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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류

얼마 전에 컴팩트하게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3개국을 갔다 왔는데,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미팅 하나씩하고 다시 귀국했다. 우리는 한국이랑 미국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 유럽에 포트폴리오 회사가 하나 있긴 하지만 –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투자자들도 유럽에는 거의 없어서, 일 때문에 유럽 갈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유럽 땅을 밟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유럽에 온 게 2000년도였으니까, 이번에 24년 만에 유럽에 왔다. 특히 어릴 적 살았던 스페인에는 이번에 무려 35년 만에 갔는데, 솔직히 너무 짧은 출장이라서 뭘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한 나라에 하루도 안 있었지만, 오랜만에 유럽에 와서 나흘 동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한국과 관련된 점들이고, 대부분 너무 좋은 느낌과 발견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일부와 중학교를 유럽에서 다녔다. 이게 언제였냐면,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이었는데, 모든 걸 사진같이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정말 못 사는 나라였다. 그 못 사는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 참고로, 당시엔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하는 시기였다 – 유럽에 오니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도 유럽은 너무나 잘 사는 선진국이었다. 멋진 사회적 인프라, 온갖 맛있는 음식, 비싼 자동차, 옷도 잘 입는 멋쟁이들,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선진국 사람들,,,뭐 이런 느낌이었고, 실은 이런 유럽의 선진국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며칠 전 출장 전 까진.

그런데 이번에 출장 와서 내가 보고 느낀 점들은 당시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 유럽이 이렇게 후졌었나? 내 기억으론 정말 잘 사는 나라였는데, 별거 아니네.” 심지어는 런던 호텔에서 우연히 대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이분도 나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홍아, 영국이 원래 이렇게 후진 나라였니? 나는 한국이 훨씬 더 좋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좋았다. 한국이 인프라도 잘 되어 있고, 솔직히 말해서 음식도 한국이 더 맛있었다.(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이탈리아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한국에서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좋은 자동차는 서울에 훨씬 더 많고, 심지어는 유럽의 멋쟁이들보다 강남과 성수의 한국인들의 패션이 더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이렇게 느꼈던 건, 유럽이 못 살거나, 후져서가 아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주 잘 사는 선진국인데, 한국이 그동안 너무 발전을 많이 했고, 한국이 너무 좋은 나라가 됐기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은 아주 잘 사는 강한 나라가 됐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심지어 굉장히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유럽 가는 곳마다 투자자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 진짜 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너넨 잘될 거야.”였는데, 내가 봐도 한국인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솔직히 나만 봐도 진짜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앞으로 유럽 사람들이 계속 지금같이 일하고, 한국 사람들도 지금같이 일하면,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게 확실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린 이미 한류(Korean Wave)라는 말을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했는데, 내가 요새 느끼는 건, 이제 제2의 한류(2nd Korean Wave)가 시작되는 것 같다. 제1의 한류 기반이 제조업을 잘하고,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한국이었다면, 제2의 한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게 포함되어 있다. 이제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은 이미 하드웨어를 잘하는 나라인데, 소프트웨어도 잘하고, 특히나 consumer 제품을 굉장히 잘 만드는 나라가 됐다. 실은 여기서 멈춘다면, 제2의 한류는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는 그냥 tech인데, tech 자체로만 다른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순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tech를 넘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게 시사하는 바는 정말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음악도 잘 만들고, 영화도 잘 만들고, 무형의 자산인 콘텐츠 강국이 됐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다른 무형의 자산인 음식에서도 한국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음식이 이젠 정말로 메인스트림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스포츠도 잘한다. 많은 한국 프로 선수들이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너무나 잘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다 합쳐지면서 한국은 이제 외국인들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나라가 됐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대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회사, 또는 우리 같은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는 걸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런 내 생각과 의견에 100%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미래는 어둡고, 더 이상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한국 VC도 내 주변에 많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는 많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한국은 선진국에서 강대국으로 다시 한번 더 점프할 수 있는 내, 외부 기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과소평가, 과대평가 – 기술

내가 종사하고 있는 테크 업계와 투자 업계 사람들은 모든 걸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한다.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대단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과 항상 교류하고,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는 변화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이라는 투자금과 기업 가치에 대해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막 말하는데, 그 정도로 이 벤처 산업은 통이 큰 것 같다.

이렇게 크고, 변화가 너무 빠르고 흔한 분야라서 그런지, 이 테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과대평가를 많이 하고, 이와 반대로 과소평가도 많이 한다. 내가 그동안 투자하면서 느꼈던, 이 tech 분야에 있는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이 – 나를 포함 – 항상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것들 두 가지, 그리고 반대로 항상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들 두 가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써보고 싶다.

너무 많은 분들이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단기적인 변화를 과대평가하고, 기술이 가져올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한다. 실은, 이 말은 Roy Amara라는 미국의 과학자가 했던 유명한 말인데, 내가 얼마 전에 2월에 주문한 애플 비전프로를 직접 사용해 보고 Amara가 했던 이 말에 다시 한번 공감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가 2012년도에 창업됐는데,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투자자들과 업계 사람들의 주목을 과하게 받았다. VR(Virtual Reality)이라는 단어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아마도 이때부터 일반인들도 이 말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조 원의 펀딩이 VR 산업에 투자됐고, 이 회사들은 비즈니스 모델과 매출은 없지만, 최단 시간에 유니콘이 됐다. 우리도 당시에 상당히 많은 VR 회사를 검토했고, 이 중 한 개에 투자했는데, 여러 회사를 검토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결국 가상현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큰 사업이 되려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후 한 2년 동안 이 분야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고, 자금이 투입되면서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VR이 마치 당장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너도나도 말도 안 되는 회사를 만들었다. 물론, 당시에는 말이 되는 사업처럼 보였다. 대기업들도 너도나도 VR 사업 부서를 만들고 많은 자원을 이 분야에 투자하면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 당시 내가 미국에서 만났던 VC나 창업가들 모두 VR이 “next big thing” , “new future”라는 말들을 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부정적, 회의적 의견을 비치면 엄청나게 공격했던 기억이 난다.

결론은, 이들이 과대평가했던 것처럼 VR이 세상을 바꾸지 않고 그냥 반짝 떴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VR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던 VC들은 the next thing으로 지갑을 옮겼고, 단기간 안에 대박을 꿈꾸던 창업가들도 the next thing으로 갈아탔다. 대기업들도 슬그머니 VR 분야에 투자를 중단하고, 이를 위해 만들었던 TF 팀들을 해산하고 다른 팀으로 사람들을 재배치 했다. 기술이 가져올 단기적인 변화를 너무 과대평가 한 전형적인 사례다. 그리고, 우린 이후에 여러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걸 자주 목격한다. 메타버스, Web3 등이 비슷한 것 같다.

VR 기술이 가져올 단기적인 변화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이 변화가 단시간 안에 일어나지 않자 이 분야를 떠났던 사람들이 범한 또 다른 실수는 바로 이 기술이 가져올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오큘러스가 등장한지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내가 애플의 비전프로를 사용해 보고 느낀 건, 바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VR이 정말로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다.

요새 AI가 난리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건 의심하지 않지만,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장 이런 변화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다. 우리 모두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장기적인 관점 사업하기 위해서 회사를 창업해야 한다.

이다음 글에서는 또 다른 과대평가/과소평가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보겠다.

한 발짝만 앞서기

내가 썩 잘 하진 못했지만,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음악 관련 스타트업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음악 관련 사업을 하는 창업자들에게 콜드 연락을 꽤 많이 받고 있다. 반갑기도 하고, 이분들은 어떤 사업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만나보면, 참 대단하고 다양한 창업가들이 재미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하고 나도 자극을 많이 받는다.

모든 창업가들은 하루하루가 문제의 연속이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게 이들의 과제이지만, 특히 음악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과 유료화이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제일 힘들고 괴로웠던 게 바로 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음악이라는 시장 자체가 흥미롭고,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또한 너무 재미있어서 매력적인 분야인데, 돈을 버는 게 정말로 어려운 시장이다. 특히나, 인터넷 기반의 음악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 monetization이 참으로 어렵다. 16년 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것 같다.

요새 새로 나오는 음악 앱들을 보면 AI를 기반으로 저작권 이슈가 없는 음악을 만드는 제품들이 꽤 많다. 이런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너무 신기한 게, 바로 16년 전에 뮤직쉐이크가 만들던 제품/사업과 거의 동일 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되겠지만,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기본적인 틀은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우린 당시에 AI/인공지능이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AI라는 용어가 존재했지만, 굉장히 무거운 개념이라서 지금같이 막 갖다 붙일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아니었다.

뮤직쉐이크는 자체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홍보했고, 당시엔 비슷한 제품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요새 나오는 제품들은 AI가 음악을 만든다고 홍보하는데, 비슷한 제품이 정말 많다. 이런 시장 상황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건, 바로 우리가 너무 앞서갔다는 것이다. 솔직히, 굉장히 앞서갔다고 생각한다. 한 발짝만 앞선 게 아니라, 두 발짝이나 앞섰는데, 실은 이게 문제였던 것 같다.

한 발짝만 앞서면 꾸준함과 인내심이 결국 메인스트림 시장을 만날 수도 있는데, 두 발짝이나 앞서면 메인스트림 시장이 따라오기가 쉽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대부분의 벤처 펀드엔 10년이라는 주기가 있어서, 두 발짝이나 앞서면 투자자들이 엑싯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 걸리기 때문에 메인스트림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창업가가 지쳐서 나자빠진다. 그래서 내가 요새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AI 음악 앱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시대를 앞서는 건 정말로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직결되지만, 딱 한 발짝만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발짝만 앞서자.

포화된 시장은 없다

수년 동안 Guy Raz의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HIBT)’를 운동할 때, 그리고 이동할 때 듣고 있다. 전에 내가 이런 포스팅을 했는데, 이분 같이 팟캐스트 진행을 잘하는 사람을 나는 못 만났다. 얼마나 잘하냐 하면, 내가 Guy의 톤, 그리고 질문 유형을 외워서, 누군가를 인터뷰하거나, 우리 포트폴리오 미팅에서 fireside chat을 할 때마다 비슷하게 또는 그대로 적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Liquid Death의 창업자 Mike Cessario의 HIBT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역시 명 팟캐스트였다. 마케팅, 컨슈머 제품, D2C, 포화된 시장 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Liquid Death는 세상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고, 포화됐고, 공룡과 같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7년 전에 창업해서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 하는 스타트업인데, 바로 물을 파는 회사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물처럼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이 아닌 캔에 담아서 팔고,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마치 술이나 에너지 드링크와 같은 디자인과 패키징을 사용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냐 하면, 이 창업자가 어느 날 야외 음악 축제에 갔었는데, 이 축제를 스폰서하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 Monster Energy가 현란하고 화려한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 캔에 물을 넣어서 제공하는 걸 보고 번뜩이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물이지만, 맥주나 에너지음료와 같은 캔에 넣어서 판매하면, 이걸 마시는 사람들은 마치 술을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주 재미없고 심심한 물도 재미있고 쿨 해 질 수있다는 걸 그 축제에서 보고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Liquid Death는 창업 첫날부터 본인들은 물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아주 기발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건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라고 포지셔닝을 했는데, 이 전략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물이 아니라서 물이 알프스 산맥에서 떠왔던, 미국의 호수에서 떠왔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이크 사장에게 중요한 건 브랜드였고, Liquid Death라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캔을 따서 이 물을 마실 때 어떤 느낌을 소비자들이 받을지가 이들이 스타트업으로써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우리도 D2C와 소비재 스타트업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다. 요샌 이 분야를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피하지만, 우린 꾸준하게 검토하고 투자하고 있다. 이 시장을 단순히 대규모 자본이 없으면 마케팅도 못하고,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해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못한다. 이미 웬만한 소비재 시장은 돈이 너무나 많은 대기업들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재치 있고 창의적인 브랜딩이 이기는 시장이라고 보면 나는 스타트업이 충분히 대기업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Liquid Death도 물의 성분, 생산, 보틀링, 공급망 등으로 대기업과 겨루는 건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의 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코카콜라가 150년 걸려서 만든 거대한 시장을 아주 재치 있고 튀는 브랜딩으로 5년 만에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5년 만에 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 팟캐스트의 핵심 주제는 포화된 시장이다. 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포화된 시장 중 하나가 바로 물 시장인데, 이 시장에서 Liquid Death는 엄청난 브랜드를 만들면서 성장했다.

포화된 시장이라는 건 없다. 단지 포화된 우리의 편견, 의심, 그리고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시간, 모든 스타트업의 가장 큰 고객

프라이머 21기 회사 중 폴러리라는 팟캐스트 스타트업이 있다. 내가 담당하는 회사라서 이 회사의 대표님과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오디오 콘텐츠와 팟캐스트 시장과 사업에 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나도 이 산업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폴러리와 이야기하면서 콘텐츠 시장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었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겐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24시간을 줄일 수도 없고, 늘릴 수도 없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은 공평하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약 8시간이 남는데, 이 8시간을 선점하기 위해서 모든 B2C 제품과 서비스들이 매일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시간에 나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팟캐스트를 들을 수도 있고,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이 외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확실한 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물리적으로 이 8시간이 늘어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이 시간 동안 즐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매일 매일 새로운 제품과 앱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들은 모두 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시간을 조금 더 뺏어와서 그들의 제품을 사용하게 하고 돈을 쓰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을 하는 게 스타트업 사람들의 full-time job이다.

이런 시각에서 시장을 보면,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만 사용하는 앱들은 엄청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개 ~ 수만 개의 선택지가 있는데, 한정된 시간에 이 앱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사용한다는 건, 정말 스타트업의 인간승리다.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쿠팡, 당근마켓 등과 같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앱은 신의 경지에 오른 제품들이다. 잠자고 일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매일 이런 제품을 사용하게 만드는 제품의 강제성, 완벽성, 그리고 중독성은 위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새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물리적인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기술, 몸을 손상하지 않고 잠을 줄일 수 있는 기술 또는 뇌를 더욱더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야말로 모든 스타트업이 확보해야 하는 가장 큰 고객인데, 이런 다양한 기술과 제품을 이용해서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면, 새로운 기회들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