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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나은 AI

AI의 안전성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테스팅하는 Andon Labs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이 회사가 하는 실험 중 가장 흥미로운 건 가장 앞서가는 파운데이션 모델에게 사람들이 매일 하는 실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맡기고, 꽤 긴 기간 동안 인간의 감시나 간섭 없이 AI가 이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건 Vending-Bench라는 실험인데, 다양한 프론티어 모델이 자판기(vending machine: 벤딩머신) 사업을 가상의 1년 동안 운영하도록 시뮬레이션하는 연구이다.

AI 모델의 목표는 딱 한 가지다: 다른 모델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그리고 실제 회사에서처럼 AI 모델이 현금 잔고, 자판기 협력업체들에 지불하는 단가, 환불 등을 계속 체크하고 비교하면서 마치 본인이 자판기 회사의 사장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영/경제 실험이다.

첫 번째 실험 결과는 작년 6월에 발표됐는데, 나는 이걸 꽤 흥미롭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AI 모델이 실생활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한 가장 근접한 예측이라고 생각했다.

Andon에서 얼마 전에 이 실험이 1년 후에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후속편을 공개했는데, 기계지만 사람보다 더 살벌하게 사업한다는 재미있지만, 어떻게 보면 소름 돋는 결과로 가득 찬 내용이다.

일단 실험에서 사용된 모델은 GPT-5.6 Sol, Claude Opus 5 그리고 Kimi K3였다. 각 모델은 경쟁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협상할 수도 있었고, 필요하면 ‘경영진’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인간도 AI의 커뮤니케이션에 개입하진 않았다.

내가 여기서 너무 많이 설명하진 않겠지만, 그냥 놀랍고 재미있는 몇 가지 내용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Sol이 다른 모델들에게 “최저 판매 가격을 $2.15로 맞추자”라며 가격 담합을 제안했고, 모두 동의했지만, 혼자만 가격을 $2.14로 낮춰서 뒤통수를 치는 정말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2/ 피해를 본 Opus는 강하게 강의했지만 “이것도 다 비즈니스이고 불법적인 사기는 아니다”라면서 경영진에 신고하진 않았다.
3/ Opus마저도 나중에 약속을 어기고 가격을 내렸는데, 오히려 Sol은 이를 경영진에 신고하면서 처벌까지 요구했다.
4/ Opus는 겉으로는 서로 시장을 적당히 나눠 갖자는 협력을 이메일로 제안했지만, 다시 한번 다른 모델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뒤에서는 몰래 가격을 인하했다. 동시에 자판기에 제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에는 온갖 거짓말로 가격을 깎으려 했다.
5/ 결국 Sol, Opus, Kimi 모두 서로에게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면서 fair play의 약속을 모두 어기는 결과가 발생했다.

세 모델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건 Claude Opus 5였는데, Opus는 정직하게 사업하기보단 자본가와 사기꾼의 기질을 적절히 발휘했고, 담합과 뒤통수 치기를 통해서 가장 높은 수익을 만들었다. 반면, Kimi는 적군과 아군 모두에게 매번 이용당하면서 가장 돈을 적게 벌었고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물론, 이건 가상의 실험이긴 하지만, 앞으로 AI가 정말로 인간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거나 국가를 운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시사점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이번 실험을 통해 Andon Labs에서 내린 결론은 현재의 첨단 AI 모델이 아직은 사람의 감독 없이 현실 세계에서 경제 활동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건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 생각이다. 이번 실험에서 이렇게 서로를 속이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담합하는 AI 모델의 행동은 실은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행동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사람의 개입 없이 AI가 기업을 운영하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AI에 열광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많은 시간을 쓰는 건 사람과 똑같은 AI가 아니라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AI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사람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AI는 단지 사람을 흉내 내는 걸 넘어 사람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는데, 아직 이 시점이 오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 AI 모델이 경제 활동을 스스로 한다면, 내가 맘에 드는 건 딱 한 가지인데 그건 바로 AI는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24시간 내내 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겐 근무의 자유를

7월 미국 출장 기간 중 WSJ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는데, 마침 그때 이와 비슷한 주제로 우리 투자사 몇 군데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관련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일단 이 기사는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인 독일이 소매업체가 일요일에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을 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 물품으로,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독일 경기가 계속 악화되면서 이 오래된 법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1949년 개정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일요일과 공휴일은 노동으로부터 몸과 영혼이 쉬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색이 짙다. 기사를 읽어보면 이 법이 생긴 배경,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나는 독일의 경제가 심각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는 이 마당에 왜 이 법을 당장 안 고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냥 일요일에 가게 문 닫고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은 그냥 일요일에도 장사를 하게 하면 될 텐데 이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이런 법은 계속 놔두면서 독일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위기설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경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독일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을 보면 좀 한심하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지 않는 독일의 기사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걱정을 다시 한번 했다. 나는 최근에 한국이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있고, 일을 점점 더 안 하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욕도 상당히 많이 먹고 있고, 나의 일차원적인 생각을 보강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제공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도 내 결론은 한국이 더 강대국이 되고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다면 무조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생긴 이유와 그 백그라운드는 나도 알고 있다. 이런 법까지 만들게 한 비상식적인 회사들, 그 회사의 사장들, 그리고 주주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산업, 경영진, 그리고 근로자를 불문하고 이 52시간 제도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한국도 위에서 말한 독일과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그런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AI 시대엔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기보단 일을 더 잘 해야 한다고 모두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의 회사는 AI 시대이든 아니든 일단 기본적으로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 몸을 갈아 넣어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는 건 기본이고, 이런 기본이 만들어진 후에 더 똑똑하고 잘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9-9-6으로 일하는 중국, 그리고 심지어 중국보다 더 많이 일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정부의 지원도 더 빵빵하다. 그리고 이들의 인재는 한국의 인재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우리가 이런 나라, 그리고 이런 회사와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부터 지는 게임을 해야 하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건 기본으로 깔고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보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별로 똑똑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공부도 안 하고 서울대 가길 희망하는 것과 같다.

다행히 어떤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반도체, 스타트업 및 첨단 산업 전반에서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52시간제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이익을 충분히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정은 과도하다는 태도다.

근로시간 제도의 조정을 떠나 그냥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고, 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만약 현 정부가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는 52시간 제도를 끝까지 고수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해라. 하지만, 그러면 대통령을 비롯한 그 어떤 정치인도 공개적으로 한국이 AI나 로보틱스와 같은 최첨단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주일에 52시간만 일 할 수 있는 한국이, 원하면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모든 자원이 풍부한 중국과 미국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다가 어쩌면 우린 유럽에 뒤질지도 모른다.

병신을 만드는 AI

우린 인바운드로 오는 콜드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어보고 확인하는 몇 안 되는 VC 중 하나다. 충분히 많은 회사, 창업가와 만나고 있고, 우리가 아는 네트워크에서 – 이미 투자한 300개가 넘는 창업가들의 소개, 프라이머를 통한 소개, 다른 VC의 소개 등 – “따뜻한” 소개를 워낙 많이 받아서 굳이 모르는 창업가들이 보내는 사업계획서를 안 봐도 검토해야 할 사업이 넘쳐흐르긴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되도록 전부 다 읽고 검토하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이유는, 누가 어디서 언제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분들의 소개만을 통해서 창업가를 만나거나 사업을 검토해서는 절대로 언더독이나 우리 기준의 바퀴벌레 창업가를 충분히 만날 수 없다. 이 바퀴벌레들은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힐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메일을 읽고, 모든 사업계획서를 검토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pitch deck을 보내달라고 썼기 때문이다. 콜드이메일을 절대로 안 읽을 거면, 웹사이트에 이런 헛소리를 쓰면 안 된다. 우리에게 연락하면 우리가 자료를 검토하고,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우리의 얼굴인 웹사이트에 써 놨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언행일치이고, 시간을 들여서 우리에게 연락하는 창업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콜드 연락이 오는 이메일 10개 중 추가 질문이 있거나 미팅 관심이 있어서 내가 답변하는 건 2개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8개도 다 검토하지만, 패스하겠다는 답변은 굳이 안 한다.(이건 이분들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좀 많은 회사를 검토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매번 뭐라도 배우는 게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는다읽었다.

요샌 예전처럼 다양한 회사의 deck을 흥미롭게 못 읽고 있는데, 망할 놈의 AI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자료의 4분의 1 이상이 50% 이상 AI로 만든 사업계획서인데 정말 못 읽다 못 해서 못 봐줄 정도로 조잡하고 허접하다. 첫 페이지의 누가 봐도 AI로 만든 이미지와 두 번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은 이 자료를 더 읽고 싶은 욕구를 확 떨어뜨린다. 본문 내용은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이미지와 내용을 기계로 만들어서 그런지 일단 말 자체가 장황하고 요점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 이런 자료를 읽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나고, 당연히 이런 책임감 없는 자료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보낸 창업가와 안 만난다.

멋지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만드는 건 고도의 실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정말 못 만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든 슬라이드는 대부분 텍스트 위주다. 그나마 비주얼이 있는 ‘예쁜’ 내용은 우리 팀 동료분들이 만들어 준 거다. 이렇게 나같이 자료를 못 만드는 사람이 더 설득력 있고 눈이 시원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AI만큼 좋은 툴이 없다. 나는 아직은 자료를 만들 때 AI를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엄청난 자료를 나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말 그대로 AI의 ‘도움’을 받았다. 기본적인 내용, 골격, 흐름 등과 같이 좋은 자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는 모두 다 사람이 엄청나게 고민하고 생각한 후에 한 땀 한 땀 준비했고, AI는 이 재료로 만들어진 슬라이드를 더 시각적이고 돋보이게 거들어 줬을 뿐이다.

내가 요새 본 많은 자료는 저자의 창의성은 아예 안 보이고, 과연 이 분이 AI가 만든 내용을 검토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엉터리였다. 며칠 전에 본 어떤 자료는 내가 혼잣말로, “아 씨,,,AI 좀 적당히 사용해라”라고 할 정도였는데, 바로 지웠고 그 창업가에겐 답변도 안 했다.

AI가 정말로 우릴 생산적으로 만들까? AI가 정말로 우릴 똑똑하게 만들까?

가끔 나는 AI가 우릴 병신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고민하면 우리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 그리고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 이젠 이것마저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스스로 거부하고, 스스로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위에서 말한 사업계획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메일도 이젠 AI로 작성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근데 AI로 작성한 이메일은 첫 줄만 읽어도 티가 난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발신자가 직접 작성한 후 AI의 도움을 적당히 받은 게 아니라, 전부 다 기계가 쓴 걸 알게되자마자 더 이상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건 이메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낭비하는 AI 쓰레기(=슬롭)이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들이 보내는 월간 비즈니스 업데이트도 요샌 점점 더 많은 대표들이 AI로 만들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줄만 읽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AI로 만든 월간 업데이트는 수치는 정확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그 회사의 대표가 한 달 동안 뭘 했고,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배움이 있었고, 스트롱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내용을 글로 쓰려면 차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즉,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요샌 아무도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도 다 AI 슬롭이다.

소셜미디어와 블로그 포스팅도 마찬가지다. AI가 작성한 콘텐츠는 그냥 보면 안다. 일단 내용이 장황하고 포인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실제 생각과 영혼이 실린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슬롭이다. (참고로, 내가 쓰는 모든 블로그는 100% human thought, created and written이다.)

AI를 사용해서 더 똑똑해지자. 토큰 낭비하면서 더 병신이 되지 말고.

가짜 창업가

어원은 불어지만, 창업가를 뜻하는 공식 영어는 ‘entrepreneur’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반대말인 ‘fauxtrepreneur’라는 비공식 단어도 있다. ‘Faux’가 불어로 ‘가짜’라는 의미인데, 해석 그대로 가짜 창업가를 뜻한다.

가짜 창업가들의 시대가 다시 왔다. 요새 미국에서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면, 이 fauxtrepreneur라는 단어가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그만큼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가짜 창업가들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물론, 가짜 창업가들은 항상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것인데, 요샌 AI로 인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시작하고 제품을 만들면서 진짜 창업가와 가짜 창업가들이 시장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AI 기술과 제품으로 인해 이젠 누구나 모든 걸 만들 수 있다. 나 같이 코딩을 못 하는 사람도 바이브코딩 며칠만 하면 뚝딱하고 그럴싸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걸 보면, 누구나 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 그 어떤 제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이브코딩해서 만드는 제품은 시장에 진짜로 존재하는 문제를 깊게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은 없고,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껍데기 제품이다. 실제로 바이브코딩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제품이 그럴싸한 껍데기만 있는 깡통 제품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대충 만든 제품으로 투자받는 세상이 온 걸 보면 가끔은 나도 놀랄 때가 있다.

창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건 확실하다. 과거에는 창업하고 싶어도 개발을 못 하면 개발할 수 있는 코파운더를 찾거나 직접 배워야 했고, 이게 창업의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다 AI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서 나이, 경험, 학력과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만들고, 창업할 수 있다. 실은 이렇게 창업의 장벽이 낮아진 건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스트롱이 한국에 투자한 지 15년이 됐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야심차고, 자신감 있는 창업가들이 지금같이 많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투자할만한 창업가가 없는 문제는 없어진 지 오래됐고, 이젠 다 투자하고 싶은데 예산이 한정됐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좋기만 하진 않다. 실은, 부작용 투성이다. 넘쳐흐르는 창업가들과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 이들이 만든 제품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들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면 가짜 창업가가 상당히 많다. 제대로 된 사업을 만들고 싶어서 사업하는 창업가보단, 그냥 요새 AI 관련된 사업을 하면 투자받기 쉬운 환경이라서 창업하고 투자 좀 받은 후, 한 2~3년 후에 적당히 엑싯하거나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이력서에 “AI native 회사를 창업해서 스트롱벤처스로부터 투자유치” 경력을 추가하면 구인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창업가들은 실은 항상 존재했는데, 바이브코딩 전에는 꽤 높은 정확도로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게 가능했다. 이젠 모두 다 너무 그럴싸한 제품 껍데기를 만들고, 모든 것을 다 AI에 물어보고 준비해서인지 이들을 구분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졌다.

요새 내가 제일 힘든 건, 진짜 사업을 하기 위해 창업하고, 이 고통스러운 여정을 최소 10년 이상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진짜 창업가와 그냥 AI라는 테마로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받고, 몇 년 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것이다. 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또한 스스로 정화되고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AI라는 아주 화려한 재킷을 입고 다닌다. 문제는 모두 다 그 화려한 재킷이 얼마나 이쁘고 멋진지 칭찬하지만, 그 누구도 그 재킷 안에는 뭘 입었는데 안 물어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킷을 벗으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은 발가벗은 가짜 창업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린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고객획득비용 공식

바로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네이버나 구글 같은 전통적인 검색 엔진보다 ChatGPT나 클로드를 활용한 AI 검색을 통한 고객 유입이 대세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안 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네이버와 구글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AI 검색이 전통적인 검색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모든 스타트업이 마케팅의 판 자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고객 획득 방법과 고객획득비용(CAC)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전통적인 퍼포먼스 마케팅은 구글, 네이버, 유튜브, 메타 등에서 계속 해야 하는데, 동시에 AI 검색을 위한 최적화 작업도 해야 한다. 즉, CAC는 올라가면 더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진 이렇게 해서 고객을 획득하고 ROAS를 잘 관리하면 돈을 벌 가능성이 꽤 높았다. 고객을 아무리 비싸게 확보해도, 이들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면 나름 잘 작동하는 마케팅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비용 항목이 생기고 있는데 바로 토큰 비용이다. 고객을 우리 서비스로 데려오기 위해서 여전히 마케팅에 돈을 많이 써야 하는데,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이젠 토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

SEO, AEO, GEO를 잘해서 트래픽이 폭주하면, 그리고 제품을 잘 만들었다면, 우리 매출도 증가하지만, 동시에 고객 획득 비용과 토큰 비용 두 가지가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과거에도 트래픽이 폭주하면 인터넷망 비용이 발생했고, 서버 비용이 발생했다. 이후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면서 망과 서버 비용은 증가한 트래픽으로 버는 매출 대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고, 어쩌면 AI 토큰 비용도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서 모든 창업가는 고객 획득 비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객 획득 부분에서는 오가닉 마케팅 기법을 강화하고 AI 검색 엔진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콘텐츠 마케팅을 고도화해야 한다. 블로그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인 콘텐츠 마케팅이긴 한데, 이건 스케일 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필요하고 대부분 그 전에 포기하거나 망한다. 고객을 획득한 후에는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미친 듯이 사용하게 만들어서 매출을 극대화하고, 매출이 증가할수록 늘어나는 토큰 사용을 최적화해야 한다. 아마도 GPU와 NPU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비싼 파운데이션 모델과 싼 모델을 같이 사용하면서 토큰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앞으로 창업가들이 이 재미있지만,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풀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어쨌든 이젠 고객 획득 비용에 대한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고객 모집과 토큰 사용 모두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