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y

종이, 펜, 그리고 손 필기

어느 날 사무실에서 새로운 창업가와 첫 미팅을 하는 도중, 미팅 룸을 둘러보면서 다른 팀 동료분들을 봤다. 모두 다 귀는 창업가의 발표를 들으면서, 눈은 대형 화면의 발표 자료, 창업가의 얼굴, 그리고 각자의 노트북 모니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열심히 미팅 노트를 적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AI 노트 테이킹 앱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하면서 요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딴짓하는 분들도 내 눈에 띄었다. 각자의 노트북 화면을 내가 볼 순 없었지만, 분명히 다른 이메일 답장을 하거나, 슬랙을 하거나, 또는 그날 저녁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에 대해서 단톡방에서 개인적인 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딴짓하는 걸 창업가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게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 누가 봐도 미팅 도중에 그 미팅 내용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건너편에서 우리를 보면서 열심히 사업 내용을 설명하는 창업가는 이걸 100%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미팅할 때, 아예 노트북을 지참하지 않는다. 종이와 볼펜만 미팅룸에 가져가고, 완전 옛날 방식으로 종이 위에 펜으로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다. 내가 듣는 내용도 정리하고 요약해서 쓰고, 중간마다 그 창업가에 대해서 느낀 점들도 펜으로 다 적는다.

내가 아직도 종이와 펜을 고집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이유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일단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는 그 내용을 확실하게 기억에 새기고, 또 마음에도 새기는데 가장 탁월한 암기 방법이다. 이걸 과학적으로 증명한 여러 가지 연구가 있고 논문도 있는데, 이렇게 뇌과학적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아도 이 현상을 나는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매일매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로 듣고, 뇌로 처리하고, 손으로 쓰고, 쓰면서 다시 눈으로 보고 읽으면서 뇌로 한 번 더 정리하는 이 행위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대단한 능력이자,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항상 지키고 개선하고 싶은 습관이다. 어쨌든 손으로 종이 위에 펜으로 필기하는 게 나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미팅 노트테이킹 방법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나보다 내 앞의 사람이 말을 훨씬 더 많이 하는 우리가 주로 하는 창업가와의 미팅에서, 발표하는 사람의 건너편에 앉은 우리 앞에 있는, 인터넷에 연결된 노트북은 딴짓하는 걸 잘 감춰주는 최고의 도구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더 아쉽고 부탁할 게 많은 미팅인데, 미팅룸에서 다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부터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아서, 나는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 죽어라 이야기하는데, 내 건너편 사람들이 실제로 미팅 메모를 적는 건지, 아니면 쿠팡에서 쇼핑하는 건지 궁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펜, 종이, 그리고 필기는 나와 만나는 상대방이 제대로 주목받고 있고, 내 관심을 100% 받고 있다는 느낌을 완벽하게 줄 수 있다. 상대방이 말할 때, 나는 그들이 말하는 걸 내가 집중해서 듣고 있고, 그들이 말하는 걸 내가 요약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고, 이걸 가장 잘 전달할 방법은 그들과 계속 아이컨택트를 하면서 펜으로 종이에 미팅 내용을 적는 것이다.

11월 말에 나는 올해의 마지막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처음 만나는 잠재 투자자와 미팅했는데, 미팅에 참석한 두 명 모두 본인들 노트북으로 딴짓하는 게 너무나 명확했던, 정말 짜증 나는 1시간이었다. 나는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거의 목이 쉴 정도로 열정적으로 샤우팅 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내 말을 듣는 척 연기하면서, 마치 내 이야기를 노트북에 타이핑하는 척했지만, 모두 경험이 있겠지만, 이게 금방 티가 나고 들키게 된다. 솔직히, 성질 같아서는 그 노트북을 엎어버리고 딴짓하려면 꺼지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아쉬운 게 나라서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내가 저런 사람들에게 출자받고 앞으로 10년 동안 – 펀드의 만기가 10년이다 –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을지 잘 모르겠다. 그분들과 한 시간 미팅을 위해서 나는 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왔고, 그걸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미팅 시간 내내 이메일 확인하고, 슬랙 보내고, 친구들과 금요일 저녁 어디서 만날까 왓츠앱 하는 걸 생각해 보면, 벌레 같은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트롱 팀동료들도 창업가와 미팅할 때 노트북으로 노트테이킹을 하는데, 전에 내가 한 번 미팅 시간에 노트북으로 딴짓할 정도로 다른 중요한 일이 있으면, 미팅에 아예 들어오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이건 우리와 미팅하는 창업가들에 대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그냥 예의도 아니고, 최소한의 예의다. 어떤 분들은 미팅하면서 그 회사의 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계속 검색하는데, 이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고, 이런 건 미팅 전에 이미 조사해서 준비해 왔어야 하는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미팅하게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는 전혀 머리에 안 들어오고, 서로 1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창업가는 내가 위에서 느꼈던 것처럼 우리를 벌레 같은 VC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AI가 노트테이킹을 다 해주고, 다 요약해 주고, 그다음에 뭐를 할지까지 알려주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럴수록 내 생각을 손으로 종이에 직접 쓰는 걸 나는 강력하게 권장한다. 앞으로 이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고, 어쩌면 펜으로 종이에 뭔가를 쓰면서 내 기억력을 글씨로 요약하는 행위는 나만의 엄청난 해자(垓字)가 될지도 모른다.

AI 조미료

얼마 전에, 우리와 공동투자도 많이 하고, 나랑 개인적으로도 친한 다른 투자자와 한국의 초기 AI 스타트업과 창업가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요새 한국의 초기 AI 시장 분위기는 어떤지, AI 스타트업을 만드는 창업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한국은 이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와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우리는 초기 회사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매달 한두 개의 신규 회사에 투자한다. 요샌 아마도 10개 회사 중 7개는 AI 조미료가 가미된 스타트업이고, 미팅은 대부분 “AI 네이티브” , “AI 퍼스트” , “AI 기반” , “AI driven”으로 시작하는데, 이런 피칭을 너무 많이 듣고,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하는 창업가를 너무 많이 만나니까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팀 동료분들에게 AI 회사 피칭 하나만 더 들으면 토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 중 아주 좋은 회사도 가끔 있다. 정말로 AI가 스타트업의 생산성을 높여주고, 이렇게 만든 소프트웨어가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product market fitting이 제대로 된 제품도 있는데, 이게 되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된다. 하지만, 아직 이런 회사는 소수이고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그냥 AI 조미료를 먹으면서 살고 있는 것 같고, 비슷한 사업을 하는 미국의 어떤 회사처럼 1년 만에 데카콘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강하다.

AI 회사들의 강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아주 파워풀 한 강점이다. Web 2.0의 시대가 시작되고, 이후에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세가 되면서 창업의 비용과 문턱이 현저하게 낮아졌는데, 물리적인 서버를 구매하지 않고 사용하는 만큼만 지불하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코드의 대세, 비싼 마케팅보단 거의 무료로 하면서 더 큰 파급력을 만들 수 있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 등이 당시에 “창업은 비싸다”는 개념을 완전히 박살 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도 이후에 정말 많은 질 좋은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AI로 인해 이 창업의 장벽이 다시 한번 내려가고 있고, 이에 따라 창업에 대해서 고민하던 아주 똑똑하고 수준 높은 창업가들이 창업의 첫발을 내딛는 결정을 과거 대비 쉽게 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매일매일 체감하고 있다. 이제 대부분의 노가다를 AI가 완전히상당히 많이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고, 우선순위는 높지 않지만, 시간과 자원이 많이 소요되는 업무에 이런 AI 대체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좋기만 한 걸까? 장점이 너무 많지만, 여기에 큰 함정도 있다. 바로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부작용이다. 창업의 장벽이 낮아진 것과 모두 다 유니콘을 만들 수 있는 건 여전히 완전히 별개이고, 솔직히 아예 상관없는데, 이 두 가지가 같다고 착각하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전에는 5명의 엔지니어가 필요했다면, 이제 이보다 더 적은 팀으로 괜찮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결국 AI로 만든 이 제품을 고객에게 팔아서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건 여전히 어렵다. 오히려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게, 이제 비슷한 제품을 똑같은 AI 모델로 누구나 만들기 때문에 고객의 기대 수준은 더 높아졌고, 이들의 지갑을 여는 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그리고 왜 이런 생각을 쉽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AI 기반의 사업을 하면 창업 첫날부터 글로벌 사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말 큰 착각이다. 영어로 된 UI와 글로벌 제품과 비슷한 UX는 과거보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맞지만, 결국 외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려면 외국 고객들을 알아야 하고, B2B 사업이면 외국 기업 고객들에게 영업해야 하고, 그 나라에서 결국엔 팀을 만들어야 한다. AI 사업이든 아니든 그냥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해외 확장 과정을 거쳐야 한다. AI first 사업이라서 첫날부터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창업가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그냥 실체가 없는 “AI native 사업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분들은 AI 조미료를 너무 많이 처먹은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조미료로 인해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졌다. 비슷한 팀인데, AI로 사업을 하는 팀은 오프라인 사업을 하는 팀보다 자신에게 매기는 밸류가 말도 안 되게 높고, 역시 물어보면 해외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그 근거이다.

AI 자체는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AI 자체에는 거품이 별로 없지만, AI 조미료가 만드는 밸류에이션과 창업가들의 허세에는 거품이 너무 많이 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AI 난리 지랄을 잘 구분하고, 기대 수준을 모두 잘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벤처 생태계에 또 한 차례의 위기가 올 것이다.

카카오톡 업데이트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거의 대국민 재난 사태가 된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자동 업데이트가 비활성화되어 있어서 아직 이전 버전의 UI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뀐 버전을 보니 정말 불편하고 짜증 낼 만한 것 같다. 나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서 카카오에서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이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의 업데이트를 봤고, 이 중 회사를 거의 망하게 한 최악의 업데이트/업그레이드도 봤기 때문에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일단 카카오톡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때 – 특히 이번과 같이 단순한 버그 픽스나 기능 업데이트가 아닌, 정말 대대적인 변화일 때 – 지켜야 하는 거의 교과서적인 원칙을 간과했던 것 같다. 제품 업데이트를 하는 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빠르고, 더 이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회사의 수익성을 위한 업데이트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고객들을 위한 업데이트/업그레이드인 게 맞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도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카카오톡을 과거에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완전 신규 사용자들에겐 업데이트된 카톡의 UI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그냥 원래 이런가보다 하고 잘 쓸 것이다.

하지만, 카톡은 너무나 오래된, 그것도 한국 국민이 모두 다 사용하는 전 국민 필수앱이다. 이 필수앱에겐 너무나 극단적인 업데이트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더 편리하고, 더 좋아진 UI일 수도 있지만, 기존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너무나 큰 변화이고, 이들에겐 이 새로운 업데이트가 더 좋은 UI가 아니라 너무나 다른 UI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전반적으로 변화나 다름을 싫어한다. 눈에 보이는 UI가 달라지면 일단은 마음속에는 긴장과 혼란이 발생하는데, 카카오는 이런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품 개발을 아주 잘하는 노련한 PM들은 이런 극단적인 업데이트 경험을 마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누군가 벽지를 새로 하고 가구를 재배치한 것에 비교한다. 이 상황에서는 집이 전보다 훨씬 더 멋지고, 밝고, 세련됐다는 생각보단, “누군가 벽지랑 가구를 완전히 바꿨는데, 좀 많이 달리 보이네…”라는 생각을 하고 이건 일단 불안과 혼란을 가져온다.

카카오는 이 업데이트를 강제적으로 일괄 적용하지 않고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UI와 피드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공개하면서 바뀐 UI에 이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했다. 기존 사용자들에게 앞으로 진행될 업데이트와 완전히 달라지는 UI에 대해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서 알려주고, 업데이트가 적용되기 전에 이들이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줬어야 한다.

현재 대대적인 서비스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라면 이런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단은 기존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에 대해서 알려주고 새로운 기능과 UI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을 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충분히 사용해 보고 익숙해졌을 때 스스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

카카오 정도면 이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에 대해서 잘 알 텐데, 왜 이 교과서적인 방법을 건너뛰었는진 잘 모르겠다.

이런 업데이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는 구글이다. 유튜브와 지메일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고, 아직도 이 두 서비스는 계속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반복하고 있다. 구글은 대대적인 UI 업데이트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60일~90일 전부터 사용자들에게 변경될 UI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동안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해 보고 적응할 기간을 충분히 준다. 그 기간에 만약에 새로운 UI가 별로면, 사용자들은 이전 버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옵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는 정말 망한 것일까? 이 정신없는 피드를 UI에 적용한 게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처럼 역사적인 악수일까? 솔직히, 이건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나처럼 나이 먹은 분들은 기억할 텐데, 페이스북이 2006년도에 News Feed를 적용했을 때 엄청난 비난과 욕을 먹었다. 유저들이 원하지도 않는 지저분하고 말도 안 되는 UI로 업데이트를 강행했다고 마크 저커버그는 살해 협박까지 받은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이 UI에 사람들이 익숙해지자 이렇게 획기적이고 편한 UI가 없다는 의견들을 너도나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너무나 기발한 UI라고 모두 칭찬했고, 다른 소셜 서비스들이 이 피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같은 만행을 2011년도에 또 저질렀다. Timeline(타임라인: 탐라)을 강제 업데이트한 것이다. 나도 탐라가 정말 싫었고 화가 많이 났었는데, 이 또한 몇 주 사용해 보니 너무나 편하고 획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즉, 카톡의 UI도 충분히 익숙해지고 사용하다 보면 아주 좋은 UI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정말로 카톡 사용자들이 카톡을 떠나고 라인, 텔레그램이나 왓츠앱으로 옮겨 탈까? 절대로 그렇게 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이 다 카톡에 있으니까 정말로 카톡을 탈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고, 그동안 사용자들은 새로운 UI에 익숙해지거나, 카카오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UI로 다시 수정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전 UI로 다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카카오에서는 복구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복구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락인 효과가 너무나 압도적인 제품이 갖는 특권이기도 하다. 어쨌든 카카오톡은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된 아이디어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곱추의 저자 빅토르 위고의 명언 중 “군대는 막을 수 있어도, 때가 된 아이디어는 막을 수 없다.(An invasion of armies can be resisted but not an idea whose time has come)”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요새 이 말의 중요성과 위력을 자주 느끼고 있다. 아마도 이분이 이 말을 한 배경에는 당시의 격동적인 새로운 시대적 흐름, 혁신, 그리고 사회 변화가 있었을 텐데, 시대의 흐름은 탄 거대한 불가항력적인 힘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이 말의 위력을 느끼는 건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화의 맥락이 아닌 기술적 변화의 맥락에서이다. 물론, 기술의 큰 변화는 혁신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론 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긴 해서 어떻게 보면 프랑스 혁명보다 더 큰 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다. 어떤 분야에서는 미국보다도 더 앞서가는 진보적인 정책과 규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이게 과연 전 세계 GDP 10위의 선진국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규제가 낙후됐다.

이렇게 규제가 비합리적이고 낙후된 분야는 상당히 많지만, 그냥 요새 내가 항상 생각하는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다.

일단 모빌리티 분야는 한국에 꽤 센 규제가 존재한다. 2020년 3월에 만들어진 ‘타다금지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나는 정치인들이 타다라는 회사를 지명하면서 법을 만들었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요새도 타다의 탑 고객이긴 한데, 점점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있고, 그냥 차만 크지, 일반 택시랑 점점 더 똑같아지고 있다. 타다금지법이 없었다면, 타다가 원래 지향했던, 일반택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더 편하고, 더 조용하고, 더 얌전한 프리미엄 택시 서비스가 잘 만들어졌을 텐데, 많이 아쉽긴 하다. 실은 이런 규제는 나 같은 시장의 고객(=시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old guard인 택시 조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서 더욱더 아쉽다.

원격의료도 비슷한 것 같다. 원격의료 제도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 보단 긍정적인 효과를 훨씬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는 아직은 불법이다. 왜 불법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결국 현존하는 규제와 의료법은 기존 의사와 병원, 그리고 이들의 커뮤니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규제는 과거에는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폐지되거나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래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규제와 법이 존재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다. 기존 세력과 커뮤니티가 오래됐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제를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 글의 주제같이 때가 된 변화와 아이디어는 그 어떤 강력한 정치인이나 집단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조만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규제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어떤 기술이나 시장은 너무 새로워서 규제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투자사들과 같이 일하면서 특히 이런 점들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데, 로켓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나 배양육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은 기술력이 아무리 좋고 상용화 가능성이 아무리 높아도 이들이 하나씩 지키고 따를 수 있는 standard procedure와 법이 없어서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공격을 받는다. 결국 이런 새로운 frontier technology 분야에는 우리도 하루빨리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법적 프레임워크가 갖추어줘야 하는데, 중요한 건 이런 법을 만들 때 특정 단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아주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국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아주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오랜 전에 만들어져서 이제 특정 수구 세력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오래되고 쓸모없는 규제도 문제이고, 너무 새롭기 때문에 아예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인데, 결국엔 이 포스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어떤 규제와 법도 시대의 흐름을 탄 아이디어는 막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는 시대의 흐름을 빨리 탈 수 있도록, 그리고 잘 탈 수 있도록 최대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해야 한다.

AI의 독

전에 내가 AI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다는 을 썼는데, 그 내용의 연장선상의 글이다. 요새 직업상 또는 비직업상 만나는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AI 이야기를 한다. 특히나 창업가들은 AI라는 이 거대한 tech 물결을 어떻게 더 잘 타서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면서 부서와 업무와는 상관없이 전사적 AI 도입을 외치고 있다.

실은,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보다 빨리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은 AI 도입에 꽤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양면이 있는데 AI에도 어두운 면이 있고, 최근에 만난 많은 창업가들이 AI의 독에 물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많은 창업가들이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분들을 만나 보면 사람도 채용할 필요가 없고, 코딩도 배울 필요가 없고, 콘텐츠도 깊게 고민해서 만들 필요가 없고, 고객이나 협력업체에 보낼 이메일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걸 AI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생각한다. 업무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 5%는 – 우리가 하는 일을 완성하고,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게 이 마지막 5%이다 –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초지능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은 초지능 그 이상의 지능, 창의력,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응용력을 가졌고, 결국 누구나 다 AI를 활용해서 누구나 다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 이길 수 있는 제품, 서비스 그리고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건 이런 인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창업가는 지금까지 외부 투자 없이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만들었고, 영업이익까지 발생하는 좋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데, 투자받으면 AI에 올인해서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한 후, AI를 활용해서 초개인화된 브랜드를 판매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 전략은 교과서적으론 매우 이상적인 방향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분에게 지금까지 특별하게 데이터를 활용하지도 않고 기술을 깊게 적용하지도 않고 잘했고, 지금까지 했던 그 방식으로 연 매출 천억 원 까지 할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기존의 방법을 버리고, 회사가 잘하지도 못하는 AI에 올인하는 180도 다른 전략을 도입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너도나도 다 AI 이야기를 하고 있고, 주변에 사업하는 다른 창업가분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AI가 미래라는 말을 하고, 본인이 봤을 때도 데이터를 활용해서 AI 에이전트를 통한 한 초개인화 된 전략이야말로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그 어떤 사업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너무나 말로 하기엔 쉽지만, 실행하기엔 정말 어려운 전략이다.

이미 몇 회사들은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계속 사업을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고, 현재 매출의 10배까지 할 수 있음에도, 갑자기 회사의 방향을 AI에 올인 했다가 후회하고 있다. 멀쩡하게 잘 되던 사업을 버리고 AI에 올인 했는데, 그사이에 다른 경쟁사들이 이 회사가 원래 잘하고 있던 분야에서 시장을 야금야금 다 뺏어갔다. 그리고 AI에 몰방하는 게 우리 사업에 맞는 전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실은, 이런 회사들이 이렇게 방향을 급하게 바꾸게 된 배경엔 투자자들도 한몫했다. 투자하는 조건으로 무조건 AI native 회사로 체질 개선하는 걸 요구했고, 계속 AI 뽐뿌질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AI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사업의 본질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우리 고객은 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명확하게 판단한 후에 과연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현재 사업을 10배, 100배 이상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행동으로 옮겼으면 하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