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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slashgear.com/x-files-2015-guide-catching-up-with-mulder-and-scully-24375084/

투자금의 100배 이상의 수익이 생기는 사례를 보면, 주로 모두가 다 안 된다고 할 때, 이걸 된다고 본 소수의 VC가 투자했을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모두 다 안 된다고 했기에 당시 이 비즈니스의 밸류에이션은 낮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투자해서 회사가 크게 잘 되면 100배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자주 있진 않지만, 우리도 경험했고, 다른 VC들의 성공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이런 수익을 경험하는 투자자들에게 사적인 자리에서 그 과정과 경험에 관해서 물어보면, 모든 투자자와 창업가의 이야기는 항상 다르지만, 나름대로 내가 공통으로 뽑아낸 배움이 있다면, 바로 이런 투자자들은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를 100% 이해하기 전에, 일단 100% 믿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그는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어떤 기술이 나오고,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유행할진 모르겠고, 이런 걸 예측하는데 별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인은 기술자도 아니고, 미래학자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라서 미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한다. 하지만, 이해는 못 하지만, 100%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시대가 아무리 바뀌고,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와도, 소비자는 항상 더 많은 선택을 원하고(더 적은 선택이 아니라), 더 싼 제품을 원하고(더 비싼 게 아니라), 그리고 더 빠르게 배송받길 원한다는(더 늦게 받는 게 아니라) 것이다. 이 3가지를 100% 믿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능케 하는 기술, 제품, 팀에 주저 없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고, 아마존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항상 경쟁사보다 다섯 발은 앞장 서는 것 같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는,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실은 이건 내 원칙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워런 버핏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전략은 한동안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지만, 이제 너무 많은 창업가가 너무 대단한 비전을 갖고 창업하기 때문에, 내가 만나거나 검토하는 회사들의 절반 정도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이제 나는 이런 회사를 볼 때,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건, “이해하기 전에 믿자” 이다. 믿는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고, 나도 이해하고 세상이 이해하게 되면, 그때 이 비즈니스는 대박 성공하고 우린 100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꿈꾸는 미래를 믿는가? 믿는다면 과연 이 팀이 이걸 할 수 있나? 이게 미래에 투자하는 투자자로서 내가 물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이제 나는 믿는다. 남들이 이해하기 전에 믿는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 전에 믿는다. 아멘.

같이 성장하는 기쁨

2012년도에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 왜 투자를 시작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면 여러 가지 대답을 했겠지만, 그중 하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였다. 당시에는 VC는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운 좋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나에게는 꽤 쉬워 보이는 그런 직업이었고, 왠지 돈을 모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고,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가설과 환상은 이미 박살 난 지 꽤 오래됐다.

그래도 나는 이 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실은 지금도 이 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하고, 운이 좀 따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이 따르는 직업이고, 다른 모든 창업가나 직장인처럼 나도 가끔은 이 일이 너무 힘들고, 내 힘과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고, keep going 하는 이유는 너무나 큰 보람과 만족감을 꽤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보람 중 하나는 나만 혼자 성장하는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즐거움이다.

주로, 우리가 투자한 분들이 초보 창업가에서 근사한 기업인/리더로 성장하는 걸 옆에서 볼 때 이런 보람을 많이 느낀다. 생각해보면, 처음 스트롱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나이만 먹은 건 아니고, 투자자로서 훨씬 더 많이 성장하고 스마트해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단편적으로 모든 걸 봤다면, 이젠 조금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특정 상황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경험과 인내심이 생겼는데, 이는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생 때 창업했거나, 직장 경험 없이 졸업 후 바로 창업한 대표들은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밸류에이션이 뭔지도 몰랐을 때 우리가 투자했는데, 이젠 10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조직을 리드하고 있는 어엿한 비즈니스맨이 됐고, 회사의 문화와 리더십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걸 보면, 이렇게 초짜 VC와 초짜 창업가가 만나서 좌충우돌하면서 같이 성장한 보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한테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주는, LP라고 하는 펀드 출자자분들과 같이 성장하는 보람도 자주 느낄 수 있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한 번 만나서 투자가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도 수년 동안 알던 창업가분들한테 투자하는 걸 선호하는데, LP들도 비슷하다. 우리 LP들을 보면, 우리한테 바로 돈을 준 분들이 거의 없다. 스트롱이라는 회사와 나랑 존이라는 파트너를 최소 1년 이상 옆에서 지켜본 후에, 믿을 만한 투자자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 비로소 투자했고, 어떤 LP들은 우리를 5년 이상 지켜보다가 투자했다. 그중 어떤 분들은 나랑 5년 전에 대화를 시작했을 때는 그 조직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회사에서 입지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힘이 없었고, 스트롱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부장이나 팀장님한테 자신 있게 큰 소리를 내지 못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승진했고, 그동안 우리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우리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고, 본인이 힘이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자신 있게 우리한테 투자 한 경우도 있다. 우리도 펀드레이징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이런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큰 보람을 선사한다. 이분들이 만약 계속 회사에 남는다면, 그 조직의 리더가 되고 사장이 될 텐데, 스트롱과 같이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특별한 개인적인 사례 하나를 여기서 공유하고 싶다. 내가 2008년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DCM Ventures라는 꽤 유명한 VC에게 피칭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 담당자가 Osuke Honda 라는 일본계 심사역이었다. 당시 이 분은 DCM에 조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심사역이었고, 본인도 회사에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DCM 파트너쉽 단에서 투자는 결렬됐지만, 오스케는 우리를 엄청 많이 도와줬고, 내부에서 셀링해줬고, 이 딜을 잘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우린 투자는 못 받았지만, 이 주니어 심사역에게 엄청 고마운 마음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가끔 소식을 전하곤 했다. 이제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스케는 DCM의 메인 파트너가 됐다. 스트롱은 훨씬 규모가 작지만, 어쨌든 나도 작은 펀드를 운용하는 파트너가 됐고, 우리는 아직도 가끔 연락하면서 딜을 공유하고 웃으면서 당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일본에 가면 만나고, 오스케가 한국에 와도 만나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던 초짜 창업가와 심사역이었는데, 이렇게 둘이 같이 성장한걸 보면 상당히 뿌듯하다.

혼자 잘나가도 좋고, 혼자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성장하면 그 기쁨은 두 배 이상이 된다.

변화의 소리

세상은 계속 빠르게 바뀌고 있고, 우리같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의 낌새를 빠르게 포착해야하며, 현재에 투자하기보단 미래에 투자해야지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 행동은 아직 과거의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고, 우리 팀원은 모두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는데, 가끔 나만 구시대적인 발상과 편견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 내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유연한 태도로 모든 걸 접근하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게 생각같이 잘 안 돼서 정말 힘들긴 하다.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중, 얼마 전에 스포츠 구단,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그리고 OTT 관련 포드캐스트를 듣다가 변화와 관련된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OTT 플랫폼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전통적인 TV는 이제 덜 보고, 인터넷으로 모든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때문에, 이제 드라마나 방송프로를 본방 사수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본방 사수를 못 하면, TV 재방송을 해주면 재방송 시간에 다시 보거나, 비디오로 녹화를 해놨다가 봤지만, 이젠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에서 얼마든지 거의 무료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꼭 생방송이 의미가 있는걸 꼽자면 바로 스포츠다. 다른 건 모두 다 녹화방송으로 봐도 되지만, 운동경기는 반드시 생방송으로 봐야 하고,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은 더욱더 맞는 말이 됐다. 이런 배경을 잘 이용하여, 스포츠 리그나 협회는 생방송 중계 라이센스를 말도 안 되게 비싸게 팔았고, 그래도 방송국들은 앞다퉈서 라이센스를 비싸게 구매했는데, 비싸지만 이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MZ 세대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좋아하는 팀이 경기하면, 운동경기를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하지만, 10대들의 성향은 아주 다르다. 이들이 운동경기를 보는 방법은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한 경기를 생방송으로 다 보지 않고, 여러 경기의 주요 하이라이트만 보는데, 그렇게 해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손흥민 선수 경기를 다 안 보고, 그냥 골 넣는 하이라이트만 봐도 친구들과 “야 너 소니가 5명 재끼고 골 넣는 거 봤지? 대박!”이라는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이 친구들에게는 이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하이라이트는 유튜브나 트위터에 널려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생방송을 보지 않고도 시청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 쪽에서는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스포츠 리그와 방송국은 이걸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했다기 보단, 그냥 보기를 거부했다고 하는 게 맞을것 같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주위의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스포츠 중계 라이센스도 가격을 낮추던지, 무료화하는 방법을 찾자고 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TV에서 NFL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 경기 시작하고 종료하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4시간 동안 실제로 볼이 플레이되는 시간은 15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3시간 45분은 광고, 작전, 타임아웃 등이다. 우리 같은 구세대는 상관없지만, 젊은 친구들은 이런 걸 다 볼 시간도 없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시간에 다른 거 하고, 경기 끝나면 하이라이트 2분만 보면 친구들과 이 NFL 경기에 관한 대화를 실컷 할 수가 있다.

어떤 e스포츠 종사자가 MLB 임원과 토론하는 걸 전에 봤다. 야구 쪽 분이 e스포츠는 아직 장난이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면서 공격하자, e스포츠 종사자는 여러말 하지 않고, “MLB의 팬은 이제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e스포츠 팬은 이제 태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죠”라는 말로 받아쳤는데, 이 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시대가 바뀌는 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우렁차므로 들으려고 하면 들린다. 실은, 이건 독자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따끔한 경고이자 충고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1월

2018년 초 이후부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껐던 많은 분들이 새해부터 나한테 비트코인 가격과 전망에 관해서 물어보는걸 보면 이 시장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4만 달러를 잠깐 넘었다가 지금은 또 떨어지긴 했지만, 비트코인 3만 달러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진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17년도의 가격 폭등은 미디어와 투기가 만들었는데, 이번 불장에서는 이 둘의 영향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럼 도대체 가격이 왜 이렇게 많이 뛰었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전문가가 팔려는 사람은 적은 데, 사려는 사람은 많은, 전형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본다면, 대량으로 구매하고, 오랫동안 팔지 않고 그냥 보관하고 있는,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의 등장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투자에 대해 적용되는 FUD(Fear, Uncertainty, Doubt)의 영향이 이번에도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거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이렇게 올라가는 현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의 회사에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건 여러모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2013년 코빗 투자를 시작으로 그동안 한 번도 이 분야를 등한시한 적이 없고, 많진 않지만, 꾸준히 회사들을 검토하고 블록체인 관련 창업가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한국과 미국의 직접적인 블록체인/크립토 관련 스타트업과 간접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서비스는 대략 10개 안팎이다. 암호화폐의 gateway 역할을 하는 거래소 고팍스, 비트코인 <-> 상품권 거래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비트로와 암호화폐로 이자수익을 벌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은행 샌드뱅크가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다. 이 밖에 송금이나 정품인증 등에 블록체인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투자사도 있고, 하여튼 이 분야에서 계속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재미있는 팀들이 많다.

이런 작은 실험과 노력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새 이 기술과 시장이 주류로 들어오는데, 이게 올해가 될진 잘 모르겠지만, 미국통화감독청의(OCC –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스테이블코인 승인으로 시작한 2021년은 꽤 재미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관리가 필요 없는 회사

작년 한 해 동안 스트롱에서 꽤 많은 회사에 투자했다. 어떤 회사 투자소식은 미디어에 보도가 됐지만, 대부분의 투자 관련 소식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를 비롯해서, 어떤 VC가 몇 건의 투자를 했는지는 – 그리고, 투자를 많이 하냐, 적게 하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공식적으로 관리되고 있진 않지만, 아마도 2020년도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한 VC 중 하나가 우리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8년 넘게 지금까지 우린 16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다. 5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투자하고 관리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인데, 이게 실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도 펀드레이징할때 잠재 출자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그 많은 회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냐는 질문이고, 다른 동료 VC들도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많이 투자하면 관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한다.

이 질문에 나는 주로 두 가지 답변을 드린다. 아마 전에도 내가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일단 나는 우리 투자사 중 힘든 회사와 창업가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미 잘 하는 회사는 내가 굳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아도 잘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관리가 필요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관리는 필요가 없다. 나보다 더 사업을 오래 한 창업가들이, 자기 비즈니스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는데, 내가 굳이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오히려 회사의 비즈니스에 방해가 되는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회사는, 내가 많이 도와주면, 어쩌면 잘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 또는, 그렇게 될 거라고 나는 믿기 때문에 – 이런 분들과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아무리 같이 고민하고 같이 옆에서 뛰어주어도 힘든 회사들이 잘 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많이 경험했다.

관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두 번째 답변은, 바로 우린 관리가 별로 필요 없는 회사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린 투자하기 전에 이 창업가는 어떤 분인지 파악하고 배우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 우리의 실사는 회사의 서류나 재무제표를 보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배움과 확신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확신이 생겨서 투자하면, 이분들은 주로 관리라는 게 별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창업가들은 스스로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은, 시장의 변화, 자본의 변화, 경쟁의 변화 등과 같은 요인은 투자자들이 아무리 관리해도 관리가 안 된다. 이런 변화가 발생했을때 – 그리고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이런 예상치 못한 변화는 매일 발생한다 –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대표와 경영진에 투자하는 게 우리가 보는 성공적인 투자이다. 그래서 나는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투자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이분들은 본인들이 관리를 잘하면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잘 될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믿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잘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드는 건, 투자자가 관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관리에 너무 집중하는 투자자일수록, 회사가 잘 되면, “그 회사 우리가 키웠다”라고 말하는 경향이 큰데, 이 역시 내가 술자리나 모임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회사가 잘 안 되서 망했을 때도 똑같이 “그 회사 우리 때문에 망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에겐 망하는 건 항상 창업가와 회사의 잘못이다. 잘되면 우리가 키웠고, 안되면 쟤네가 문제 있다는 식의 생각은 그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되도록 우린 관리가 필요 없거나,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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