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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사업

미국 출장 중에 어떤 미국 VC가 혹시 스트롱이 이런 회사에 투자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이 분은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어떤 시장에, 어떤 조건으로 투자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딜을 공유해 준 것 같다. 희토류 관련 사업을 하는 미국 회사인데 현재 약 3조 원 밸류로 여러 VC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투자하기엔 너무나 비싼 회사였고, 분야도 좀 그렇고, 시장도 한국이 아니라서 듣자마자 바로 패스이긴 했는데, 그냥 희토류 시장 자체가 좀 궁금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15분 정도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의 90%가 중국에 있어서 우리가 이야기하던 이 3조 원 밸류의 회사는 남은 10%의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실제 매출은 전혀 없고, 예약된 매출만 있다는 것이었다. 예약된 매출이란 중국과 미국의 마찰 때문에 미국 정부가 희토류 확보를 위해서 이 회사를 엄청나게 밀어주고 있어서 미국 정부로부터 부킹?된 매출이다. 나는 이 사업이 과연 잘 될지, 그리고 매출 0원인 회사의 기업가치가 3조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는지, 도대체 이 회사에 이미 커밋한 투자자들은 누구이고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짜 궁금하긴 했다.

미래에 예약된(=부킹된) 매출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사업하는 우리 투자사들도 있는데, 이 부킹이 된 매출 중 실제 매출로 전환되는 금액은 대부분 0이거나 매우 작다. 아마도 위에서 이야기한 희토류 회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부킹된 매출이라서 전환율은 조금 더 높을 것 같지만, 현재 미국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이 또한 불확실성 투성이다.

이런 사업을 우리는 정치적인 사업(political business)이라고 한다. 상업적인 사업(commercial business)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업이고,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제대로 된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과의 마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밀어주는 분야라서 갑자기 떴고, 주목받는 사업이라서 이런 회사에 3조 원 밸류에이션에 돈을 쏘는 투자자도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미중 관계가 좋아지거나, 또는 미국 정부의 희토류에 대한 기조가 바뀐다면 하루 만에 망할 수도 있는 그런 사업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이런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을 만난다. 자생할 수 있는 기술, 제품, 서비스는 없고 정부의 기조 때문에 운 좋게 큰 계약을 하거나 큰 매출을 만드는 정치적인 사업이 실은 한국에도 꽤 많다. 워낙 한국 정부가 과감한 드라이브를 많이 걸고, 특정 분야가 뜬다고 하면 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온갖 정부 과제와 보조금이 갑자기 생기기 때문이다.

창업자나 투자자도 본인들이 하는 사업과 투자 검토하는 사업이 정치적인 사업인지 시장의 논리로 돌아가는 상업적인 사업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관건은 이 사업에서 정치적인 부분이 없어져도 자생할 수 있는 제품, 매출, 그리고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인지 여부다.

숫자의 인플레이션

얼마 전에 미국에 한 10일 정도 갔다 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꽤 많은 업계 분과 투자자들을 만나서 요새 미국 tech 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보다 훨씬 큰 투자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딜들을 보고 있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이 글에서는 우리 같은 VC는 창업가에게 엄청 많이 배운다고 했는데, 이건 배움의 절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투자할 수 있게 소중한 자금을 제공해 주는 우리의 LP들에게 배우는 것 같다.

아무래도 미국 벤처투자자들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주제는 올해 예정된 스페이스엑스, 오픈AI, 그리고 앤쓰로픽의 IPO였는데 이 세 회사가 원하는 기업가치 총액은 거의 $3.5 trillion이다. 스페이스엑스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업가치가 $1.5T인데 이는 한국 GDP의 4분의 3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이고 나도 이 일을 하면서 꽤 큰 금액에 대해 이야기하고 billion이라는 단어도 가끔 말하지만, trillion은 입에 담기조차 부담스러운 단위이다.

요새 이 시장에선 billion과 trillion이라는 단위가 너무 남발되고 있고, 내가 느끼는 걸 영어로 표현해 보면 “$100 billion is the new $100 million(이제 1,000억 달러가 과거의 1억 달러다.)”이다. 솔직히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의 대형 VC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VC가 $10B 밸류에 투자유치를 하는 회사들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일단 한화로 15조 원이라는 기업 가치 자체가 너무 컸고, 이 밸류에 투자하면 정말로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비싸다는 불평을 계속하면서 아주 꼼꼼하고 깐깐하게 실사하고, 여러 번 고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니콘 회사가 Stripe과 ByteDance였는데 가장 고점을 쳤을 때가 아마도 $100 B 정도였던 것 같다. 이 시기에 두 회사가 시장에서 펀드레이징을 돌 때, 회사를 소개해 주는 기존 주주들도 약간 민망해하면서 딜을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본인들의 포트폴리오지만, 본인들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게 비싼 것 같고 $100 B이라는 금액 자체가 너무나 큰돈이라서 감이 잘 안 잡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상황이 완전히 반대다. $100B은 마치 과거의 $100M 같고 – 실은 $100M도 우리같이 작은 투자자에겐 너무나 큰 돈이다 – 스페이스엑스의 구주를 $1T에 구매하고 싶다는 투자자들도 충분히 있다는 소문은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시장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누구도 오픈AI와 앤쓰로픽이 $1T이라는 숫자를 이야기할 때 비싸다는 이야기를 안 하고, 그 비싼 가격에 사면 누군가는 더 비싸게 살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만 – 이건 전형적인 바보들의 이론이다 – 이런 비싼 딜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요샌 그냥 이 정도 가격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린 것 같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절대 금액의 의미 자체가 희석되어 숫자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숫자의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정말로 이 세상에 몇 년 전 대비 돈이 그렇게 많아졌을까? 종이 상으로는 많아졌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100B이라는 돈을 마치 $100M 같이 취급할 정도로? “이걸 더 높은 가격에 사는 다른 바보가 있다면, 현재의 가격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략은 거품 시장에서 우리가 과거에도 몇 번 봤던 현상인데, 더 이상 더 높은 가격에 사는 바보들이 없어진다면 –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없어질 수도 있다 –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금액이 이렇게 커진 상황에서 시장이 무너지면 정말 전세계적인 재앙이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보다 GDP가 15배나 높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대국이다. 그래도 미국의 로켓 회사 하나, 그리고 두 개의 AI 회사의 총 기업가치가 전세계에서 13번째로 잘사는 나라인 대한민국 GDP의 거의 두 배라는 건 잘 모르겠다. 내가 걱정하는 이 재앙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휴먼지능 할루시네이션

VC가 수많은 창업가 중 성공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서 투자하고, 수많은 아이디어 중 성공할 만한 사업을 찾아내서 투자하는 과정을 흔히 pattern recognition이라고 한다. 본인이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했던 무수히 많은 옳은 결정과 틀린 결정을 참고해서 성공하는 사업과 창업가의 패턴을 찾아서 성공과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에 투자하고, 실패와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은 피하는 방법이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 포인트를 학습하고 체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패턴을 발견하고 연관 짓는 방법과 큰 개념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VC들에겐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 판단, 결정,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이들만의 거대언어모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도 VC로서의 14년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엄청나게 많은 data point가 머리와 가슴속에 나만의 거대 모델로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가나 비즈니스를 만나게 되면, 나만의 거대 모델에서 그 어떤 패턴을 찾으려고 휴먼지능을 열심히 돌려본다. 과거에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봤는데, 그 사업이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그냥 패스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고, 과거에 비슷한 성향의 창업가에게 투자했는데 크게 성공했다면, 내 휴먼지능은 투자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

실은, 모든 게 이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지만, 내 안의 데이터 포인트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여러 개 봤고, 몇 군데 이미 투자까지 했는데,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됐다면, 과연 여기서 내 휴먼지능은 무슨 패턴을 발견하고 어떤 조언을 나에게 해줄까?
좋은 학교 나오고 어떤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서 이 회사가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한 창업가에겐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분과 비슷한 경험을 한 창업가들을 무수히 만났는데, 대부분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런데 잘 안된 창업가가 그다음 사업을 했을 땐 대박 났다면,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사업은? 물론, 이런 사업에는 투자를 안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하지만, 내 거대 모델 안에는 규제받는 산업에서 틈새를 잘 찾고, 이 틈새를 크게 만들었던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아, 그런데 휴먼지능을 조금만 더 돌려보면, 전에 이런 논리로 크게 투자했는데 대박 망한 회사들이 여러 개 있다는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패턴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우린 매일 5개 정도의 회사를 만나는데, 대부분의 미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수많은 데이터포인트를 기반으로 패턴을 찾으려는 휴먼지능이 과부하 되면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참 혼란스러운 게, 인공지능이라면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이 쌓일수록 결과의 정확도가 더 높아져야 하는데, 휴먼지능의 경우 – 내 휴먼 지능 –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아질수록 할루시네이션의 확률 또한 높아져서 투자 결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이런 식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비슷한 사업이고, 비슷한 창업가이고, 비슷한 산업이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과거에 어떤 사업은 잘됐고 어떤 사업은 잘 안됐다면, 잠시 휴먼지능은 완전히 꺼버리고 그냥 내 직감에 의존한다. 내 직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최소한 환각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니까.

기세

창업가나 투자자라면 ‘피칭’이라는 말이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창업가라면 투자받기 위해서 VC들을 대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사업에 관해서 설명하는 피칭을 했을 것이다. 우리도 작년에 수백 개의 피칭을 듣고 봤다. 그런데 우리 같은 VC도 투자하기 위해서는 남의 투자를 받아야 해서 우리도 펀드레이징을 하고, 꽤 많은 피칭을 한다. 우리는 작년 9월에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통계를 내보니까 이 펀드를 만들기 위해서 180명이 넘는 투자자를(=LP) 대상으로 피칭했다. 어떤 분들은 그냥 줌으로 한 번 온라인 미팅만 했지만, 어떤 해외 투자자는 10번 이상 대면 미팅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들이 스트롱에게 모두 다 돈을 준 건 아니다. 이 중 일부만 우리에게 출자했고, 대부분의 미팅을 전쟁에 임하는 태도로 열심히, 에너지 넘치게, 그리고 기세 넘치게 진행했기 때문에, 특히나 우리에게 자금을 출자한 분들과의 미팅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중 기억에 남는 미팅이 하나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펀드를 마무리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몇 주 안 남았었고, 이 투자자의 돈은 꼭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실은, 이미 이 투자자에게 과거에 두 번 피칭했다 두 번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에, 세 번째 시도는(=삼수) 마지막 기회였다. 절박함에 대해서 우리는 자주 이야기하는데, 당시 내 심정은 절박함 그 자체였고, 정말로 비장한 각오로 줌 피칭 미팅을 시작했다.

피칭하기 바로 전날 밤으로 상황을 리와인드 해보자. 실은 발표해야 하는 내용은 내가 14년 동안 직접 해왔던 거라서 아주 익숙했지만, 그래도 나는 전날 밤에 10번 연달아서 리허설을 했다. 약 20분 정도의 발표이니 거의 세 시간을 같은 내용을 미친 사람처럼 달달 다시 연습했던 것이다. 줌으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화면 공유할 때 파워포인트의 포인터/펜 기능이 가끔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고, 강조해야 할 부분을 빨간펜으로 체크하면서 발표하다 보면 그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지 않는 알려진 문제점도 있다. 나는 발표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이런 문제점들을 사전에 모두 방지하기 위해서, 그 전날 10번 리허설을 상대편에는 아무도 없지만, 실제로 줌을 켜고 라이브로 연습했다. 그리고 연습하면서 파워포인트의 포인터 -> 펜 -> 줌의 화면 공유 상에서의 페이지 넘기기, 이 전환이 매끄럽게 될 수 있게 충분히 연습했다.

다시 실제 피칭하는 순간으로 패스트포워드 해보자. 전날 연습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이번에도 돈을 못 받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벼랑 끝에 선 각오로 엄청나게 기세 있게 발표했다. 온라인이고 작은 노트북 화면에서 발표하는 거지만, 반대편에 보이는 약 10명의 청중의 눈을 하나씩 맞추려고 노력했고, 엄청난 기세를 이들에게 100% 전달하겠다는 각오로 거의 샤우팅 하듯이 피칭했다. 그리고 이분들에게 우리는 돈을 받았다는 해피엔딩으로 이 피칭 이야기는 끝난다.

나중에, 이 LP들에게 들었다. 화면으로만 나를 보고 들었지만, 정말로 스트롱이 돈을 꼭 받아야겠다는 독기를 품었다는 각오가 강하게 느껴졌고, 정말 그 엄청난 기세가 줌 화면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온몸으로 전달됐다고.

“인생은 기세다.”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연예인들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나는 자주 들었다. 그런데 나도 좀 살아보고, 일도 좀 해보고, 투자도 좀 해보니 정말로 이 기세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창업도 기세, 펀드레이징도 기세, 글로벌 진출도 기세, 심지어 우리 같은 VC가 하는 벤처 투자도 기세다. 이 모든 게 안 될 이유가 백만 가지가 있는, 했다 하면 실패할 게 거의 뻔한 일들이다. 그 와중에 되게 만들어야 하고, 되게 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이건 자신감과 기세가 없으면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 주변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나는 이들이 짐승 같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본인들이 목표하는 걸 무조건 해야겠다는 의지와 이를 막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짐승같이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기세가 보이기 때문이다.

기세는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발동을 걸고, 누가 봐도 안 될 일을 계속 시도하게 만드는 희망과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기세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힘든 여정을 같이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류와 같이 흐르면서 안 될 일을 되게 만드는 방향으로 기운을 흐르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피칭할 때 내 기세가 분명히 발표를 듣는 분들에게도 전달됐고, 이들의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 이 기세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내 경험에 의하면 기세는 누구나 다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자 자산이다. 기세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결국엔 수년, 수십 년 동안 반복하는 좋은 습관과 연습에서 나온다.

학생 창업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 창업가를 좋아하고, 이들이 창업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응원한다. 우리가 학생 창업가에게만 전문적으로 투자하거나 이들에게만 투자하는 펀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스트롱은 지금까지 꾸준히 대학생 창업팀에 투자하고 있고 이들이 하는 몇 개의 이벤트를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린 모두 다 바빠서 외부 강연이나 발표는 거의 안, 못 하고 있는데, 학생들 대상의 강연이나 발표, 또는 해커톤 심사는 웬만하면 시간을 만들어서 참석하고 있다. 창업가들의 나이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지향하는 첫 번째 기관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는 학생들에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학생들은 스트롱의 미래의 고객이기 때문에 우리가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은 잠재 고객에 대한 영업/마케팅 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지금 또는 나중에 창업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VC가 스트롱벤처스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내가 스트롱을 시작한 2012년만 해도 학생들은 창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창업이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이들에게 투자해 주는 VC도 없었다. 창업은 취업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옵션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시에 만났던 학생 창업가들은 준비도 안 됐고, 실력도 없었다. 실은,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은 취업을 선호하긴 하지만, 요샌 창업을 1순위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요새도 우린 더 많은 학생 창업가를 만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학생분들 중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제안해 주시면 좋겠다.

이미 창업했거나, 창업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몇 가지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꼭 이렇게 하라는 건 아니지만, 창업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하는 주제들이고, 몇 개는 나중에 회사가 켜졌을 때 이 회사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가장 첫 번째 조언은, 사업은 학교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학생 창업가는 실은 학생 창업가가 아니라 그냥 창업 과제를 하는 학생이다. 이들은 사업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그냥 학업 외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멀리서 다른 창업가를 보니까 본인들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법인설립하고 대표이사 명함 만들고, 코파운더 명함 만들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분은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 대표이사 놀이에 빠져있고,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적인데, 이력서에 “ABC 창업 경험” 한 줄 달기 위해서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당연히 사업을 풀타임으로 안 한다. 학업을 하면서 사업을 병행하는데, 이렇게 대충대충, 건성건성 해서 제대로 된 사업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14년 동안 투자한 290개의 회사는 모두 다 유니콘이 돼야 했다.

그래서 내가 학생 창업가에게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조언은, 정말로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일단 그 마음가짐부터 제대로 가지고,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면 학업을 휴학하거나, 아니면 자퇴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제대로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이진법적인 생각 같지만, 창업은 all in or nothing이다.

두 번째 조언은, 교수님의 말을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창업하는 회사의 주주명부에서 교수님은 빼거나, 아니면 이들의 지분을 2% 이하로 낮추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 창업 스타트업은, 그리고 특히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원생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창업팀에는 지도교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게 왜 틀렸는지는 내가 전에 이 글에서 대략 설명했는데, 다시 한번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스타트업의 코파운더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이 사업 생각만 해야 하고, 이 사업에 그 무엇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교수들은 이게 구조적으로 안 된다. 왜냐하면 학교가 이들의 직장이라서 항상 학교가 이들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가 잘 되면 가장 고생하고 기여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분이 이걸 결정한다. 회사가 안 되면 역시 지분이 가장 많은 분들이 모든 책임과 비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에 all in 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파트타임으로 조언과 훈수를 하는 교수들이 지분을 이렇게 많이 보유하는 건 확실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수들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본인이 창업한 회사가 있고, 지도하는 학생들이 창업한 3~4개 회사의 높은 지분을 보유한 C 레벨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로 회사가 나중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잘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 교수는 창업팀에서 빼라. 꼭 이들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스톡옵션을 0.5% 이하로 주고 고문으로 모시는 걸 권장한다. 전에 어떤 학생 대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굉장히 곤란해하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본인도 졸업해야 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승인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하므로 이런 껄끄러운 대화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내가 위에서 말한 대로 진짜로 사업을 하려면 그냥 학업을 중단하는 게 이런 졸업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니면, 교수님과 이 힘든 대화를 해서 쇼부를 봐야 한다. 사업하면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훨씬 더 힘든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힌다면 사업 못 한다.

마지막 조언은, 스타트업은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곳이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인이 현재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 이건 정말 대단하고 축하할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세계 최고의 사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노벨상 받은 모든 이론과 기술이 유니콘 사업이 돼야 한다. 기술은 그냥 단지 기술일 뿐이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돈을 버는 사업으로 진화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연구보다 사업이 더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 같은 VC는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 기술로 만드는 돈을 버는 사업에 투자한다. 이걸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나는 젊고, 똑똑하고, 에너지 넘치는 학생 창업가를 정말 좋아한다. 이들이 맘먹고 사고 치면 유니콘이 아니라 데카콘 몇 마리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더 많은 학생이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위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 본 학생 창업가들이라면 언제든지 스트롱에 연락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