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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기계

올해 나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팟캐스트를 꽤 많이 들었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엘리트 운동선수와 창업가 간엔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은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극강의 바퀴벌레력’이다. 그중에서도 생존력과 회복력이 바퀴벌레, 창업가, 그리고 엘리트 운동선수가 태어날 때부터 보유하고 있는 천성, 또는 성장하면서 남들보다 더 잘 발달시킨 후천적 습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살아남는 능력과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능력이 강하다.

한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이 부분이 계속 내 뇌리를 맴돌면서 기억에 강력하게 남았다.

“평범한 운동선수는 그냥 보통의 선수지만, 탁월한 운동선수들은 ‘반복의 기계’이다.(Ordinary athletes are just athletes, but extraordinary athletes are ‘machines of iteration’”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탁월한 운동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의미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서 생각해 보면 카를로스 알카라스 같은 탁월한 테니스 선수는 포핸드 하나만 2만 시간 이상 반복 연습한다. 손흥민 선수는 왼발 감아차기를 아마도 수천 번 반복 연습할 것이다. 스테판 커리는 3점 슛을 수만 번 반복 연습할 것이다. 이 선수들은 그 동작이 신체 일부가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반복의 기계’가 되고, 이런 과정에서 평범한 선수에서 탁월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반복의 기계(machines of iteration)’라는 말이 나에게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고, 내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남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요새 아주 많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아주 많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평범한(ordinary) VC가 어떻게 하면 탁월한(extraordinary) VC가 될 수 있을지 나는 요새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어렴풋이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건 알겠지만, 여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반복의 기계’라는 표현이 내 생각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해답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범한 VC는 어떻게 하면 반복의 기계가 되면서 탁월한 VC가 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VC보다 이메일을 더 많이 쓰고, 더 많은 창업가를 만나고, 더 많이 일하면 된다. 딱 이 세 가지만 하면 되는데, 이 세 가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실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건 이 세 가지를 10년 동안 매일 반복해서 내 몸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반복의 기계가 돼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들보다 하루에 이메일을 하나만 더 쓰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개의 이메일을 더 쓸 수 있다.
남들보다 하루에 미팅을 하나만 더 하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명의 창업가를 더 만날 수 있다.
남들보다 하루에 한 시간만 더 일하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시간을 더 일 할 수 있다.

위의 수치는 실로 엄청난 숫자이고, 이렇게 하면 반복의 기계가 될 수 있고, 탁월한 VC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훈련과 반복을 통해서 탁월한 VC가 될 수 있다면, 다른 평범한 VC는 절대로 우릴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스트롱을 통해서 이 여정을 시작했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엘리트 운동선수들같이 반복의 기계가 되는 그 순간을 매일 꿈꾼다.

사실 이건 운동선수나 VC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생의 원칙이다.

하나만 하자. 제대로.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주장한 주제가 “하나만 하자”인 것 같다. 지금까지 아마도 이 주제로 대략 20개가 넘는 글을 썼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미국의 치킨 체인점 Raising Cane’s 창업가 Todd Graves의 인터뷰를 흥미롭게 들었는데, 이 회사는 치킨 핑거만 판매하면서 초기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하는데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자연스럽게 일반 후라이드 치킨 및 다른 치킨 메뉴로 확장하자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나왔고, 외부에서도 계속 수평적 확장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가는 치킨 핑거 시장만 잡아도 엄청난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까지도 닭으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메뉴로 확장하지 않고 오롯이 치킨 핑거 기반의 메뉴만 계속 파고 들어가고 있다.

결과는, 현재까진 매우 성공적이다. 작년에 거의 7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 쪽으로도 진출했다. 치킨 핑거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치킨 핑거 하면 Raising Cane’s이지”라는 브랜딩을 제대로 만들었고, 이후엔 매장당 매출과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거대한 치킨 핑거 왕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모든 스타트업이 그 분야에서 – 분야가 아무리 좁더라도 – 최고가 되기 전까진 웬만하면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과 같이 풍부하고 낭비해도 되는 자원이 – 즉, 돈과 사람 –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모가 만들어지는 버티컬을 선택한 후에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가서 남들보다 훨씬 더 뾰족한 사업을 만드는 게 작은 회사엔 매우 중요하다. 이 작은 버티컬을 장악해서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1위가 되고, 이후에 다른 버티컬로 확장해서 같은 전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Raising Cane’s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닭요리라는 시장에서 치킨 핑거 패스트푸드라는 버티컬을 선택했고, 20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이 버티컬에서 가장 뾰족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경쟁사가 이 분야에 등장하더라도 이 뾰족한 사업을 이기는 건 매우 힘들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하는 이 컨셉을 복싱이라는 운동에 적용해 보자. 솔직히 이 비유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적절한 것 같다.
두 명의 복서가 있는데 한 선수는 복싱의 모든 기술을 전반적으로 다 배우고, 매일 모든 기술을 다 골고루 연마한다. 잽, 훅, 어퍼컷 등 모든 펀치 기술을 연습하고 이 기본 기술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격 조합도 만들고, 이 또한 골고루 연습한다. 공격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수비 기술도 배워서 열심히 연습한다. 모든 기술을 연마하니, 이 선수가 연습하는 걸 보면 굉장히 화려하고 멋있다. 토탈 복싱이다. 그리고 이 선수는 이미 복싱을 꽤 오래 했고 우승 경험도 있는 노련한 복서다.
다른 선수는 첫 번째 선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습한다. 이분은 딱 한 가지만 연습한다. 왼손잡이라서 레프트 잽 하나만 정말 죽어라 열심히 반복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연습을 시작해서 하루에 20시간씩 다른 건 안 하고 레프트 잽만 연습한다. 수비 기술은 아예 안 배우고, 공격만 연마하고, 공격 중에서도 잽만 연습한다. 이 선수가 연습하는 걸 보면 정말 단순하고 재미없다. 이 선수는 복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상대 선수보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다.

이 두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며 어떻게 될까? 아마도 10번 싸우면 9번 이상은 경험 있는 토탈 복서인 첫 번째 선수가 쉽게 이길 것이다. 레프트 잽만 할 줄 아는 선수는 아마도 상대방 몸 근처에도 못 갈 것이고, 금방 KO 패 당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집요하게 기회를 노리다 보면 10번 중 1번은 어쩌면 상대방의 얼굴과 몸에 왼손으로 잽을 날릴 수 있을 것이고, 상대 선수의 가드가 한 번 풀리면 집중적으로 연타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 시간 동안 연습한 잽은 제대로만 들어간다면 상대방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라서 어쩌면 10번 중 1번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인 선수가 노련한 선수를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연습량을 절대적으로 늘리는 것과 하나의 기술만 뾰족하게 연마하는 것이다.

물론, 위의 예시는 그냥 내가 마음대로 극화시킨 상황이다. 레프트 잽 하나만으로 시합에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려는 진 대부분 이해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 한 노련한 토탈 복서는 이미 시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업을 잘하고 있는 대기업과 같은 기존 플레이어다. 이들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그동안 쌓아 놓은 내공과 업력이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특별히 뾰족한 무기라고 할만한 건 없고, 그냥 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으로만 사업을 하고 있다.

잽만 죽어라 연습하는 복서는 이제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이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없고 돈도 없지만, 한 가지 기술만 무한 연습해서 레프트 잽에 있어서는 이 세상 그 어떤 복서보다 더 빠르고, 날카롭고, 많이 상대방을 때릴 수 있다. 이 엉성한 복서에게 노련한 복서가 질 확률은 낮지만,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잽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 이길 확률이 매우 낮지만, 반대로 그나마 그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만 열심히 하는 것이다.

Raising Cane’s도 치킨핑거 분야에서 유명해지고 성공한 후에 다른 분야로 확장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까진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하나의 제품을 더 연구하고 있고, 더 많은 나라로 지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

B급 사업 10개 하는 것보다 A+급 사업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게 스타트업에겐 가장 좋은 전략이다.

언젠가는

2주 전 열렸던 2025년도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드디어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했다. 맥길로이가 2009년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17번이나 마스터스에 참가했는데, 탑텐은 여러 번 했고 준우승도 한 번 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고, 그 누구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나에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승 인터뷰에서 맥길로이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내가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하기 시작했다.(I started to wonder if my time would ever come)”. 그가 울먹이면서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맥길로이가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 했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엄청난 거물 신인이었고, 그의 기세와 실력은 마스터스 대회를 한 10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노렸지만, 우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은, “첫 출전이니까 괜찮아. 나는 젊고 앞으로 기회는 너무 많아. 내년엔 우승해야지.”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괜찮아. 난 아직 10대야. 내년에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차도 우승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도 못 했고, 수년 동안 계속 우승에 실패했다. 어떤 해엔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반면에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 적도 많다. 그러면서 맥길로이도 20대가 됐고, 다시 30대가 됐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민첩성과 시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내년에 우승하면 돼.”라는 자신감보단,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길로이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가 지난 17년 동안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느꼈던 이 감정의 변화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도 스트롱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맥길로이가 거친 과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롱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도에 우린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5년도에 2호 펀드를 만들었다. VC를 처음 시작할 땐, TechCrunch나 WSJ에서 읽는 것처럼, 우리도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첫 2년이 지났을 땐 “이 회사들은 아직 시간이 걸려. 조금만 더 지나면 엑싯이 한두 개는 나올 거야.”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아직 충만했다. 그런데 3년, 그리고 4년이 지나면서 이 희망이 서서히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될 거로 생각했던 투자사들이 점점 더 싹수가 노래 보이면서, 과연 이 중 엑싯이 하나라도 나올지 스스로에게 의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조바심과 절망감으로 매우 빠르게 바뀌면서 “나는 과연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엑싯이라는게 생길까?”를 의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투자가 맞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계속 버텼고, 2017년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코빗이 좋은 엑싯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쌓인 의구심이 다시 자신감과 희망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린 계속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맥길로이가 겪었던 그 똑같은 희망 -> 의심 -> 절망,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대부분 5년 정도 사업하면 좋은 엑싯을 하거나, 회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첫 1년은 개고생인데, 이때만 해도 체력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서 “한 2년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다. 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펀딩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도 열심히 채용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은 안 생기고, 수많은 투자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도 돈은 안 주고, 아무도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희망과 자신감으로 몇 년을 더 버틴다. 딱 일 년만 더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회사는 안 망했지만, 창업 초기에 꿈꿨던 성장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고, 이 10년 동안 창업가의 희망은 의구심으로 바뀌면서 “과연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하게 된다. 이게 요새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상황이다.

맥길로이가 걸어온 길과 그 감정의 변화를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또, “꿈이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라. 계속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맥길로이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창업가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 저도 이 미친 짓 한지가 이제 8년째인데요, 제가 과연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내가 대답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나도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항상 “지금까지 안 망했으면 뭔가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이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면 우린 이 험난하고 미친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돈 버는 습관

얼마 전에 우리의 오래된 투자사의 이사회 미팅에 참석했다. 아주 힘든 사업을 하고 있는데, 10년 전 창업할 땐, 창업가들도 이렇게 힘든 사업인 줄 몰랐고, 투자자들도 이렇게 힘든 사업인 줄 몰랐다. 그동안 실수도 많이 했고, 돈도 많이 까먹으면서 개고생했는데, 이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운영 방법을 찾았고, 그동안 마이너스 나는 사업을 하다가 작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으면서 흑자를 만들고 있다. 나도 이런 창업가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사업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지만, 실제론 인생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운다. 이런 힘든 사업을 무에서 시작해서 돈을 버는 과정을 옆에서 보다 보면, 가끔은 제삼자인 내가 토할 정도로 힘든 사업을 이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버티면서 묵묵히 앞으로 나갈까,,,라는 존경심이 항상 생긴다. 어쨌든, 창업가 예찬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서 따로 하겠다.

같은 이사회 멤버인 다른 투자자분이 이 회사가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을 보고,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 습관을 유지하세요.”라는 말씀을 했는데, 나도 이 말에 너무 격하게 공감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의 반복을 통해서 만든 습관은 생활을 변하게 하고, 결국엔 인생을 바꿔놓는다. 습관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이후에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만드는 게 더 어렵다. 일단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습관을 불러 올 수 있다.

회사가 돈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 버는 습관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 하지 않고, 거창한 스타트업 놀이하지 말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업을 하지 않고, 그냥 매일,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돈 버는 게 습관화되고,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이 된다. 한 번 만든 흑자는 두 번의 흑자를 만들고, 이는 평생의 흑자로 이어질 수 있는, 창업가들의 인생과 회사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얼마 전에 ‘슈퍼 마리오 효과‘라는 글을 썼는데, 돈을 버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야 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실수를 많이 할 것이다. 실수하면, 우리 몸은 이 실수를 고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리고 운이 좀 따른다면, 돈 버는 사업이 만들어지고, 이를 또한 계속 반복하다 보면 흑자가 만들어진다. 한 번 온몸으로 경험한 흑자 만드는 방법은 몸에 습관처럼 남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계속 반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의 우승과 비슷하다. 이겨본 놈이 계속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우린 자주 하는데, 시합에서 한 번 이긴 선수는 승리의 자신감이 생기는데, 이 자신감은 뇌 일부분을 자극하고, 이 부분이 자극받으면 반복적으로 우승할 수 있다.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이다. 스타트업 놀이 말고, 돈 버는 걸 습관으로 만들어라.

기본기

올해도 첫 번째 그랜드슬램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이 잘 끝났다. 마지막에 노장 노박 조코비치가 컨디션 난조로 기권하면서 내가 응원하는 선수들은 모두 탈락했지만, 좋은 젊은 선수들의 경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등장했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들이 발굴됐는데, 당분간은 남자 테니스도 계속 물갈이를 반복하며 운이 좋은 선수와 실력이 있는 선수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반짝 떴던 선수들이 올해는 초반에 많이 탈락했는데, 이들은 겉으론 화려하고, 본인들이 스스로 PR을 매우 잘해서 항상 이슈 메이킹을 하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단단하지가 않고 뭔가 항상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 다 젊고, 포핸드이든 백핸드이든 강력한 무기는 하나씩 갖고 있는데, 왜 항상 불안한 플레이를 하는지 조금 자세히 보면, 이들의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잘하는 선수한테 절대로 못 이기는데, 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떴고, 어떤 이들은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 물론, 딱 한 번이다. 그 이상은 힘들다. –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 진짜 잘하는 상위 랭커들이 어쩌다 초반에 탈락해서 이들과 대진표에서 만나지 않았거나, 붙었는데 컨디션 난조 때문에 진 걸 운 좋은 선수들이 실력으로 이겼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반 렌들, 피트 샘프라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 이들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근대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들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완벽한 기본기 위에 자기만의 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테니스의 기본기에 대해서 말하면 항상 생각나는 인터뷰가 있다. 라파엘 나달의 인터뷰인데 아마도 이 인터뷰도 오래전 호주 오픈에서 치열한 5세트 접전까지 가서 우승한 후에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경기를 했고, 멋지게 이겼는지 사회자가 물어보자, 나달은 이렇게 짧게 대답했다. “I ran very fast and I hit very hard.”

그 인터뷰를 봤을 때, 뭐 저런 초등학생 같은 이야기를,,,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오한 이야기고, 테니스나 다른 운동이나, 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탄탄한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빨리 뛰고, 세게 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테니스의 기본이지만, 이 기본기가 완벽한 프로 테니스 선수들이 몇 명 안 된다. 그 몇 안 되는 선수들이 지금 상위 랭커들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 인생의 기본기가 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자기만의 철학, 생각, 근면, 성실, 루틴, 규율 등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업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의 기본은 주로 제품, 고객, 매출 등이다. 이런 기본기를 제대로 만들지도 않고 겉만 화려한 창업가나 사업은 운 좋게 한두 번은 반짝 뜰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순 없다. PR을 얼마나 잘하는지, 투자를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어떤 유명한 VC에게 투자받았는지, 대표이사의 팔로워 수가 몇 명인지 등은 사업의 기본기와 지속가능성과는 큰 상관은 없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내는 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이에 따라서 매출을 만드는 게 사업의 기본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업의 기본기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본기를 잊어버리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경기의 95%는 이길 것이다. 나머지 5%까지 이기고 싶다면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과 실수를 하면서 자기만의 무기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경기의 95%는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