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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있는 답

동영상 하면 유튜브가 대세이지만, 한 때는 유튜브와 쌍벽을 이루었던 Vimeo라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땐 나도 Vimeo를 가끔 사용했는데,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면서 최근 몇 년 동안은 완전히 잊고 있었고, 유튜브에 밀려서 회사가 망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Vimeo 사장과 인터뷰한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회사가 망한 게 아니라, 아주 잘 살아있고, 시가 총액이 무려 3조 원인 상장 회사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잊고 있던 회사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그리고 그 회사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땐 항상 반갑고, 그동안 어떤 식으로 사업을 해서 이렇게 잘 됐는지가 궁금해서 팟캐스트를 끝까지 다 들었다. 실은, 내가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은 없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자, Vimeo가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B2C에서 B2B로 사업의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비미오가 한때는 유튜브의 대항마라고도 불렸지만, 누구나 언제 어디서 동영상을 마음껏 올릴 수 있었던 유튜브에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심해졌고, 결국 유튜브와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래도 동영상 비즈니스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다른 전략에 대해서 고민한 끝에, 넷플릭스와 비슷하게 비미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판매하기로 했다. 실은, 이 결정은 오래 고민한 결정이라기보단, 어쩌면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절박하게 내린 전략 수정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꼭 오리지널 콘텐츠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기보단, 오리지널 콘텐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던 것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출시하기 얼마 전에 비미오의 대표이사가 교체됐고, 새로운 대표는 – 내가 들은 팟캐스트의 주인공 – 그동안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본인의 회의적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고, 엄청난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이 새로운 전략을 백지화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리지널 콘텐츠는 비미오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이 비미오의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보고 느꼈던 점들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작은 소규모 비즈니스들이 내, 외부용도로 동영상을 제작해서 비미오에 올리는 현상이었다. 특히 작은 회사들이 고객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과거에는 텍스트로 작성된 문서를 공유했는데, 이런 회사가 점점 더 동영상을 통해서 이런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튜브는 온갖 동영상이 다 올라간 곳이라서, 많은 기업 고객은 그래도 유투브 보단 더 깔끔하고, 선별된 동영상이 있는, 더 professional한 비미오를 선호했고, 특히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더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부 데이터를 실제로 분석해보니, 이런 관찰을 잘 뒷받침해줬다. 매우 많은 기업들이 비미오를 이용하고 있었고, 이 중 많은 고객이 기업용 동영상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솔루션까지 제공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미오는 그동안 해왔던 B2C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B2B 사업으로 피보팅을 했는데, 이게 아주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됐다.

사업이 잘 안되면, 어쩌면 답은 가장 가까운 곳인 우리 회사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비미오와 같이 우리 내부 고객의 사용패턴을 잘 보고, 데이터를 잘 분석해보면, 왜 우리가 못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보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분들이 이 답을 멀리 찾으려고 하고, 특히 우리의 경쟁사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많은 답은 우리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의 해 2022년

작년 12월에 The New Consumer의 “Consumer Trends 2022 Report“라는 보고서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USV Fred Wilson의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보고서이다). 유료 구독 서비스지만, 이 보고서는 회원 가입만 하면 무료로 볼 수 있는데, 분야와는 상관없이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면 모두 다 완독하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자료에는 좋은 내용이 상당히 많다. 핵심을 요약하자면, 현재 10세~40세인 MZ 세대가 이제 미국 인구의 거의 절반인 40%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이제 왕성한 소비를 할 시점이 도래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앞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비즈니스는 MZ 세대의 취향에 맞춰서, 그리고 그들의 가치를 반영해서 전략과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설문 조사 결과가 정리되어 있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몇 가지 핵심 내용만 정리해보면,

1/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두 쇼크를 받은 한 해, 2021년은 이 상황에 적응을 한 해, 그리고 2022년은 새로운 기회의 해.

2/ ESG와도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대중이 생각하는 만큼 MZ 세대에게 대세는 아니다. 젊은 세대가 환경 이슈에 민감하지만, 아직은 지속 가능하지 않지만, 가격이 저렴한 물건을 선호한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3/ 350조 원 이상의 상거래가 최근 2년 동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앞으로도 전자상거래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MZ 세대도 앞으로 청과물이나 육류와 같은 fresh grocery도 온라인으로 해결할 것이다.

4/ 팬데믹 때문에 헬스장이 문 닫았고, 홈트레이닝과 펠로톤 같은 기구 시장이 성장했지만, 역시 피트니스는 오프라인 경험이 적절히 혼합되어야 한다. 피트니스의 미래는 온, 오프라인의 hybrid 형태가 될 것이다.

5/ 모두가 우려하는 인플레이션은 이미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설문 조사한 모든 미국인은 물건의 가격이 올랐다고 했다.

6/ MZ 세대는 암호화폐를 현금과 같이 생각한다. 설문 조사한 MZ 세대의 21%가 작년에 이더리움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이는 13%인 비트코인의 거의 두 배인데, 아마도 NFT 구매를 위해서 이더리움을 구매한 듯). 어쨌든, 디지털 자산은 이미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왔고, 이 변화는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다.

솔직히 이 6가지 포인트가 엄청나게 쇼킹한 건 아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가 된 걸 보면, 진짜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실감 난다.

나는 이 중 첫 번째 내용이 가장 와닿는다. 2020년은 그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는 쇼크에 빠졌다. 아무것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2021년에 이제 천천히 정신을 차리면서 백신도 개발했고,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적응하는 방법을 우린 배운 것 같다. 2022년은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하는 한 해라는 생각에 100% 동의한다. 이미 우린 2년 동안의 연습 시간을 가졌고, 이제 이 연습을 통한 배움을 기회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2022년이다.

내년에도 코로나 때문에 사업이 힘들다고 하는 분들은 – 그리고, 이런 말 해서 미안하다 – 그냥 사업 접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건 변명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변명하는 동안 민첩하고 똑똑한 창업가들이 기회를 모두 독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습관에 대해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1월 중순이 지나면, 실은 일이 조금씩 줄어들고, 1년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을 준비하기 때문에 조금은 덜 바빠지는 게 정상적인데, 올해는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검토해야 할 회사는 더 많고, 돈 없어서 힘들어하는 기투자사도 더 많고, 써야 할 이메일도 더 많아서, 브레이크를 못 밟고 계속 악셀러레이터를 밟아야하는 바쁜 연말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행복한 고민이지만, 그래도 가끔 벅찬 느낌이 들때가 있다.

밸류에이션이 요새 하늘로 치솟는 점을 제외하면 – 그리고, 관련해서는 내가 따로 글을 한 번 쓸 계획이다 – 한국 벤처 생태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더욱더 많은 똑똑한 창업가들이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고, 시장엔 과할 정도로 돈이 넘쳐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보기엔 잘 안될 것 같은 사업도 여기저기서 투자를 잘 받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창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우리보다 더 못한 다른 사업도 기업가치 100억 원에 펀딩을 받았으면, 우린 더 높게 투자받아야 하고,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논리를 자주 듣고 있다.

최근에 만난 스타트업 중 기술력이 상당히 뛰어난 팀들이 몇 있었다. 기술력은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해자(垓字)가 될 수 있지만, 가끔 본인들의 뛰어난 기술력에 심취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너무나 대단한 기술을 이용해서, 너무나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간단한 문제의 공통점은 많은 사람이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불편하기보단 귀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조금 귀찮긴 해서, 뭔가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내거나 또는 앱을 귀찮게 깔아서 해결할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걸 엄청나게 복잡하고 개발이 쉽지 않은 기술을 활용해서 해결하려고 하면 사업으로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 송곳으로 살짝 뚫으면 되는 구멍을 굳이 전기 드릴로 뚫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술로 큰 문제를 한 번 해결해보라고 권장한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그런 문제이다. 습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나도 내 습관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내가 만든 기술과 솔루션으로 남의 습관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 이걸 가능케 하면 대단한 사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사고팔도록 소비자들을 훈련했고, 수백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을 바꿨다.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렇게 한 번 바뀐 습관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음성인식 기술에 대해서 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손으로 기계를 제어하던 오래된 습관에서 음성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 습관을 바뀌면 다시는 예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처음엔 고객의 저항도 있고, 경쟁사의 저항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뭔가를 하도록 시장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바꾸기 힘든 걸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좋은 기술력이 필수이다.

좋은 기술력이 있다면, 너무 작은 불편함보단,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더 큰 문제에 도전해 보는걸 추천하고 싶다.

교두보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난리가 났다. 개봉하기 전에 서울 여기저기서 택시와 버스에 오징어 게임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이상했고 익숙한 내용이라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이게 이런 글로벌 히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드라마 딱 9편만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가 될 기세이다. 실은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못 봤지만, 관련 기사는 엄청나게 많이 읽었고, 이런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넷플릭스도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황감독이 오징어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한 건 10년 전인데, 그동안 한국의 투자자와 배우들은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뻔해서, 흥행 못 할 거라고 하면서 모두 투자와 출연을 거부했는데, 이걸 넷플릭스가 픽업해서 투자하고 훌륭하게 배급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요새 워낙 OTT 전성시대라서 넷플릭스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준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한다. 실은, 이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고 있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국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고 예측가능한 콘텐츠만 생성한다는 오래된 기억과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의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분들이 놓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트렌드를 넷플릭스는 2010년 초반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8,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했는데, 이 금액은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더 크다고 알려진 인도시장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넷플릭스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었으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인의 디바이스와 화면을 통해서 알려졌을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선견지명,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 그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의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지만 글로벌 시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글로벌 유통파워가 그 누구보다 좋은 플랫폼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아주 기발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과 성공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스트롱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도 9년 전부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펀드로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꽤 많은 회사에,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몇 개는 해외로부터 큰 투자도 받으면서 상당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런 교두보 역할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고, 외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 영화관에서는 이제 외국 영화의 더빙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는 외국 배우들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글을 읽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자막처리를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읽으면서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인은 글을 읽는 교육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영화를 자막처리하면 내용 자체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오히려 더빙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넷플릭스 사용자들의 취향을 이미 데이터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자막과 더빙을 알아서 추천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미국 성공에는 크게 기여한, 현지 시장을 잘 모르면 하기 어려운 그런 디테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는 VC도 이러한 이유로 양쪽 시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제 한국이 정말로 글로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Scrappy

유튜브는 16년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워낙 트래픽이 많고, 메인 미디어가 돼서 1억 조회 수가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BTS의 경우 하루 만에 1억 view를 돌파하기 때문에 이 숫자가 초라해 보이지만, 16년 전에는 1억 view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숫자였다. 이 블로그 독자 중 13년 전에 유튜브를 이용했던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거의 1억 번 조회됐던 전설적인 동영상이 하나 있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깡마른 어린 소년이 골방에서 전자기타를 치는 동영상이었다. 오리지널 영상은 이제 삭제됐는데, 내 기억으로는 영상의 제목은 그냥 “guitar” 였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너무나 많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 D 장조를 대만의 기타리스트 Jerry Chang이 락기타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을 이 소년이 모자로 얼굴을 계속 가린 채로 연주하는 동영상이었다. 아마도 내 또래분들은 분명히 이 영상을 봤을 텐데, 이 동영상이 당시에 거의 1억 번의 조회를 달성하면서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었고,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는 당시에 LA에서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고전하고 있었고, 우리도 음악 분야에서 사업을 하면서 유튜브와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이 시장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상상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종일 유튜브를 보면서 음악 관련 동영상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특히 이 동영상을 많이 봤다. 이 동영상 속의 어린 천재 또는 노력파 기타리스는funtwo라는 친구였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인이었다. 임정현이라는, 스스로 기타를 배운 기타리스트였고, 실은 이 동영상도 본인이 올린 게 아니라, 한국 커뮤니티에 올린 걸 누군가 퍼가서 올린 영상이었다.

나는 기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음악에 대한 조예도 그다지 깊진 않지만, funtwo의 캐논 락 버전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듣고 소름이 돋는다고 할 때, 이게 무슨 말인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 곡을 듣고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친구가 기타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타를 들고 있기만 한데, 기타가 스스로 연주를 하는 것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인기 있었던 건, 당시의 특수한 상황도 있었다. 유튜브가 아직 글로벌 메인스트림 플랫폼이 아니었고, 동영상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guitar’로 검색하면 가장 먼저 검색 결과에 나오는 동영상이라서 이렇게 조회 수가 많이 발생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나도 음악 관련된 스타트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더욱더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난 이 동영상과 funtwo를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굉장히 낯익은 외모와 기타 소리를 발견해서 페이지로 들어가 보니 그 funtwo의 페이지였고, 어느새 30 후반이 된 이 친구는 이젠 업으로 기타를 치는 멋진 아티스트가 됐다. 그의 시그니처 연주인 캐논 락을 그동안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연주해 동영상을 올렸는데, 들을 때마다 아직도 소름 끼칠 정도로 잘 하는 것 같다. 실제로 funtwo 동영상의 댓글을 보면 “original YouTube God” , “my guitar inspiration” , “the little kid in the blue shirt that got everyone guitar crazy” , “The OG Korean internet influencer” 등등 엄청난 찬사의 글들이 많은데, 아마도 대부분 오래전에 오리지널 동영상을 즐겨봤던 내 또래의 사람들인 것 같다.

이 동영상은 캐논락의 나름 최근 버전이다.

Funtwo는 이제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가고 있고, 요새도 계속 멋진 기타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나도 이 채널을 발견한 이후 가끔 들어가서 즐겨 듣고 있고, 음악을 잘 모르지만, 여전히 멋지고 현란한 기타로 많은 팬덤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13년 전의 그 오리지널 캐논락 버전이 가장 감동적이고 멋진 것 같다. 남에게 일부러 잘 보이기 위해서 찍은 동영상도 아니었고, 멋지게 편집한 동영상도 아니었다. 실은 굉장히 허접한(=scrappy) 동영상이고, 블랭핑크나 BTS 뮤직 비디오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가 골방에서 후광을 받으면서 전자기타를 치는 그 허접함 자체가 너무 멋진 것 같다.

모두가 다 시작할 땐 아마추어이다. 모두 다 서툴고, 엉성하고, 촌스럽고, 허접한데, 실은 이때가 제일 멋지고, 나중에 가장 추억에 남을 때이다.

유튜브와 같이 성장한 동영상.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타를 들게 한 동영상. 언제나 들어도 멋지고 소름 돋는 동영상. 그 허접하고 scrappy 한 동영상을 공유한다. 멋지게 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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