이다. 하루키 씨는 남들을 감동하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진 않은 것 같고, 글의 스타일도 드라이하고 밋밋했지만, 읽는 내내 나는 깊은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더 꼼꼼히 읽었고, 곱씹으면서 충분히 소화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했다.

그리고 서평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올해 읽은 책 중 one of the best. 솔직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픔을 아직 단 한 개도 안 읽었고, 이 책이 처음인데, 소설은 아니고 하루키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게 맞다. 러닝이 주제인 회고록.

소설을 쓰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고, 이 체력을 위해서 러닝을 시작했다는 하루키. 책을 쓰는 일이나, 마라톤을 뛰는 건 그냥 똑같은 일을 무한으로 되풀이한다는 점이 유사하고, 내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필요한데, 체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못 하고, 러닝을 매일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리셋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기억에 남는 quote: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가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면 어떤 엄청난 아웃풋이 나오는지 아주 잘 보여준 책이기도 하지만, 나는 하루키 씨의 습관과 태도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해답을 배웠다. 올해 나도 열심히 살았고,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지만, 이 책을 완독한 건 그중 나에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읽었던 모든 책이 감동을 준 건 아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덮고 완독하지 않은 책도 꽤 있었고, 다 읽었지만 시간 낭비였다고 스트레스받았던 책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간접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책은 모두 피와 살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에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꼈으면 한다.

유니스트 방문

2주 전에 정말 오랜만에 울산의 UNIST를 방문했다. 이젠 유니스트에서 더 이상 교편을 잡고 있지 않은 강광욱 교수님덕분에 나는 유니스트와 2014년도에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우린 학생 창업팀도 좋아하고,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고,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팬데믹 이전에는 유니스트에 정기적으로 가서 학생 창업가와 미래의 창업가와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유니스트 출신 창업팀 3개에 투자했다. 이젠 꽤 큰 회사가 된 클래스101 또한 유니스트 학생팀이고, 울산에서 시작한 회사이다.

이 학교의 창업생태계 형성에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신 강교수님도 다른 대학으로 옮기셨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는 거의 3년 동안 유니스트에 못 갔지만, 역시 좋은 기업의 실마리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나와는 학업적으론 상관없는 유니스트에 학생창업가를 만나러 공식적으로 3년 만에 방문했을 땐 마치 모교를 찾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캠퍼스는 새로 생긴 건물들로 더 꽉 차 보였고, 학생들의 에너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대로 충만했다. 이번엔 학생 창업센터에서 몇 팀과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창업, 사업, 학업, 인생 이야기를 골고루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트롱은 계속 유니스트 출신 팀과 만나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이 친구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학생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유도 큰데, 나는 대학생/대학원생일 때 내가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고, 생각을 했어도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아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팀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걸 보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고, 아직도 속으로는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팀이나 제품이나 시장은 차치하고, 그냥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술 먹고 놀러 다녔던 저 나이에 회사를 만들었다면, 분명히 이런 생각과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학생창업을 존경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학생팀에 투자하면서 좋은 점만 보고 느낀 건 아니고, 학생 창업의 부작용 또한 많이 경험했다. 전에도 내가 쓴 적이 있지만, 학생들에겐 미래의 좋은 옵션이 너무 많다. 창업해서 안 되면 대학원 진학할 수도 있고, 창업했던 경험을 이력서에 잘 포장해서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학생팀은 그냥 취업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서 창업하는 게 너무 뻔히 보이고, 옵션이 너무 많아서인지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 자주 봤다. 그리고 한국의 남자 학생들에겐 군 복무라는 큰 걸림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학생팀을 만나면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건 정말로 이 사업을 하고 싶어서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고 멋있는 스타트업 대표놀이를 하기 위해서인지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학생 창업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한국의 미래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요새 젊은 애들이 싸가지가 없든, 있든, 이 나라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고, 앞으로 이 학생들 중에 미래의 쿠팡, 토스, 배민, 당근마켓, 마켓컬리를 만드는 창업가가 나올 것이다. 우린 이런 가능성을 찾아서 여기에 작은 불씨만 만들어주면 이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활활 태울 것이다. 좋은 울산 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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