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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업데이트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거의 대국민 재난 사태가 된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자동 업데이트가 비활성화되어 있어서 아직 이전 버전의 UI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뀐 버전을 보니 정말 불편하고 짜증 낼 만한 것 같다. 나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서 카카오에서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이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의 업데이트를 봤고, 이 중 회사를 거의 망하게 한 최악의 업데이트/업그레이드도 봤기 때문에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일단 카카오톡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때 – 특히 이번과 같이 단순한 버그 픽스나 기능 업데이트가 아닌, 정말 대대적인 변화일 때 – 지켜야 하는 거의 교과서적인 원칙을 간과했던 것 같다. 제품 업데이트를 하는 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빠르고, 더 이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회사의 수익성을 위한 업데이트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고객들을 위한 업데이트/업그레이드인 게 맞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도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카카오톡을 과거에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완전 신규 사용자들에겐 업데이트된 카톡의 UI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그냥 원래 이런가보다 하고 잘 쓸 것이다.

하지만, 카톡은 너무나 오래된, 그것도 한국 국민이 모두 다 사용하는 전 국민 필수앱이다. 이 필수앱에겐 너무나 극단적인 업데이트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더 편리하고, 더 좋아진 UI일 수도 있지만, 기존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너무나 큰 변화이고, 이들에겐 이 새로운 업데이트가 더 좋은 UI가 아니라 너무나 다른 UI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전반적으로 변화나 다름을 싫어한다. 눈에 보이는 UI가 달라지면 일단은 마음속에는 긴장과 혼란이 발생하는데, 카카오는 이런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품 개발을 아주 잘하는 노련한 PM들은 이런 극단적인 업데이트 경험을 마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누군가 벽지를 새로 하고 가구를 재배치한 것에 비교한다. 이 상황에서는 집이 전보다 훨씬 더 멋지고, 밝고, 세련됐다는 생각보단, “누군가 벽지랑 가구를 완전히 바꿨는데, 좀 많이 달리 보이네…”라는 생각을 하고 이건 일단 불안과 혼란을 가져온다.

카카오는 이 업데이트를 강제적으로 일괄 적용하지 않고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UI와 피드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공개하면서 바뀐 UI에 이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했다. 기존 사용자들에게 앞으로 진행될 업데이트와 완전히 달라지는 UI에 대해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서 알려주고, 업데이트가 적용되기 전에 이들이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줬어야 한다.

현재 대대적인 서비스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라면 이런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단은 기존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에 대해서 알려주고 새로운 기능과 UI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을 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충분히 사용해 보고 익숙해졌을 때 스스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

카카오 정도면 이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에 대해서 잘 알 텐데, 왜 이 교과서적인 방법을 건너뛰었는진 잘 모르겠다.

이런 업데이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는 구글이다. 유튜브와 지메일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고, 아직도 이 두 서비스는 계속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반복하고 있다. 구글은 대대적인 UI 업데이트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60일~90일 전부터 사용자들에게 변경될 UI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동안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해 보고 적응할 기간을 충분히 준다. 그 기간에 만약에 새로운 UI가 별로면, 사용자들은 이전 버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옵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는 정말 망한 것일까? 이 정신없는 피드를 UI에 적용한 게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처럼 역사적인 악수일까? 솔직히, 이건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나처럼 나이 먹은 분들은 기억할 텐데, 페이스북이 2006년도에 News Feed를 적용했을 때 엄청난 비난과 욕을 먹었다. 유저들이 원하지도 않는 지저분하고 말도 안 되는 UI로 업데이트를 강행했다고 마크 저커버그는 살해 협박까지 받은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이 UI에 사람들이 익숙해지자 이렇게 획기적이고 편한 UI가 없다는 의견들을 너도나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너무나 기발한 UI라고 모두 칭찬했고, 다른 소셜 서비스들이 이 피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같은 만행을 2011년도에 또 저질렀다. Timeline(타임라인: 탐라)을 강제 업데이트한 것이다. 나도 탐라가 정말 싫었고 화가 많이 났었는데, 이 또한 몇 주 사용해 보니 너무나 편하고 획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즉, 카톡의 UI도 충분히 익숙해지고 사용하다 보면 아주 좋은 UI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정말로 카톡 사용자들이 카톡을 떠나고 라인, 텔레그램이나 왓츠앱으로 옮겨 탈까? 절대로 그렇게 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이 다 카톡에 있으니까 정말로 카톡을 탈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고, 그동안 사용자들은 새로운 UI에 익숙해지거나, 카카오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UI로 다시 수정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전 UI로 다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카카오에서는 복구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복구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락인 효과가 너무나 압도적인 제품이 갖는 특권이기도 하다. 어쨌든 카카오톡은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된 아이디어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곱추의 저자 빅토르 위고의 명언 중 “군대는 막을 수 있어도, 때가 된 아이디어는 막을 수 없다.(An invasion of armies can be resisted but not an idea whose time has come)”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요새 이 말의 중요성과 위력을 자주 느끼고 있다. 아마도 이분이 이 말을 한 배경에는 당시의 격동적인 새로운 시대적 흐름, 혁신, 그리고 사회 변화가 있었을 텐데, 시대의 흐름은 탄 거대한 불가항력적인 힘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이 말의 위력을 느끼는 건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화의 맥락이 아닌 기술적 변화의 맥락에서이다. 물론, 기술의 큰 변화는 혁신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론 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긴 해서 어떻게 보면 프랑스 혁명보다 더 큰 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다. 어떤 분야에서는 미국보다도 더 앞서가는 진보적인 정책과 규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이게 과연 전 세계 GDP 10위의 선진국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규제가 낙후됐다.

이렇게 규제가 비합리적이고 낙후된 분야는 상당히 많지만, 그냥 요새 내가 항상 생각하는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다.

일단 모빌리티 분야는 한국에 꽤 센 규제가 존재한다. 2020년 3월에 만들어진 ‘타다금지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나는 정치인들이 타다라는 회사를 지명하면서 법을 만들었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요새도 타다의 탑 고객이긴 한데, 점점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있고, 그냥 차만 크지, 일반 택시랑 점점 더 똑같아지고 있다. 타다금지법이 없었다면, 타다가 원래 지향했던, 일반택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더 편하고, 더 조용하고, 더 얌전한 프리미엄 택시 서비스가 잘 만들어졌을 텐데, 많이 아쉽긴 하다. 실은 이런 규제는 나 같은 시장의 고객(=시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old guard인 택시 조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서 더욱더 아쉽다.

원격의료도 비슷한 것 같다. 원격의료 제도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 보단 긍정적인 효과를 훨씬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는 아직은 불법이다. 왜 불법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결국 현존하는 규제와 의료법은 기존 의사와 병원, 그리고 이들의 커뮤니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규제는 과거에는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폐지되거나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래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규제와 법이 존재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다. 기존 세력과 커뮤니티가 오래됐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제를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 글의 주제같이 때가 된 변화와 아이디어는 그 어떤 강력한 정치인이나 집단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조만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규제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어떤 기술이나 시장은 너무 새로워서 규제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투자사들과 같이 일하면서 특히 이런 점들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데, 로켓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나 배양육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은 기술력이 아무리 좋고 상용화 가능성이 아무리 높아도 이들이 하나씩 지키고 따를 수 있는 standard procedure와 법이 없어서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공격을 받는다. 결국 이런 새로운 frontier technology 분야에는 우리도 하루빨리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법적 프레임워크가 갖추어줘야 하는데, 중요한 건 이런 법을 만들 때 특정 단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아주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국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아주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오랜 전에 만들어져서 이제 특정 수구 세력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오래되고 쓸모없는 규제도 문제이고, 너무 새롭기 때문에 아예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인데, 결국엔 이 포스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어떤 규제와 법도 시대의 흐름을 탄 아이디어는 막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는 시대의 흐름을 빨리 탈 수 있도록, 그리고 잘 탈 수 있도록 최대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해야 한다.

AI의 독

전에 내가 AI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다는 을 썼는데, 그 내용의 연장선상의 글이다. 요새 직업상 또는 비직업상 만나는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AI 이야기를 한다. 특히나 창업가들은 AI라는 이 거대한 tech 물결을 어떻게 더 잘 타서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면서 부서와 업무와는 상관없이 전사적 AI 도입을 외치고 있다.

실은,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보다 빨리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은 AI 도입에 꽤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양면이 있는데 AI에도 어두운 면이 있고, 최근에 만난 많은 창업가들이 AI의 독에 물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많은 창업가들이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분들을 만나 보면 사람도 채용할 필요가 없고, 코딩도 배울 필요가 없고, 콘텐츠도 깊게 고민해서 만들 필요가 없고, 고객이나 협력업체에 보낼 이메일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걸 AI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생각한다. 업무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 5%는 – 우리가 하는 일을 완성하고,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게 이 마지막 5%이다 –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초지능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은 초지능 그 이상의 지능, 창의력,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응용력을 가졌고, 결국 누구나 다 AI를 활용해서 누구나 다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 이길 수 있는 제품, 서비스 그리고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건 이런 인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창업가는 지금까지 외부 투자 없이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만들었고, 영업이익까지 발생하는 좋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데, 투자받으면 AI에 올인해서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한 후, AI를 활용해서 초개인화된 브랜드를 판매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 전략은 교과서적으론 매우 이상적인 방향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분에게 지금까지 특별하게 데이터를 활용하지도 않고 기술을 깊게 적용하지도 않고 잘했고, 지금까지 했던 그 방식으로 연 매출 천억 원 까지 할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기존의 방법을 버리고, 회사가 잘하지도 못하는 AI에 올인하는 180도 다른 전략을 도입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너도나도 다 AI 이야기를 하고 있고, 주변에 사업하는 다른 창업가분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AI가 미래라는 말을 하고, 본인이 봤을 때도 데이터를 활용해서 AI 에이전트를 통한 한 초개인화 된 전략이야말로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그 어떤 사업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너무나 말로 하기엔 쉽지만, 실행하기엔 정말 어려운 전략이다.

이미 몇 회사들은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계속 사업을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고, 현재 매출의 10배까지 할 수 있음에도, 갑자기 회사의 방향을 AI에 올인 했다가 후회하고 있다. 멀쩡하게 잘 되던 사업을 버리고 AI에 올인 했는데, 그사이에 다른 경쟁사들이 이 회사가 원래 잘하고 있던 분야에서 시장을 야금야금 다 뺏어갔다. 그리고 AI에 몰방하는 게 우리 사업에 맞는 전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실은, 이런 회사들이 이렇게 방향을 급하게 바꾸게 된 배경엔 투자자들도 한몫했다. 투자하는 조건으로 무조건 AI native 회사로 체질 개선하는 걸 요구했고, 계속 AI 뽐뿌질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AI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사업의 본질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우리 고객은 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명확하게 판단한 후에 과연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현재 사업을 10배, 100배 이상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행동으로 옮겼으면 하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전에 한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 지금이 시의적절한 타이밍이라서 다시 한번 내 생각을 포스팅해 본다.

2022년 후반부터 시작된 벤처 겨울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이제 최악의 추위로부터 우린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AI 투자 덕분에 외형적으론 글로벌 벤처 투자는 2024년 Q3($57B)부터 2025년 Q1($121B) 까지 연속 3사분기 상승 중이다. 실은 벤처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건 VC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들도 더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시그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돈이 극소수의 AI 회사에 투입되고 있다는 건 – 예를 들면, 2025년 Q1 전체 글로벌 벤처 투자금 $121B 중 거의 3분의 1인 $40B이 OpenAI 단 한 개의 회사에 투입됐다 – 아직도 뭔가 불안하고 찜찜하지만, 어쨌든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새로운 정부가 AI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벤처 투자 생태계에도 40조 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진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소식이며, 하반기에는 유동성이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부가 벤처 투자를 리딩하는 건 장기적으론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반면에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이렇게 시원하게 쏘는 것만큼 단기적으론 좋은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그널이 보이는 분위기에서 요새 나는 우리 창업가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첫째, 2022년 후반부터 성장보단 생존과 수익성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 중, 아직도 비용을 못 줄여서 매달 마이너스가 나고, 명확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PMF와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분들에겐 계속하던 대로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런 회사들은 아직도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곳들이 많아서 계속 비용 절감과 비즈니스 모델 확립에 집중해야 한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고속도로보단 계속 국도로 달리는 것이다. 국도에서 가속하지 말고, 정속 주행을 통해서 기름을 아끼는 전략이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가곤 있다.

둘째, 2022년 후반부터 성장보단 생존과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지난 3년 동안 비용 절감에 성공해서 흑자 전환을 했고,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공식화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PMF를 찾았다면, 이제 다시 서서히 성장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한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이제 국도를 서서히 벗어나면서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악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돈을 써서 마이너스를 내면서 성장하라는 조언은 아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돈을 버는 프레임 안에서 더 가속하라는 조언이다.

이렇게 국도에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면 돈도 더 필요하고, 어쩌면 사람도 더 필요한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창업가의 마인드와 태도의 180도 변화이다. 너무 오랫동안 국도만 달렸기 때문에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그동안 시속 50km를 넘지 않았던 악셀러레이터를 더 밟아서 80km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데, 다시 성장 모드로 마인드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회사의 전략과 방향을 180도 다르게 설정하는 데에도 switching cost가 발생하지만, 실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건 창업가의 두려움이다. 이미 지난 3년 동안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사업이 힘들어지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에 다시 성장에 집중하는 게 너무 공포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에 집중하려면, 펀드레이징도 다시 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혹시라도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돈을 다 써서 다시 힘든 시점이 오면, 그땐 다시 한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남아 있을지,,,그 생각만 해도 공황장애가 오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았다면, 계속 비용 절감하면서 생존에 집중해라. 이런 사업이면 어차피 고속도로에 진입해도 속력도 못 내고 금세 연료가 떨어져서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돈을 확실하게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들었다면 위에서 말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과감하게 고속도로에 진입해라. 그리고 다시 쌩쌩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스타트업이란 어느 시점엔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을 까먹었기 때문에 따라잡아야 하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자.

머리 쥐어짜기

2년 전에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글을 썼는데, 오늘은 머리 쥐어짜기라는 주제의 글을 써본다. 얼마 전에 어떤 미국 VC와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꽤 공감하고, 미팅 이후에 곰곰이 생각했던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계속 살고 있어서 잘 못 보고 못 느끼지만, 한국 밖에서 한국을 보면 이런 것들이 보인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역시 숲 안에만 있으면 나무만 보이고, 숲이 안 보인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월드 클래스이다. 전 세계 어디 가도 한국의 의료보험과 같은 제도는 찾기 힘들고, 집 주변에 이렇게 다양한 병원이 많은 곳도 전 세계에서 찾기 힘들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해 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거의 미래에서 온 제도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은 다른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상당히 생소하다는 점도 많은 한국분들이 잘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프기 전까진, 한국 스타일의 정기 건강검진은 한 번도 받아보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도 좋은 건강검진 시스템이 있지만, 너무너무 비싸다. 우리는 필요하면 언제나 하는 위/대장 내시경을 미국에서 받아보면 보험에 따라 수백만 원 ~ 천만 원대의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의료 보험이 있어도 큰 병에 걸리지 않으면, 웬만하면 병원을 찾지 않는다. 나도 미국 살 때, 꽤 비싼 의료보험이 있었지만 – 근데 나는 아직도 내가 미국에서 어떤 의료 보험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 정도로 복잡하다. – 한국과 달리 보험이 있어도 의사를 한 번 만나면 돈이 너무 많이 깨져서 정말로 아주 아프지 않으면 병원을 아예 안 갔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병원에 대한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도 병원에 간다. 간단한 건 양병원, 한방병원, 의료원 등, 그 어떤 동네 병원에 가도 간단한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 받으면 되니까, 한국인들은 병원을 정말 자주 찾는다. 한 약사한테 들었던 1년 365일 매일 병원에 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하루는 양병원, 그다음 날은 한방병원, 등의 순서로 매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는 이런 분들이 한국에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건 너무 좋은 의료제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병원을 찾는 인구가 워낙 많아서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너무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인 의사들의 만성 피로, 불친절함, 피로도로 인한 의료 사고 등이 있지만, 어쨌든 나는 항상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시장을 꽤 잘 아는 이 미국 VC는 나에게 한국의 현재 의료 시스템은 굉장히 발전되어 있지만, 이 시스템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미래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준비를 그 누구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하면서 Neko Health라는 회사를 언급했는데, 이 스타트업은 한국에서는 각각의 전문의들이 하는 건강검진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예약도 온라인으로 하고 검진 센터에서 스스로 체크인하고, 사람 크기만 한 캡슐로 걸어 들어가면, 이 안에서 여러 가지 센서와 소프트웨어로 꽤 깊은 건강검진을 할 수 있다. 아직 100% 무인화되진 않았고, 채혈이나 혈압 측정과 같은 검사는 실제 간호사가 하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고 연구를 더 하면 이 모든 게 무인화 및 자동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 재미있는 게, 내가 이 일화를 한국의 친구한테 하니까, 바로 “야,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개발해. 한국은 그냥 병원 가면 일사천리로 사람들이 다 해주는데.”라는 답변이 날라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중국의 딥시크가 생각났다. 중국은 GPU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쥐어짜 냈고, 결과적으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단에서 혁신을 만들었다. 왜 미국이나 유럽이나 한국에서는 이런 혁신이 없을까? 위의 내 친구와 같이, 뭔가 너무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면 “야, 뭐 하러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 내? 그냥 엔비디아 칩 돈 주고 사면 되는데.”라는 숲속에서 나무만 보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구가 급감하고 있고, 의사와 간호사의 숫자도 계속 감소할 것이다. 한국의 의료 제도가 미래에도 지금과 같이 월드클래스 일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의사/간호사/병원의 수가 감소할 것이고, 의료보험도 예산 부족으로 인해서 훨씬 더 비싸질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기술의 질보단 풍부한 인력 위에서 돌아가고 있고, 계속 이 프레임에서 우린 최적화하려고 하는데, 이제부턴 나무도 좋지만, 숲도 봐야 한다.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럴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보면 앞서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민관 차원에서 의대생만 더 배출할 생각만 하지 말고, 더 적은 의사로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게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대면 진료, 로봇 수술, AI 의료 검사 등,,,할 게 너무 많은데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연구가 돼야 하고, 더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나와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서 창의력과 파생적 창의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