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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힘

사진 2020. 11. 18. 오전 7 34 19

Together We are All Strong!

초등학교 친구 존이랑 스트롱벤처스를 2012년도에 창업했고, 이후 4년 정도는 우리 둘이서 회사와 펀드를 운용했다. 처음에는 펀드도 작았고, 투자한 회사도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둘이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2016년도부터 우리도 사람을 조심스럽게 채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스트롱 팀이 어느덧 6명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열심히 뛰기만 해서, 11월 초에 존이 한국에 나온 기회를 이용해서, 조금 숨도 쉬고, 주위도 보는 기회를 갖는 차원에서 스트롱 창립 이후 최초의 워크숍을 부산으로 갔다. 굉장히 알찬 1박 2일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갈 길은 어떨지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워크숍에서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간략한 MBTI 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오래전에 했던 거와는 다른 결과인 ISTJ가 나왔고, 내 파트너 존은 ENFP 성향이 나왔다. MBTI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 텐데, ISTJ랑 ENFP는 4개의 각 항목(=알파벳)에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른 성향을 나타낸다. 실은, 둘이 굉장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그동안의 우정과 업무 경험으로 둘 다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로 이걸 확인하니 참 신기하긴 했다. 이런 다른 성향 때문에 실은 스트롱 초반에는 둘이 엄청 싸웠다. 물론, 지금도 의견 차이가 크고,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였기 때문에, 이 극과 극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은 내가 그동안 그 어떤 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상호보완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름의 힘을 내가 자주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팀은 프라이머 파트너팀이다. 프라이머에는 여러 명의 훌륭한 파트너가 있는데, 주로 앞단에서 회사들과 교류하는 파트너는 권도균 대표님, 이기하 대표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다. 우리 셋도 비슷하기보단, 다른 성향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특정 회사나 창업가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어떻게 같은 파트너십에서 이렇게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맞춰왔고, 기본적으로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와 존경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다름이 항상 프라이머의 장점으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걸 ‘다름의 힘’이라고 부른다. 일하면서, 서로 다름에서 나오는 힘은, 비슷하거나 같음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크다는걸 스트롱과 프라이머를 통해서 항상 느끼고 있어서, 우리도 투자할 때 창업멤버들의 다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아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가 잘 되는 경우도 많지만, 유니콘 가능성을 가진 회사는 항상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점은, 이 다름의 힘을 잘 다스리면서 이걸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름으로 인한 분열, 혼돈, 그리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다름으로 인해서 분열이 생기면, 이건 완전히 재난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SPAC 상장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라면 올해 SPAC, 또는 스팩 상장이라는 말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SPAC은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약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기업인수목적회사’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실은, 나도 스팩상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적은 없어서, 모든 디테일과 실무는 모르지만, 주위 많은 분이 올해 자주 물어봤던 내용이라 그냥 개괄적으로 몇 자 적어본다.

스팩은 1990년대부터 존재하던 개념인데, 올해 이 방식으로 IPO를 하는 회사들이 급증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다. 전통적인 IPO와는 달리 꽤 빨리 상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코비드 19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 시기에 많은 분이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검색을 좀 해보니, 작년 대비, 올해 스팩 상장한 회사 수가 4배가 넘는다고 한다.

스팩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인데, 딱 한 가지 목적(=special purpose)이 있다.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는 게 그 목적인데, 일단 스팩 회사를 만들어 상장시키고, 특정 기간 안에 이 스팩 회사로 다른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면, 피인수된 비상장 회사도 상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배기홍이 ‘마일로’라는 법인을 설립한다
2/ 이 회사를 상장 신청하고, 회사의 투자자를 모집한다
3/ 로드쇼를 통해서 만난 여러 투자자가 마일로 주식을 산다
4/ 주식회사 마일로가 IPO를 하고, 배기홍은 전체 주식의 20%를 갖는다(배기홍=스팩 상장 스폰서)
5/ 배기홍은 마일로를 통해 인수할 비상장 회사를 찾는다
6/ 이미 투자를 많이 받은, 탄탄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구루’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로 하고, 이 회사의 경영진/이사회와 인수 조건을 네고한다
7/ 마일로의 주주들 또한 구루 인수에 대해 투표하고 이 딜을 승인한다
8/ 마일로는 IPO로 모집한 자금, 그리고 새로 투자받은 자금으로 구루를 인수한다
9/ 마일로와 구루가 합병하고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10/ 만약, 마일로가 2년 안에 – 2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 – 회사를 인수하지 못하면, 마일로를 청산하고 다시 주주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뭐, 대충 이런 방식으로 스팩 상장이 진행된다.

스팩 상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가장 큰 건 상장을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IPO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스팩의 경우 빠르면 3개월 안에도 마무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전통적인 IPO 방식으로 회사를 상장시켜도 주식 가격에는 불확실성이 많이 존재한다. 원래 상장시장의 주가는 시장의 상황과 투자자들의 의향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고, 상장 가격 자체는 주로 투자은행의 뱅커들이 결정하는데, 뱅커들이 정한 가격은 대부분 너무 낮거나 너무 높아서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스팩의 경우 이 가격을 사전에 정하고 인수 작업을 하므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된다.

물론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스팩 상장의 성패가 스폰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위의 예제에서 스폰서는 ‘배기홍’이라는 사람이다. 즉, 마일로라는 스팩 회사는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라서, 이 회사의 투자자들은 회사가 아니라 배기홍이라는 사람을 믿고 투자하는 건데, 이 인간이 사기꾼이거나, 인수할 회사를 잘 못 선정하면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해 스팩 상장 중 사기로 판명된 건 (아직)없지만,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스폰서는 본인 돈은 아주 적게 투입하지만, 스팩 회사 지분의 20%를 갖게 된다. 위의 예에서, 배기홍은 마일로 회사의 지분을 20% 갖게 되는데, 마일로가 구루를 인수하게 되면, 이 20%는 구루 지분의 1~5%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인수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항상 돈을 벌게 된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스팩 상장의 스폰서에 대한 실사나 스크리닝을 잘해야 한다.

이런 스팩 회사들은 종목코드도 간단하다. IPOA, IPOB, IPOC – IPOZ 까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 등의 이름을 사용한 스팩회사들이 있는데, IPOA는 Virgin Galactic을 인수해서 상장했고, IPOB는 OpenDoor, 그리고 IPOC는 Clover Health를 같은 방법으로 인수해서 상장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스팩상장이 일어나고 있고, 조만간 많은 회사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상장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광고를 많이 해서 우리한테 친숙한 ‘TS샴푸’를 만드는 TS트릴리온도 12월에 스팩상장을 한다고 발표했는데, 잘 될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어쨌든 스팩 상장 외,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언제 팔아야 할까?

얼마 전에 USV Fred Wilson의 트위터에서 한참 논쟁이 됐던 주제가 투자자들이 투자사 주식을 언제 매도하냐이다. 내 생각으로는 프레드는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트위터 이벤트를 보면 코인 뿐만 아니라 일반 스타트업 지분에 대한 좋은 이야기와 논쟁이 많았다.

우리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서, 엑싯할 기회가 아직 많진 않지만, 이런 기회가 간혹 발생하면, 우리도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이 트위터 이벤트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내부적으로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 투자를 더 오래 했고, 더 많은 엑싯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한 다른 글로벌 VC들의 의견을 자세히 읽어봤는데, 역시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점에 대한 정답은 없고, 이 또한 회사의 전략과 철학, 타이밍, 그리고 그 시점의 여러 가지 내,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 트윗의 주인공 프레드 윌슨의 철학은, 투자한 회사(또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갔고, 이 주식을 팔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원금은 회수한다는 원칙이다. 본전은 일단 뽑고, 나머지 수익을 계속 보유했을 때 최적의 결과를 경험했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적의 결과는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게 아니다. 일단 본전을 뽑았으니, 원금을 날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펀드의 출자자들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래서 잠도 더 잘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나중에 이 회사가 대박 나면, 그때 왜 팔았을까 후회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낮은 결과에 너무 의존하다가 원금까지 모두 날리게 되면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재미있고,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은 대부분 엑싯에 대해서는 100% 틀리거나(=돈을 다 날림), 또는 100% 맞는(=대박) 전략을 취해야지만 홈런을 쳐서 소수의 엑싯으로 전체 펀드를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이고, 너무 일찍 엑싯을 해서 후회를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투자자도 있다. 좋은 회사라면 절대로 팔지 말고, 끝까지 갖고 있으면 항상 최고의 수익이 발생한다는 철학을 가진 투자자도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을까 싶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펀드의 규모, 펀드가 투자하는 회사의 종류, 펀드의 만기일, VC들의 성향, 회사의 철학 등에 따라서 이런 엑싯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펀드에 출자하는 LP, 이 돈을 굴리는 우리 같은 VC,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회사 경영진들의 엑싯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할 때 제일 좋은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인 것 같다.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얼마 전에 아담 피셔의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Valley of Genius)”라는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서 출간된 지는 2년 됐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내 지인분이 다른 친구 VC 분들과 같이 번역을 해서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 진행 중이다. 정말 고맙게도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좀 망설이긴 했다. 추천사를 쓰려면, 책을 다 읽어봐야 하는데, 책 분량이 적지 않았고, 내가 요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솔직히 그냥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호기심에 책 초반부 몇 장을 읽다가 매우 재미있어서 금방 책의 절반을 읽었고, 결국 짤막한 추천사를 썼다.

나도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와 창업에 대한 책을 그동안 많이 읽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몇 년 살아서 이 동네 이야기는 웬만하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실리콘밸리 관련 책은 더는 안 읽었다. 실은 “실리콘밸리의 xxx” 또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렇게 한다.” 부류의 책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이 책을 재미있게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다른 책들과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단 책의 독특한 전개 방식이다. 특정 회사 또는 특정 사건과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인사이더의 대화, 대본 위주로 전개되는 방식인데, 매우 독특하다. 아마도 이 많은 사람을 한 번에 한 곳에 불러서 작가가 인터뷰한 것 같진 않고, 따로따로 각각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을 취합해서 나열한 방식은 마치 모두 한 방에 모여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직 미개봉된 영화나 연극의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내용의 깊이 그 자체이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회사들이 어떻게 창업됐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더 깊고 사실적인 내용이 실제 그 회사에 일했고, 그 역사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의 입으로 전달된다. 예를 들면, 트위터가 실제로는 Odeo라는 스타트업의 여러 가지 실험적인 제품 중 하나였고, 사장될 뻔한 제품이 어떻게 바이럴하게 펴졌는지에 대한 일반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내용과는 다른, 그런 인사이드 이야기를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즉, 남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창업가, 회사, 그리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주인공 또는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대한 그 누구도 모르는 찐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또 다른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은 큰 걸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키기보단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했던 사람들, 천재지만 멍청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던 작은 사람들, 끝까지 괴짜로 남길 원했던 사람들,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매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 하지만 결국엔 이겼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즉,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엔딩과 딱 맞는 사람이다.

프라이머 18기 미팅

얼마 전에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8기 선발 대면 인터뷰를 다 마쳤다. 서류지원 이후 50개+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회사들을 3주 동안 1시간씩 대면 미팅을 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굉장히 힘들다. 주중에는 나도 일이 많아서 대부분 주말을 이용해서 미팅했는데, 다시 한번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이 포스팅을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빽빽하게 앞뒤로 잡힌 미팅으로 도배가 된 토/일 캘린더를 보면 실은 스트레스 엄청 쌓이고 한숨까지 나오는데, 이게 또 막상 회사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에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지만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잘 하는 창업가들도 많았다.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해외 유명 대학 출신 창업가, 현재 대기업 소속인 스텔스 창업가 등, 다양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분은 부모님 빚을 갚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시작한 창업가, 그리고 무명 연습생 생활을 오랫동안 한 창업가였다. 프라이머 선발과는 무관하게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너무 많고, 이런 친구들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지만, 반면에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열심히 사는 젊은 창업가들도 많다는 걸 이번에도 나는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스트롱도 워낙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의 파운더들을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창업가들은 어떤 트렌드에 민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MZ 세대는 요새 뭐하고 있는지, 즉 이 시장에 대한 맥을 어느 정도 짚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프라이머 기수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매우 활발하고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은, 여러 가지 매크로 지표를 보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 스타트업 생태계이며,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일원인 만큼, 이 분야만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간절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초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날수록 마음의 위안이 된다.

대부분 간절하게 프라이머 투자를 받고 싶어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선발되지 못한다. 내가 이 분들한테 항상 강조하는 건, 프라이머 투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 창업가들이 그 좋은 학교 나와서,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이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가 프라이머 투자 받기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고, 더 큰 의지가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주변에 잡음도 많이 들릴 것이다. 이게 너무 많이 쌓이다 보면,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한 박자 쉬면서, 항상 이 초심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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