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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고객획득비용 공식

바로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네이버나 구글 같은 전통적인 검색 엔진보다 ChatGPT나 클로드를 활용한 AI 검색을 통한 고객 유입이 대세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안 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네이버와 구글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AI 검색이 전통적인 검색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모든 스타트업이 마케팅의 판 자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고객 획득 방법과 고객획득비용(CAC)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전통적인 퍼포먼스 마케팅은 구글, 네이버, 유튜브, 메타 등에서 계속 해야 하는데, 동시에 AI 검색을 위한 최적화 작업도 해야 한다. 즉, CAC는 올라가면 더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진 이렇게 해서 고객을 획득하고 ROAS를 잘 관리하면 돈을 벌 가능성이 꽤 높았다. 고객을 아무리 비싸게 확보해도, 이들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면 나름 잘 작동하는 마케팅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비용 항목이 생기고 있는데 바로 토큰 비용이다. 고객을 우리 서비스로 데려오기 위해서 여전히 마케팅에 돈을 많이 써야 하는데,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이젠 토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

SEO, AEO, GEO를 잘해서 트래픽이 폭주하면, 그리고 제품을 잘 만들었다면, 우리 매출도 증가하지만, 동시에 고객 획득 비용과 토큰 비용 두 가지가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과거에도 트래픽이 폭주하면 인터넷망 비용이 발생했고, 서버 비용이 발생했다. 이후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면서 망과 서버 비용은 증가한 트래픽으로 버는 매출 대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고, 어쩌면 AI 토큰 비용도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서 모든 창업가는 고객 획득 비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객 획득 부분에서는 오가닉 마케팅 기법을 강화하고 AI 검색 엔진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콘텐츠 마케팅을 고도화해야 한다. 블로그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인 콘텐츠 마케팅이긴 한데, 이건 스케일 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필요하고 대부분 그 전에 포기하거나 망한다. 고객을 획득한 후에는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미친 듯이 사용하게 만들어서 매출을 극대화하고, 매출이 증가할수록 늘어나는 토큰 사용을 최적화해야 한다. 아마도 GPU와 NPU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비싼 파운데이션 모델과 싼 모델을 같이 사용하면서 토큰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앞으로 창업가들이 이 재미있지만,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풀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어쨌든 이젠 고객 획득 비용에 대한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고객 모집과 토큰 사용 모두에 대해서.

AI 검색과 퍼널 관리

가트너와 같은 시장 조사 기관의 자료를 보면 앞으로 몇 년 후엔 사람들이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보단 AI를 통해 모든 것을 검색할 것이라고 한다. 이게 3년 후일지, 10년 후일진 나도 모르겠지만, 요즘 트렌드를 보면 그냥 시간의 문제일 뿐, 궁극적으론 챗GPT와 클로드와 같은 AI 서비스가 구글과 네이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글과 네이버도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고, 본인들도 AI 검색엔진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검색과 광고 시장에서 돈을 너무 잘 벌던 회사라서 그런지 이 전환이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나는 검색할 때 여전히 구글과 네이버도 사용하지만, AI도 적절히 사용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AI를 더 많이 사용하고, 챗GPT와 클로드를 AI 생산성 툴 또는 바이브코딩 플랫폼으로 잘 활용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마도 시장의 절대다수인 일반인들의 머릿속에는 이 두 개의 제품이 ‘검색엔진’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AI 검색으로 제품을 발견한 고객은 실제로 그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즉, AI 검색으로 제품을 발견하는 고객의 구매전환율은 일반 검색을 통해 같은 제품을 발견하는 고객의 전환율보다 높다는 의미인데, 크겐 거의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나도 생각해 보니, 지난주에 AI로 검색한 제품이 5개였는데, 이 중 5개를 모두 구매했다. 네이버로 검색했으면 이 중 하나 정도 구매하거나 아니면 아예 구매하지 않았을 텐데 AI 검색의 전환율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더 생각해 보고, 더 읽어보니 – AI 검색 포함 – 고객의 여정이 시작되는 구매 퍼널의 위치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러닝용 티셔츠를 구매하고 싶은데 네이버로 검색하면, “러닝용 티셔츠. 가볍고 통풍성 좋아야 함. 가격은 10만 원대” 뭐, 이런 키워드를 입력할 것이고,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 회사 링크, 그리고 블로그가 검색 결과로 나열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중 하나를 클릭해서 들어갈 것이고, 쇼핑몰 사이트면 판매하는 제품을 보고 바로 나갈 수도 있고, 특정 제품 상세 페이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제품 상세 페이지로 들어가서 상품 설명을 보고 내가 찾던 제품이면 구매할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 내가 원하던 딱 그 상품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네이버로 검색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전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AI 검색을 하면, “요새 핫한 러닝용 티셔츠 추천해 주세요.”(맞다, 나는 AI한테 항상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한다)로 시작하면 AI가 계속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기능성인가요? 패션인가요?” 등. 그리고 AI와 대화할수록 더욱더 정교한 질문을 하고, 이전 대화로부터 내 성향과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를 활용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할 만한 소수의 제품을 추천해 준다.

그러면 나는 이 링크를 클릭해서 그 제품의 상세 페이지로 바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AI에 많은 걸 물어봤고,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 줬기 때문에,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제품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러면 이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구매 전환율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

즉, 네이버로 검색하면 구매 퍼널의 맨 꼭대기에서 고객의 여정이 시작할 확률이 높지만, AI로 검색하면 구매 퍼널의 중간 또는 하단에서 고객의 여정이 시작될 확률이 높아서 전환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의미다.

또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AI는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마켓플레이스보다 자사몰로 더 많은 트래픽을 보내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환율만 높아지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또한 높아져서 이커머스 업체들에겐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쨌든 구매 퍼널의 후반부에 있는 고객들을 자사몰로 보낸다는 건 이커머스 업체들에겐 엄청난 축복이다.

하지만 아직은 AI가 누구에게, 어떤 고객을, 어떤 방식으로 보낼지, 또는 보내고 있는진 아직은 미지수이다. 여기서 아마도 AI 회사들이 광고비를 더 많이 내는 사이트로 트래픽을 더 많이 보내면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AI가 일반 검색을 대체하게 되면 구매 전환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고, 이럴수록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경쟁은 심화할 것이다. 정말로 잘하는 서비스와 제품들의 전환율이 그렇지 못한 회사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회사들은 아예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본다. 결국 AI 검색이든 AI 검색이 아니든,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항상 이긴다는 건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하드웨어는 항상 여기에 있었다

꽤 오랫동안 같은 말을 주변에서 계속 들어서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 20년 전부터 삼성, LG, 현대 같은 한국 기업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유는 이 회사들은 하드웨어만 할 줄 알지, 소프트웨어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이런 관찰을 처음 했는지, 누가 이런 의견을 처음 제시했는지, 그리고 누가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처음 했는진 모르겠지만, 한국 회사는 제조업이라서 하드웨어만 잘하지, 소프트웨어는 잘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래가 없다는 의견이 어느 순간부터 기정사실이 됐다. 그리고 2011년 8월 a16z의 마크앤드리슨이 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운다.’라는 글이 유행처럼 번지자,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는데, 아직 한국은 하드웨어만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못 하니까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 다시 급부상했고, 하드웨어 위기론이 더욱더 강조됐던 시기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이런 하드웨어 위기론은 최근까지 계속 한국과 한국 기업을 따라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소위 말하는 모든 전문가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했고, 기업인, 투자자, 정치인, 한국인, 외국인, 모두 빨리 한국은 탈 하드웨어를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과 연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AI가 대세가 되면서 이 서사가 갑자기 바뀌었다. AI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반도체와 메모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의 수십 년 동안 무시당하고 괄시받던 하드웨어 기술이 중요해졌고, 오랜 세월 동안 하드웨어 제조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 한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AI training과 inference를 위한 GPU를 위한 메모리, 그리고 에이전트를 24시간 돌리기 위한 CPU와 메모리, 이 제품들을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한국이고, 이런 이유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총 $1T의 자랑스러운 회사가 됐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품을 제공하는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상장회사라면 시총이 급상승하면서 한국의 주식시장을 전반적으로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젠 그 누구도 한국이 하드웨어만 할 줄 알아서 미래가 없다는 말을 안 한다. 오히려 한국은 하드웨어를 잘해서 장래가 밝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오래전에 하드웨어 비관론을 펼치던 바로 그 전문가, 기업인, 투자자, 정치인, 한국인, 외국인들이 이제 몇 년 전 본인들이 했던 말과 완전히 반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닌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과 한국의 기업은 하드웨어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본인들의 약점인 소프트웨어도 엄청 열심히 파고들어서 공부하고 연구개발 했다. 그 결과는, 하드웨어로 시작했지만 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까지 잘하는, 둘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 한국에 정말 많이 생겼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좋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고, 이 인재들이 미래에 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회사를 창업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외국인 투자자가 최근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Hardware is back(하드웨어가 돌아왔다)”

나는 이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It never left. It was always here in Korea(돌아온 게 아니다. 항상 여기에 있었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유행만 좇지 말고, 모든 건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요새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지금은 남들이 죽었다고 하는 기술, 시장, 제품 중 분명히 5년 후에 다시 커질 가능성이 많은 게 있을 것이고, 분명히 우리가 눈과 귀를 크게 뜨고, 잘 보고 들어보면 모두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런 분야의 좋은 창업가에게 지금 투자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새벽이다.

고통에 대해

얼마 전에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멘터리 4부작 ‘RAFA’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한국에서는 ‘나달’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는데, 스페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선수를 주니어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고, 그동안 20년 넘게 팔로우해서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리즈가 재미를 넘어 그 어떤 스포츠 다큐보다 감동적으로 봤던 이유는 내가 알던 것보다 나달은 훨씬 더 투지가 넘치고 독한 선수라는 점이었다.

테니스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나달은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독특한 스타일의 테니스를 했던 선수이고, 그가 세운 기록 중, 4대 그랜드 슬램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 14회 우승은 아마도 평생 깨지지 않을 기록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본인이 특별히 테니스를 잘했다기보단 “I hit very hard and I run very fast”라고 항상 말할 정도로 재능, 노력, 겸손함을 모두 갖춘 훌륭한 선수지만, 이 시리즈를 보면서 내가 제일 감동받았던 건, 테니스라는 고통스러운 운동을 하면서 그가 습득한 ‘고통’에 대한 정의와 그만의 독특한 관점이었다. 그의 고통에 대한 태도는 운동선수가 아닌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도 배울점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통에 대한 철학은 2008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더욱더 두각을 나타낸다. 이미 2006년과 2007년 윔블던 결승에서 나달은 테니스 천재 로저 페더러에게 두 번 연달아 패배한 경험이 있었고, 이번엔 정말로 그 누구보다 간절히 이기길 원했다. 그리고 결국, 비가 세 번이나 와서 총 7시간 동안 진행된 경기를 해가 거의 질 무렵 나달이 세트 스코어 3-2로 이겼다. 당시의 심정을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달은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그보다 테니스를 더 잘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전 페더러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준비가 돼 있었어요. 이건 확실했습니다.”

누구나 다 고통스러우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그 고통을 조금만 더 버티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또 버티고, 또 유혹을 뿌리치다 보면, 고통을 버티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나달도 이 과정을 통해 평생 고통을 버티면서 “한 공만 더”를 했다. 아마도 이게 위대한 테니스 챔피언들과 그냥 테니스 선수들을 구분하는 자질인 것 같다. 한 공 더 버티는 것.

창업가도 테니스 선수 같은 운동선수이다. 다만, 몸보단 머리를 더 많이 쓰는 운동선수이다. 그래서 이들도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고통을 버텨야 한다. “한 시간만 더” , “한 이메일만 더” , “한 미팅만 더” , “한 피칭만 더” , “한 기능만 더”하면서 계속 버텨야 한다. 이 고통을 버틸 자신이 없으면 사업가로서 성공하긴 정말 어렵다.

얼마 전에 우리가 좋아하고 가끔 후원하는 연고대 창업 학회 인사이더스 회원분들을 대상으로 AMA 세션을 진행했는데, 어떤 학생분이 스트롱 팀원 모두에게 각각 어떤 창업가를 선호하는지 물어봤다. 우리 팀동료분들 모두 각각 다른 답변을 했는데 나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려면 월~금 매일 20시간씩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일한다면 매일 14시간씩 일해야 해서 아무리 스타트업이라도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업무 강도라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 힘든 분야에서 정말로 성공하고 싶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나달과 같이 남들보다 고통을 더 견딜 수 있어야 한다.

AI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오면서 인간은 모두 덜 일할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완전히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더 잘할 것이고,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항상 앞서갈 것이다.

나는 고통을 더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새로운 세상인가, 새로운 거품인가?

CB Insights의 State of Venture는 아마도 전 세계 VC와 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가장 필수적으로 읽는 보고서일 것이다. 나도 분기마다 이 보고서를 읽고 지난 분기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하고, 우리가 투자하는 한국 시장 관련 내용이 있으면 찾아서 읽어본다. 한 분기를 정리하는 보고서라서 내용이 다양하지만,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어디로 투입되는지 잘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2026년 Q1 보고서의 수치를 보고 내가 느낀 건 기대감과 두려움 모두인데, 두려움에 조금 더 가까운 감정이다. Q1에 전 세계 시장에 투입된 벤처투자금은 자그마치 $285.5B이다. 바로 이전 분기인 2025년 Q4의 펀딩 $142.3B과 비교해보면 2배 높은 금액이고, 작년 전체 투입된 금액이 $470.2B인데, 앞으로 남은 분기도 Q1과 비슷하다고 가정해보면, 올해 전체 펀딩은 $1.1T로 마무리될 것이다. 작년 대비 2배 이상이며, 엄청난 숫자이다.

이렇게 겉만 보면 정말 화려한 성장이고 몇 년 동안 침체됐던 벤처투자 시장이 가파른 곡선으로 반등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숫자의 함정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다.

가장 먼저 내 눈길을 끈 숫자는 $122B인데, 전체 투자금 $285.5B 중 $122B가 OpenAI라는 한 기업에 투자됐다. 올해 Q1 전 세계 벤처 투자금 중 절반이 약간 못 되는 43%가 한 회사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놀랐던 두 번째 수치는, OpenAI, Anthropic, Waymo 그리고 xAI, 총 4개의 회사가 $175.5B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Q1 전체 투자금의 절반이 넘는 61%를 이 4개의 회사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는데, Q1 전체 투자건수가 6,598건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더 놀랍다. 투자받은 회사 중 단 0.06%가 돈의 61%를 가져간 것이다.

물론, 투자 시장에도 파레토의 법칙은 항상 존재해왔다. 소수의 빅 딜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현상은 그렇게 놀랍지 않지만, 이번 분기에 내가 더욱더 놀랐던 이유는 그 차이가 너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적 간극도 더 벌어지고 있다. 돈의 싸움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미국의 AI 회사들이 전 세계 그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다. Q1 투자금의 83%를 미국 회사들이 가져갔는데, 투자건수로 따져보면 미국 회사들은 투자받은 전체 회사의 40% 정도밖에 안 된다. 평균투자금을 봐도 미국이 한참 앞서가는데, 이건 이미 이야기한 거대 기업들의 거대 펀딩이 평균을 왜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평균 투자금은 $84M, 글로벌 평균은 $43M, 아시아 평균은 $12M, 그리고 한국 평균은 $5.3M인데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보면 16배의 차이가 난다. 마침,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GDP의 차이도 15배 정도다.

또 한 가지 놀랐던 수치는 유니콘 기업의 밸류에이션인데, 2025년 Q4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이 $2.2T이었다. SpaceX, OpenAI, 바이트댄스와 같은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 $2.2T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약간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그런데 3개월 후인 2026년 Q1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은 $3.5T로 60%나 더 커졌다.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이 한국 GDP의 거의 두 배가 된 셈인데, 나는 솔직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기술이 중요하고, 이 회사들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지만, 그게 아니라 이게 거품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

이렇게 소수의 AI 관련 회사들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추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작을 뿐이다. 한국도 2026년 Q1 수치를 보면 20개의 회사가 거의 1조 원의 투자금을 흡수했는데, 이는 투자 받은 전체 회사의 6.6%가 전체 펀딩의 40%를 가져간 셈이다. 미국만큼 양극화되진 않았지만, 당분간 한국에서도 이런 미국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히 한국 수치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작은 투자금이 많은 회사에 투자되는 추세가 지난 몇 년 동안 유지되다가 2026년 Q1부터 미국같이 큰 투자금이 소수의 회사에 집중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는 역시 AI와 관련된 방향 전환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도 큰 회사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한국 투자자들은 그냥 미국을 따라가고, 투자 전략은 없고 시장에 FOMO만 가득 찼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6월 중순에 SpaceX가 $1.5T ~ $2T에 IPO를 한다고 한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작년에 거의 8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기업의 가치가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아직 나의 작은 뇌는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에 OpenAI와 앤쓰로픽이 각각 $1T에 IPO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나의 작은 뇌가 프로세싱 못 하고 있다. 미국의 상장 시장이 아무리 커도 이 거대한 IPO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비슷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더 작은 시총으로 IPO 하는 회사들을 위한 시장의 관심과 식욕이 이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IPO들이 모두 성공해서 이 회사들의 가치가 증명된다면, 우리 앞에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 모두 한 단계 올라가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것인데, 이건 생각만 해도 기대되고 흥분된다. 하지만, 만약에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우리 모두의 앞에는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의 벤처 겨울이 따뜻했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이 벤처 생태계에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이 올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까, 아니면 재앙이 올까?

잘 모르겠지만, 찬란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길 바란다. 정말로. 간절히.

어쨌든 우린 그냥 우리만의 철학과 전략으로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