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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는 똑똑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도에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 내가 VC를 만들어서 잘할 수 있을진 확신이 없었지만, 두 가지만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확신은 스트롱을 시작하고 13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 회사의 기초가 되는 두 개의 튼튼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는, 당시에 –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시장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VC와는 다른 성향과 색깔을 가진 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말로 회사와 창업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VC가 되고 싶었다. 모든 VC가 회사와 창업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겉으로는 다 그렇게 말하고 연기하지만, 실제 VC 생태계를 보면, 창업가를 나와 같은 고귀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최대한 회사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VC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가장 존경하는 VC 중 한 명인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도 “VC들이 회사에 도움을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VC들이 회사에 해를 끼치고, 회사를 망가뜨리지만 않으면 이들은 좋은 VC다.”라고 말할 정도로 회사에 피해를 주고 회사의 부채가 되는 VC들이 너무 많다. 나는 스트롱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창업가의 편에 서서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VC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두 번째는, 똑똑하지 않은 VC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의아해하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면,,,많은 분들이 우리가 첨단 사업에 투자하고, 창업가에게 온갖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는 걸 보고 VC들이 IQ가 높고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내가 아는 대부분의 VC는 – 이건 나도 포함 –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내가 아는 많은 VC는 실제로는 멍청한데, 대부분 엄청 똑똑한 척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13년 전에도 비슷했다. 근데 당시 내 생각은 VC는 별로 똑똑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들이 투자하는 창업가들은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 같은 초기 VC의 가장 큰 능력은 똑똑한 창업가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아보고, 이 창업가가 다른 VC가 아닌 내 돈을 받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건 자신 있었다.

스트롱을 시작할 때, 나는 돈도 없었고, 네트워크도 없었고, VC라는 업에 대한 이해도도 한참 떨어졌었지만, 위에서 말 한 두 가지의 기본 자격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확신이 있었다. 결국 나의 가장 소중한 고객은 창업가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을 존중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나는 멍청해도 상관없으니까, 자만심과 자존심 다 필요 없고 그냥 똑똑한 창업가를 먼저 알아보고 이들에게 먼저 투자하는 것. 우리가 시작할 땐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이 믿음과 확신은 변치 않고 잘 지켜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VC는 똑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스트롱의 믿음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만약에 어떤 VC가 창업가와 미팅하고 있는데, 그 회의실에서 그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또는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자만한다면, 그는 방을 잘 못 찾아온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투자 검토를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똑똑한 척하면서 창업가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반박하는 VC들 앞에서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주눅이 들고, 짜증 나서 이들과 제대도 된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련한 VC들은 절대로 회의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창업가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그러면 투자자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것을 이들이 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업가들보다 본인들이 똑똑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본인들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면, 직접 사업을 해보면 된다. 물론, 그럴 용기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 DNA

2주 전에 잠깐 동경에 갔었는데, 과거부터 친분이 있던 일본 VC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 이야기를 특히 많이 했는데,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나 같은 VC는 당연히 일본 시장보단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더 좋다고 믿지만, 내가 만난 일본 VC들도 대부분 한국의 벤처생태계를 부러워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떤 일본 VC는 대놓고 나에게 한국 벤처생태계를 볼 때마다 너무나 부럽고, 일본도 한국 시장과 창업가들로부터 A부터 Z까지 모든 걸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상장 시장의 크기는 한국의 3.5배 정도가 된다. 상당히 크고, 난 한국이 조만간 일본의 상장 시장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현재의 이 규모는 상당히 부럽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일본 VC들은 오히려 한국의 역동적이고 큰 IPO 시장이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일본의 상장 시장은 크지만, 자세히 보면 tech IPO는 질보단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답변이다. 한국 창업가들은 꿈과 야망이 상대적으로 커서 항상 아주 큰 IPO를 꿈꾸면서 사업을 하는데 – 물론, 그렇다고 IPO를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해도 큰 IPO가 되는 건 아니지만 – 일본 창업가들은 사업하다가 어느 시점에 그냥 작은 IPO를 하는 게 요샌 유행같이 번지고 있다고 했다. 한 1,000억 정도의 IPO를 하면 창업가들은 그래도 잘 먹고 잘살 수 있고, 일본에서 이런 작은 IPO를 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너도나도 적당한 규모로 사업을 키우고 IPO를 한다고 들었다. 창업가들은 돈을 벌어서 좋지만, 이 회사에 투자한 VC는 큰 재미를 못 보고, 계속 창업가들의 꿈과 야망이 이렇게 줄어들면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우려를 대화 내내 표시했다. 정확하게 “작은 IPO가 하나씩 될 때마다 일본 창업가들의 야망도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다.

그리고 일본 VC들로부터 내가 반복적으로 들었던 주제이자, 이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게 한국인들의 “소비자 DNA(Consumer DNA)”였다. 한국 시장엔 소비자 DNA가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네이버, 쿠팡, 카카오, 토스, 당근, 배달의 민족 등과 같은 좋은 자체 B2C 유니콘을 끊임없이 만들고 제품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좋은 소비자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면,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가 발동하면서 계속 더 좋은 기능, 더 좋은 UI/UX, 더 좋은 가격의 경쟁 제품들이 나오면서 “양이 질을 만드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일본은 이 소비자 DNA가 점점 더 사라져서 이젠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창업가들은 대부분 B2B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의 B2C 제품이 한국과 같이 많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 하지만, 인구도 많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일본의 소비자 시장은 외국 회사들의 놀이터가 됐다. 검색은 구글, 동영상은 유튜브, 지도는 구글맵스, 이커머스는 아마존, 택시 호출은 우버 등,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B2C 제품은 외산 제품들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던 말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외국 B2C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가장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고됐고, 이들은 일본의 소비자 DNA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을 많이 표시했다.

그리고 한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우리만의 소비자 DNA를 기반으로 케이팝, 케이푸드, 케이뷰티, 케이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무형의 소비자 DNA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 무형의 한국의 문화가 현재 일본 시장을 완전히 쓰나미같이 덮치고 있다. 실은 일본도 한 때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이게 다 죽었고, 오히려 한국 문화가 과거 일본 문화보다 더 커지고 있는데, 이게 모두 다 일본의 소비자 DNA의 소멸로 인한 아주 좋지 않은 결과라는 결론을 이분은 내렸다.

물론, 한두 명의 일본 VC가 일본과 한국의 시장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현황을 일반화할 수도 없지만, 10년 넘게 일본에서 투자하고 있는 VC들에게 이날 내가 들었던 내용만을 기반으로 결론을 내려보면, B2C 분야에서는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을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B2C로 시작하지만, 남에게 지는 걸 배 아파하는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결국엔 B2B 사업도 일본 시장에서 더 잘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정말로 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해서 거대한 사업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내 친구이자 VC인 일본 투자자가 한국 시장이 부럽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엔 우리의 창업가들이다. 한 골 먹으면 두 골을 넣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우리 특유의 성깔?, 절대로 죽지 않고 생존하는 바퀴벌레력, 이 모든 게 한국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에 여러 번 포스팅 했지만, 이 강점을 우린 계속 살려야 하고, 이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각, 새로운 생각

요새 한국의 어린이들 10명에게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절반 이상이 연예인, 가수 또는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전에 어디서 들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공식적인 시장 조사 자료는 없지만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대충 맞을 것 같고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이렇게 대답하는 어린이들이 10명 중 10명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과의 식사 자리였는데, 당시 모임에서 대부분 한국의 장래가 어둡고, 요새 젊은 애들 정말 문제가 많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는데 솔직히 나는 이게 그렇게 한국의 미래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너희 장래 희망이 뭐니? (너희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통령, 과학자, 교수님, 의사, 변호사, 경찰관, 소방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과 같은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존경받고, 좋고 안정적으로 인식되는 직업을 택했다. 나도 아마도 과학자라고 항상 대답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히 내가 원하는 것보단 주위 사람들이 바라던 답을 했던 것 같다.

연예인과 유튜버가 과연 과학자나 대통령보다 못 한 직업일까? 일단 위에서 이야기한 모임에 있던 분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실은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과 유튜버는 제대로 된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보고 검토했던 사업들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 때문에 바뀌기도 했지만, 내가 스스로 내 생각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위의 모임에서 왜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을 지칭하는 크리에이터라는 업종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은 왜 훨씬 더 좋은 직업인지 열심히 내 생각을 말했고, 그분들에게 계속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점점 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여러 번 날렸다.

우리 아버지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 초반까지만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게 남과 내가 생각하는,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었다. 그런데 요새 우리는 회사로 출근은커녕, 침대에서 잠옷 입고 전 세계 1억 명을 대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행동을 하면서 연 매출 10억 원을 만들 수 있는, 나같이 올드한 세대가 봤을 땐 참으로 신기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변화와 신기함은 계속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창업가들을 보면서 나는 이 변화를 직접 매일매일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점점 더 많은 창업가와 이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듣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게 뭐야 ?”이고, 어떤 사업은 내가 전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창업가와 사업을 접할 때마다 “이런 건 사업이 아냐. 제대로 된 직장 경험도 없는 어린애가 폰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는 걸 누가 봐.”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무시하고 패스하는 게 속 편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각과 생각으로 모든 걸 바라봐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네이비씰처럼 살기

이 블로그를 통해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듣는 팟캐스트가 엘리트 운동선수들 인터뷰라고 했는데, 운동선수들 팟캐스트 외에 또 자주 듣는 건 전직 특수부대 출신 군인들의(미군) 팟캐스트다. 일단 미국의 엘리트 운동선수와 특수부대원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가장 놀라운 건, 말을 너무 논리적으로 잘 한다는 건데, 내가 아는 한국의 운동선수와 군인들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난다. 물론, 말을 잘하니까 팟캐스트도 하고 사업도 하겠지만, 이건 미국의 교육과 환경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건강, 노화, 장수에 대한 전문가 중 한 명인 앤드류 후버만의 팟캐스트 Huberman Lab에서 네이비씰 군인 출신의 인플루언서이자 사업가인 DJ Shipley를 인터뷰했다. ‘How to Make Yourself Unbreakable’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이름의 인터뷰이지만, 내용은 너무너무 좋다. 팟캐스트를 듣고 난 후에 나도 DJ의 습관, 루틴, 사고, 태도를 그대로 따라 해서 unbreakable이 되고 싶을 정도였다.

일단 전 세계에서 가장 빡센 훈련을 거치는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 네이비씰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분은 나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정신력(=멘탈)과 체력(=피시컬)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고,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이라서 일단 일반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육체적 훈련을 거치고, 그 악명높은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L) 6개월 훈련을 통과해서 네이비씰이 된 군인들을 기본적으로 존경한다. 또한, 내가 아는 대부분의 육체가 강한 사람들은 정신력도 강하기 때문에 더욱더 특수부대원들을 존경한다.

이 팟캐스트에서 계속 언급되는 내용은 “반복” , “루틴” , “책임”이다. 특히 DJ의 루틴은 10년 이상 매일 같은 루틴을 나름 엄격하게 반복하는 나 같은 사람이 들어도 아주 짜증 날 정도로 엄격하다. 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 이분의 가족이 존경스러운데, 종교보다 더 종교다운 루틴을 이분은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매일 반복하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아침마다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거의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저녁마다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같은 시간에 잔다. 조금이라도 이 루틴이 어그러지면, 하루를 완전히 망치고, 하루를 망치면, 일주일을 망치고, 일주일을 망치면, 한 달이 힘들고,,,결국엔 인생이 불행해지고 정리가 안 되기 때문에, DJ의 가족은 정말 급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이 루틴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분의 루틴은 내가 완벽하게 따라 하기엔 무리지만, 배울 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했다. 네이비씰이 전시에 지키는 그 엄격한 루틴을 제대한 후에도 인생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고, 이런 삶을 살면 남들보다 더 앞설 수 있다는 건 누구가 잘 알지만, 또 동시에 이런 삶을 모두가 다 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루틴은 이분의 삶의 극히 일부만 반영하고, 실제 배울 점은 이런 루틴을 기반으로 자신을 unbreakable 하게 만들 수 있는 습관, 태도, 사고방식인데, 이런 것들이 이 팟캐스트의 핵심이다.

인터뷰에서 DJ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결정한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는데, 나는 이 말이 제일 맘에 들었고 이거 하나만 제대로 해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예시를 들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데, 매일 아침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회사에 미친 듯이 뛰어오고, 이 와중에 지하철에서 지갑이나 폰을 분실하고, 일에 집중 못 해서 매일 깨지는,,,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왜 내 인생은 항상 이럴까?” , “왜 나는 항상 여유가 없을까?”라면서 자책한다.

근데 정말 왜 그럴까? 이런 사람들은 왜 항상 이렇게 살까? 간단하다. 본인이 인생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 이러면 평생 지각하고 평생 여유 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고,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이건 네이비씰이 아니라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고요한 성장

우리는 지금까지 29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초기 VC가 대부분 비슷할 텐데, 이 중 75% 이상은 평생 엑싯도 못하고 그냥 언젠가는 없어질 테고, 나머지 25%에서 승부가 난다. 이 25% 중에서도 극소수만 엄청 잘 되고, 나머지는 그냥 평타를 치거나, 아니면 회사는 잘 먹고 잘사는 라이프스타일 사업이 되지만, 이런 회사는 우리 같이 수십 배의 수익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VC에겐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투자하는 회사마다 별로라는 건 아니다. 좋은 성장을 하고 있는 회사도 많고, 꽤 많은 회사가 그들이 사업을 하는 분야에서는 고객이 가장 먼저, 또는 두 번째로 떠올리는 “top of the mind” 브랜드가 됐거나 되고 있는데, 이 과정을 옆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본다는 건 초기 투자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자랑이다. 이 중엔 당근, 핀다, 클래스101과 같이 상당히 큰 시장에서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된 투자사도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상대적으로 낯선 시장에서, 그 시장에 종사하는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된 투자사도 있다.

이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 작년에 다른 분에게 들은 건데, 스트롱 투자사들은 겉으로는 요란하진 않지만, 안으로는 아주 고요하게 성장하는 회사들이 많아서 좋다는 말이었다. 즉, 본인이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트업과 대표들을 봐왔는데, 소셜미디어에서 정말 요란하게 사업하고 투자 많이 받았다고 자랑하는 회사들은 결국엔 큰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조용히 좋은 제품과 매출을 만들면서 고요하게 성장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들이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스트롱 투자사들이 그런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조용히 사업에만 집중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최근에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우리 투자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위에서 말한, 작년에 들었던 고요한 성장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대표님이 매달 이메일로 보내주는 업데이트는 잘 읽고 있지만, 직접 만나서 그동안의 사업 경과, 지표,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이야기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고, 상당히 인상 깊었던 미팅이었다. 고요한 성장을 하고 있는 딱 그런 회사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 회사가 사업하는 분야는 대부분의 투자자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산업이다. 우리도 처음 만났을 때, “와, 한국에도 이런 시장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잘 안 알려진 시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안 알려진 시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아주 작은 틈새시장을 떠올리는데, 이 시장은 전혀 작지 않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조 원 되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엄청나게 큰 틈새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우리 투자사는 수년 동안 진흙탕에서 굴렀고, 그동안 솔직히 망할 뻔한 순간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회사는 절대로 죽지 않고 매번 더 강하게 살아남는 바퀴벌레처럼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면서 그 분야에서 계속 자기만의 영토를 야금야금 만들었고, 자신의 브랜드도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들이 투자자들의 돈으로 요란하게 사업하고 있을 때, 이 회사는 아주 조용히 제품을 만들었고, 고객을 확보했고, 매출을 만들었고, 심지어 수출까지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요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성장하는 회사들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